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휴일을 보면요, 앤이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려고 하다가 멈칫하잖아요.

집어넣으면 정말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손목이 없어질까 봐 말이죠.

그러다가 조 브레들리가 손을 집어넣고 거짓으로 아악 할 때, 그때 앤이 너무 놀라서 소리를 치며 브래들리의 손을 막 빼잖아요.

그 장면은 앤이 정말 귀여워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조가 거짓말이라고 하니 놀라면서 안도의 표정, 그 표정은 오드리 헵번 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앤은 조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헤어져 궁전 같은 곳으로 돌아왔을 때 굳은 표정으로 바뀌잖아요.

예쁜데, 예쁜 얼굴인데 거기에서 어떤 무엇인가가 빠져버렸어요.

그건 아마도 감정인 거 같아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을 겪으며 사람들에 대한 이 알 수 없는, 복잡하고 기분 좋은 감정 말이에요.

그건 아마도 희로애락을 말할지도 몰라요.

앤은 그동안 여러 감정에 대해서 다양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르잖아요.


마지막에 추억의 사진을 건네받잖아요.

거기 사진을 보면 앤 공주가 살면서 정말 나올 수 없는 표정이 찍혀 있잖아요.

그 기분 좋은, 그 황홀한, 그 미칠 것 같은 흥분의 표정이 사진 속에 있었어요.

조와 친구는 그 특종 사진을 신문사에 보내지 않고 앤 공주에게 추억의 선물로 주잖아요.

만약, 정말 만약인데, 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도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데요, 원작을 쓴 트루먼 카포티는 홀리 역에 메릴린 먼로를 추천했다고 해요.

메릴린 먼로의 홀리는 어땠을까.

메릴린 먼로가 했어도 좋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메릴린 먼로가 어쩌다가 섹시스타가 되었지만 그녀는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였어요.


아 만약, 정말 만약에 앤 공주가 다시 궁을 뛰쳐나와 로마의 작은 2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조와 사랑을 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평생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아갔을까요.

동화를 보면 끝은 늘 행복하게 끝나잖아요.

뭐 신데렐라도 그렇고 백설공주도 그렇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 뒤의 이야기가 사실 더 궁금하거든요.

왜 이적이 부른 노래 중에 그런 노래가 있던데 말이죠.

신데렐라 그 이후의 이야기가 있어요.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빨래며 집 청소며 매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거거든요.

앤 공주는 좀 다를까요.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은 단연 앤 공주잖아요.

머리를 자르러 갔을 때 생각나요?

이발사가 그러잖아요.

요만큼?

그러니까 앤 공주가 점 더 짧게.

그러니까 또 요만큼?

아니요 더 짧게.라고 하니까 이런 머릿결을 잘라내는 것에 이발사가 용납이 안 되어서 재차 되묻곤 하잖아요.

그리고 결국 짧게 자르잖아요.

머리를 앞으로 내렸을 때 그 머리카락을 살짝 걷거든요.

그때 앤의 표정을 봤어요?

오 정말 예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요.

눈을 이렇게 치켜뜨고 자신도 궁금하다는 듯한 그 맑고 순한 표정 말이에요.

아이들에게서나 나올 것 같은 그 표정을 앤 공주가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앤 공주가 조와 결혼을 했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사람들과 융화가 좋잖아요.

그렇게 서글서글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다 가진 사람’은 몇 없을 것 같아요.

마치 재벌의 셋째 딸이 대학교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너무나 잘 어울려 다니는 것과도 같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장면은 후에 나오는 영화에서 과거로 가거나, 미래로 간 여주인공이 그곳의 물정을 몰라 어리숙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들을 나눠주는 장면으로 바뀐 것 같아요.

로마의 휴일에서도 앤은 조에게 그러잖아요.

왜 내가 좋아하는 일들만 다 하는 거냐고? 조는 왜 이타적이냐고?

하지만 말이에요, 앤 앞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물론 조의 집에 청소를 하러 온 아주머니는 심통난 시어머니처럼 앤을 나무라지만 말이에요.

앤이 스쿠터를 타고 우당탕탕 사람들과 한 바탕 소란을 피운 다음 경찰서에 끌려가서 서 있을 때 표정 봤죠?

아아, 정말 뾰루퉁한 얼굴로 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같은 표정 말이에요.

정말 사랑스러워요.


앤이 마지막에 사진을 들고 헤어질 때 조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해요.

감정과 처지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는 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앤이 사라지고 조가 혼자서 쓸쓸하게 나오는 장면 역시 기억에 남아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니까요.

