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의 국수는 별거 없는데 맛있다. 양이 엄청난데 먹다 보면 양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모른다. 그 집의 국수는 매시간 삶기고 있다. 멈추는 법이 없다. 그 집의 아들이 그랬다. 국숫집 문을 열어 첫 장사를 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날도 국수를 계속 삶고 있었다고.


문득 든 생각이지만, 아무로 나미에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무로 나미에는 어머니의 죽음을 뉴스로 접하게 되었다. 그날이 새로 발표한 노래가 나오는 날이었다. 아무로는 심통한 얼굴로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모습이 티브이로 일본 전역에 비쳤다.


그리고 아무로 나미에는 그다음 날에 아주 밝은 표정으로 신곡 발표를 했다. 사회자가 어머니를 잃은 마음에 안타까운 발언을 했지만 아무로는 너무나 밝게 고맙다며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서도 바로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고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왜 아무로 나미에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재혼할 남자의 남동생에게 살해를 당했다. 그리고 피의자인 남동생은 야산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다.


내가 죽더라도 국수 삶는 걸 끊어지면 안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날도 주방에 버티고 서서 국수를 계속 삶았다. 어머니가 살해를 당해도 그다음 날 사람들 앞에 나와서 신곡을 노래 불렀다.


그것이 올바른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루키의 글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인간이 숨을 쉬는 동안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고하고 상상하는 것이 멈추는 순간 기계가 된다. 기계는 쉬지 않고 돌리면 삐거덕거리다가 망가져 아예 못쓰게 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고, 직업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왜냐하면 죽기 살기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취미를 찾고 맛있는 음식으로 그에 상응하는 위로를 받는다. 놀고먹는 것은 즐겁다. 즐거운 건 즐거울 때 즐겨야 한다. 설령 지난 후에 후회할지라도.


적어도 하루키는 책에서처럼 1987년 여름, 가을에서 2021 여름, 가을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의 글도, 달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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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의 수확 2



여행에서의 여러 개의 수확 중 하나는 평소에는 크게 듣지 못하는 음악도 여행을 가는 도중에는 크게 들으며 신나게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시나위 4집이 있는데 이걸 평소에는 어디서든 크게 듣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안 듣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라디오를 듣게 되고, 자꾸 그러다 보면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듣게 될 뿐이다. 찾아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지만 그저 들려주는 음악을 들을 뿐이다. 그런데 여행을 가게 되면 이 작은 쪼임에서 야호 하며 탈출하게 된다. 라디오를 좋아하는데 라디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잘 들려주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재미있다. 공식적인 모임에는 기를 쓰고 나가지 않으려 하지만 내가 만든 독서 모임은 또 영차영차 열심히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운전하는 건 귀찮은데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밤새 운전을 하여 여행지까지 가곤 했다. 그건 뭐랄까, 씻는 건 정말 싫은데 샤워하는 건 좋아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에이 그게 뭐야? 뒷산 나무늘보 같은 놈아.라고 해도 그런 이상한 양가감정을 가지는 게 인간이니까. 흥.


어떻던 여행 가는 건 귀찮지만 여행 가는 걸 좋아했다. 운전해서 여행을 갈 때에는 계획이 없다. 그냥 어디까지 가야지-까지만 있지, 예약하고 그곳의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고, 어디를 보고, 하는 건 나의 문화권에는 없다. 이런 점은 이전에도 여행에 관해서 한 번 적은 적이 있었다.


가는 동안 나는 평소에 들을 수 없었던 시나위 4집을 크게 튼다. 그리고 열심히 따라 부른다. 그래서 같이 가는 상대방은 이분법적으로 밖에 나뉠 수 없다. 정말 싫어하거나 진짜 좋아하거나. 또는 신경을 안 쓰거나. 이렇게 되면 이분법이 아니구나. 삼분법인가? 아무튼 그렇게 나뉜다. 여행을 갈 때 마음이 맞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지만 여행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여행 내내 툴툴 거리며 보내지는 않는다. 내가 계획을 짜는 게 귀찮을 뿐이지 계획을 짜는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주면 의외로 더 괜찮은 여행을 갔다 올 수 있다. 보통은, 거의 대부분은 여행을 갈 때 계획을 짜고 준비하는 그 기쁨이 크다.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대체로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어떻게 아무 계획 없이 여행을 갈 수 있어요?


