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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한 시간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30
박주연 지음, 조미자 그림 / 한솔수북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원전사고 이후 전기라는 에너지에 대한 생각이 문득문득 일상 속을 파고들곤 한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면서도 정작 난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조차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는 생각, 원자력 발전의 어마어마한 힘을 좋다고 넙죽넙죽 잘 받아 쓰고는 이제 와서 원자력발전의 치명적 위험에 겁을 먹고는 덜컥 몸을 사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 어쩌면 원자력 발전소는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생긴 건지도 모른다는 자괴감까지. 그래서 그나마 요즘은 전등 끄는 일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하고, 진공청소기 보다 정전기청소포를 더 자주 꺼내 쓰기도 한다.  지구와 환경에 미안한 나의 작고 소심한 표현이다.  

여기, 지구에 대한 작고 소심한 애정 표현 방법이 하나 더 있다. 2007년 3월 31일 저녁 7시 30분에 호주 시드니에서 시작된 '지구촌 불끄기 운동'. 일년에 딱 한 시간 동안만 사람들이 어둠 속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 아마도 지구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휴식이 될 수 있을 방법이다. 1년 365일은 8,760시간, 그 중에 딱 한 시간이니 생색내기에도 민망할만큼 아주 적은 시간이다.  지구가 44억 6700만 살에 이를 때까지 자연과 인간의 터전이 되어준 것을 생각하면, 게다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혹사당한 생각을 하면 쉴 수 있는 시간을 더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도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쉬는데 지구는 일년에 달랑 한 시간이라니 좀 너무하다.  하지만 작고 소심한 운동이니까 남녀노소 모두 참여할 수도 있는 것일 게다. 

그 한 시간 동안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 때문에 새들이 길을 잃어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고, 더 많은 별들이 반짝이며 빛날 것이고, 사람들은 오랜만에 어둠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맛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둘러 앉은 이 그림책 속 사람들의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처럼 말이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지구촌 불끄기 운동'이 지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란 사실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은 <'지구를 위한' 한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한 시간>이라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지구환경의 파괴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지구를 위해 한 시간은 커녕 단 일분도 배려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지구촌 불끄기 운동'같은 이벤트(?)가 생기고 이런 그림책이 출간되는 걸 보면, 지구와 인간이 하나라는 인식에 가까이 간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증거인 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일곱 살 딸아이는 이 책을 읽어줬더니 우리도 불끄기 운동을 하자고 조른다. 물론, 적극 참여해야지. 그 시간이 주말 저녁이고, TV에서 현빈과 강동원과 조니뎁과 세상의 인기미남들이 몽땅 등장하는 초호화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한다고 해도, 좀 심하게 갈등을 겪긴 하겠지만 그래도 참여해야지. 그딴 건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거나 재방송을 봐도 되니까. 이래뵈도 나는 어릴 적 등화관제 훈련에도 참여했던 어른이니까.  

내용도 좋고 펜과 색연필을 사용한 그림도 참 좋다. 글과 그림에서 사람들의 착한 마음들이 스며나온다고나 할까. 조미자 님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책의 그림은 참 마음에 든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 그림 속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느끼는 걸 같이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아마 우리집 막내도 그런 기분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그 따뜻한 그림들을 사진으로 담아서 함께 올리고 싶었는데 디카가 고장이다.  아쉽다.

이 책에 소개된 '지구촌 불끄기 운동'과는 별개로 우리집에서는 우리만의 '불끄기 운동'이 조만간 벌어질 것 같다. '불끄기 운동'에 불붙은 막내의 욕구를 해결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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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04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제목인데요 지구를 위한 한시간 음 궁금해요.

섬사이 2011-05-06 07:09   좋아요 0 | URL
제목도 멋지고 내용도 좋아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환경에 대한 책을 아이들과 자주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유아/어린이/청소년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내일이 어린이날인데도 아직 아이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에게 실바니안 인형과 가구들을 선물받은 딸은 이번에 실바니안 집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무심한 엄마는 이 페이퍼를 쓴답시고 모니터 속 책들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중.    

 

<강은 세상을 만들어요>   
기코 시토시 지음/ 김혜숙 옮김/ 학고재

4대강 문제로 온나라가 떠들썩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4대강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19명이 죽었다는데도, 보류되었다지만 분명 무슨 꼼수가 있을 것 같은 지류사업이 논해질 때에도 세상은 참 조용했다. 그래서 더욱 강이 어떻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주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아이들과 느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맑고 산뜻한 수채화풍 그림과 각 페이지의 그림을 이으면 거대한 하나의 그림이 되는 구성도 눈여겨보면 좋을 듯.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설흔 / 창비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그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던 이옥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이옥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이옥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그저 정조의 문체반정에 굴복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그의 문체가 무척 여성적이라는 점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 확실치가 않다.  
창비 청소년도서상 수상작품이라는 점에도 마음이 끌리지만 무엇보다 세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이옥과 김려의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갔을지도 무척 궁금하다.

