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딱 한 통 남아 있었다.  얼마 전에 동네 마트에 갔다가 배추값을 확인했더니 3포기 한 망에 37000원.  등골이 오싹했다.  결국 구입을 포기하고 돌아나왔다.  집에 오면서 곰곰 따지고 보니 가족들이랑 외식 한 번 했다, 치고 김치를 담그면 비싸다 할 것도 없는 가격이다.  3포기를 가지면 글쎄, 일주일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부재료까지 합쳐서 5만원 정도가 든다고 해도 일주일동안 먹는다면 하루에 7100원꼴정도, 한끼에 2400원정도다. 우리집은 다섯식구니까 한 사람당 한끼에 480원. 그래, 아무리 비싸졌다고 해도 그렇게 따지면 과자 한 봉지에 2000원 하는 판국에  발발 떨 것도 없다 싶다.  근데 어딘가 찝찝하고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지는 거다. 인상된 값만큼 우리 농부들에게도 이득이 될까. 누구 주머니를 불리고 있는 걸까 싶어서 말이다...  어쨌든 배추를 비롯한 채소류의 가격폭등은 나같은 서민들에겐 살벌, 그 자체다.  애그플레이션이다 하면서 말들이 많던데, 걱정이다.

당장 김장이 걱정되었다.  한살림을 믿고 있었는데 물량부족으로 김장용 배추 주문 예약 받기를 중지한 상태였더래서(지난 4일에 어렵게 4만포기를 마련해서 선착순 주문을 다시 받았는데 10분만에 종료되었단다), 그저께였나, 괴산절임배추를 인터넷에서 찾아 40kg을 9만원에 주문했다. 그런데 오늘 흙살림에서도 유기농절임배추를 20kg에 42000원에 꾸러미 회원들에 한해 선착순 주문을 받는다는 문자가 왔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주문취소하고 어쩌고 하는 절차가 귀찮아서 그냥 이번 김장은 괴산 절임배추로 담그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일단 배추 문제는 해결.  그럼 무는?  화요일에 아파트 장이 열렸을 때 물어보니 무 한 개에 4천원.  20포기 정도를 담그려면 한 15개는 있어야 될 것 같은데... 한살림에선 무가 하나에 1400원인데 문제는 물량 부족으로 1인당 2개씩만 판매한다는 거다.  일단 그건 김장 담글 때쯤까지 기다리면서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어제 열린 장에서 열무가 한 단에 4천5백원이라는데 남아있는 열무 6단을 떨이로 해서 2만2천원에 구입했다.  (한살림에서는 열무 단이 작긴 하지만 한 단에 1400원인데 그것도 물량부족으로 무처럼 1인당 2단씩만 구매할 수가 있다) 쪽파 한단 3000원까지 해서 모두 2만5천원.  오늘 아침 애들이 다 나간 후 열무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열무가 좀 억세긴 하지만 커다란 김치냉장고용 김치통 하나와 작은 김치통 하나를 채웠다.  마음이 든든하다.    

.................?

칫, 열무김치 한 통 담가놓고 마음 든든하다며 안심하는 꼴이라니!!!
한심하기는.... ㅉㅉㅉ 

에휴, 도대체 이 시절은 언제 끝날까... 

김치나 맛있게 익어라.  맛없으면 무지 화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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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10-10-0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제목이 너무 공감이 가서요
저희도 간신히 괴산배추 것도 작년보다 오른 가격으로 한달뒤에 올거 김장 주문해놓고.
동네에 아줌마가 가져다 파는 열무 가지고,
동치미 같이 국물있는 열무김치 한통 담궜지요.
그래도 열무단은 억세지만 열무는 달달하고 부드러워서 아이들이 잘 먹고 있어서 다행이랍니다.
정말 언제나 이 시절이 끝날런지요.. 참...

섬사이 2010-10-11 06:03   좋아요 0 | URL
저도 지난 목요일에 흙살림 꾸러미에서 열무 500g이 와서 금요일 밤에 열무물김치를 담갔어요.
요즘은 배추값이 좀 떨어진 것 같기는 한데, 요상망측했던 날씨때문에 더욱 농사짓기 힘들었을 농민들에게 좀 더 이득이 간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순오기 2010-10-10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6년째 김장 안하고 얻어 먹고 살았는데, 올해는 그게 어려울 거 같아요.ㅜㅜ
정말 열무라도 사다 김치 담궈야겠어요.

