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대한 대사가 가장 와 닿았던 영화가 남한산성이 아닐까 싶다.

어린 누리의 눈에 비친 대감 김상언은 유일하게 할아버지와 연결된 끈이었다. 이 전쟁만 아니었다면 할아버지와 민들레가 필 때 강가에 나가 꺾지를 잡고 놀았을 누리는 헤어져야만 하는 김상언이 미우면서 고맙기만 하다. 민들레가 필 때면 저를 다시 데리려 오시는 겁니까.라고 울먹이며 묻는 누리의 말에 그리하겠다고 말하는 김상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김상언의 눈빛에서 누리의 할아버지를 죽여야만 했던 자신의 과오를 끝끝내 밝히지 못함을 용서해달라,

나는 그리 할 수밖에 없었음을 용서해달라,

너를 지켜주지 못함을 용서해달라,

나 보다는 날쇠의 곁에 있음이 너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한 나를 용서해달라.




나이가 들어서 서운한 말을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나이가 어리면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 그렇지 않다.

요컨대 어린아이 때는 한 시간 전에 엄마에게 무차별 폭격으로 혼이 나도 한 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하며 엄마에게 붙어있다.


그렇다면 왜 나이가 들면 그럴까.


인간의 저장 공간, 즉 뇌 속의 저장 공간은 사건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과 감정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 저장 공간은 방대하여 기억하는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갈수록 저장 공간은 점점 작아진다.


그러니까 아이 때는 저장 공간에 쌓일 사건과 감정이 별로 없기에 워낙 커서 다른 기억이 들어옴으로 지난 기억을 덮어버린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 저장 공간이 퇴화되고 작아지면서 기억을 잃어버리는 능력까지 같이 감퇴한다. 이 감정 기억이 저장되는 공간을 편도체라고 한다.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구타를 심하게 당하면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이것을 사건 기억이라고 하고, 이 사건 기억을 저장하는 공간을 해마라고 부른다. 편도체와 해마는 붙어있고 편도가 해마에 비하면 무척 작다.


한 예를 들어, 예전에 누군가(부모, 친구, 선생님)에게 학대로 심하게 상처를 받아서 잊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아 마음을 다듬어서 상처를 준 사람을 시간이 흘러 찾아가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이 그때 내가 잘못했구나 미안하다고 용서를 해달라고 해서 용서가 될까, 하는 문제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구조가 있다.


우리는 ‘용서’라는 말을 왕왕 쓰지만 사실 용서는 어쩌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상처를 심하게 받고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지금의 상대방이 아니라 과거의 상대방에게 받은 상처이기 때문에 지금의 상대방을 만나서는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상대방을 삭제를 해야 용서가 가능하다.


상처는 아주 기묘해서, 상처를 안 줄 수는 있지만 상처를 안 받을 수는 없다. 친구가 어머니와의 다툼을 이야기하는 것도 친구는 상처를 줄 마음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만약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엄마가 없다면 친구의 이야기는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용서란 무엇일까.

용서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명절에 하는 수많은 음식을 하지 않게 하는데 9년 정도가 걸렸다. 부모세대가 물려받은 전통이라는 이 고난만이 가득한 노동을 줄이려고 마찰, 타협, 설득, 공감 같은 시도가 있었고 그 기간이 9년 정도 만에 올해 추석에는 음식을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올해 구정까지는 음식을 했다는 말이다.


우리 집은 일 년에 명절을 합쳐 총 세 번의 제를 지낸다. 가족도 조촐하거니와 음식을 하는 그 중노동에 비해 전통을 앞세워 우리가 느끼는 그 정당함은 별로 없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의 말보다는 친구들이나 옆집 아주머니의 말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는 이유를 물어보니 ‘누가 되지 않게, 다른 집이 봤을 때, 옛날부터 해 왔으니까’ 같은 이유가 있었다. 음식을 먹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 먹는 건데 사람 수는 적은데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리면 후에 두고두고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없다.


보통의 집에서는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남은 음식(이라고 부르는 식은 음식이나 나머지 음식)은 어머니들이 자신의 집에서 먹는 것에 반해 우리 집에서는 내가 잔반을 다 처리해야 한다. 특히 엄청난 나물과 딱딱해져 버린 생선을 먹어 치워야 하는데 참 별로였다.