  

 

 

  <우리 가족이 살아온 동네 이야기>
김향금 지음/ 김재홍 그림/ 열린어린이 

열린어린이에서 기획한 '그림책으로 만나는 지리 이야기'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3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거주지 이동과 가족 형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사회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이 책은 단순히 '지리'에 대한 지식전달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이들의 할머니 세대, 그리고 부모인 우리 세대, 지금 아이들이 살아가는 현대의 모습을 섬세한 그림과 설명으로 잘 담아놓은 것 같다.
너무 빨리 발전한 우리 나라. 그래서 아이들은 불과 50년 전의 모습도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 문명의 발달 속도에는 더욱 가속이 붙겠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 세대간의 삶의 변화를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이 책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읽는다면 그것도 참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문학동네어린이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의 작가 김려령. 그 이름만으로도 기대되는 책이다.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로 내 마음을 따뜻하고 촉촉하게 만들어 줄까.  
책을 읽다보면 일상에 찌든 나를 위로하듯 내 어깨를 토닥이며 온기를 전해주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데, 책 소개글을 읽어보니 어쩌면 이 책도 그런 온기를 가진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앤서니 브라운의 나의 상상미술관>
앤서니 브라운, 조 브라운 지음/ 홍연미 옮김/ 웅진주니어 

고등학생인 우리 큰애들이 어렸을 때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어린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좀 섬뜩하고 무서운 면이 없지 않으니까. 그런데 좀 커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꺼내 읽더니 "엄마, 이 사람 천재 아니야?"라고 물어오더라.
지금 일곱 살인 막내도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좀 더 자라서 다시 읽는다면 큰애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 큰애들에 의해 '천재'로 불리는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삶과 그림책 세계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보는 방법과 '모양 상상 놀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그림책을 완성해가는 과정까지 담았다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나저나 내일이 걱정이구나. 어디 나들이를 가자니 사람과 차들이 무섭고, 선물을 골라 사주자니 특별히 떠오르는 것도 없다. 내 맘 같아선 좋은 그림책 몇 권을 선물하고 싶지만, 아이 입장에선 장난감을 장만할 수 있는 이런 대목을 놓치고 싶지 않을 터. 딸아이도 좋아할 것 같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하고, 두고두고 오랫동안 가지고 놀 수 있겠다 싶은 장난감들은 너~~~~~무 비싸고, 가격대를 맞춰서 사자니 내 아이에게 사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딸아, 좀 더 소박한 어린이날을 보내면 안되겠니?  나무에게 좀 미안해서 그렇지, 세상에 책처럼 좋은 것도 드물단다.      에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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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5-0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려령 작가 책이 끌리네요. 6학년 아들내미는 어린이날 별로 개의치 않아요. 아참 아빠에게 자전거 사달라는 주문은 했네요.
책처럼 좋은 것. ㅋㅋ 절대 받고 싶지 않은 선물 1호 일껄요. 슬프다. ㅠ

섬사이 2011-05-06 07:05   좋아요 0 | URL
어제, 아이가 갖고 싶어하던 실바니안 이층집을 주문했어요.
아무래도 어린이날이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린이 입장에선 더 과열되어도 손해볼 게 없다는 아이들 쪽 반론에 부딪쳤습니다.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재미난 곳 데려가 주고 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정말 마음놓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제각각의 개성과 꿈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할 텐데 말이죠.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희망으로 2011-05-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애들은 골목에서 늦게까지 놀던 추억이 많지 않아 어른들에게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할 책이라 눈에 띈 책. 우리 가족이 살아온 동네 이야기는 그림이 궁금합니다. 김려령의 책이나 앤서니 브라운의 책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죠^^

섬사이 2011-05-11 08:23   좋아요 0 | URL
<동네 이야기>는 지리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것 같아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다섯 권의 책들이 모두 정말 군침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쓰읍~)
어떤 책을 받아볼 수 있을지....
제발 저 다섯 권의 책중에서 선정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답니다.

 
짜장면 불어요!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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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작가의 책을 뽑아 읽기 시작한다. <마음대로봇>이후 이 작가의 글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마음대로봇>을 읽으며 글 안에 주제의식이랄까, 아무튼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심어놓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은 오래전에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인데(애들은 읽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현경과 상우 -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     

잠깐 내 오래된 기억 속으로 발을 옮겼다. 내가 열 일곱이었던 봄날 저녁 그 애는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고등학생 모임이 끝나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은 후 성당길을 올라가던 길이었다. 그 애가 잔뜩 긴장하고 용기를 쥐어짜내서 아주 조심스럽게 한 행동이었다는 건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애와 나 사이에는 우정으로 포장된 분홍빛 감정이 흐르고 있었는데 우리에겐 순수에 대한 강박이랄까, 그런 게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애의 손은 내 어깨 위에서도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가늘게 떨고 있었지만 난 덜컥 겁이 났다. 난 손을 내려달라고 했고, 그 애는 무척 부끄러워했다. 열 일곱의 나에게 사랑은 낯설고 당황스러운 판타지였지만, 난 그 판타지가 깨어지지 않고 그대로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오직 순수의 판타지 세계 속에서.  

