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마치고 근무를 시작한지 사흘째, 아버님이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이 안좋아지져서 입원을 하셨다고 한다. 입원한 사실에도 마음이 불편했지만, 당장 가볼 수 없다는 게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내가 휴가였던 지난주에 입원하셨다면 더 잘 보살펴 드렸을텐데.
휴가 때 잘 쉬고 온 터라 아버님의 병환을 이유로 또 쉰다는 게 눈치가 보였다. 그래도 안가볼 수가 없는 것이, 아버님이 자영업을 하시는지라 아버님 대신 어머님이 나가서 일을 해야 하고, 병원에는 여동생이 와있다. 프리랜서긴 하지만 여동생이 나름대로 바쁜 걸 알기에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하필이면 이번주에는 일감이 많아서 매일 야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난 수요일과 목요일,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내게 떨어진 일을 다 처리했다. 그리고 금요일, 소장에게 말-그에게는 말씀이라고 하기가 싫다-했다.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근무 끝나고 내려가보겠다고.그럴 때 "잘 갔다오라"고 말만 해줘도 좋으련만 소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바쁜 때 어디를 또 가냐는 듯이.
"할 수 없지 뭐. 갔다 언제 오는데?"
"월요일날 출근할 겁니다"
말을 마친 난 재빨리 내 자리로 돌아와 일을 했다. 무지하게 졸렸지만 컴퍼스 끝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면서 잠을 참았다. 6시 종이 땡 울리자 난 야근의 운명에 처한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했고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기차에서는 내내 잠을 잤다. 옆자리에 아저씨가 대전에서 내리는 바람에 한번 깬 걸 제외하면.
아버님은 안좋아 보였다. 일주일만에 그렇게 되었을 리는 없고, 환자복을 입혀놓으니 그리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얼굴이 좀 노래 지셨고, 초췌해 보였다.
"뭐하러 왔냐. 한 사흘 있으면 퇴원하는데"
어머니와 동생을 집에 보내고 병원에서 하루를 잤다. 그리고 그 다음날, 하루종일 아버님 간병을 했다. 간병이라봤자 딱이 할 일은 없었다. 그냥 기본적인 수발이었기에 하루종일 간이침대에 누워서 딩굴딩굴했던 기억만 난다. 저녁 때는 어머님과 교대를 했고, 집에 가서 잤다. 간만에 편히 잤다. 그렇게 하루를 더 보낸 후, 일요일 저녁 때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왔다.
어제 출근을 했더니 소장이 "잘 쉬다 왔냐"고 한다. 내가 놀다온 게 아닌데 무슨 그런 말을 한담? 아버님은 괜찮으시냐 같은 말을 해야 정상이지 않나? 역시 우리 소장은 인간이 덜되었다. P의 말에 의하면 일요일에도 나와서 근무를 했을 정도로 바빴다고 한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님이 늘상 입원하시는 것도 아닌데 좀 따뜻이 해주면 안되는 걸까? 어려울 때 잘해야 충성도가 높아지는 법인데, 우리 소장은 그걸 모른다. 소장이 인간이 되는 날이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