전통이라는 문화가 부모세대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가 있으니 그게 악습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전통이라는 건 좋은 것, 해야만 하는 것,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 옆집에서 보기에 누추하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걸 바꾸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최초로 돌아가서 그때는 5년이면 될 줄 알았다.


상차림이 있다면 3분의 1씩 줄여가는데 3년씩 걸렸다. 이렇게 한 상 가득 명절에 음식을 차리게 된 건 그렇게 오래전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부흥기를 맞이해서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국가차원에서 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대부분의 서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허덕이기 때문에 너무 잘 차려서 명절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오래전 조상부터 이렇게 명절에 분에 넘치게 큰 상을 다 가릴 정도로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리는 건 아니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또, 엄청나게 흘러넘치는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살이 찌는 것도 생각을 해야 했다. 특히 남은 음식을 전부 때려 넣고 끓이는 전 찌개를 없애는데도 몇 년이 걸렸다.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먹지 않았더니 자연스럽게 전 찌개를 끓이지 않았다. 그것도 다 먹어 없애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런 걸 먹지 않는다. 거기에 방송 같은 곳에서도 언젠가부터 전통상차림이 너무 과하다는 말을 하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이 아침에 하는 방송을 철석같이 믿고 보기 때문에 아침에 병원에서 진찰하지 않고 티브이 생방송에 잔뜩 나온 의사들이 건강 어쩌고 하는 말을 듣는데 그중에서 몇몇 의사가 명절에 하는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좋아했던 음식 위주로 간단하게 차려서 제사를 지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구색에 신경이 쓰인다면 한 접시씩 시장에서 만들어 놓은 걸 사 먹으면 된다. 그렇게 9년 동안 하나씩 하니씩 음식을 줄여 나갔다. 떠먹는 음식이 있는데도 탕국에, 찌개에, 고기에. 이래서는 음식이 공포스러울 뿐이다. 가족이 많다면 모를까 온 가족이 다 모여도 5명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조촐하게 음식을 하고 고요하고 편하게 보내는 명절이 우리에게 훨씬 나은 추석이다.


결국 9년 만에 이번 추석에는 아무 음식도 하지 않았다. 동그랑땡도, 송편도 요만큼씩 시장에서 사 먹었다. 어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렇게 사 먹는 동그랑땡과 송편이 훨씬 맛있다. 왜냐하면 요만큼 먹기 때문이다. 먹다 먹다 남아서 보기 싫을 정도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절이라는 게 끝나고 나면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린다.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데 점점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가족이 늘어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오전 라디오를 듣는데 사연으로 남편이 이번 명절에 시댁으로 친정으로 천 킬로미터를 운전했다며 고맙고 미안하다는 아내의 사연이 나왔다. 그러고 디제이가 자신도 모르게 바로 “보통 이 정도 거리면 번갈아가면서 운전을 할 텐데 말이죠”라고 하고서는 뒷수습을 하는 말투가 나와 버렸다.


명절에 음식만 줄여도 꽤나 편안한 연휴가 된다. 다 모여서 라면을 먹어도 맛있다. 추석에는 역시 컵라면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명절 동안 비가 오기도 했고 해가 쨍하게 뜨기도 했고 바람이 많이 불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체로 고요하고 조용하게 흘러갔다. 오징어 게임도 두 번이나 볼 수 있었고 보면서 놀랐고 재미있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많이 떠올랐고 황동혁 감독도 카이지 외 여러 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명절 기간에 성룡 영화가 하긴 했다. 케이블에서 뱅가드를 했는데 감독인 당계례의 영화는 황당한 장면이 많기로 유명하다. 요컨대 전투 장면에서 엑스트라가 뒤에서 혼자 막 군무를 하는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담기도 한다. 성룡도 그걸 알면서 왜 이런 감독과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재미는 없었다.


영화를 보고 먹고 마시다가 저녁에는 또 조깅을 좀 했다. 조깅을 하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늘 있고 또 그 풍경의 달리지는 모습을 계절에 맞게 볼 수 있고 그 모습을 폰 카메라에 담아 본다.

구름 속에 숨은 달이 얼굴을 보이기 위해 살며시 빛을 발하고 있다. 가만히 서서 이 신비의 장면을 바라보았다.