라고 하지만 아무 계획 없이 떠나는 게, 그게 여행이지.라고 그저 속으로만 대꾸할 뿐이다. 부웅 운전을 해서 타지방으로 가면 그곳의 극장에서 영화를 꼭 봤다. 그에 관한 이야기도 한 번 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영화에 빠져서 모르지만 극장에서 나오면 아, 지금 우리 여행 중이었지? 하는 기 기분이 아주 좋다. 


그래서 상대방도 여행지에 가서 그 지방 도시에 있는 극장에 가는 건 좋아했다.


하지만 시나위 노래는 좀 심했다구요.


시나위 4집을 내내 돌려서 듣고 싶지만 그럴 수만은 없다. 그게 인간들 속에 끼어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남이섬이 갔을 때였다. 이곳에서 거기까지는 멀다. 도착해서 남이섬을 돌고 나면 하루를 묵고 와야 했다. 남이섬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그림, 팝아트, 도예 등 미술이 가득하고 온갖 전시가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보기에는 그렇지 않지만 이런 것에는 꽤나 빠져드는 타입이었다.


우르르 여행 가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건 또 재미있다. 남이섬에서 그렇게 전시를 보며 밥을 먹다 보면 타지방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고 비슷한 면모가 보이면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다. 그들은 서울에서 온 커플로 직장인들이었다. 나는 당시에 카메라를 들고, 걸고, 차고 있어서 누군가 본다면 마치 무슨 프로 사진가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캐논 똑딱이를 손에 들고, 파나소닉 루믹스를 목에 걸고, 니콘 D80인가, 거기에 90 마이크로 렌즈를 달아서 어깨에 차고 있었다. 그래서 여차여차해서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남이섬에도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어서 90마 정도로 촬영을 해도 꼭 포스터처럼 나온다. 거기서는 웨딩촬영도 많이 하고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다.


그들은 너무나 사진을 갖고 싶어 했다.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지금 간절히 손에 사진을 받기를 바라는 바였다. 그래서 파일을 노트북으로 옮겨 색감을 대충 잡아서 여러 장을 시내로 나가서 사진관에서 인화를 해서 마트에서 액자를 구입해서 바로 넣어 주었다. 덕분에 우리의 반나절은 날아갔지만 일행도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숙소를 잡지 않았다는 걸 알고 그들은 자신들이 묶고 있는 강촌의 펜션에 방을 하나 얻어 주었다. 사진 몇 번 찍어주고 이게 웬 횡제인가.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방을 날름 받았다. 그들은 이미 이틀째인데 두부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두부를 가지고 무국적인 찌개를 끓였다.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넣고 끓이면 된다. 김치, 돼지고기, 두부, 고추, 파, 라면 스프 같은 것들을 다 털어 넣은 다음 끓이고 그 위에 계란을 하나 올리면 무국적인 맛이지만 아주 맛있는 찌개가 탄생된다. 그리고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맥주를 열심히 마셨다.


그들은 그 사진이 고마운지 와인이며 소주며 계속 가지고 왔다. 우리는 그날 여행에서의 수확을 꽤나 건졌다. 다음 날 인사를 하고 나오게 되었는데 비가 엄청 내렸다. 여행지에서 비를 맞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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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똥집


대학교 때 가을이면 찬란한 가을 축제가 열린다. 며칠 동안 축제의 분위기에 취해서 대학가의 낭만을 즐긴다. 밤이 도래하기 전의 하늘은 파랗게 질려있고, 바다는 파랗게 멍들어 모든 세상이 컬러풀하게 뒤덮여 있다. 학교 주위의 산은 알록달록 색동옷으로 갈아입는다. 정말 찬란하다.