그 후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난 현경과 상우에게서 그 오래 전 나와 그 애를 본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공중산책 장면을 꿈꾸는 현경에게서, '종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이렌만 울렸다'는 그 느낌에서, '내가 모르는 가면을 뒤집어쓴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알던 가면을 벗어던진 것 같기도' 한 상우의 얼굴에서.  어른들처럼 사랑을 나누기엔 우리가 너무 어리다는 자각, 낯선 두려움 그래서 서툴고 어리숙했지만 찬란하게 반짝이던 맨처음 사랑이 현경과 상우를 통해서 떠오른다.  

'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상우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다. 그게 어른들이 말하는 우정인지, 애들이 말하는 사랑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우정이 뭔지 사랑이 뭔지 나도 잘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을 상우에게 전하고 싶었다. 상우를 향해 피어오르는 마음이니까, 그게 무엇이든 상우에게 전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았다. ...........저무는 오후의 바람에 우수수수 소리를 내며 나무들이 한꺼번에 머리채를 흔들었다. 초록이 사방으로 눈부시게 흩날렸다. 상우와 나에게서 피어오르는 마음을 머금은 따뜻한 초록이었다.'

 
그렇구나, 그 시절의 사랑은 분홍이 아니라 초록이었구나. 어쩌면 분홍의 사랑은 여러 개일 수도 있지만 초록의 사랑은 단 한 번뿐이겠구나.

김희주 - '3일간'

이 리뷰를 쓰고 있을 때 TV에서 교사의 학생 폭행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놀이동산으로 소풍을 갔던 모양인데 집합시간에 늦은 아이를 교사가 '예닐곱 대 때렸을 뿐'이란다. 짤막한 뉴스만 보고 앞뒤 정황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게 교사가 꼭 매를 들어야할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친구들과 소풍온 놀이공원에서 '늦었다'는 이유 하나로 맞은 예닐곱 대의 매는 아이의 기억에서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 그게 마음이 아프다.  맞은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일까, 문득 걱정스러웠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부유한 가정의 아이일까? 그렇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적어도 선생님이 학생의 가정형편에 따라 차별한다는 억울함과 분노는 느끼지 않을 테니까.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는 가정의 아이라도 그나마 괜찮겠다. 적어도 아이는 가정에서 또다른 힘을 얻거나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가장 좋지 않은 경우는 이 '3일간'이라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김희주 같은 상황의 아이일 때다.    

'엄마는 재혼해서 연락도 잘 안 되고, 아빠는 예전에 막노동을 하다가 다쳐서 다리를 저는 모양입니다. 그 뒤로 사람이 엉망이 되어서 노숙자처럼 산다는군요. 가끔 술 취해서 얼굴이나 삐죽 내밀었다 또 사라지고....." 선생님은 이런 환경의 희주를 '얼굴에 그늘이 그득'하고 '눈빛은 삐딱하고, 도대체 어린애다운 얼굴이 아닌' 아이로 볼 뿐이다. 부모의 불화로 슬퍼하는 윤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일년내내 윤서의 자리를 대신 맡아주었던 희주는 사라지고 문제아 희주만 있을 뿐이다. 윤서가 가출했을 때 모든 혐의는 매일 불화의 장면을 연출했던 윤서의 부모 대신 희주가 모두 뒤집어쓰고 담임에게 불려가 다리에 멍이 들도록 매를 맞는다.  

사람이란 힘들고 복잡한 일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피하기가 더 쉽고, 내 탓이란 걸 인정하는 일에는 더디고, 자기합리화에 능란하다. 게다가 상대가 힘없고 약한 존재라면 잔인함까지도 쉽게 드러내보인다. 희주의 담임과 가출한 윤서의 부모는 모든 잘못을 희주에게 돌리고 자신의 무죄에 안심한다. 세상으로부터 외로운 희주, 친구인 윤서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고, 영선은 사건에 휘말리는 고통을 너무 잘 알아서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걔는, 자기 부모가 이혼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인 줄 아는 모양이더라. 흥!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더는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애 집 부자잖아. 엄마 아빠 직업도 빵빵하고, 이혼했다고 설마 밥 굶겠니? 아니면 걔 엄마 아빠가 이혼햇다고 자식을 버리겠니? 뭐, 가출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공주님께서는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정말이지 몰라도 너무 모르시더군. 고생 좀 하면 알게 될 거다 싶었지. 세상이 어떤 건지, 진짜 괴로운 게 어떤 건지..... 하긴 내 주제에 공주님의 슬픔을 어떻게 이해하겠어? 남의 집 더부살이만 하지 않게 해 준다면, 단돈 몇천 원 때문에 학교에서 눈칫밥 먹을 일만 없게 해 준다면, 그까짓 이혼? 난 상관없어!"  

