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공감가는 구절을 만났다.
‘이 시골바닥에서 중년 남자 셋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당구를 치거나 술을 마시거나 다방에 가거나, 또는 그 세가지 일을 모두 섭렵하거나 하는 일뿐이다“
어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뭐할까?’ 하다가 결국 당구를 쳤다. 그래도 집에 가기에 시간이 이른 것 같아 맥주를 한잔 하고 헤어졌다. 즉, 굳이 시골이 아니더라도 나같은 중년 남자끼리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은 술마시고 당구치는 일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20대 남자라고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20대이던 때, 그때도 우리는 만나서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그러고 나서 당구를 치거나 맥주를 마셨다. 40대가 되면 뭔가 달라질까? 아직 먼 훗날의 일이지만 그때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는 것 같다. 중년이든 청년이든 간에 남자들끼리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남자 넷이서 영화를 보겠는가, 아니면 놀이공원에 가겠는가? 등산을 가는 건 괜찮은 일 같지만 남자끼리 무슨 재미로 산에 오르겠는가? 정말이지 술마시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자연스럽게 중년 여성들이 만나면 무엇을 하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중년 여성의 삶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추측을 해보자면 이렇다. 아이가 있어 저녁 때 못만나는 그들은 기껏해야 점심을 먹으면서 밀린 얘기들을 나누는 것 뿐, 그나마도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아니, 만나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결혼 생활에 치여서 그저 전화로만 그리움을 달래는 게 고작일 것이다. 반면 젊은 여성들은 다르다. 자기네끼리 영화를 봐도 되고, 쇼핑을 해도, 찻집에서 만나 수다를 떨어도,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춰도 다 멋져 보인다. 칙칙한 남자들과 달리 그네들은 어디서나 환영받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젊음의 시간은 짧기만 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삶 역시 우리네와 다를 바가 없게 되어 버린다.
삼겹살에 소주는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에게는 숙명이나 다름없는 운명,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걸 즐겨야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 그 생활을 한 탓일까. 요즘은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일이 점점 지겨워진다. 다음번에 친구들을 만나면 감자탕을 먹자고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