학교에는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고 각 과마다 그동안 준비했던 결과물을 전시하고 밤이 시작되면,

인생이란 정말 한 번 미치도록 즐기고 끝나도 좋을 만큼 아이들은 축제를 즐겼다. 오직 축제를 즐기기 위해 태어난 녀석들처럼 보였다. 젊음이라는 것을 마치 불꽃처럼 한 번에 연소시켜버릴 것 같았다.


웃고, 울고, 쓴맛, 단맛 다 보며 대학생활을 아낌없이 보냈다.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았다. 즐기는 것이다. 다른 건 없다. 축제기간에 이것저것 고민이나 나르시시즘이나 정치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과마다 준비한 주점에 오는 손님들 유치에 생각만 할 뿐이었다.


즐기자, 즐기다 보면 그 안에서 뭔가가 나온다. 그것이 축제기간 중 우리의 모토였다. 우리의 주점은 좀 특별했다.라고 생각했다. 다른 과의 주점에서는 축제기간 동안 만들어 파는 안주가 대부분 비슷했다. 파전이라든가, 계란말이라든가. 게다가 아마추어라 파전은 먹다 보면 밀가루가 덜 풀렸거나 맛이 떨어졌다.


우리 주점에서는 닭똥집 구이를 만들어서 팔았다. 나의 적극적인 의견이 반영이 되었다. 과대가 허락을 한 것은 내가 요리를 한다는 것에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 과에는 우리 고등학교 후배들이 들어와서 닭똥집을 씻는 것은 녀석들에게 시킬 수 있었다. 부려먹을 수 있었던 거지. 한 후배 녀석은 찬물에 잘 씻고, 또 한 녀석은 청주를 푼 물에 닭똥집을 삶았다. 소금 간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함께 잘 볶기만 하면 끝이다. 그럼 어지간하면 맛있다. 땡초를 썰어서 옆에 놓고 서비스 안주로는 어묵국에 계란물을 풀어서 휘휘 저어 주었다.


다른 주점에는 없는 안주라 인기가 좋았다. 물론 맛있었다. 닭똥집 구이의 맛은 오독오독 씹히는 재미있는 맛이다. 술을 부른다. 소금 간 때문에 짭조름하면서 기름장의 고소한 맛이 닭똥집의 맛 대부분 일지는 모르지만 오독오독 씹어 먹다가 소주를 넘기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추억에 갇힌 음식을 꺼내서 먹으면 추억의 맛은 나지 않는다. ‘닭똥집 클럽‘이 있다면 우리는 당장 가입을 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닭똥집을 많이 먹었다. 또 우리는 단골 주점에서 김치를 공수해서 안주로 내놓았다. 그래서 닭똥집은 꽤나 비쌌지만 김치에 돌돌 말아먹는 닭똥집 맛이 일품이었다.


밤이 되면 학교는 춥다. 곳곳에 술에 잠식된 녀석들이 노래를 부르고 잔디에 엎어져서 외계어를 난무했고 사랑을 부르짖었다. 그날이 꽤나 추워서 가스레인지 위에서 양말을 말리다가 양말을 태워버리기도 했다.


어제는 작년에 입학한 전문대 생을 만났는데 학교는 가보지도 못하고 졸업을 하게 생겼다고 했다. 물론 축제 같은 건 전혀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사회에 떠밀리듯 나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청년은 밝고 명랑했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 사이에서 어떤 무엇인가를 찾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아마 그 청년도 그걸 찾아가는 방법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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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집의 초딩이 이무진의 신호등 노래를 제법 이무진스럽게 부르고 있다. 이무진의 그 특유의 음색을 비슷하게 따라 불렀다. 듣고 있으니 아니 참 잘 따라 부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딩들에게 이무진의 신호등은 인기 노래라고 한다. 노래도 좋다. 목소리도 좋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 노래는 자고로 그래야 한다. 가사도 참 좋다.


