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그림책으로 만나는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가을'을 주제로 한 그림책 전시를 했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가을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소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 와중에 짚풀로 뭔가를 만들어 주변에 놓으면 가을 분위기가 더 짙어지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처음엔 대학로 쪽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에 가볼까 했다.  그런데 도서관 관장님이 우리 얘기를 듣다가 다른 곳을 추천해 주셨다. 

강서구 방화동 길꽃어린이도서관 옆 근린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짚풀공예를 가르쳐주신다는 정보였다.  그래서 9월 30일 목요일에 책고르미 식구 다섯 중 넷이서 출발했다.   

지하철만 1시간을 타고 가야하는 긴 여행(?)이었다.  그래서 가면서 '너무 멀다'며 솔직히 조금 투덜대기도 했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길꽃어린이도서관'에 도착해서 잠시 도서관을 둘러보고 우리 관장님이 꼭 가서 먹어보라고 추천하셨다는 국수가게를  찾아갔다.  점심을 먹고 길꽃어린이도서관 부관장님을 12시 30분에 찾아뵙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국수가게였는데, 정말 엄,청, 난, 국수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착한 가격, 깊고 구수한 맛, 거기에 커다란 냉면 그릇을 존재감 확실하게 채우는 어마어마하게 푸짐한 양... 남기면 자원봉사하시는 어르신들께 죄를 짓는 것 같아 남김없이 먹긴 했는데, 정말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다시 먹고 싶은 흐뭇한 느낌의 국수다. (나중에 들었는데 리필까지 된단다, 그런데 리필까지 받아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이렇게 운영되는 국수가게의 수익금으로 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하고 도서관을 후원하기도 하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계셨다.  

 



길꽃어린이도서관은 참 깨끗하고 좋은 환경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도서관 앞에 놀이터까지 있어서 아이들이 책 읽다가 나가 놀다가 하기 좋겠다 싶어 잠깐 부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편안한 분위기의 우리 도서관이 더 좋다는 의견에 모두 동의를 했다.(지나치게 편안해서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다닌다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도서관 입구 옆에 세워진 탱크가 눈에 확 띄었다. 나중에 만나 뵌 도서관장님께서 말씀해주시는데 사실 이 탱크는 10월 23일 토요일에 있을 동화잔치 가장행렬에 쓰려고 동네 어르신들이 나무로 만든 가짜 탱크란다.  근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로 만든 그 탱크가 정말 움직이고 '텅텅 드르르릉 동탕탕~'하고 소리까지 난다고 한다.  동학혁명, 3.1운동, 한국전쟁.... 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현대사를 주제로 하는 가장행렬에 쓰일 갖가지 소품들을 마을 어르신들이 뚝딱뚝딱 나무로 만들어 주신다는 이야길 듣고 참 부러웠다.  

그렇게 길꽃어린이도서관 사무실 안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아 근린공원으로 어르신들을 찾아뵈었다.  맨처음으로 만든 건 달걀꾸러미였는데, 어르신들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만들고나서 얼마나 뿌듯하던지. 짚꾸러미 안에 쪼르르 몸을 누인 귀여운 달걀 세 알이 참 앙증맞아 보였다.  한 사람이 2개의 달걀꾸러미를 만들고 나서는 가르쳐주신 어르신들과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두 번째로 배운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새끼꼬기다. TV 속에서는 손바닥만 한 번 쓰윽 문지르면 꼬아지는 게 잪풀였는데, 이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한 엄마는 어릴 적 농촌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실력을 발휘, 월등한 능력을 뽐내며 어르신들의 수제자가 되었고, 미술을 전공한 또 다른 엄마는 탁월한 눈썰미로 역시 어르신들의 애제자가 되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살림솜씨가 야무진 다른 엄마도 야무진 솜씨로 어르신들의 관심과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래서 수제자맘은 고급반에서 특별 관리되어 고난도 작품에 도전했다. 도전결과 짚으로 대접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애제자맘은 이리저리 복잡하게 엮어야 만들 수 있는 "잠자리 만들기"를 전수받았다.  '회장님'이라는 어르신께서 야무진맘에게는 '달걀꾸러미'를 맡으라며 친히 하명하셨는데, 나는.... 그러니까 이런 방면으로는 내가 좀 둔한 편이라 으흠!!  뭐, 열심히 새끼만 꼬았다. 흠... 



참 친절하고 따뜻한 어르신들이셨다.  특히 회장님께서는 손재주가 특별한 분이셨다.  어찌나 야무진 손을 갖고 계신지 우리 모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우리에게 손수 만드신 '조롱태기'라는 짚 그릇을 기념으로 선뜻 선물해주시기도 하셨다.(고맙습니다~!!!) 물론, 우리가  노골적인 탐욕의 눈길과 드러나게 압박하는 분위기로 '작품을 저희에게 주시기를' 대놓고 청한 탓이 크지만. (회장님이 그날 우리 때문에 병이 나지 않으셨을까,  좀 걱정스럽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길꽃어린이도서관 입구에 있던 그 나무탱크도 이 회장님의 솜씨란다~! 한 달 반이나 걸려 만드신 작품이라고.) 

회장어르신께 이렇게 짚으로 여러 가지 만드는 방법을 책으로 내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렇게나 정겹고 예쁜 것들이 사라져버릴게 될까봐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공원에는 어르신들이 만든 초가지붕 집이 있다.  그 안에는 어르신들이 만든 갖가지 짚풀공예작품들이 있었다.  짚신, 삼태기, 각종 짚그릇 등등은 물론, 동화잔치에서 아이들이 탈 공룡, 코끼리 등도 짚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방화동 길꽃어린이도서관의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한편으로는 소월아트홀 광장에서 장기두고 담배피우시며 하루를 보내시는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오버랩되면서 참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늦은 시각에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르신들께서는 짚이며 여러 재료들을 챙겨주시고도 모자라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돌아가라며 가는 길에 커피도 타 주셨다.  오며 가는데 걸린 약 3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하루를 보냈다.  

우리 작품들은 도서관에 갖다 놓았다.  '그림책으로 만나는 가을' 도서전시회에 좋은 소품이 되기도 하겠지만 책고르미 엄마들에겐 좋은 가을 추억 하나 생겼다는 게 더욱 값진 것 같다.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는 전통놀이 마당에 아이들과 함께 가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국수도 먹고, 짚공예를 가르쳐주신 스승님들도 다시 찾아뵙고 말이다.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좀 부담스럽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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