달이 구름 위로 모습을 살며시 드러냈다. 아마 달 위에 떠 있는 별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달은 별을 만나기 위해 구름 속에 편안하게 있기를 거부하고 위로 위로 얼굴이 나오는 것이다.

드디어 달이 별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별은 그 자리에 그대로여서 움직일 수 없으니 달이 별을 만나기 위해 위로 위로 날아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이 자리에 두 발로 버티고 서서 저 신비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매일 같은 곳인데 매일 모습이 다르다. 인간과 똑같다. 인간도 매일 마음이 다르다. 남이 볼 때는 늘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바람이 없고 달빛이 강한 날에는 반영이 좋다. 좋은 카메라가 있었다면 반영 샷에 열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반영 샷은 하늘의 모습을 수면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 또 다른 모습이다.



또 하루가 지났다. 저 멀리 보름달이 보인다. 달의 그림자가 강물 위로 늘어진다. 그 위로 비행기가 추석맞이 비행을 한다. 모두 명절 잘 보내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고요하고 멋진 풍광이다.

15센티미터 정도의 물고기를 낚아 올리기에 무슨 고기냐고 물어봤다. 숭어 새끼야, 라며 바늘을 꺼내자마자 강으로 보내줬다. 어찌나 쿨하고 멋지게 보이던지. 15 센티미터면 보통 그대로 들고 가서 먹을 텐데. 아저씨는 그랬다, 이렇게 풀어주면 나중에 30센티미터가 될 게야. 아아 정말 그 한 마디가 너무 멋졌다. 짝짝짝.

또 다음 날이다. 평소에 달리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그래서 노을의 모습을 마주하고 달리게 되었다. 붉은 오렌지 빛의 향연이다. 저건 그래서 태양이다. 태양이 힘을 잃고 빛이 조금 연할 때, 이때 인물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 몹시 드라마틱하게 나온다. 빛이 머리를 타고 어깨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잡아낼 수 있다. 영화로 치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황정민이 초반에 석양을 등지고 촬영한 장면이 있다. 굉장히 드라마틱하며 광고 같은 아주 멋진 장면이 이 시간대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이 시간에 촬영을 끝내지 못하면 다음 날 이 시간에 다시 촬영을 해야 한다. 자연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계속 달려 강 상류로 올라가면 낚시는 금지이기 때문에 물고기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게다가 물고기들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오글오글 모여서 오히려 사람을 구경하는 것 같다.

도로가로 나와서 달리는데 삼만 원을 주웠다. 사진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어두운 곳으로 만 원짜리가 일렬로 한 장씩 떨어져 있었고 자동차들이 계속 밟고 지나가서 돈의 면이 오돌토돌하다. 아마도 자동차들이 밟아서 도로 바닥에 밀착되어서 날아가지도 않고 있다가 나에게 발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이 돈으로 편의점에서 와인을 사 먹었다.

다시 다음 날이 되었다. 저 아웃포커싱이 된 부분은 저수지다. 그러니까 나는 바다와 강, 저수지 등을 주로 다니는 모양이다. 이곳의 산쓰장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몸을 풀고 있는데 무당당이가 꾸물꾸물 기어가기에 사진을 하나 찍고 이대로 두면 사람들에게 밟혀서 찍 눌려 죽을 것 같아서 저기 숲으로 보냈다.

저 끝이 바다다. 동네 자랑이다. 바닷가에 살면 바다는 매일 본다. 어쩌다 보는 바다보다 매일 봐야 바다의 재미를 알 수 있다.

너무 잘 먹은 탓에 달리는 게 힘들어서 걷는 중이다. 지는 해를 등지고 있어서 다리가 키다리 아저씨 같네. 또는 공포 영화 속 젓가락 귀신같기도 하네.

와, 이 그러데이션을 보라. 하늘이라도, 파란색이라도 이렇게나 층을 두고 여러 색이 있다. 재스민 블루, 옐로 블루, 퍼머낸트오랜지블루, 딥 스카이 블루.

그리고 뒤를 돌면 석양이 지고 있다. 태양이 마지막 힘을 짜내 그림자를 까맣게 까맣게 태운다. 그림자가 다 타고나면 우리는 밤의 세계를 맞이한다.

