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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봇 2 ㅣ 징검다리 동화 10
이현 지음, 김숙경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4월이 시작되었을 때에 길상사에 다녀왔습니다. 나무들은 아직 새 봄옷을 꺼내입지 않았지만 개나리만은 노랗게 담벼락을 타고 흘러내려 봄기운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석가탄신일을 준비하기에는 좀 이르다 싶었는데 길상사 경내 나무에는 화사한 빛깔의 연등이 색색으로 걸려 있었습니다.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선잠단을 끼고 돌아서 길상사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에는 고급주택들이 참 많습니다. 보통으로 살아가는 제가 보기에는 '저택'이라고 부를만한 집들이지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이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입니다. 그런 저택들로 둘러싸인 곳에 길상사가 있고, 그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말씀하셨다는 생각을 하면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오래 전 한 CF에서 시작된 '부자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처럼 번졌었지요. 그 때 법정스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돈에 대한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버린 시대, 그 욕망을 적극적인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구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능력과 지위가 추앙받는 시대, 그 능력이 가져온 부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더욱 그들의 재력이 견고해지는 시대, 그래서 더욱 저처럼 보통이거나, 아니면 보통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보통보다 더 못할 수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 깊어지는 시대를 살면서 적어도 단순히 '욕망의 실현'이라는 목적 대상인 돈이 아니라 그냥 '돈' 그 자체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살아가는 이상 '아무리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겠지만요.
아이들도 어른들만큼이나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친구들의 옷이나 장난감 등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걸 보면 어쩔 땐 부자 부모가 되어주지 못한 게 좀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대체 인간들은 왜 그렇게 갖고 싶은 게 많은 거죠?"
로봇 도도가 이 책에서 하는 질문입니다. 고백하자면 길상사 가는 길에 그 으리으리한 저택들을 보며 '저런 집들은 얼마나 할까?', '저런 집에서 살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그것도 엄청많이 했습니다. 길상사에서 돌아오는 길 어느 부동산 가게 앞유리에 붙은 '80억'-그게 그 동네 어떤 집 가격인지는 확인해보지도 않고- 이라는 숫자를 보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었습니다만 생각하기를 그만둔 순간 불쾌하고 찝찝한 기분에 사로잡혔더랬습니다. 아무리 기를 쓴다고 해도 다다를 수 없는 까마득한 저 너머에 있는 저택들이었죠. 그렇다해도 저는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런 집을 가지려면 성실히 출근하고 알뜰하게 저축하는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말씀해 주세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저의 돈벌이 프로그램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냥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것 아닌가요? 돈을 많이 벌면 되는 것이지, 다른 뭔가를 더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파산 직전의 세계 최초의 맞춤형 로봇 대여점 '마음대로봇'이 세 번째 손님인 금종수라는 남자 아이의 주문을 받아서 만든 '돈 벌어다 주는 로봇, 마니왕'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다가 발각되자 혼란스러워 합니다. 작가는 마니왕의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더 생각해야 하는 건지는 독자들이 스스로 답할 문제라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돈을 버는 과정만큼이나 돈을 벌고 난 다음도 중요하다면, 아이들은 돈을 가지고 뭘하고 싶어할까요. 그리고 나는.
사실 저는 아이들과 자주 투닥거립니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한 녀석 한 녀석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고 해도 늘 모자라는 구석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집은 화목한 편이라고 말할 때마다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아무리 화목하다고 해도 투닥거리는 일없이 지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아이엄마가 되고나서 조금은 제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도 그 때 참 서운했겠구나.'하고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리고 '너희들도 언젠가는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때가 올게다.'하고 생각하면서 이담에 아이들이 저를 이해해 줄 날을 상상해보기도 하죠.
이 책의 배경인 2045년엔 그런 기다림이 필요없습니다. 천재숙 박사와 딸 하라 사이에서도 어느 날 티격태격 다툼이 일어납니다. 강영재 박사가 그 해결책으로 '모녀 체험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고 두 모녀는 그 게임 속으로 들어갑니다.
"로봇이든 인간이든, 누군가를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니까요. 2043년 '한국세상리서치'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98%가 자식의 모습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직접 키웠는데도,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 주지 않았다는 거죠. 자식의 경우에는 더해요. 99.99999999999%의 사람들이 부모에게 불만을 갖고 있죠. 그러니까, 누군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겠다는 욕심 자체가 문제라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들과 투닥거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모녀 체험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 들어간 천재숙 박사와 하라가 게임을 끝내려면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말을 서로에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세상의 부모들이 가장 하기 힘든 말 중의 하나가 '그럴 수도 있지, 뭐'가 아닐까요. 내 아이가 좀 더 '잘' 자라주기를 희망하는 발전지향적인 부모들의 입에서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말이 나오기란.
"좋아요. 내가 이것 하나는 인정하죠. 인간은 로봇보다 훨씬 한심한 존재지만, 마음 하나는 꽤 대단한 것 같네요. 마음이란 건 정말 잘 전해지나 봐요. 뇌파 감응 장치도 없이 말이에요."
천재숙 박사와 하라가 무사히 시뮬레이션 게임을 끝내고, 1권에서 등장했던 '남인척'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키리바시 섬까지 가서 이바른의 친구 오말성을 만나고 돌아오자 도도가 인간의 마음에 대해 감탄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정말 그렇게 잘 전해지는 걸까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오해들과 단절들을 본다면 도도는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좀 거북해집니다. 그래도 마음이 사람이 가진 몇 가지 장점 중에 하나라는 건 인정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잘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겠지요. 마음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작가의 <로봇의 별>이 궁금해집니다. 로봇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같지만 풀어가는 이야기의 분위기와 맛은 참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이 <마음대로봇>의 이야기도 계속 이어진다고 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면면을 로봇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