"그럼, 괜찮지. 난 박윤서가 아니잖아. 가출은 윤서가 하고, 매는 내가 맞는 거야. 애들도 다 나에 대해 수군거리지? 선생님은 물론이고 말이야. 난 날라리로 찍힌 채 중학교에 가게 되겠지. 애들 사이에서 별별 소문이 다 돌겠지, 그렇지? 이게 내가 맡은 역할이야. 인생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언제나 악역을 맡는 못생긴 배우인 셈이지. 난 잘 알아. 그리고 익숙해."  

희주의 이런 말들이 아프다. 영선이는 "삼 일간,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 모든 일을 지켜본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삼 년 동안 진실이라고 믿어 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렸다."고 말한다. 그래, 우리는 진실을 지키는 것보다 허물어 버리는 걸 더 편안해 한다. 우리는 진실 앞에서 윤서처럼 아무 것도 모른 척 철없이 편하게 살아가거나 아니면 영선처럼 알고도 나서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하기 쉬우니까. 그럴 때마다 깊은 상처로 몸을 떠는 희주같은 아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내게는 희주가 이 책에서 가장 아픈 아이였다. 

박기삼 - '짜장면 불어요!' 

무한긍정의 발랄하고 건강한 철가방 철학자 박기삼. 작가소개글에 '선생님은 세상 사람들 모두 제멋대로,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재미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나왔있는데 그렇다면 이현 작가의 이상형(?)은 박기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운칠기삼'의 세상이치로 따진다면 70%의 운은 물건너가고 기 30%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야말로 불운의 19살 청소년이건만 청승을 떨고 비관을 해도 시원치않을 마당에 '왕자병'에 걸린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는  

"왕자병? 몰라. 뭐, 왕자도 괜찮겠지. 난 철가방 드는 나도 좋고, 왕자인 나도 좋고.... 또 뭐 다른 거 하게 되면 그런 나도 좋아할 거야. 난 내가, 너어어---무 좋아." 

라고 말하는 아이. 박기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통해 세상의 잘못된 시선을 보게 된다. 박기삼이 짜장면 배달 하나에도 튼튼하고 확실한 자기 철학을 갖는 열혈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박기삼의 철학에 따르면 짜장면과 철가방은 평등과 평화 그 자체다. 돈이 필요해서 철가방을 들기로 한 신입 용태는 처음에는 그런 박기삼의 이야기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자 개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점점 박기삼의 철학에 빠져들게 된다.  

심술궂은 마법사의 못된 주문에 걸린 것처럼 모두들 공부,공부,공부에 매달려 있는 창백한 아이들에게 이런 박기삼의 철학은 어떨까. 

"공부를 못하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무수히 많아. 철가방을 들 수도 있고, 춤추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집 짓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장사를 할 수도 있고, 요리사가 될 수도 있고, 백수가 될 수도 있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공부를 잘하면 딱 세 가지밖에 안 되잖아. 거기다 이 세 가지 직업을 가지게 되면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고. 너 공부하는 거 좋아하냐?" 

"........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설마 너한테 딱 맞는 일이 없겠냐? 근데 뭘 하기 싫은 공부만 할 거라고 그렇게 바락바락 우기냐?" 

어쩌면 우리가 공부에만 목을 매는 것은 우리에게 '철학'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철학, 나에 대한 자부심, 그런 것들은 다 어디다 팔아먹고 맹목적으로 앞을 향해서만 달리라고, 그 앞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는 걸까.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미래의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박기삼은 나에게 왜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그렇게 없냐고 따져묻는 것 같았다. 전업주부, 세 아이의 엄마, 자기 철학을 가지고 자부심을 갖고 살만한데 왜 자꾸 자기연민의 수렁 속에 빠지는 거냐고.  박기삼의 꿈 '개성 있는 인간 되기'를 내 아이들과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도 꾸역꾸역 솟아난다.  불우한 환경, 점점 더 어두운 쪽으로 약자를 몰아가는 사회구조,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는 현실, 그런 것 따위에 허물어지지 않고 무한긍정의 에너지로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지켜가는 박기삼 같은 캐릭터를 책 속에서만이라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장동민 - '봄날에도 흰곰은 춥다'   

이쯤까지 읽고나니 작가가 날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에서 '봄날에도 흰곰은 춥다'까지 발랄과 우울의 기복이 롤로코스터 수준이다. 제목 속에 들어 있는 저 '춥다'라는 말은 정말 동민이에게 딱 어울렸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시리다'라는 말도 썩 어울릴 것이다. 가혹한 현실에 짓눌려 불안한 동심은 무겁고 처절하다.  

태수는 그게 다 돈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장래 희망이 부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써냈다가 선생님한테 되게 혼이 났다. 선생님은 그런 건 장래 희망이 아니라고 했다. 돈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라고 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어이가 없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문장들을 읽으며 선생님은 낭만의 세계에, 동민이와 태수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은 살면서 돈 때문에 고아원에 맡겨져야 했던 과거가 없을 테니까. 돈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기억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라거나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 몽실몽실한 낭만적인 꿈이야기는 동민이나 태수 같은 아이에겐 절대 통하지 않을 이야기다. 태수를 통해서 아빠를 통해서 동민이가 알아가는 세상은 차갑고 막막하게 높다란 담벼락 같은 것이 아닐까.  