조깅을 하고 오면서 자주 들리는 카센터에는 아직 어린이인 백구 녀석이 있어서 늘 사람을 기다린다. 낮동안 아마도 아빠와 삼촌들이 놀아주고 챙겨 줄텐데 명절 연휴에는 혼자 보내야 해서 이렇게도 다가가면 놀아달라고 난리다. 저 멀리서 보면 백구 혼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돌아올 때는 전통시장으로 온다. ‘상자 옆의 고양이‘가 세상사를 초월한 듯 초연한 자세로 앉아 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나를 쓱 쳐다본다. 그 모습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움직였다. 아마 명절 연휴라 시장에서 던져주는 고등어 머리 같은 것들이 없어서 조금 당황하지 않았을까. 이제 명절이 끝났으니 많이 얻어먹으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깅을 하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노을이 좋다. 그대로 서서 매직 아워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생각이 든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가위가 되면 동요 ‘노을’이 라디오에서라도 나온 것 같은데 느닷없이, 두부를 칼로 싹둑 자르듯이 끊어졌다.


노을뿐 아니라 동요 자체도 들을 수 없다. 티브이 속 어린이들은 트로트에 열을 올리고 그 모습에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박수갈채를 보내니 어린이들에게 동요가 무쓸모처럼 소거된 것 같다.


동요가 듣고 싶어 한 번은 유튜브로 오연준 어린이가 부르는 고향의 봄을 듣고 가슴이 터질 만큼 좋아서 그대로 댓글을 달았더니 누군가 표현이 너무 예쁘다고 해주었다. 그건 내가 예쁘게 글을 썼다기보다 오연준 어린이의 노래를 듣고 그 마음이 아마도 글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게 동요의 힘이라면 힘이고 기능이라면 기능이지 않을까.

노을의 가사도 눈물이 나올 만큼 좋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쯤 누구나 알고 있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라는 상냥한 표현에서 풍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라는 말도 예쁘다. 아아 정말 가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노을의 가사가 좋아서 조깅을 하다가도 이맘때에는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에 취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눈앞의 노을은 저리도 붉게 타오르는데 도대체 동요 노을은 어디로 쏙 들어가 버렸나.


노을을 부른 어린이가 귄진숙(양)이다. 30년도 더 됐으니까 이제 권진숙 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권진숙 양의 노을이 듣고 싶어 진다. 그리하여 유튜브를 돌려 찾아보면 당시, 84년도의 동요대회로 갈 수 있다.


권진숙 양은 평택에서 왔는데 그곳의 장점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을 잘한다. 그리고 서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에도 똑 부러지게 답을 한다. 여자 아나운서는 마지막으로 그럼 서울과 평택 중에 어디에 살고 싶으냐고 물으니까 귄진숙 양은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


귄진숙 양은 약대를 나와서 제약회사를 상대로 약에 관련된 컨설턴트 하는 회사의 대표로 있다. 노을이라는 동요는 권진숙 양을 위한 노래였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잘 불렀다. 이 곡을 만든 이동진 선생이 2010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권진숙 양에게 하고픈 메시지를 전했다. 찾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 당시의 기사에는 동요제가 열렸을 때 모든 작사가와 작곡가들이 권진숙 양의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그만큼 노을이라는 동요가 사람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 어찌 되었던 요즘은 전혀 들을 수 없다. 찾아들어야 하는 노래가 됐다. 그래서 찾아 듣곤 한다.


오늘의 선곡. 권진숙 양의 ‘노을’ https://youtu.be/xwxAdmKHlrY


다시 뒤를 돌면 매일 보는 풍경이 처음 보는 그림 같다.




요즘은 매일이 영화로운 나날이다.

이 색채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달과 달빛, 그리고 그 위의 별까지.

장면 장면이 영화인 요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마의 휴일을 보면요, 앤이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려고 하다가 멈칫하잖아요.

집어넣으면 정말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손목이 없어질까 봐 말이죠.

그러다가 조 브레들리가 손을 집어넣고 거짓으로 아악 할 때, 그때 앤이 너무 놀라서 소리를 치며 브래들리의 손을 막 빼잖아요.

그 장면은 앤이 정말 귀여워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조가 거짓말이라고 하니 놀라면서 안도의 표정, 그 표정은 오드리 헵번 만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앤은 조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헤어져 궁전 같은 곳으로 돌아왔을 때 굳은 표정으로 바뀌잖아요.

예쁜데, 예쁜 얼굴인데 거기에서 어떤 무엇인가가 빠져버렸어요.