섬사이 2010-10-11 06:07   좋아요 0 | URL
김치 담그는 거, 정말 일이죠...? 그나마 열무김치는 담그기가 좀 쉬운 편이긴 해요.
저도 배추김치는 김장 때나 담그려구요. 여차하면 깍뚜기를 더 담글까, 하고 있습니다.
 

 

책고르미가 도서관에 여는 첫 전시다.  처음에 전시 준비를 하면서 한 번으로 끝날 전시가 아니라 계속 주제를 바꿔가며 이어갈 전시니까 되도록이면 힘들지 않도록 즐겁게 준비하자고 했었다.  주제에 따른 책의 목록을 뽑고 전시제목을 정하고 하는 정도로만.  그런데 하다 보니 일이 커져서 방화동까지 가서 짚풀공예를 배워 전시를 꾸미는 일까지 하게 됐다.  앞으로 주의해야 할 일 같다.  무엇보다 사람이 지쳐서는 일을 계속 해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책고르미 식구들이 모두 마음씨가 고와서 잘 해주었고, 너무 고마웠다.  다음에 전시를 준비할 땐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하도록 마음을 써야겠다.  

지리산 자락이 본가인 회원엄마가 추석에 고향을 다녀오면서 밤송이가 달린 밤나무가지와 벼이삭을 가져다 주었다.  덕분에 벽이 썰렁해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책고르미가 공을 들여 장만한 짚공예 작품들도 가지런히 자리를 잡았다.  

 

달걀꾸러미와 짚공, 그리고 할아버지가 선물해주신 조롱태기다.  저 짚공도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건데, 생각보다 단단해서 놀랐었다.   

달걀꾸러미는 달랑 2개 남았다.  깨진 달걀이 있어 냠냠 먹어버렸더니 빈 꾸러미가 되어버린 것들이 있다.  

 

 

 

이건 짚풀을 배울 때 수제자로 인정받았던 엄마가 짠 그릇이다.  새끼를 꼬아 짰다는 걸 아이들에게 더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완성하고 남은 새끼줄들을 정리하지 않았다.   

가을그림책 중에 <투둑 떨어진다>나 <알강달강 커다란 밤 한 톨> 같은 책들이 있어 호두, 밤, 땅콩, 은행을 가져다 모아 담으니 꽤 정겹고 예쁘다. 

 

 

짚으로 만든 잠자리들을 몇 개는 핀으로 벽에 고정시키고 또 몇 개는 낚시줄로 묶어 천정에 매달아 놓으니 아기자기한 풍경을 보는 듯하다.   

밤나무가지와 벼이삭, 전시제목을 쓴 배경지 하단의 기와가 잠자리들과 참 잘 어울린다.   

다시 한 번 짚풀공예를 가르쳐주신 어르신들께 고마운 마음이 왈칵. 

 

이번 '그림책으로 만나는 가을'에 전시된 책들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도 있고, 준비하면서 훑어본 책들도 있는데, 언제 좀 시간을 내서 차분히 앉아 제대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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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0-06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을 들인 전시회에 아이들이 많이 와서 보면 좋겠네요.
제목과 잠자리, 짚공예품까지...너무 너무 보기 좋아요!
수고하셨네요~

내가 아직 못 읽은 책도 꽤 되네요...

섬사이 2010-10-07 01:26   좋아요 0 | URL
도서관 안에다 작게 코너를 꾸민 거라 '누가 많이 봐줬으면'하는 마음보다 자족하는 마음이 더 커요. ^^
저도 책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책들이 있어 재미있구요.
'새끼줄꼬기'도 배울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도서관에서 <그림책으로 만나는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가을'을 주제로 한 그림책 전시를 했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가을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소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 와중에 짚풀로 뭔가를 만들어 주변에 놓으면 가을 분위기가 더 짙어지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처음엔 대학로 쪽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에 가볼까 했다.  그런데 도서관 관장님이 우리 얘기를 듣다가 다른 곳을 추천해 주셨다. 

강서구 방화동 길꽃어린이도서관 옆 근린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짚풀공예를 가르쳐주신다는 정보였다.  그래서 9월 30일 목요일에 책고르미 식구 다섯 중 넷이서 출발했다.   

