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마음을 여는 책 읽기'라는 이름으로 새 모임이 꾸려졌다. 아이들 책 읽히기에 골몰하는 눈길을 살짝 거두어서 엄마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책읽기를 통해 내면을 풍부하게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인데 앞으로 10주간 진행될 예정이다. 관장님이 책고르미에서 주도해보라고 하명(?)하신 후, 끙끙대며 함께 읽을 책들을 고심해 보았다. 많은 책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일단 엄마들이 관심을 갖고 읽을 만한 책,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들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소설 위주로 선정이 되었는데, 모임의 첫 테이프를 끊을 책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로 낙점!
이 책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눈물을 한 바가지씩 흘리며 읽었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베스트셀러이자 온국민의 필독서의 포스를 풍기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만나기를 피하고 있던 책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훌쩍거리고 있는 나는 상상하고싶지도 않았다. 왜냐고 따지면 마땅히 댈 이유도 떠오르지 않는데, 그냥, 내 우는 얼굴이 너무 흉해서라고나 할까... 아니면 울고 나서 그 머쓱한 기분이 너무 싫어서라고나 할까.. 아무튼 너무너무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울고 싶은데 핑계가 마땅치 않다거나 할 때까지 이 책 읽기를 미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웃의 연하녀가 "언니, 이 책 빌려드릴까요?"했을 때에도 "나중에"하며 극구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모임 때문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일부러 꾹 참았던 것도 아니고 그냥 별로 슬프지 않아서였다. 책을 덮으면서 내가 너무 메말라 버린 건 아닐까, 불안했다. 뭐, 나도 스스로를 '건조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고는 있었지만 남들은 눈물바다를 이룬다는 책을 읽으면서 어째서 눈물 한 방울은 커녕 콧날도 한 번 시큰해오질 않는 걸까. '건조'하다 못해 내 감성은 '사막'이 되어버린 걸까. 끙.
이 책에서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좀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물'에 대한 부분이었다. 28쪽에 이런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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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엔 작은 문 바로 앞에 마을 공동우물이 있었다. 집집마다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우물은 자연스럽게 메워졌으나 그 우물을 기억하는 너는 작은 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문득 우물이 있던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완강한 시멘트를 발로 툭툭거려보기도 했다. 예전에 그곳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었던 것이 사실일까? 마음이 야릇해졌다. 이 골목의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고도 항상 찰랑찰랑 물이 고여 있던 그 우물은 저 캄캄한 속에서 어쩌고 있을까? 너는 그 우물이 메워지는 걸 보지 못했다. 어느 날 모처럼 엄마의 집에 가보니 우물은 사라지고 시멘트길이 나 있었다. 아직도 시멘트 저 아래 우물에 물이 찰랑찰랑 고여 있으리란 상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우물이 메워지는 걸 너의 눈으로 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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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로 메워진 우물. 그건 잃어버린 엄마의 존재를 암시하는 건지도 모른다. 엄마가 사라지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 어딘가에 엄마가 여전히 계실 거라 생각하는 작중 인물의 마음이 시멘트로 메워져 보이진 않지만 저 아래 흐르고 있을 우물에 닿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겐 그것이 어쩌면 사막으로 변한 내 감성의 첫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세상 어머니가 강한 이유 중 하나는 내면에 찰랑찰랑 고여있는 물을 시멘트로 덮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단단하고 완강하게, 그 무엇에도 흔들리거나 쏟아져 버리지 않도록, 여린 소녀적 감성들을 캄캄한 저 밑바닥에 가둬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엄마도 살면서 한 겹, 두 겹, 세 겹... 계속해서 시멘트를 덧발랐겠지. 어느 틈에 금이 가서 깨지려고 할 때마다 아이들이 그 동그란 입을 벌려 '엄마!'라고 불러주는 소리에 의지해서 시멘트를 더 두텁게 덧발라 가는 것이 이 세상 엄마들 아닐까. 내가 '눈물 보이기'를 그토록 꺼려하는 것도 깨져 버린 시멘트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멘트가 깨져서 훤히 우물 속 물이 내려다 보이는 엄마는 흉하다는 생각.
다음 주 목요일 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엄마는 몇 명이나 될까. 끙, 모임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면 난 말을 적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참, 이 <마음을 여는 책 읽기>모임은 신동호 시인께서 오셔서 함께 해주시기로 했다. 10주간 내내.... 엄마들끼리 하는 것보다 훨씬 알찬 시간이 될 것 같다. 10주 동안 우리가 얘기할 책들은 다음과 같다. 물론 모임을 진행하면서 바뀔 부분도 있을 것이다.
1. 10월 7일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창비)
2. 10월 14일 영화감상 (카모메 식당 또는 메종 드 히미코)
3. 10월 21일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문학동네)
4. 10월 28일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보리)
5. 11월 4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6. 11월 11일 작가와의 대화 '노래하는 시인 백창우 선생님'
7. 11월 18일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8. 11월 25일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푸른숲)
9. 12월 2일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매리앤셰퍼, 애니배로우즈/이덴슬리벨)
10. 12월 9일 <크리스마스 건너뛰기> (존 그리샴/ 북앳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