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의 수확 2



여행에서의 여러 개의 수확 중 하나는 평소에는 크게 듣지 못하는 음악도 여행을 가는 도중에는 크게 들으며 신나게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시나위 4집이 있는데 이걸 평소에는 어디서든 크게 듣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안 듣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라디오를 듣게 되고, 자꾸 그러다 보면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듣게 될 뿐이다. 찾아서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지만 그저 들려주는 음악을 들을 뿐이다. 그런데 여행을 가게 되면 이 작은 쪼임에서 야호 하며 탈출하게 된다. 라디오를 좋아하는데 라디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잘 들려주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재미있다. 공식적인 모임에는 기를 쓰고 나가지 않으려 하지만 내가 만든 독서 모임은 또 영차영차 열심히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운전하는 건 귀찮은데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밤새 운전을 하여 여행지까지 가곤 했다. 그건 뭐랄까, 씻는 건 정말 싫은데 샤워하는 건 좋아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에이 그게 뭐야? 뒷산 나무늘보 같은 놈아.라고 해도 그런 이상한 양가감정을 가지는 게 인간이니까. 흥.


어떻던 여행 가는 건 귀찮지만 여행 가는 걸 좋아했다. 운전해서 여행을 갈 때에는 계획이 없다. 그냥 어디까지 가야지-까지만 있지, 예약하고 그곳의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고, 어디를 보고, 하는 건 나의 문화권에는 없다. 이런 점은 이전에도 여행에 관해서 한 번 적은 적이 있었다.


가는 동안 나는 평소에 들을 수 없었던 시나위 4집을 크게 튼다. 그리고 열심히 따라 부른다. 그래서 같이 가는 상대방은 이분법적으로 밖에 나뉠 수 없다. 정말 싫어하거나 진짜 좋아하거나. 또는 신경을 안 쓰거나. 이렇게 되면 이분법이 아니구나. 삼분법인가? 아무튼 그렇게 나뉜다. 여행을 갈 때 마음이 맞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지만 여행 스타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여행 내내 툴툴 거리며 보내지는 않는다. 내가 계획을 짜는 게 귀찮을 뿐이지 계획을 짜는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주면 의외로 더 괜찮은 여행을 갔다 올 수 있다. 보통은, 거의 대부분은 여행을 갈 때 계획을 짜고 준비하는 그 기쁨이 크다.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대체로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이다.


어떻게 아무 계획 없이 여행을 갈 수 있어요?


라고 하지만 아무 계획 없이 떠나는 게, 그게 여행이지.라고 그저 속으로만 대꾸할 뿐이다. 부웅 운전을 해서 타지방으로 가면 그곳의 극장에서 영화를 꼭 봤다. 그에 관한 이야기도 한 번 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영화에 빠져서 모르지만 극장에서 나오면 아, 지금 우리 여행 중이었지? 하는 기 기분이 아주 좋다. 


그래서 상대방도 여행지에 가서 그 지방 도시에 있는 극장에 가는 건 좋아했다.


하지만 시나위 노래는 좀 심했다구요.


시나위 4집을 내내 돌려서 듣고 싶지만 그럴 수만은 없다. 그게 인간들 속에 끼어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남이섬이 갔을 때였다. 이곳에서 거기까지는 멀다. 도착해서 남이섬을 돌고 나면 하루를 묵고 와야 했다. 남이섬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그림, 팝아트, 도예 등 미술이 가득하고 온갖 전시가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보기에는 그렇지 않지만 이런 것에는 꽤나 빠져드는 타입이었다.


우르르 여행 가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건 또 재미있다. 남이섬에서 그렇게 전시를 보며 밥을 먹다 보면 타지방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고 비슷한 면모가 보이면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다. 그들은 서울에서 온 커플로 직장인들이었다. 나는 당시에 카메라를 들고, 걸고, 차고 있어서 누군가 본다면 마치 무슨 프로 사진가처럼 보였다. 당시에는 캐논 똑딱이를 손에 들고, 파나소닉 루믹스를 목에 걸고, 니콘 D80인가, 거기에 90 마이크로 렌즈를 달아서 어깨에 차고 있었다. 그래서 여차여차해서 그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남이섬에도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어서 90마 정도로 촬영을 해도 꼭 포스터처럼 나온다. 거기서는 웨딩촬영도 많이 하고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이다.


그들은 너무나 사진을 갖고 싶어 했다. 나중에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지금 간절히 손에 사진을 받기를 바라는 바였다. 그래서 파일을 노트북으로 옮겨 색감을 대충 잡아서 여러 장을 시내로 나가서 사진관에서 인화를 해서 마트에서 액자를 구입해서 바로 넣어 주었다. 덕분에 우리의 반나절은 날아갔지만 일행도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가 숙소를 잡지 않았다는 걸 알고 그들은 자신들이 묶고 있는 강촌의 펜션에 방을 하나 얻어 주었다. 사진 몇 번 찍어주고 이게 웬 횡제인가. 우리는 사양하지 않고 방을 날름 받았다. 그들은 이미 이틀째인데 두부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두부를 가지고 무국적인 찌개를 끓였다.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넣고 끓이면 된다. 김치, 돼지고기, 두부, 고추, 파, 라면 스프 같은 것들을 다 털어 넣은 다음 끓이고 그 위에 계란을 하나 올리면 무국적인 맛이지만 아주 맛있는 찌개가 탄생된다. 그리고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맥주를 열심히 마셨다.


그들은 그 사진이 고마운지 와인이며 소주며 계속 가지고 왔다. 우리는 그날 여행에서의 수확을 꽤나 건졌다. 다음 날 인사를 하고 나오게 되었는데 비가 엄청 내렸다. 여행지에서 비를 맞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