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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으로 돌아간 악어가죽 가방 ㅣ 길벗어린이 저학년 책방 9
김진경 지음, 윤봉선 그림 / 길벗어린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무엇이든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간다는 건 기뻐하고 축하할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악어가죽 가방이 어찌어찌해서 밀림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백화점 진열대에 놓인 두 개의 악어가죽 가방. 밤이 되어 사람들이 다 가고나면 큰 악어가죽 가방은 어미 악어가, 작은 악어가죽 가방은 새끼 악어가 된다.
"엄마, 우린 악언데 왜 가방이 되어 있어야 해?"
라는 새끼 악어의 질문에 어미 악어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우쭐하는 버릇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조상 할아버지 악어에 대한 이야기가 액자소설처럼 그림책 속에 자리잡는다.
뽐내는 걸 좋아하던 조상님 악어는 어느날 임금님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자에겐 큰 상을 내리겠다.'고 하자 임금님 앞에 나아가 꼬리로 자기 배를 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임금니의 악사가 되어 궁전에 살게 된다. 그런데 그 이후 악어의 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앞다투어 악어를 잡아서 북을 만들고, 가방이며 허리띠, 지갑들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마치고 어미 악어와 새끼 악어가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우쭐대기 좋아했던 조상님 악어가 악어모양 네온사인 빛으로 나타나 말을 한다.
"모두 내 탓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욕심이 많은 동물인 줄 몰랐어. 그걸 알았다면 절대 임금님의 궁전에 가지 않았을 거야."
그러고는 악어가죽 가방들에게 발을 줄테니 밀림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발을 얻은 악어가죽 가방은 백화점 진열대 유리를 깨고 나와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 밀림을 향해 탈출한다.
이 그림책에서는 악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동물이 어디 악어 뿐일까. 얼마 전에 읽은 <우리 동네 미자씨>에서는 여우목도리가 나왔고, 얼마 전 TV에서는 예쁜 모피를 위해서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밍크가 나왔으며, 각종 보양식 메뉴에 올라 밀렵당하는 동물들과 쓸개에 연결된 호스로 담즙을 뽑아줘야 하는 곰들, 각종 서커스와 동물묘기를 위해 학대받는 코끼리와 원숭이 같은 동물들, 인간의 무자비한 개발로 서식지를 잃어가는 수많은 동물들, 인간이 벌이는 각종 실험에 희생당하는 동물들과 녹아내리는 빙산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는 북극의 곰들...
이 그림책에서 조상님 악어가 이런 말을 한다.
"그래, 나를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와 봤다. 너희들의 한숨이 나를 부른 셈이지."
누군가의 원망과 한숨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아는 것. 아마 이 조상님 악어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을 게다. 악어든 곰이든 밍크든 벌레든 나무든 풀이든 산이든 강이든 아니면 다른 인간 누구이거나 나 자신을 향해서도 우리는 원망과 한숨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거라고, 그리고 원망과 한숨이 있는 그 곳에 가봐야한다고.
새끼 악어가 '우린 악언데 왜 가방이 되어있어야 해?'라고 물은 것처럼 많은 것들이 물어올지 모른다. 난 밍큰데 왜 코트가 되어 있어야 해? 난 여운데 왜 목도리가 되어 있어야 해? 난 코끼린데 왜 물구나무를 서야 해? 난 강물인데 왜 흐르지 못하고 멈춰야 해? 난 산인데 왜 높이 솟지 못하고 깎여야 해? 난 일을 했는데 왜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해야 해? 난 왜 하루종일 일하고도 배가 고파야 해? 기타등등 기타등등... 우린 그 물음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좀 답답해진다.
여러분 중에 혹시 길거리에 놓여 있는 악어가죽 가방 두 개를 본 사람 있나요?
그건 가방이 아니라 어미 악어와 새끼 악어였을 거예요.
여러분 중에 혹시 강물 위에 둥둥 떠가는 악어가죽 가방을 본 사람 있나요?
그것도 가방이 아니라 어미 악어와 새끼 악어였을 거예요.
여러분 중에 혹시 밀림에서 고급 악어가죽 가방 두 개를 본 사람 있나요?
그것도 가방이 아니라 어미 악어와 새끼 악어였을 거예요.
악어가죽 가방과 악어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다. 어딘가에 있는 악어가죽 가방, 밍크 코트, 여우 목도리 등등은 그냥 가방, 코트, 목도리가 아니라 악어이고, 밍크이고 여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든 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동물을 보호합시다'라는 구호를 드러내지 않고 동물들이 정말 있어야 할 곳과 사람들의 사치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 안에 들어있는 잔인한 폭력과 동물들의 슬픔을 잘 녹아냈다는 점 말이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악어들이 악어가죽 가방이 된 일차적인 책임을 우쭐대기 좋아하는 조상 악어에게 두었다는 점은 어쩐지 좀 찝찝하고, 조상악어가 네온사인 빛을 통해 등장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잘 이해될까 하는 점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