노팅 힐에서는 그게 싫었는지 ‘절대’라는 의미를 깨버리고 두 사람을 같이 있게 하지만 앤 공주와 조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가잖아요.

앤과 조는 알고 있었어요.

매일이 따분하고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이 미치도록 싫증 나지만 이런 생활이 무탈하게 보내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요.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프레디 크루거' kds941024 https://blog.naver.com/kds941014/22231723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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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여러 추억의 음식 중에 중간에 딱 버티고 있는 것이 멍게다. 그 추억은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내가 아직 6학년이었을 때 여름의 일요일에는 오전 8시에 하는 만화를 보기 위해 늦잠을 포기하고 일어났다. 그러면 마당의 수돗가에서 아버지가 멍게를 다듬고 있었다. 일찍부터 시장에 가서 손질이 안 된 멍게를 한 바구니 사들고 와서 한 시간 정도 땀을 흘려가며 멍게를 손질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어쩐 일인지 나와 동생은 멍게의 그 알 수 없는 뭉근한 식감과 밍밍하면서 간이 입안으로 들어오는 미묘한 맛이 좋아서 잘 먹었다. 멍게는 초장에 찍어 먹지 않아도 멍게가 가지고 있는 맛으로도 맛있었다. 또 꼭다리 부분을 씹어서 멍게의 짭조름하고 간간한 맛을 보는 게 좋았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일요일만 되면 신이 나서 멍게를 사 와서 손질에 열을 올렸다.


나와 동생은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 앉아서 멍게를 손질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구부린 아버지의 등에는 우리가 말을 걸기 쉽지 않은 경건한 분위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 분위기 속에는 일종의 ‘좋은 고집’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평범하지 않는 찰나로 나오는 강한 집중이 있었다.


내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음식을 잘 먹을 수 있게 직접 손질해야 한다는 그런 집중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나와 동생은 미간을 좁히고 더워지는 여름날의 일요일 오전에 마당에 서서 아버지가 멍게를 다듬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있어서 멍게를 다듬는 칼은 회사에서 직접 만든 것이다. 그런 칼이 여러 개 있었다.


멍게 먹는 여름의 일요일 오전은 행복했다. 아버지는 땀이 많아서 벌써 러닝셔츠가 홀딱 젖었다. 젖은 러닝셔츠 밖으로 나온 아버지의 팔뚝에는 근육이 좋다. 아버지는 그 근육을 우리가 먹을 멍게를 손질하는데 아깝지 않게 사용했다.


밥상에 둘러앉아 멍게를 먹고 있으면 어머니는 멍게 비빔밥을 만들었다. 거창하게 이것저것 넣지 않았다. 생 미나리와 멍게와 양념 조금이었다. 그래도 멍게가 있어서 풍성한 맛의 비빔밥이 되었다. 어린이들이 멍게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 흡족했을까. 여름방학의 일요일이면 평일날보다 일찍 일어나서 멍게를 먹었다.


그 기억이 내내 좋아서 가끔 멍게를 사 와서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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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터는 이미지를 따다 붙인 표시가 난다



밤이 되니 쌀쌀해졌다. 한여름처럼 옷을 입고 베란다 문을 다 열어 놓으면 바다에서(우리 집은 바닷가에 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서 피부가 오돌토돌하게 변한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며칠 전까지 애처롭게 들리던 매미소리가 싹 사라졌다. 가을인 것이다. 아직 낮의 온도는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어서 약간은 더운 감이 있지만 뜨거운 커피가 어제 이전보다 맛있어졌다. 가을이 되면 추석이 있고, 돌아오는 주말도 추석 연휴다. 예전에는 이 시기가 바야흐로 성룡의 계절이었다.


대목을 노리고 며칠 지속되는 추석 연휴에 맞춰서 성룡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거나 티브이 특집 방송으로 나왔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캐빈이 티브이에 나오듯이. 하지만 추석마다 티브이에 나오는 성룡이 진부하다고 해서 어느 추석 명절을 기점으로 성룡이 사라졌다. 성탄절에 캐빈이 사라진 것처럼.


근래에는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이 진을 치고 있기에 성룡과 추석은 더 이상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더 이상 추석에 성룡이 편성이 되어도 시청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아직 추석명절에는 성룡이고 크리스마스에는 캐빈이다. 추억의 끈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절에 성룡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오락실에 갔으면 보글 보글이라도 한 판 하고 나와야지 그냥 구경만 하고 나오면 이상한 것과 비슷하다.


