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절판


엄마가 되면서 나는 '생명에 대한 경외'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생명이 내 품에 와 안겼을까! 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걸 보며 놀라고 기뻐했던 그 몇 해가 내 삶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이었다. 키우려고 들면 당연히 힘들다. 그냥 같이 살아가면 좋겠다. -20쪽

살림은 다름 사람을 배려하고 돌보는 일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돌봄을 배운다는 건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중략) 고단한 부모 노릇을 떠안기 전에 한번 돌아볼 일이다. 우리가 자랄 때 정말 소중했던 건 무엇인지, 부모에게 무얼 배웠고 무얼 바랐는지, 따뜻하게 먹이고 재우며 하루하루 자라는 걸 보면서 행복해하는 것. 그래서 자기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게 해주고 힘들 때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것, 그게 부모가 있어야 할 자리다. 그렇게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얻고 나면 아이들은 뭐든 제 힘으로 배우고 저절로 자란다. -21~22쪽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부모들은 사춘기나 반항기라는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진짜 사춘기마저 잃어버린 채 자란다. 어른이 된 뒤에도 아슴아슴 마음 설레게 만드는 그 낱말을 미처 알 틈도 없이 바쁘게 키워진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 '웬수'가 되면서 말이다.
비무장지대 같은 곳이 생기길 간절히 바랐다.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의무감도 놓아버리고 키워지느라 마음을 앓는 아이들 고단함도 놓아버릴 곳. 있는 그래도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살아갈 곳이. -29쪽

그저 아이들이 아이들다운 모습으로 어울릴 곳을 바랐다. 경쟁과 평가 대신 어울림과 나눔이 있고 선생님 대신 이웃과 친구가 있는 곳이라면 아이들이 격려 받고 자극 받으면서 맘껏 호기심을 키우고 잠재력을 펼칠 거라 믿었다.
(중략)
그렇다면 바로 그런 자극이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어른들 몫이다. 아이들 스스로 환경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니까. 아이들이 제힘으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걸 찾아가려면 책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건 오롯이 '스스로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속에서 온 세상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30~31쪽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더불어 사는 건 도덕 교과서를 외워서 배우는 게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따라 배우고 어울리는 기쁨을 몸으로 누리면서 세상에 대한 믿음도 얻는다. 몇해전 '늦게 피어도 아름다운 꽃'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국제유아교육심포지엄에서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는 '교육은 뒤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이들은 눈 앞에 놓고 가르치는 것 배우는 게 아니라 뒤에서 따라하며 배운다는 말이다. -33쪽

책과 친해지면 아이들은 모든 걸 배울 수 있는 힘을 갖는다. 하지만 책 읽기가 정말 빛을 내려면 책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책과 함께 만남을, 일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조개껍데기 속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듯, 아이들 책읽기는 사람들과 어울림 속에서 빛나게 영글었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희망을 찾은 건 바로 그 때문이다. -50쪽

"교육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교사였던가!"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소설처럼>(문학과 지성사)에서 한말이다. 학교 선생님이기도 한 지은이는 '책 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를 선언한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책이나 읽을 권리, 마음대로 상상하며 빠져들 권리(<소설처럼>에서는 '보봐리즘을 누릴 권리'라고 옮겼다),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을 바란다. 도대체 어느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학교를 마치면서 숙제나 시험이 사라질 때 아이들은 책도 함께 버릴 것이다. 그러니 독서이력이니 인증이니 하는 방식으로 들이미는 독서교육은 결국 아이들에게서 책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다. -59쪽

제발 책이 유효기간 몇 년짜리 입시도구가 되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책이 아이들 삶에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면 좋겠다. 사람과 어울리는 가운데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쉼을 누리고 상상력을 펼칠 실마리를 얻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을 좋아할 권리를 누리게 되면 그 나머지, 어른들이 바라는 지식은 벌써 아이들 손 안에 다 들어 있는 셈이니까. -60쪽

아이 적성을 조기에 찾아내 단계를 맞춰 가르치려고 애쓰기에 앞서 어른들이 아이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배워야 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눈 깜짝할 새 어른들을 따라 배우지만 어른들은 참 더디다. 늘 가까이에서 아이들 세계를 들여다보고 바라보며 섣불리 끼어들지 않으려는 노력도 들여야 한다. -106쪽