그건 아마도 감정인 거 같아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을 겪으며 사람들에 대한 이 알 수 없는, 복잡하고 기분 좋은 감정 말이에요.

그건 아마도 희로애락을 말할지도 몰라요.

앤은 그동안 여러 감정에 대해서 다양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르잖아요.


마지막에 추억의 사진을 건네받잖아요.

거기 사진을 보면 앤 공주가 살면서 정말 나올 수 없는 표정이 찍혀 있잖아요.

그 기분 좋은, 그 황홀한, 그 미칠 것 같은 흥분의 표정이 사진 속에 있었어요.

조와 친구는 그 특종 사진을 신문사에 보내지 않고 앤 공주에게 추억의 선물로 주잖아요.

만약, 정말 만약인데, 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도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데요, 원작을 쓴 트루먼 카포티는 홀리 역에 메릴린 먼로를 추천했다고 해요.

메릴린 먼로의 홀리는 어땠을까.

메릴린 먼로가 했어도 좋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메릴린 먼로가 어쩌다가 섹시스타가 되었지만 그녀는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였어요.


아 만약, 정말 만약에 앤 공주가 다시 궁을 뛰쳐나와 로마의 작은 2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조와 사랑을 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평생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아갔을까요.

동화를 보면 끝은 늘 행복하게 끝나잖아요.

뭐 신데렐라도 그렇고 백설공주도 그렇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 뒤의 이야기가 사실 더 궁금하거든요.

왜 이적이 부른 노래 중에 그런 노래가 있던데 말이죠.

신데렐라 그 이후의 이야기가 있어요.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빨래며 집 청소며 매일이 그렇게 흘러가는 거거든요.

앤 공주는 좀 다를까요.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은 단연 앤 공주잖아요.

머리를 자르러 갔을 때 생각나요?

이발사가 그러잖아요.

요만큼?

그러니까 앤 공주가 점 더 짧게.

그러니까 또 요만큼?

아니요 더 짧게.라고 하니까 이런 머릿결을 잘라내는 것에 이발사가 용납이 안 되어서 재차 되묻곤 하잖아요.

그리고 결국 짧게 자르잖아요.

머리를 앞으로 내렸을 때 그 머리카락을 살짝 걷거든요.

그때 앤의 표정을 봤어요?

오 정말 예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요.

눈을 이렇게 치켜뜨고 자신도 궁금하다는 듯한 그 맑고 순한 표정 말이에요.

아이들에게서나 나올 것 같은 그 표정을 앤 공주가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앤 공주가 조와 결혼을 했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사람들과 융화가 좋잖아요.

그렇게 서글서글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다 가진 사람’은 몇 없을 것 같아요.

마치 재벌의 셋째 딸이 대학교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너무나 잘 어울려 다니는 것과도 같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장면은 후에 나오는 영화에서 과거로 가거나, 미래로 간 여주인공이 그곳의 물정을 몰라 어리숙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들을 나눠주는 장면으로 바뀐 것 같아요.

로마의 휴일에서도 앤은 조에게 그러잖아요.

왜 내가 좋아하는 일들만 다 하는 거냐고? 조는 왜 이타적이냐고?

하지만 말이에요, 앤 앞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물론 조의 집에 청소를 하러 온 아주머니는 심통난 시어머니처럼 앤을 나무라지만 말이에요.

앤이 스쿠터를 타고 우당탕탕 사람들과 한 바탕 소란을 피운 다음 경찰서에 끌려가서 서 있을 때 표정 봤죠?

아아, 정말 뾰루퉁한 얼굴로 왜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같은 표정 말이에요.

정말 사랑스러워요.


앤이 마지막에 사진을 들고 헤어질 때 조를 바라보던 눈빛을 기억해요.

감정과 처지 사이에서 잠시 방황하는 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앤이 사라지고 조가 혼자서 쓸쓸하게 나오는 장면 역시 기억에 남아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니까요.

노팅 힐에서는 그게 싫었는지 ‘절대’라는 의미를 깨버리고 두 사람을 같이 있게 하지만 앤 공주와 조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가잖아요.

앤과 조는 알고 있었어요.

매일이 따분하고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이 미치도록 싫증 나지만 이런 생활이 무탈하게 보내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요.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프레디 크루거' kds941024 https://blog.naver.com/kds941014/2223172320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