그런 분위기는 사람을 과거의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한동안 추억 속에 머무르게 한다. 그건 일상의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버티고 있는 나에게 일종의 휴지기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는 집에 마당이 딸려 있었고 대문을 열고 나가면 공터가 있었다. 추석이 오면 가난했지만 부모님은 항상 청바지를 새것으로 사주었다. 길어서 접어 입어야 했다. 법으로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요즘은 바지를 접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명절에도 어딘가로 가지 않고 그저 집에서 명절을 보냈다. 친구들은 대부분 큰집이나 다른 지역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 몇 시간씩 고속도로의 고충을 이야기할 때 부러워했다. 물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명절에 어디에도 가지 않는 행복이 크다는 걸 알았고 친구들도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명절 기간에 맞추어 극장에는 새로운 영화들이 선을 보였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명절이 다가오기 전, 그 주의 주말이 가장 설레고 찬란한 시간이다. 극장에는 홍콩영화가 꼭 걸렸다. 학창 시절에 다음 주중에는 추석이 있고 이번 주말에는 친구와 영화를 꼭 보러 갔다. 아직 명절이 오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동안에 극장에 영화를 보는 그 기분, 그 알 수 없는 행복함. 특히 홍콩 영화광과 함께 홍콩 영화를 보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이불도 얇은 여름 홑이불에서 조금 두꺼운 이불로 바뀌었다.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와 잠이 들 때 이불 면에 발이 닿는 그 감촉이 너무 좋았다. 창문 너머 마당의 화단에서 풀벌레와 귀뚤이 소리가 들렸다. 요즘으로 치면 그건 백색소음이다. 귀뚤이 소리를 들으며 감촉이 좋은 이불에 발을 비비며 잠이 든다. 꽤 근사하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억 속 주말은 늘 조용했다.


지금처럼 매일이 시끄럽고 사고가 나는 대 환장 파티가 있는 추석 연휴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모든 사건사고와 정보가 매일, 매 시간, 매 분 휴대전화로 확인이 가능하니까 듣기 싫고, 보기 싫은 것도 볼 수 있어서 예전보다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다. 예전이라고 왜 고부갈등이 없고, 부부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친한 사람들이 배신을 하는 일이 없었을까. 그렇지만 추석이 다가오는 그 전 주중은 조용하면서 북적거렸다. 음식점에도, 시장도, 마트에도 사람들은 북적였다. 그리고 조용하게 흘러갔다. 꼭 일본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에 나오는 고요한 골목길 풍경과 비슷했다. 사람들의 걱정이라고는 그 조용함에 묻혀 평온한 주중과 주말, 그리고 추석 연휴가 지나갔다.


추석이 오기 일주일 전, 이때가 제일 기분이 좋은 주일인 것이다. 마당에 나가면 공기부터 달랐고 학교를 가기 위해 대문을 열고 공터를 지나면 아이들의 어깨 위에 이미 ‘기분 좋음’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직 어릴 때라 그런지 어른들의 어깨에도 그 기분 좋음이라는 것이 내려앉은 모습이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학창 시절에 추석이 오기 전 주말 토요일에는 학교가 끝나면 극장에서 홍콩 영화를 봤다. 성룡뿐 아니라 홍금보, 원표, 유덕화, 이연걸, 주성치, 장국영, 주윤발, 매염방, 양자경 같은 홍콩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는 죄다 보러 다녔다. 예스마담 시리즈 중에 어떤 버전은 서울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만큼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때 어떤 영화를 봤는지 기억이 없지만 성룡 영화라고 하자. 추석 연휴에 성룡 영화가 극장에서는 새로 나온 영화가 하고, 티브이에서는 성룡의 지난 영화를 했다. 멋진 일이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없으니 성룡이 티브이에 나오면 기를 쓰고 봤다.


추석 연휴 전에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집에 와서 시원한 감촉의 이불을 덮고 누워서 성룡의 영화를 보면서 잠드는 멋진 기분. 밥을 먹으며 매운 음식에 괜스레 오버를 하기도 하고, 그러면 가족들이 웃으며 에에, 뭐가 그렇게 맵냐며, 별거 아는 것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런 잠시의 행복함으로 충전을 하고 또 명절이 끝나고 긴긴 일상을 버틴다. 행복은 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은근히 찾아온다. 반면 불행은 무지막지하게 선명히 찾아온다는 것을 몰랐던 시기였다. 모든 풍경이 아름답고 친구와 있으면 늘 재미있었다.