물고기를 잡아줄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말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꼭 모든 사람이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워야 하나? 먹고살 걱정은 없게 해주려면 뭐든 할 만한 걸 찾아 차근차근 가르쳐야 하지 않느냐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에만 매달려 아이가 얼마나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끼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낚시를 드리운 물 속에 무슨 과녁이라도 있는 듯 쏘아보고만 있는 건 아닐까.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 새벽바람에 풀잎 스치는 소리를 듣다가 저절로 노래가 나오거나 시를 떠올릴 수도 있고,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마음을 빼앗겨 헤엄치는 법이나 다이빙을 배우고 싶으질 수도 있는데. 물 위로 어둠이 내리면 까만 밤하늘에 박힌 별을 보면서 그리움도 배우고 별빛 같은 꿈 하나씩 품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107쪽

돌보는 어른이 편안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편안해진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답답해하는 사람에게 엄마가 좀 편안해지면 좋겠다고 말을 건네보지만 돌아오는 건 다시 하소연이다. 어떻게 편안해질 수 있겠느냐고. 아마 그 답은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 어른 몫을 해야 한다는 지나친 부담을 벗어버리는 것. 둘째, 아이가 어른스럽길 바라는 마음을 접는 것.
칼릴 지브란이 쓴 <예언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는 아이와 같이 되려고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 애쓰지 말라." 그가 말한 것처럼, 아이들은 우리를 거쳐 왔지만 우리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만 우리 소유는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바로 그 때부터 아이들을 진짜로 존중하고 또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마음을 있는 그대로 살피면서 서로 투정도 부리고 토닥거리며 지내는 것. 그게 바로 아이도 어른도 행복해지는, 쉽지만 또 그대로 하기는 쉽지 않은 비법이다. -123쪽

아이들이 금세 꺾여버릴 것처럼 흔들려서 아슬아슬 애간장을 녹인다. 흔들리지도 않는 것 같아서, 바람이 불고 비가 퍼부어도 꿈쩍 않는 나무토막 같아서 먹먹할 때가 있었는데. 그래, 이러다 꽃을 피우겠지. 벌써부터 제 안에 품고 있던 씨앗이 꽃잎이 되고 꽃받침이 되어 향기를 뿜으며 망울을 터뜨릴 날이 있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꽃이 피면 놀라고 기뻐해주는 일. 그런 비빌 언덕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152쪽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다 다르다는 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우리는 등급을 나누고 편을 가르는 것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아이들 스스로 느끼게 되길 바랐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건 다른 사람만 배려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160쪽

그러고 보면 아이들만큼 너그러울 수가 없다. 아이를 위한다며 폭력을 휘두르는데도 '다 너를 위한 일'이라는 한마디에 속아주고 참아준다. 아이들은 갓 태어나면서부터 어른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돌봐줄 어른에게 어떻게 해야 칭찬 받고 사랑 받는지 알아가고 그래도 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속아 넘어간다. 우리 애는 달라. 엄마 아빠 말을 이렇게 잘 듣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 걸, 뭐.
하지만 이런 시간들은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 조금씩 생각이 자라고 힘이 커지면서 아이들은 그게 스스로 하고 싶은 일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지도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다. 엄마가 세운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사고가 아니다. 아이가 남보다 유난스레 사춘기를 앓아서도, 잠깐 나쁜 꿈처럼 어딘가 삐걱대다가 곧 제자리를 찾게 되는 일도 아니다. -179쪽

똑같이 실패를 해도 눈에 띄게 자신감을 잃는 아이와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는 아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실패가 그저 배우고 자라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실패를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니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를 곧 자기가 무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여기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모험을 할 수 없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186쪽

아이들을 생기 넘치게 만드는 건 속이 빈 칭찬이 아니다. 너는 잘하는 아이일 수밖에 없다고 주문을 외는 것보다는 그 일이 아이에게 어떤 뜻을 갖는지 알고 싶어 하는 진짜 관심이 필요하다. 스스로 하고 싶은 걸 찾도록 방해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187쪽

언제까지 부모만 희생해야 하는 거냐고, 억울하다고 자꾸 고개를 드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찬찬히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진짜 무얼 하고 싶은지 알아보지도 않고 어른들이 보기에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 챙겨주려고 한 건 아닌지. 듣고 싶은 답을 미리 정해놓고 말을 걸었던 건 아닌지, 받아준다고 하면서도 어른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서지 않겠다고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건 받아주는 게 아니다. -200쪽

