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구조조정을 당한 친구를 만나 낮술을 했다.
연락하기도 뭐해 한잔 하자 하자 하면서도 서로 시간이 안맞아 모임이 미뤄졌다가
오늘 전격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래, 어떻게 지내?"라는 뻔한 질문에
"니 생각보단 잘 지내"라는 의례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낙뢰의 피해를 대비한 전기설비를 담당하는 회사에 다녔던 그 친구는
최근 들어 번개 피해를 입은 곳이 거의 없어서인지
설비 요청이 뚝 끊겼다.
그러기를 일년, 결국 친구는 구조조정 대상에 들어갔다.
더 안좋은 건 그 친구가 단기간에 뭘 좀 해보려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상당액을 말아먹었다는 거다.
주위를 보면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이 없건만,
왜들 그렇게 주식에 목을 매는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특히나 절박한 상황에서 한탕을 노리는 건 백이면 백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친구는 투자액의 절반 가까이를 잃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는 두달간 구상을 했던 사업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배터리 설치업체.
서울경기 지역에서 누군가가 배터리를 주문하면 차로 배달하는 서비스다.
일견 생각하기에 차 배터리가 나가면 보험회사를 부르고,
아파트 발전기라든지 다른 회사는 거래하는 업체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친구 역시 "이게 내 final job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아무튼 월급을 받는 위치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사업을 한다는 건
참 두려운 일일 것 같지만,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라
누구든 그런 상황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소주는 계속 들어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점차 맑아졌다.
"내가 배터리 원하는 사람 있는지 한번 알아볼게. 일단 우리 아파트도..."라며
명함을 몇 장 받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면서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그 명함들은 아마도 주차장의 차 유리창에 끼워졌다 금방 버려지겠지.
오늘 술 좀 받는구나,라는 생각과 달리 집에 오자마자 정신은 급격히 흐려졌고
난 금새 잠이 들었다.
자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이를 닦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