집에 도착해서도 자꾸만 태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빠를 보면서 가끔 태수랑 비슷하다고 생각한 건 역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월급을 못 받아 본 사람들은 어딘가 좀 비슷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결국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 모습이 아빠나 태수랑 비슷해질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동민이보다 더 불쌍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동민이의 아빠다.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몸에 허연 파스를 잔뜩 붙인채 아구구구구구 앓는 소리를 내고 쉬는 날도 없이 일을 나가면서도 지하방에서 라면을 끓여먹어야 하는 모습 뿐이라면, 그러면서도 아들 앞에서는 힘센 척 강한 척해야 한다면 그 쓰리고 서러운 마음을 소주 말고 어디에서 위로받을까, 싶기도 하다.  

음주 운전을 한 날도 그랬던 거다. 한겨울에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야 하는 흰곰은 꽤 많이 추웠던 거다. 추워져서 소주를 마셨던 거다. 두 달 동안 일이 없어 놀면서도 그랬던 거다. 엄마도 식당에 가고, 나도 학교에 가고, 흰곰 혼자 추워져서 소주를 마셨던 거다. 우워, 우워, 울고 싶어 소주를 마셨던 거다. 

겨우 5학년 12살짜리 남자 아이가 울며 소주를 마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이해한다. 그리곤 자기도 우워,우워, 흰곰처럼 울고 싶단다. 이 봄이 춥단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죽여 우는 동민이가 눈앞에 그려져서 문득 이 봄날 저 밝은 햇살까지도 시리다.

이민규 - '지구는 잘 있지?'  

2045년이라는 해를 다시 만났다. <마음대로봇>의 시대적 배경이 2045년이었는데 같은 배경을 두고 작가는 이렇게 다른 글을 썼구나, 싶다. 미래를 배경으로 할 때 2045년은 작가에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걸까?  

지구는 망가질 때로 망가져 선택된 지구인들은 우주선 노아크 호를 타고 탈출한다. 하지만 그 탈출에는 짙은 음모의 냄새가 난다. 몇몇 탈출을 주도한 사람들 외에 우주선 노아크 호에 탑승한 대다수 사람들은 기억 제어 기술에 의해 기억을 통제당한다. 그래서 민규의 경우 항상 오늘이 2045년 11월 25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친구 동석이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의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혼란에 겪게 되고 결국엔 모든 사실을 알아버리고 만다.  

지구 탈출에 합류하지 못하고 남은 가족들과 친구들 걱정에 마음이 무겁고 슬프지만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쓴다.  

샴 아저씨는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했어. 모든 고통은 사람에게서 나오지만, 고통을 이겨 내는 힘 역시 사람에게서 나오는 거래. 그래도 무섭기만 해.

그러나 우리는 너무 우리를 믿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버렸는데, 그 안에 남아 있는 희망을 하나 부여잡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모양새는 어쩐지 불편하다. 그래도 희망 하나라도 끈질기게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게 맞지만, 그렇지만 우리는 남아있는 그 희망 하나도 너무 소홀히 하는 때가 많으니까. 너무 쉽게 이야기하고, 너무 쉽게 기만하고, 너무 쉽게 바꾸고, 너무 쉽게 믿고, 너무 쉽게 과장해서 떠받들다가 너무 쉽게 버리고 너무 쉽게 이루려하니까.  

작가는 우주선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나누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사람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꿈이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걸 부각시킨다. 김소위 아저씨와 율리안네의 사랑이라든가 샴 아저씨에게 요가를 배우는 타이나, 그런 타이나를 좋아하는 민규, 그런 민규는 중국인 과학자 차오 아줌마에게서 천체관측을 배우고, 또 차오아줌마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실행에 옮기는 것 같은 모습들 말이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하루도, 다 소중한 거야. 그 무엇을 위해서라도 한 사람이라도, 단 하루라도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거지.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과 전 인류를 희생시키는 건 똑같은 고통인지도 몰라. 

원전문제며 이상기후며 워낙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시절이라서 그런지 어쩌면 미래엔 이 이야기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비참한 미래를 막기 위한 경고로 들리기도 한다.  이런 슬픈 희망 이야기를 우리와 우리 후대가 써내려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싶다는 욕심을 채우려다 보니 길고 지루한 리뷰가 되어버렸다.  현경과 상우, 김희주, 박기삼, 장동민과 태수, 이민규, 그 모두를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을 이 리뷰로라도 대신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 이제 <장수만세!>를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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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0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이현을 못 읽었는데
읽어봐야겠어요

섬사이 2011-05-03 07:26   좋아요 0 | URL
<마음대로봇>과 <짜장면 불어요!>를 읽고 <장수 만세!>를 거의 다 읽어가는데요, 참 괜찮은 작가인 것 같아요.

