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누군가 나에게 귤을 주었다. 옆에서 귤과 음료를 마시던 가족이었다. 나에게 3개나 주었다. 4월에 귤이라니. 4월에도 귤을 먹을 수 있다. 뭐든 가능한 세계가 된 것일까. 나는 하나를 까먹었다. 손에서 나는 귤향이 좋았다. 연약하고 단조롭지만 껍질이 있고 껍질을 까니 귤은 살아있는 것처럼 과육에서 나온 끈적거림이 손에 묻었다. 어쩐지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때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이런 기시감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마치 6세가 되어 4월에 낮잠이 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4월의 귤향은 그녀를 닮았다. 이질적인데 상쾌했다. 교회에서 기도를 잘하고 있을까.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겠지. 그녀가 보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숲 속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여기서 바라본 하늘은 그야말로 하. 늘.이었다. 출발할 때 맑았던 하늘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하늘이 흐려지니 사방에서 풀 내가 나는 것 같았다.      


보통은 한 시간 안에 명수가 나오는데 오늘은 동생과 이야기가 길어지는 모양이었다. 명수는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명수는 축구를 하다가 상대 편 수비수에게 걷어차여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업혀 양호실에 실려 갔다. 명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며칠 지나서 물어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부딪힐 때의 느낌만 조금 날 뿐이야. 아마 내년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걸]라고 명수가 말했다.   

   

하늘은 완전히 흐려졌다. 나는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오면서 커피부스에서 라테를 사 왔다. 라테가 한 잔에 천 원이었다. 가격이 저렴했다. 요양소 안에는 자판기가 없고 커피부스가 있었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었다. 풍채가 좋은 50대 남성이었다. 만드는 동안 나에게 누구 면회를 온 모양이냐고 물었다.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면회 온 가족에게 대하는 말투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교육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려고 해요. 일단 나의 문제를 받아들이면 편하죠. 저도 저의 문제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요]라고 바리스타가 말했다.


라테를 받아 들고 연못 근처 벤치에 앉았다. 라테의 맛이 좋다. 날씨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아침도 거르고 아직 점심도 먹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가 됐든 라테가 아주 맛이 좋았다. 평소에는 라테 같은 음료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뜨거운 음료를 마셔본지도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마시는 뜨거운 라테는 흐린 날씨를 벌리고 나의 마음속 통증을 없애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아직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의 가까이에 내가 모르는 것들이 아직 많이 있었다.      


명수가 나왔다. 나를 일어났다. 명수는 나를 벤치에 앉히고 자신도 옆에 앉았다. [날이 흐려졌네]라고 명수가 말했다. [오전에 맑았는데 어땠는지 기억나?]라고 내가 물었다. [아니, 몰라. 그런 거 기억날 리가 없어]라며 명수가 웃었다. 이렇게 동생을 만나고 나오자마자 말을 하며 웃는다는 건 동생과 이야기가 잘 되었다는 증거다. 명수는 어쩌면 반가운 소식을 집에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우리는 버스 시간을 확인 한 다음 벤치에 앉아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날개 달린 개미들이 숲 속의 사람들을 공격한 것은 숲 속의 사람들이 먹을 것이 모자라 땅을 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고 생김새가 달라서 서로는 전쟁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 사이에 떨어졌을 때 날개 달린 개미들은 그녀를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존재로 알고 옆 나라의 붉은 날개 달린 개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날개 달린 개미들은 병사개미들 말고도 일개미까지 전부 나와서 그녀를 공격했다. 숲 속 사람들은 너무나 약하여 날개 달린 개미들이 공격을 하면 도망을 가야 했다. 물리면 그 자리에서 부풀어 올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병들어 죽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해서는 전쟁이 끝날 것 같지 않고 서로 상처만 남을 것 같았다. 그녀는 날개 달린 개미들의 왕에게 휴전을 권했다.


그러나 왕은 휴전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우리의 세계에 먼저 침범을 했다]라고 날개 달린 개미의 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추위 때문에 먹을 것이 떨어져 땅 속에 있는 뿌리를 캐 먹으려고 그랬던 것입니다]라고 숲 속의 사람들이 말했다. 그녀는 왕에게 해결할 방법을 알려 주었다. 숲 속의 사람들이 잡은 동물을 먹고 남은 부위를 개미들에게 주었다. 개미들은 숲 속의 사람들에게 사냥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그녀는 두 나라의 휴전을 확인하고서야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피부에 났던 상처들이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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