건반처럼 생긴 도로 위 수많은 동그라미들 모두가 멈췄다 굴렀다 하는 모습이 정말 우리 일상을 잘 보여준다. 붉은색과 푸른색 그 사이의 짧은 시간 속에는 그간 인간이 살아온 긴 시간이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라디오를 매일 들으니까 이무진의 노래들이 주룩주룩 나온다. 가을 타나 봐, 한영애의 누구 없소 등 이곳저곳에서 거의 매일 들을 수 있다. 대단하다.


이무진을 보면, 이무진의 노래를 들으면 예전의 장재인이 떠오른다. 장재인도 특유의 음색과 싱어송라이트 같은 음악성과 무엇보다 노래를 아주 잘 불러 나오자마자 수면 그 위로 빵 떠버렸다. 장재인은 지금도 꾸준하게 공연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뭐랄까 사람들의 시선 밖으로 나가버렸다. 요즘은 미술전시회도 하는 것 같고, 그간 남자 문제도 있고, 그래서 어쩐지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일반적인 대중은 장재인을 거의 잊어버린 것처럼 되었다.


그건 김예림도 그렇다. 물론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근래에는 림킴으로 이름을 바꾸고 음악 스타일이 확 달라져서 활동을 하지만 역시 찐팬들이 아니고서는 대중은 받아들이기 꽤 힘든 음악과 스타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거리가 멀어졌다.


이들이 대중의 지대한 관심 밖에서 활동하며 자기 하고 싶은 예술을 하는 것에 만족하면 괜찮지만 소속사와 이해관계 때문인지 어떤지 몰라도 수순은 복면가왕을 한 번씩 거치게 된다. 그 짝에 몸을 담고 있지 않는 한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무진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 단물을 빨아먹듯 물 빠지고 나면 대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경쟁을 통해서 음악성을 인정받은 아티스트다. 발탁이 되어서 연습생활을 거쳐 가수로 데뷔하는 이들과는 좀 다르다. 아티스트는 말 그대로 직접 작사 작곡을 하여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멘토들, 이미 유명한 프로듀서들은 그런 점들을 높이 사고 또 언론으로 노출을 시킨다. 굉장한 신인이다, 엄청난 실력을 가졌다. 같은 말들을 많이 한다. 그래서 음악 씬에서, 아니 대중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꾸준하게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들을 한다. 그리고 대중도 이런 아티스트의 면모를 갖춘 신인들을 좋아하며 그들이 꾸준하게 음악을 만들어서 직접 부르기를 내심 기대를 하고 있다. 마치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를 가진다.


좀 벗어난 얘기로 마돈나를 보면 철저하게 타인의 곡을 받아서 노래를 부른다. 작곡된 곡을 받아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돈나는 타인의 곡이지만 자신이 소화를 할 수 있고 곡이 좋으면 소화하는 자세를 취했다. 자신의 곡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게 힘들 수 있으나 마돈나는 아마도 그걸 극복한 것 같다. 마돈나는 지금도 노래를 발표하면 그 노래는 톱을 차지한다.