순오기 2011-05-0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정어린 리뷰를 쓰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 찬찬히 읽은 저도 수고했고요.^^
박기삼의 긍정 철학이 참 부러웠는데~ 우리막내가 초등때 쓴 리뷰만 올라있어요.
짜장면 불어요, 로봇의 별1.2.3은 읽었는데, 장수만세와 마음대로봇은 못 읽었어요.
다음에 도서관 가면 장수만세 빌려올게요.

섬사이 2011-05-03 18:41   좋아요 0 | URL
누가 읽어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순오기 님이 읽어주셨네요. ^^
너무 수고하신 것 같아 죄송스러워요.
<장수 만세!>는 다 읽었는데 역시 좋았어요.
<영두의 우연한 현실>, <오늘의 날씨는>, <우리들의 스캔들>을 또 빌려왔어요. 그 책들을 다 읽은 다음에 <로봇의 별>을 읽으려해요.
5월은 이현 작가에게 푹 빠져서 보내게 될 것 같아요. ^^

순오기 2011-05-04 23:15   좋아요 0 | URL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읽고 리뷰도 썼는데, 우리들의 스캔들은 오래전에 사서아이들만 읽고 나는 안 읽었네요.ㅜㅜ

섬사이 2011-05-06 07:06   좋아요 0 | URL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제목부터가 참 특이한 것 같아요.
지금은 잠시 <불량한 자전거 여행>이라는 김남중 작가의 책을 잡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 책에 마구 꽂히고 있는 중입니다. ^^

순오기 2011-05-06 21:50   좋아요 0 | URL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읽었어요, 작년에 김남중 작가 초청 강연 했거든요.
다음주에도 우리지역 아동센터에서 김남중 작가 초청한다고 문자 들어왔네요.^^

섬사이 2011-05-07 10:57   좋아요 0 | URL
저도 다 읽고 지금 막 리뷰 올렸어요.
김남중 작가는 여전히 자전거를 탈까요?
궁금하네요. ^^

순오기 2011-06-10 19:05   좋아요 0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해요~~
김남중 작가는 여전히 자전거 탑니다, 그날 강연에도 자전거 타고 왔어요.^^

섬사이 2011-06-13 07:2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하늘바람 2011-07-0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가 이달의 리뷰가 되었네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섬사이 2011-07-07 08: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꾸벅. ^^
 
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 길벗어린이 저학년 책방 9
김진경 지음, 윤봉선 그림 / 길벗어린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무엇이든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간다는 건 기뻐하고 축하할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악어가죽 가방이 어찌어찌해서 밀림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백화점 진열대에 놓인 두 개의 악어가죽 가방. 밤이 되어 사람들이 다 가고나면 큰 악어가죽 가방은 어미 악어가, 작은 악어가죽 가방은 새끼 악어가 된다.  

"엄마, 우린 악언데 왜 가방이 되어 있어야 해?"

라는 새끼 악어의 질문에 어미 악어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우쭐하는 버릇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조상 할아버지 악어에 대한 이야기가 액자소설처럼 그림책 속에 자리잡는다.  

뽐내는 걸 좋아하던 조상님 악어는 어느날 임금님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자에겐 큰 상을 내리겠다.'고 하자 임금님 앞에 나아가 꼬리로 자기 배를 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임금니의 악사가 되어 궁전에 살게 된다. 그런데 그 이후 악어의 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앞다투어 악어를 잡아서 북을 만들고, 가방이며 허리띠, 지갑들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마치고 어미 악어와 새끼 악어가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우쭐대기 좋아했던 조상님 악어가 악어모양 네온사인 빛으로 나타나 말을 한다.

"모두 내 탓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욕심이 많은 동물인 줄 몰랐어. 그걸 알았다면 절대 임금님의 궁전에 가지 않았을 거야."  

그러고는 악어가죽 가방들에게 발을 줄테니 밀림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발을 얻은 악어가죽 가방은 백화점 진열대 유리를 깨고 나와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 밀림을 향해 탈출한다.

이 그림책에서는 악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동물이 어디 악어 뿐일까. 얼마 전에 읽은 <우리 동네 미자씨>에서는 여우목도리가 나왔고, 얼마 전 TV에서는 예쁜 모피를 위해서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밍크가 나왔으며, 각종 보양식 메뉴에 올라 밀렵당하는 동물들과 쓸개에 연결된 호스로 담즙을 뽑아줘야 하는 곰들, 각종 서커스와 동물묘기를 위해 학대받는 코끼리와 원숭이 같은 동물들, 인간의 무자비한 개발로 서식지를 잃어가는 수많은 동물들, 인간이 벌이는 각종 실험에 희생당하는 동물들과 녹아내리는 빙산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북극의 곰들... 

이 그림책에서 조상님 악어가 이런 말을 한다.

"그래, 나를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와 봤다. 너희들의 한숨이 나를 부른 셈이지."

누군가의 원망과 한숨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것. 아마 이 조상님 악어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을 게다. 악어든 곰이든 밍크든 벌레든 나무든 풀이든 산이든 강이든 아니면 다른 인간 누구이거나 나 자신을 향해서도 우리는 원망과 한숨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라고, 그리고 원망과 한숨이 있는 그 곳에 가봐야한다고.  