추석이 오기 전 주말에 극장에 간다. 극장의 분위기는 좋다. 막상 추석 당일보다 그 전 며칠이 더 기분이 좋은 것처럼 영화 시작 전에 들어가서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그 시간은 무엇보다 좋았다. 오락기도 몇 대 있고 바둑이나 장기를 둘 수도 있고 대기실 앞에는 대형 벽걸이 티브이가 있어서 지난 영화가 계속 나왔다. 매점에서 부라보콘을 집어서 대기실에 앉아서 먹으며 대형 티브이에서 하는 지난 영화를 보는 시간은 행복했다.


역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어색함이 주는 친근함


분명 두근두근하는 성룡 영화를 곧 보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기대와 함께 진정 극장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아서 좋다. 2층의 극장 대기실은 작은 창문이 있어서 시내의 풍경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할 뿐이지만 머리통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와 조잘조잘 수다를 떤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나와 내 친구는 공부를 못 했기 때문에 공부에 관한 이야기는 일단 아니다. 아, 친구는 그래도 수학을 잘했다. 수학만 잘했다. 수학만 잘하고 나머지는 못하기도 힘든데 친구는 수학만 잘했다. 매일 붙어 다니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 뭐 그런 친구였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해서 극장에 자주 갔다.


드디어 성룡의 영화가 시작한다. 극장의 두꺼운 붉은 문이 열리고 우리는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요즘처럼 지정석이 없다. 그저 빨리 들어가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끝이다. 문 앞에 대기 타고 있다가 문이 열리면 쪼르르 달려가서 자리에 앉는데 우리는 그렇게 좋은 자리에 앉지 않았다. 뭐랄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좋은 자리가 어떤지 모를 때였고 맨 앞줄이 안 좋다는 정도는 알았다. 잘못해서 맨 앞 줄에 앉았다가 고개를 꺾어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앉지도 않았다. 약간은 뒷자리나 아니면 아예 맨 뒷자리, 중간에서 약간 옆으로 치우친 자리 정도에 앉았다. 이런 극장이 불과 12년 전 까지도 있었다. 멀티플렉스가 세상의 곳곳에 도래하고 세상을 잡아먹을 때에도 우리는 오래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상영관보다는 극장이 어울렸던 오래된 극장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극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햄버거와 킨사이다 캔을 따서 먹으면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성룡의 수많은 영화 중에 어떤 영화였을까. 무슨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용형호제 2로 하자. 성룡의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유쾌하고 재키 찬이라는 이름처럼 재기 발랄하며 영화 속의 주인공 이름도 재키다. 요즘에 영화를 본다면 같이 나오는 조연들에 대해서도 눈이 돌아갔을 텐데 당시에는 그저 성룡의 아크로바틱 한 몸놀림과 발차기와 수준 높은 액션에 그저 영혼을 몽땅 강탈당해버렸다. 입으로 슈욱 같은 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극장을 나오면 주중에 명절이 있다는 생각에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며 신났다. 그리고 그 기분을 하루 동안 죽 끌고 갔다.


주중의 명절을 기다리면서도 빨리 오지 않았음 하는 마음. 그 알 수 없는 기분 좋음에 일 년에 한 번 오는 추석 명절은 정말 기다리는 날이었다. 우리 집은 추석을 보내기 위해 어딘가로 가지 않았다. 가족만이 조촐하게 보내는 추석 치고는 또 어머니는 음식 장만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추석 전날에 집 안팎으로 가득 퍼지는 전 굽는 냄새. 그건 순전히 어머니 혼자서 추석의 기분을 내기 위해서 그렇게 음식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릴 때 음식을 할 때에는 어머니 옆에서 심부름을 하며 구워 놓은 전을 홀라당 집어 먹는 맛이 좋았다. 친구들은 전부 큰집이나 타 지역에 추석을 보내러 갔다. 그래서 추석 명절 당일이 되면 외로웠다. 새로 산 청바지를 자랑하고, 그 청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아이들이 없어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 2021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요즘 추석 명절도. 외롭다.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빠져있다. 예전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가족들이 있고 명절은 가족들과 보내지만 추석의 기분을 느끼는 것, 그것이 달라졌다. 그 달리전 것에는 같이 있어도 외로운 것이 끼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추석의 기분이라는 건 별게 아니다. 외롭지 않은 것, 가족이 모여 있으니까 행복 충만해야 하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촉감적으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요하게 명절은 흘러간다. 하지만 살짝 벌리고 보면 너무 시끄럽고, 서로 열을 내고, 당장 내 생각과 다르면 입으로 독침을 뱉어낸다. 우리 집 앞은 바다가 있어서 명절 연휴 중에 조카와 나가서 컵라면을 하나씩 먹곤 했지만 이제는 마스크 쓰고, 벗었다가 다시 썼다가, 거리두기와 함께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일단 피하게 되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지 않을 것 같다.