지하철만 1시간을 타고 가야하는 긴 여행(?)이었다.  그래서 가면서 '너무 멀다'며 솔직히 조금 투덜대기도 했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길꽃어린이도서관'에 도착해서 잠시 도서관을 둘러보고 우리 관장님이 꼭 가서 먹어보라고 추천하셨다는 국수가게를  찾아갔다.  점심을 먹고 길꽃어린이도서관 부관장님을 12시 30분에 찾아뵙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국수가게였는데, 정말 엄,청, 난, 국수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착한 가격, 깊고 구수한 맛, 거기에 커다란 냉면 그릇을 존재감 확실하게 채우는 어마어마하게 푸짐한 양... 남기면 자원봉사하시는 어르신들께 죄를 짓는 것 같아 남김없이 먹긴 했는데, 정말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다시 먹고 싶은 흐뭇한 느낌의 국수다. (나중에 들었는데 리필까지 된단다, 그런데 리필까지 받아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이렇게 운영되는 국수가게의 수익금으로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하고 도서관을 후원하기도 하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계셨다.  

 



길꽃어린이도서관은 참 깨끗하고 좋은 환경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도서관 앞에 놀이터까지 있어서 아이들이 책 읽다가 나가 놀다가 하기 좋겠다 싶어 잠깐 부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편안한 분위기의 우리 도서관이 더 좋다는 의견에 모두 동의를 했다.(지나치게 편안해서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다닌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도서관 입구 옆에 세워진 탱크가 눈에 확 띄었다. 나중에 만나 뵌 도서관장님께서 말씀해주시는데 사실 이 탱크는 10월 23일 토요일에 있을 동화잔치 가장행렬에 쓰려고 동네 어르신들이 나무로 만든 가짜 탱크란다.  근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로 만든 그 탱크가 정말 움직이고 '텅텅 드르르릉 동탕탕~'하고 소리까지 난다고 한다.  동학혁명, 3.1운동, 한국전쟁.... 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현대사를 주제로 하는 가장행렬에 쓰일 갖가지 소품들을 마을 어르신들이 뚝딱뚝딱 나무로 만들어 주신다는 이야길 듣고 참 부러웠다.  

그렇게 길꽃어린이도서관 사무실 안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아 근린공원으로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다.  맨처음으로 만든 건 달걀꾸러미였는데, 어르신들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만들고나서 얼마나 뿌듯하던지. 짚꾸러미 안에 쪼르르 몸을 누인 귀여운 달걀 세 알이 참 앙증맞아 보였다.  한 사람이 2개의 달걀꾸러미를 만들고 나서는 가르쳐주신 어르신들과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두 번째로 배운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새끼꼬기다. TV 속에서는 손바닥만 한 번 쓰윽 문지르면 꼬아지는 게 잪풀였는데, 이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한 엄마는 어릴 적 농촌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실력을 발휘, 월등한 능력을 뽐내며 어르신들의 수제자가 되었고, 미술을 전공한 또 다른 엄마는 탁월한 눈썰미로 역시 어르신들의 애제자가 되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살림솜씨가 야무진 다른 엄마도 야무진 솜씨로 어르신들의 관심과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래서 수제자맘은 고급반에서 특별 관리되어 고난도 작품에 도전했다. 도전결과 짚으로 대접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애제자맘은 이리저리 복잡하게 엮어야 만들 수 있는 "잠자리 만들기"를 전수받았다.  '회장님'이라는 어르신께서 야무진맘에게는 '달걀꾸러미'를 맡으라며 친히 하명하셨는데, 나는.... 그러니까 이런 방면으로는 내가 좀 둔한 편이라 으흠!!  뭐, 열심히 새끼만 꼬았다. 흠... 



참 친절하고 따뜻한 어르신들이셨다.  특히 회장님께서는 손재주가 특별한 분이셨다.  어찌나 야무진 손을 갖고 계신지 우리 모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에게 손수 만드신 '조롱태기'라는 짚 그릇을 기념으로 선뜻 선물해주시기도 하셨다.(고맙습니다~!!!) 물론, 우리가  노골적인 탐욕의 눈길과 드러나게 압박하는 분위기로 '작품을 저희에게 주시기를' 대놓고 청한 탓이 크지만. (회장님이 그날 우리 때문에 병이 나지 않으셨을까,  좀 걱정스럽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길꽃어린이도서관 입구에 있던 그 나무탱크도 이 회장님의 솜씨란다~! 한 달 반이나 걸려 만드신 작품이라고.) 

