유난히 길거리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보다 더 길거리에 장식이 없고 캐럴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라디오에도 이상하지만 다른 해보다 덜 나오는 거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한 마을버스 속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커피를 투고하러 가는 길에 몇 년째 공사를 하고 있는 거대한 공터가 있다. 기존에 있던 소방서를 허물고 무슨 센터를 짓는 모양인데 공사현장 앞에는 늘 공사개요가 붙어 있어서 공기라든가, 그런 걸 다 알 수 있는데 점점 공사개요에 표기된 공사기간이라든가 벗어나더니 어느 순간 그 표지판이 없어지고 그대로 빈 공터인 상태로 코로나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땅을 파고 다 허물어서 생명체라고는 자라지 않을 것 같은데 12월 어느 날 보니 나뭇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며칠 굉장히 추웠던 날이었다. 그런 날에도 조깅을 하러 나왔다. 다른 해의 한파보다 덜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막상 나오니 너무 추웠다. 하지만 늘, 언제나 그렇듯이 조깅을 하고 10분 정도 지나면 등이 후끈후끈해진다. 아무리 추워도 조깅을 하는 러너가 한두 명은 보이는데 이 날은 정말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던 날이다. 도로에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큰 도시에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몇 해 전에 비해 비둘기들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닭둘기라고 해서 도심지에 가득해서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같은 글귀가 여기저기 붙었었다. 비둘기들이 싸질러 놓은 똥 때문에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닭둘기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 않는다. 일행 중에 한 명은 비둘기들이 다가오면 저리 가 조류독감아 라고 외치기도 했다. 요즘 비둘기들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건 여전하다. 예전 닭둘기들은 발로 툭툭 치면 옆으로 밀려갈 정도로 사람은 사람취급 안 했는데.
12월에 조깅하다 올려다본 하늘은 그대로 그림이었다. 고요하고 뿌옇고 포근해서 마치 4월 초 같은 날이었다.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오
뎅
다
낑
가
노
코
가
끼
예
마찬가지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실내에서 트래드밀로 달리면 이런 풍경은 절대 볼 수 없다. 불편한 점이 있지만 밖으로 나오면 이런 풍경을 접 할 수 있다.
매일 오전 비슷한 시간에 커피를 투고하러 가는 길이다. 햇살이 좋았던 12월의 어느 날이다. 날이 좋으면 커피 투고 하러 가는 이 길을 걷는 게 좋다. 다운타운이어서 한창 오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매일 지나가니까 매일 비슷한 모습으로 하루를 여는 장면을 보는데 지겹지 않다.
아버님 아무리 술에 취해 잠이 오더라도 이런 데서 주무시지 마세요. 날이 포근하다고 해도 데카브리입니다 아버님. 신발까지 나란히 벗어 놓고 버스정류장에서 잠들어 있는 어르신을 보니 꺼져가는 12월이 더없이 안타까워 보인다.
책을 보면 정점을 찍으면 내려오는 길밖에 없으니 평행선을 이루면서 길게 살아가는 게 좋다는 말들이 많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점을 찍지 않는 것이 아닐까. 비록 떨어질지라도, 바닥까지 추락하더라도 꼭대기에 올라 거기서 밑을 한 번이라도 내려다보고 싶지 않을까.
인간은 예전부터 마녀사냥을 해서 자기 위안을 삼으려는 유전자가 있어서 몰려들어 한 사람을 죽이는데 적극적이 된다. 죽이는 댓글 한 줄에 정의롭다는 뿌듯함으로 매일을 보내는 사람을 우리는 쓰레기라 부른다. 동료의 죽음을 추모하면 달려가는 쓰레기는 불에 태워야지.
내가 살았던 동네는 이제 이렇게 전부 싹 없어지고 아파트가 착착 들어서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엄청 많은데 내 아파트는 없다는 것도 기운이 빠진다. 아파트는 살기 편하지만 한 번 불편하면 한도 끝도 없이 불편해진다. 층간소음이라든가, 담배연기라든가. 이런 문제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으며 폭력으로 번진다.
2023년 데카브리를 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