명절이면 바닷가에서 컵라면 먹는 우리만의 행사를 코로나 이후 할 수 없게 되었다


성룡도 나이가 들어 한국의 명절에 성룡의 영화가 상영관에 걸리는 일은 이제 없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감염병 시대라서 극장 자체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티브이를 틀면 채널이 백 개가 넘고 영화는 매일 수십 편씩 나온다. 선택의 장애를 겪는 일이 허다해졌다. 그렇다 해도 명절이면 더빙판의 성룡 영화가 공중파를 통해 밤 10시에 했으면 좋겠다. 발에 닿는 기분 좋은 이불을 감촉을 느끼며 성룡의 영화를 보며 밤을 까먹으며 보고 싶다.


아마 무슨 전시회에서 학창 시절의 나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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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에서 커피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3살 정도의 아이와 함께 엄마가 마카롱을 고르고 있는데 엄마가 아이에게 “우리 요 아이로 먹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이 시간이 지나도록 내내 머리에 계속 남아있다.


우리가 사물을 의인화한지는 꽤 되었지 싶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아끼는 차를 이 차는,라고 하지 않는다. ‘이 녀석은’ 또는 ‘얘는’라고 한다. 비싼 카메라도 보통 의인화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딱딱한 자동차지만 의인화를 시키면 친근감이 들고 친밀하게 느껴진다.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자동차도 만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정밀한 메커니즘으로 ‘이 차’를 ‘이 녀석’으로 바꾸어 부른다. 친구처럼 느껴지며 의인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카메라도 그렇고, 가방도 그렇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먹는 음식도 의인화를 하기 시작했다. 홈쇼핑에서 먹거리를 파는 방송을 봐도 종종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먹방이 대세인 유튜브에서는 음식을 의인화시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다 좋아하는 고로 상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고로 상도 음식 앞에서 그 묘한 목소리로 ‘이 녀석이’라고 한다.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듣기 싫은 말이 있고 또 괜찮은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음식을 의인화로 말하는 건 괜찮게 들린다. 거부감이 전혀 없다. 마치 원래 그런 것처럼. 그렇지만 “우리 요 아이로 먹자”라는 말은 어떻게 들어도 이상하다. 단순히 말만 들으면 식인종 같은 뉘앙스다.


“요 아이는 좀 맛없을 거 같은데. XX(자기 아이 이름)은 이 아이는 못 먹을 거 같은데”라는 말을, 의인화로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가 이렇게 말을 한다면 정말 귀를 틀어막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정말 만약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말을 한다면 그때 가서는 모두가 음식을 다 의인화하고 있으니 이젠 그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팟캐스트에 신대철이 나와서 했던 말 중에, 굉장히 좋은 곡은 유행이 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쓰레기 같은 음악도 자주 방송에 나오다 보면 그건 그것대로 유행이 된다고 했다. 아무리 쓰레기 음악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듣다 보면 그 노래는 대중의 귀를 사로잡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재미있는 건, 다니면서 보면 음식을 얘, 요 아이, 이 녀석으로 불리는 음식은 대체로 조각 케이크, 마카롱, 스테이크나 파스타 같은 음식들이다. 그런데 일반 식당, 그러니까 한식이나 분식을 파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김치찌개나 갈비탕을 그렇게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또 딸려 나오는 반찬들, 콩나물무침이나 시금치를 보며 얘는, 요 아이는, 이 녀석이라고 하지 않는다.


별거 아니지만 웃기다면 웃긴 재미있는 현상이고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상추나, 깻잎이나 어묵볶음 같은 음식은 어릴 때부터 먹어와서 학습이 되어서 그럴까. 아이 때부터 엄마에게 음식을 ‘요 아이’로 배우면 커서는 당연하지만 그렇게 부르게 된다. 그게 올바른지 그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를 보면 그곳, 그 지역의 길거리 음식을 소개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백종원은 음식을 소개하면서 음식을 의인화하지 않았다. 백종원의 다른 음식 프로그램을 보지는 못했지만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는 음식을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 사람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고 있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도 이전 방송에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음식을 의인화시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 전문가들의 이런 올바른 현상도 어쩌면 무너질지도 모르고 그렇게 된다고 해도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음식을 의인화한다고 해서 그게 이상하지 않게 들릴 것이다. 기준이 없고 선을 정할 수 없어서 정확하게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 얘는, 이 녀석은 그간 경험이나 학습 때문인지 이상하게 들리지 않지만 음식을 ‘요 아이는’라고 하는 건 어쩐지 참 이상하다.