회장어르신께 이렇게 짚으로 여러 가지 만드는 방법을 책으로 내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렇게나 정겹고 예쁜 것들이 사라져버릴게 될까봐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공원에는 어르신들이 만든 초가지붕 집이 있다.  그 안에는 어르신들이 만든 갖가지 짚풀공예작품들이 있었다.  짚신, 삼태기, 각종 짚그릇 등등은 물론, 동화잔치에서 아이들이 탈 공룡, 코끼리 등도 짚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방화동 길꽃어린이도서관의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한편으로는 소월아트홀 광장에서 장기두고 담배피우시며 하루를 보내시는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오버랩되면서 참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늦은 시각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르신들께서는 짚이며 여러 재료들을 챙겨주시고도 모자라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돌아가라며 가는 길에 커피도 타 주셨다.  오며 가는데 걸린 약 3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하루를 보냈다.  

우리 작품들은 도서관에 갖다 놓았다.  '그림책으로 만나는 가을' 도서전시회에 좋은 소품이 되기도 하겠지만 책고르미 엄마들에겐 좋은 가을 추억 하나 생겼다는 게 더욱 값진 것 같다.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는 전통놀이 마당에 아이들과 함께 가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국수도 먹고, 짚공예를 가르쳐주신 스승님들도 다시 찾아뵙고 말이다.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좀 부담스럽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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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마음을 여는 책 읽기'라는 이름으로 새 모임이 꾸려졌다.  아이들 책 읽히기에 골몰하는 눈길을 살짝 거두어서 엄마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책읽기를 통해 내면을 풍부하게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인데 앞으로 10주간 진행될 예정이다.  관장님이 책고르미에서 주도해보라고 하명(?)하신 후, 끙끙대며 함께 읽을 책들을 고심해 보았다.  많은 책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일단 엄마들이 관심을 갖고 읽을 만한 책,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들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소설 위주로 선정이 되었는데, 모임의 첫 테이프를 끊을 책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로 낙점!  

엄마를 부탁해

이 책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눈물을 한 바가지씩 흘리며 읽었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베스트셀러이자 온국민의 필독서의 포스를 풍기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만나기를 피하고 있던 책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훌쩍거리고 있는 나는 상상하고싶지도 않았다.  왜냐고 따지면 마땅히 댈 이유도 떠오르지 않는데, 그냥, 내 우는 얼굴이 너무 흉해서라고나 할까... 아니면 울고 나서 그 머쓱한 기분이 너무 싫어서라고나 할까..  아무튼 너무너무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울고 싶은데 핑계가 마땅치 않다거나 할 때까지 이 책 읽기를 미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웃의 연하녀가 "언니, 이 책 빌려드릴까요?"했을 때에도 "나중에"하며 극구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모임 때문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일부러 꾹 참았던 것도 아니고 그냥 별로 슬프지 않아서였다.  책을 덮으면서 내가 너무 메말라 버린 건 아닐까, 불안했다. 뭐, 나도 스스로를 '건조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는 있었지만 남들은 눈물바다를 이룬다는 책을 읽으면서 어째서 눈물 한 방울은 커녕 콧날도 한 번 시큰해오질 않는 걸까. '건조'하다 못해 내 감성은 '사막'이 되어버린 걸까. 끙.  

이 책에서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좀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물'에 대한 부분이었다. 28쪽에 이런 글이 있다.  

   
  '오래전엔 작은 문 바로 앞에 마을 공동우물이 있었다. 집집마다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우물은 자연스럽게 메워졌으나 그 우물을 기억하는 너는 작은 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문득 우물이 있던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완강한 시멘트를 발로 툭툭거려보기도 했다. 예전에 그곳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었던 것이 사실일까? 마음이 야릇해졌다. 이 골목의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고도 항상 찰랑찰랑 물이 고여 있던 그 우물은 저 캄캄한 속에서 어쩌고 있을까? 너는 그 우물이 메워지는 걸 보지 못했다. 어느 날 모처럼 엄마의 집에 가보니 우물은 사라지고 시멘트길이 나 있었다. 아직도 시멘트 저 아래 우물에 물이 찰랑찰랑 고여 있으리란 상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우물이 메워지는 걸 너의 눈으로 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   
   