예전 마돈나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두고 브리트니와 키스를 하며 마치 브리트니가 나의 후계자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브리트니와 아길레라는 우리나라로 친다면 에스엠 뽀뽀뽀 같은, 디즈니 채널에서 꼬꼬마 때부터 같이 연예인 활동을 해왔다. 그 사이에는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있다. 그러다가 커서 다 가수가 되었는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철저하게 싱어송 라이트 길을 걸었다. 폭발적인 성량을 살려 자신의 곡으로 대중을 맞이했고 브리트니는 마돈나처럼 타인의 곡을 받아서 노래를 불렀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유명하게 만든 노래가 뷰티플인데 그 노래는 린다 페리의 자전적인 곡을 받아서 부른 곡이다. 린다 페리는 포 넌 블론즈의 그녀다. 벗어난 얘기였지만 꼭 싱어송 라이터가 마치 모든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분위기는 별로다. 왜냐하면 대중은 싱어송 라이터도 좋아하지만 그저 대중가수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현장에서 지속성을 가진다는 건 무척이나 힘들다는 건 안다. 좀 더 넓게 보면 우리처럼 일반인들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만큼 있는 힘을 다해서 버티고 있다. 하물며 예술의 세계에서는 더 힘이 들겠지.


서서히 오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산 정상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빨리 오른다면 그 자리를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짝에서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자본회수에 눈이 돌아가 있다면 이무진도 어쩌면 다음을 준비한다며 곡을 쓰러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러나저러나 이무진의 곡들은 지금도 흘러나오고 있고, 이무진을 보면 장재인이 떠오른다. 이런 나의 생각이 모두 기우였으면 좋겠다. 모두 후회 없는 예술 활동으로 자신도, 그리고 대중도 사로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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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0-09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고 옆집 초딩님 노래좀, 들어보고 싶네요. 10세 언저리의 아이가 얼마나 이무진스럽게 부를지^^ 좋아하는 노래인데 교관님은 노래하나로 이런 멋진 글을 뽑아내시네요. ^^

교관 2021-10-10 11:56   좋아요 0 | URL
요즘 초딩들은, 아니 유딩들마저 동요를 부르지는 않아요 ㅋㅋㅋ 전부 트롯이나 가요를 열심히 부르고 있네요 :(
 

백신을 맞고 심한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해서 맞은 그날은 좀 걷고 그다음 날부터는 평소대로 죽 달렸다. 2021년에도 착살하게 달렸다. 백신 맞은 그날 걷는 정도를 친다면 올해는 2월 구정에 이틀을 빼고 다 달렸다.


꾸준하게 달린 것이다. 하루키는 하루에 10킬로씩 달린 것에 비한다면 나는 6킬로에서 7킬로 정도를 달렸다. 그런데도 보통 2시간 정도 걸린다. 이유는 정해놓은 코스에 계단이나 오르막길, 산쓰장 같은 곳을 넣어서 그곳에서 근력 운동을 40분 정도 하기 때문이다.


근력운동을 하던, 조깅을 하던 시작할 때와 끝날 때는 달라진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팔 굽혀 펴기를 할 때에는 더 이상 못 하겠다 싶을 때 몇 개를 더 하고, 마지막 코스에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 더 이를 앙 다문다.


이런 고통은 기분이 상쾌하다. 기분 좋은 고통이다. 그리고 달리기가 끝났을 때는 모든 걸 다 털어 내버린 듯한 상쾌함이 거기에 남아돈다. 그래서 달리기 전까지는 달리기 싫은 이유 99가지가 나를 붙잡지만 이 즐거운 고통 뒤에 따라오는 상쾌함을 느끼는 이유 1가지 때문에 진지하게 달리게 된다.


매일 ‘착실하게’ 달리다 보면 ‘진지하게’ 달리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스러운 표정이 비교적 평안한 얼굴로 바뀌게 된다. 이는 생활 전반에 걸쳐 있는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특히 의자에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다.


한 개인에 있어서 매일 조깅을 하는 것은 나쁘지는 않지만 흔해빠진 얘기잖아,라고 할 수 있지만 흔해빠진 이야기가 모여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되기도 한다. 오징어 게임처럼.


쓸데없을 수 있으나 쓸모없지 않은 흔해빠진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간다는 건, 마지막까지 소명을 다하는 일광의 흔적과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밤의 시작이 마주하면 코스모스 오렌지빛이 대기에 물감을 쏟은 것처럼 퍼지는 모습을 보며 달린다는 건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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