그래서 어제는 요 아이로 먹었습니다. 요 아이는 입 안에서 탁 터지는 맛이 있거든요. 또 케첩 녀석과 너무나 잘 어울려서, 요 아이들을 왕창 먹었습니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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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힘들다가 들어와서 위로를 받는 음식 중에는 뜨끈하게 한 냄비 가득한 찌개가 있다. 나에게 그런 위로의 찌개는 꽁치찌개였다. 찌개는 도심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해 먹기 힘들다. 한국사람이니까 어릴 때 집에서 먹던 찌개가 먹고 싶고, 찌개는 해 먹기 힘들고, 영차영차 노력해서 찌개를 끓이는 도중에 어쩌면 기운이라는 것이 엑토플라즘처럼 빠져나가버려 막상 한 냄비 해 놓은 찌개를 그저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듯 멍하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꽁치찌개는 다르다. 꽁치찌개는 나의 자취생활의 동반자와 같았다. 싱크대 선반에 라면은 없어도 꽁치통조림이 일렬로 차렷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꽁치통조림 그 자체로 모든 맛이 이미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 있기 때문에 끓는 물에 김치와 함께 넣어서 끓이면 된다. 끝이다. 힘들지 않은데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마법을 볼 수 있는 찌개가 꽁치찌개다. 꽁치는 먹고 싶고, 구이는 정말 엄두가 나지 않을 때 꽁치통조림으로 찌개를 먹고 나면 어느 정도 해갈이 된다.


나는 꽁치보다 꽁치통조림을 좋아했다. 꽁치통조림은 자취할 때 나의 허기를 채워주는 든든한 식량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만화 같은 모습으로 몸을 질질 끌며 집으로 와서 꽁치통조림을 따서 보글보글 김치를 넣고 끓여서 후후 불어 먹었다. 그러면 조금은 기운이 나고 위로가 되었다. 마치 세상이 폭삭 무너져 아포칼립스가 도래했을 때 내가 사는 집의 주방에는 꽁치통조림만은 가득 들어 있어서 한시름 놓은 것 같았다. 자취할 때는 아이들이 놀러 와서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그때 꽁치통조림을 내놓으면 아이들이 전부 싫어했다. 나는 꽁치통조림을 따서 그대로 먹는 게 맛있는데 아이들은 비린내 때문에 우욱 했다. 그 비린맛이 좋아서 꽁치통조림을 그렇게도 먹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비린맛을 찾지 않지만 있으면 곧잘 먹는다. 예전에는 국밥도 꼬릿 한 냄새와 맛이 나는 시장통 국밥집을 찾아가서 먹곤 했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린이 입맛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특히 민초가 맛있단 말이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케첩을 뿌리고, 치즈를 빵과 과자 사이에 넣어서 먹고, 민초를 오물오물 먹곤 한다. 과자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인체의 신비다.


그런데 이렇게 꽁치로 찌개를 끓여 먹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먹나. 우리나라에도 통조림이 많지만 다른 나라에도 통조림 음식이 많을 텐데 영화 같은 데서 꽁치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가끔 꽁치김치찌개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만만 가도 취두부가 통조림부터 길거리, 편의점에서 대중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꽁치는 모든 사람들이 먹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꽁치통조림은 개인적으로 정말 최상의 음식이다. 카레에 넣어도, 물과 김치를 끓이면서 넣어도, 그냥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맛도 좋다. 통조림 속의 꽁치는 또 된장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서 된장을 넣고 김치 넣고 통조림을 따서 한통 넣은 다음 팔팔 끓이기만 하면 된다. 냄새 또한 기가 막힐 정도로 좋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한 한창훈 소설가의 에세이가 있는데, 일상이 허기질 때 꽁치통조림을 따라, 그리고 꽁치를 라면에 넣어라고 하고 싶다. 라면수프가 끓어오르는 냄새와 꽁치가 뜨겁게 익어가는 냄새가 좋다. 라면이 그렇듯이 부글부글 끓는 사운드 역시 좋다. 좋은 것과 좋은 것이 만나서 좋은 맛을 낸다. 꽁치 찌개는 나의 소울푸드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 위로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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