시멘트로 메워진 우물.  그건 잃어버린 엄마의 존재를 암시하는 건지도 모른다.  엄마가 사라지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 어딘가에 엄마가 여전히 계실 거라 생각하는 작중 인물의 마음이 시멘트로 메워져 보이진 않지만 저 아래 흐르고 있을 우물에 닿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겐 그것이 어쩌면 사막으로 변한 내 감성의 첫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세상 어머니가 강한 이유 중 하나는 내면에 찰랑찰랑 고여있는 물을 시멘트로 덮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단단하고 완강하게, 그 무엇에도 흔들리거나 쏟아져 버리지 않도록, 여린 소녀적 감성들을 캄캄한 저 밑바닥에 가둬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엄마도 살면서 한 겹, 두 겹, 세 겹... 계속해서 시멘트를 덧발랐겠지.  어느 틈에 금이 가서 깨지려고 할 때마다 아이들이 그 동그란 입을 벌려 '엄마!'라고 불러주는 소리에 의지해서 시멘트를 더 두텁게 덧발라 가는 것이 이 세상 엄마들 아닐까.  내가 '눈물 보이기'를 그토록 꺼려하는 것도 깨져 버린 시멘트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멘트가 깨져서 훤히 우물 속 물이 내려다 보이는 엄마는 흉하다는 생각.  

다음 주 목요일 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엄마는 몇 명이나 될까.  끙, 모임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면 난 말을 적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참, 이 <마음을 여는 책 읽기>모임은 신동호 시인께서 오셔서 함께 해주시기로 했다.  10주간 내내....  엄마들끼리 하는 것보다 훨씬 알찬 시간이 될 것 같다.  10주 동안 우리가 얘기할 책들은 다음과 같다.  물론 모임을 진행하면서 바뀔 부분도 있을 것이다.

1. 10월 7일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창비)
2. 10월 14일  영화감상 (카모메 식당 또는 메종 드 히미코)
3. 10월 21일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문학동네)
4. 10월 28일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보리)
5. 11월 4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6. 11월 11일  작가와의 대화 '노래하는 시인 백창우 선생님'
7. 11월 18일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8. 11월 25일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푸른숲)
9. 12월 2일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매리앤셰퍼, 애니배로우즈/이덴슬리벨)
10. 12월 9일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존 그리샴/ 북앳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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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0-04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10주간의 일정이 마친 후에도 계속 하게 되지 않을까 점쳐 봅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개인차가 큰 거 같아요. 우리도 작년 4월 고등학교 독서회 토론도서였는데, 대체로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가정에서 엄마가 고생하지 않았다면 공감대가 작은 거 같았어요.

우물에 대한 감상, 저는 생각도 못한 부분인데... 섬사이님 글 읽고 보니, 어쩌면 신경숙 작가의 의도는 그런 거 아니었을까 싶어지네요.

섬사이 2010-10-04 09:59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순오기님 같은 분이 계시다면야 모임을 더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모임을 주도해갈 수 있는 사람이 짠~!하고 나타나지 않는다면 좀 힘들 수도 있어요. <엄마를 부탁해>, 저만 그런 건 아니군요. 혹시 제가 친정엄마와 그다지 썩 사이좋은 모녀지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싶기도 했어요. 이제 서재에 먼지 좀 털어내고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 제일 먼저 달려와 발자국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

프레이야 2010-10-0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참 좋은 모임이네요.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우물에 대한 저 인용글, 저도 다시 읽어보게 되네요.
내면에 찰랑거리는, 시원한 우물물... 그거 마르지 않게 살아야겠어요.

섬사이 2010-10-04 10:5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오랜만에 뵈어요. ^^
오는 목요일이 첫모임인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저, 독서모임은 처음 해보는 거라서...
내면에 찰랑거리는, 시원한 우물물.. <어린 왕자>에 나오는 글귀도 생각나지요?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라던가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저도 어딘가에 찰랑거리는 우물을 감추고, 마르지 않도록 잘 지켜야겠어요. ^^ 제가 좀 사막같거든요. 흐흐흑~~

다락방 2010-10-0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섬사이님.
엄마들이 읽게 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가 궁금해요. 또 엄마들이 읽게 될 [상실의 시대]도요. 올리신 리스트들 중에, 이 두권은 '엄마'이기 때문에 '엄마'가 아닌 사람들과는 좀 다른 감상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만 말예요. 후기가 기다려져요!