새끼 악어가 '우린 악언데 왜 가방이 되어있어야 해?'라고 물은 것처럼 많은 것들이 물어올지 모른다. 난 밍큰데 왜 코트가 되어 있어야 해? 난 여운데 왜 목도리가 되어 있어야 해? 난 코끼린데 왜 물구나무를 서야 해? 난 강물인데 왜 흐르지 못하고 멈춰야 해? 난 산인데 왜 높이 솟지 못하고 깎여야 해? 난 일을 했는데 왜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해야 해? 난 왜 하루종일 일하고도 배가 고파야 해? 기타등등 기타등등...   우린 그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좀 답답해진다.

여러분 중에 혹시 길거리에 놓여 있는 악어가죽 가방 두 개를 본 사람 있나요?  
그건 가방이 아니라 어미 악어와 새끼 악어였을 거예요.
여러분 중에 혹시 강물 위에 둥둥 떠가는 악어가죽 가방을 본 사람 있나요?
그것도 가방이 아니라 어미 악어와 새끼 악어였을 거예요.  
여러분 중에 혹시 밀림에서 고급 악어가죽 가방 두 개를 본 사람 있나요?
그것도 가방이 아니라 어미 악어와 새끼 악어였을 거예요.  

악어가죽 가방과 악어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어딘가에 있는 악어가죽 가방, 밍크 코트, 여우 목도리 등등은 그냥 가방, 코트, 목도리가 아니라 악어이고, 밍크이고 여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든 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동물을 보호합시다'라는 구호를 드러내지 않고 동물들이 정말 있어야 할 곳과 사람들의 사치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 안에 들어있는 잔인한 폭력과 동물들의 슬픔을 잘 녹아냈다는 점 말이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악어들이 악어가죽 가방이 된 일차적인 책임을 우쭐대기 좋아하는 조상 악어에게 두었다는 점은 어쩐지 좀 찝찝하고, 조상악어가 네온사인 빛을 통해 등장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잘 이해될까 하는 점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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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0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에 악어 가방이 엄마 악어와 새끼 악어로 변하는 부분부터
움찔했어요. 살면서 무시하고픈 진실이잖아요.
가끔요, 세상과 조화란 어느 선까지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저 어렵기만 해요.

섬사이 2011-05-03 07:24   좋아요 0 | URL
세상과의 조화라.. 너무 어려운 문제네요.
다만 인간인 우리가 너무 많이 가진 건 확실한 것 같아요.
 
마음대로봇 2 징검다리 동화 10
이현 지음, 김숙경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4월이 시작되었을 때에 길상사에 다녀왔습니다. 나무들은 아직 새 봄옷을 꺼내입지 않았지만 개나리만은 노랗게 담벼락을 타고 흘러내려 봄기운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석가탄신일을 준비하기에는 좀 이르다 싶었는데 길상사 경내 나무에는 화사한 빛깔의 연등이 색색으로 걸려 있었습니다.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선잠단을 끼고 돌아서 길상사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에는 고급주택들이 참 많습니다. 보통으로 살아가는 제가 보기에는 '저택'이라고 부를만한 집들이지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런 저택들로 둘러싸인 곳에 길상사가 있고, 그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말씀하셨다는 생각을 하면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오래 전 한 CF에서 시작된 '부자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처럼 번졌었지요. 그 때 법정스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돈에 대한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버린 시대, 그 욕망을 적극적인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구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능력과 지위가 추앙받는 시대, 그 능력이 가져온 부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더욱 그들의 재력이 견고해지는 시대, 그래서 더욱 저처럼 보통이거나, 아니면 보통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보통보다 더 못할 수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 깊어지는 시대를 살면서 적어도 단순히 '욕망의 실현'이라는 목적 대상인 돈이 아니라 그냥 '돈' 그 자체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살아가는 이상 '아무리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겠지만요.   

아이들도 어른들만큼이나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친구들의 옷이나 장난감 등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걸 보면 어쩔 땐 부자 부모가 되어주지 못한 게 좀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대체 인간들은 왜 그렇게 갖고 싶은 게 많은 거죠?"

로봇 도도가 이 책에서 하는 질문입니다. 고백하자면 길상사 가는 길에 그 으리으리한 저택들을 보며 '저런 집들은 얼마나 할까?', '저런 집에서 살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그것도 엄청많이 했습니다. 길상사에서 돌아오는 길 어느 부동산 가게 앞유리에 붙은 '80억'-그게 그 동네 어떤 집 가격인지는 확인해보지도 않고- 이라는 숫자를 보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었습니다만 생각하기를 그만둔 순간 불쾌하고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혔더랬습니다. 아무리 기를 쓴다고 해도 다다를 수 없는 까마득한 저 너머에 있는 저택들이었죠. 그렇다해도 저는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런 집을 가지려면 성실히 출근하고 알뜰하게 저축하는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말씀해 주세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저의 돈벌이 프로그램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냥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것 아닌가요? 돈을 많이 벌면 되는 것이지, 다른 뭔가를 더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파산 직전의 세계 최초의 맞춤형 로봇 대여점 '마음대로봇'이 세 번째 손님인 금종수라는 남자 아이의 주문을 받아서 만든 '돈 벌어다 주는 로봇, 마니왕'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다가 발각되자 혼란스러워 합니다. 작가는 마니왕의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더 생각해야 하는 건지는 독자들이 스스로 답할 문제라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돈을 버는 과정만큼이나 돈을 벌고 난 다음도 중요하다면, 아이들은 돈을 가지고 뭘하고 싶어할까요. 그리고 나는.   

사실 저는 아이들과 자주 투닥거립니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한 녀석 한 녀석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고 해도 늘 모자라는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집은 화목한 편이라고 말할 때마다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아무리 화목하다고 해도 투닥거리는 일없이 지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아이엄마가 되고나서 조금은 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도 그 때 참 서운했겠구나.'하고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리고 '너희들도 언젠가는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때가 올게다.'하고 생각하면서 이담에 아이들이 저를 이해해 줄 날을 상상해보기도 하죠.  

이 책의 배경인 2045년엔 그런 기다림이 필요없습니다. 천재숙 박사와 딸 하라 사이에서도 어느 날 티격태격 다툼이 일어납니다. 강영재 박사가 그 해결책으로 '모녀 체험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고 두 모녀는 그 게임 속으로 들어갑니다.  

"로봇이든 인간이든, 누군가를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니까요. 2043년 '한국세상리서치'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98%가 자식의 모습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직접 키웠는데도,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 주지 않았다는 거죠. 자식의 경우에는 더해요. 99.99999999999%의 사람들이 부모에게 불만을 갖고 있죠. 그러니까, 누군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겠다는 욕심 자체가 문제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들과 투닥거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모녀 체험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 들어간 천재숙 박사와 하라가 게임을 끝내려면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말을 서로에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세상의 부모들이 가장 하기 힘든 말 중의 하나가 '그럴 수도 있지, 뭐'가 아닐까요. 내 아이가 좀 더 '잘' 자라주기를 희망하는 발전지향적인 부모들의 입에서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말이 나오기란.    

 "좋아요. 내가 이것 하나는 인정하죠. 인간은 로봇보다 훨씬 한심한 존재지만, 마음 하나는 꽤 대단한 것 같네요. 마음이란 건 정말 잘 전해지나 봐요. 뇌파 감응 장치도 없이 말이에요."

천재숙 박사와 하라가 무사히 시뮬레이션 게임을 끝내고, 1권에서 등장했던 '남인척'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키리바시 섬까지 가서 이바른의 친구 오말성을 만나고 돌아오자 도도가 인간의 마음에 대해 감탄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정말 그렇게 잘 전해지는 걸까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오해들과 단절들을 본다면 도도는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좀 거북해집니다.  그래도 마음이 사람이 가진 몇 가지 장점 중에 하나라는 건 인정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잘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겠지요. 마음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작가의 <로봇의 별>이 궁금해집니다. 로봇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같지만 풀어가는 이야기의 분위기와 맛은 참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이 <마음대로봇>의 이야기도 계속 이어진다고 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면면을 로봇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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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7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자되세요~ 라는 광고 저도 기억나요.
그때는 정말 공감했어요. 돈이 있으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거 같았죠.
무엇인가 가지고 싶다는 것은, 그것만 이루어지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비슷한거 같아요. 사실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죠.

요즘 코알라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정말 저랑 엄청나게 투닥대고 있어요. 참아주려다가도 너무 징징대면 폭발한다니까요.
하지만 엄마에게 징징대지 않으면, 세상 어디에 징징댈까 시퍼서. ㅠㅠ

섬사이 2011-04-30 08:22   좋아요 0 | URL
'엄마에게 징징대지 않으면~'문장에 위로를 받았어요. ^^

감은빛 2011-04-2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동네가 정말 엄청난 부자 동네죠.
외교관들의 공관도 제법 많구요.
언젠가 제 낡은 차를 끌고 가다가 길을 잘못들어서,
그 동네를 헤맨적이 있는데,
집집마다 귀에 리시버를 꽂은 덩치 큰 경비원이 나와서,
저건 또 뭐야? 하는 표정으로 째려보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하필 법정스닙께서 입적하신 날에도
길을 잘못들어서 그 동네를 헤매었다지요. 에휴!

섬사이 2011-04-30 08:25   좋아요 0 | URL
누가 그러더라구요.
청담동 아줌마 열 명이 성북동 사모님 하나를 못 이긴다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양새가 참 여러가지라는 것,
세상이 별로 공평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하는 동네더라구요. ^^

salt23 2011-04-2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의 문장을 이렇게 읽으니 또 다른 맛이 나네요.
체험이 녹아든 재미난 서평 잘 읽었습니다.^^

섬사이 2011-04-30 08:2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