섬사이 2010-10-04 14:46   좋아요 0 | URL
하하하.. 저도 엄마들이 어떤 감상을 토해놓을지 기대가 돼요.
아무래도 가정이 있는 주부들 입장이라 좀 더 망설이고 신중해지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구요.^^;

세실 2010-10-05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바람 맞을 엄마들 많겠는걸요~~~
엄마들은 그냥 마음속으로 무한한 상상을 하잖아요. 실현 불가능한 상상. 마음만은 20대인거 아시죠? 가슴 콩닥거리는건 다 똑같을껄요~~~~
마음을 여는 책읽기 모임이라는 타이틀도 좋고, 시인이 함께 해주신다면 금상첨화죠.
아 부러워라~~~

섬사이 2010-10-05 23:55   좋아요 0 | URL
너무 바람이 셀까요?
하지만 이런 가을에 가슴 속이 찌르르 울리면서 콩닥거리는 걸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거, "나 아직 안 죽었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나에게 아직 이런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해지던데요.
물론 실현불가능한 쓸쓸한 현실이지만. ㅠ.ㅠ
반가워요, 세실님. ^^
 

1. 

살다보면
외로워질 때도 있는 거지. 
그런 거지, 뭐. 

2.  

군대,
가고 싶은 곳은 못될지언정, 
'아주 못 갈 곳은 아니다'라거나 '다녀올만 하다'정도.. 
그 정도를 바라는 것도 무리인걸까.
내겐 꼼짝없이 군대에 가야할
아들이 하나 있다. 

3.  

그들의 죽음이 영웅적인 용사의 죽음일까.
개죽음은 아니고?? 
분노를 막기 위해
영웅의 죽음으로 포장되는 건 아닐까
볼 때마다 화가 난다

4.  

접고 접고 또 접고,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고,
덜어내고 덜어내고 또 덜어내고,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도대체 얼만큼 더? 

5.  

미장원에서 어떤 아줌마가 전날 저녁 딸아이와 싸웠는데
딸아이가 나가서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며
걱정하다 화내다 섭섭해하다 노여워하다.. 그러다가 갔다
미장원 아가씨가 그 아줌마를 보고 하는 말이
'엄마가 자식보다 기가 약해서 자식을 휘어잡지 못하고 살면 어떡하냐'고 한다.
아가씨야, 
아무리 기가 쎈 부모라도 자식한테는 이길 수 없거든.
부모는 자식 앞에선 영원한 약자야. 

6.  

뭔가 할 일을 찾아 기웃기웃했다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2년동안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고 싶어서. 
그런데 마땅히 배울 것도 할 일도 눈에 띄질 않는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걸까  
아니면 삶에 대해서 너무 시들해진 걸까

7.  

꽃이 좋은 까닭은 
내가 더 이상 꽃이 아니기 때문이지
젊은 시절엔 꽃이 내 배경이 되어주었고
나에게 보내지던 꽃다발도 꽃이 예뻐서라기 보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구
나이가 들어 꽃에 눈부셔 하는 건
꽃처럼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나이든 여자가 꽃을 바라보는 눈길엔
그런 그리움이 더 보태지는 법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싶어라"
했던 시인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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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27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는 말이죠, 제 남동생을 보내놓고 나니까 정말이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더라구요. 뭐랄까, 제가 빽이있었다면, 뭔가 그런쪽으로 능력이 있었다면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불법을 해서라도 보내고 싶지 않다, 고 말입니다.

남동생은 이미 제대한지 오래고, 군대에 대해서 그렇게 견디지 못할만하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좀 답답해요.


저는 이미 삼십대 중반인데, 저는 아이가 있는것도 아니고 결혼한것도 아니니 정말 자유로운 입장인데, 뭘 좀 배워볼까 생각만 하다가 세월 다 보냈어요. 결국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여자사람으로 계속 늙어가려나봐요. 저 역시 삶에 대해서 시들해진걸까요?

새로운 걸 배우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제게는 결코 쉬운일 같지가 않아서, 아예 고개를 돌리지도 않는가봐요.

섬사이 2010-05-07 09: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게 겁나기도 해요. 뭐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요.
예전처럼 그 과정에 몰입이 되지도 않고, 몰입된다고 해도 그러자면 제가 해야할 나머지 일들이 엉망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

마노아 2010-04-2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 근조 리본을 다 돌렸는데 안 달고 있어요. 그들의 죽음에는 애도를 표하지만 이따위 걸로 눈가림하는 것 같아서 너무 화가 나요. 엄마로서, 여자로서, 하나의 사람으로서 자신을 계속 바라보며 사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섬사이님은 잘하고 계신듯 보여요.^^

섬사이 2010-05-07 09:50   좋아요 0 | URL
그래요, 화가 나요.
너무너무 화가 나는 봄이었어요.
날씨도 기분도 엉망이었죠.

순오기 2010-04-2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줄이 동감이에요. 특히 마지막엔 더욱 더...

섬사이 2010-05-07 09:54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