아이들은 이다음에 눠가 되기 위한 훈련이라는 핑계로 함부로 다루어져도 괜찮은 존재가 아니다. 목숨을 지니고 태어난 그때부터 이미 '만들어지다 만'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고 난 '이다음'만이 아니라 숨쉬고 있는 지금 이순간도 느끼고 배우고 누려야 하는 소중한 내 삶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최고가 되거나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기에 앞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돌연변이나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 아니라 이 세상에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알게 되면 좋겠다. 그럴 수 있으려면 사람이든 책이든 아이들 삶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너무 많은 어른, 너무 많은 책이 아이들을 자꾸 나무라고 협박한다. -202쪽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의무감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스파르타식 감독이 아니다. 공이 담장 너머로 날아가거나 웅덩이에 빠져버리면 새로 내어줄 수 있도록 주머니에 공을 가득 넣어두는 일, 걱정말라고 공은 얼마든지 또 있다며 웃어주는 일, 그게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다.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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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작가 이야기 열린어린이 책 마을 1
서남희 지음 / 열린어린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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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작가 26명에 대한 소개서. 음... 일단 우리나라 작가에 대한 글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아쉬움.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 그림책의 역사가 짧은 관계로 그만한 내공의 힘이 모이질 않아서 그랬으려니 하고 이해하기로 함. (그래도 소개글 정도 써줄 만큼은 되지 않았나? 요즘 우리나라 그림책도 무지 좋아졌는데..)

그림책은 봤는데 작가에 대해선 잘 모르고 지나쳤던 나의 무심함을 깨우쳐 주는 책이기도 하고,  이미 잘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들에 대해선 한 번 정리해 준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책임.

집에 한권 놔두고 작가가 궁금해질 때 한 번씩 들여다 봐주면 괜찮겠다 싶음. 그만큼 깊이를 기대하진 말라는 뜻이기도 함.

책 중간중간 오자가 발견됨.  출판사의 성의가 아쉬움.

책 뒷편에 작가별 작품 목록과 참고 사이트가 정리되어 있는 점이 맘에 듬.

심심할 때 소개된 사이트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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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도로시 버틀러 지음, 김중철 옮김 / 보림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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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잡고 대충 쭉 훑어보고는 "음.. 장애아동의 인생극복이 주제로군.."하고 섣불리 짐작하고 읽기 시작했다. 내심, 그림책에 대한 이론서를 찾았는데 잘못 골랐다는 생각도 들었고, <딥스>류의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읽기로 작정한 건, <딥스>가 내가 좋아하는 책들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기에 내심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짐작이 아주 틀린건 아니었다.  선천적인 장애(청각,시각과 더불어 정신지체진단을 받고 손과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를 갖고 태어난 아이 쿠슐라가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과 포용력있는 따뜻한 이해심을 양분삼아 자기가 가진 장애를 극복하고(물론 완전하게 비장애인처럼 성장할 수는 없었지만)  밝게 자라난다는 이야기다.  쿠슐라의 부모가 여러가지 장애를 가진 아이에게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방법이 바로 그림책 읽어주기였다.  쿠슐라가 생후 4개월때부터 책을 보여주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 쿠슐라는 그림책을 통해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이 놀랍게 향상되어 장애를 가지지 않은 다른 아이들과 차이를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책 읽기를 통해 지능이 향상되었다는 사실 보다도 쿠슐라의 삶이 더 풍요로와지고 행복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애는 부모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이지만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 쿠슐라에게는 아픔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참고 극복해야하는 장벽이다.  세상과 자기를 갈라놓은 그 장벽을 부수고 깨뜨리는 과정을, 쿠슐라는 그림책과 함께 해왔던 것이다.

"1975년 8월 18일, 쿠슐라가 만 3살 8개월 때 한 말에는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말을 할 때 쿠슐라는 두 팔로 인형은 안고 책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소파 옆에 앉아 있었다.  '이제 루비루에게 책을 읽어 주어야 해. 그 애는 지쳤고 슬프거든. 루비루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고, 책을 읽어 주어야해.' 이러한 처방은 어떤 아이에게나 필요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든  없는 아이든."

우리는 책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이 지식을 쌓고 좀더 똑똑해지고 학습에 도움이 되고 그래서 공부를 잘 하는 우수한 학생으로 만드려는 욕심을 가지고 책을 권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책을 멀리 하는 것은 부모의 이런 불순한 생각을 눈치챘기 때문이 아닐까? 책은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평생의 삶을 함께 하는 친구 같은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은 부모가 쓴 쿠슐라의 독서 일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통해 더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선물해주고 싶다면 우리부모들의 이기적이고 편협되고 일그러진 사고방식부터 뜯어 고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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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어린이.어른
폴 아자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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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의 본질에 충실한 책을 사랑한다. 그것이 어떤 책인가 하면 직관에 호소하고 사물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힘을 어린이들에게 주는 책, 어린이들도 읽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책, 어린이들의 영혼에 깊은 감동을 주어 평생 가슴 속에 추억으로 간직되는 책, 그런 책 말이다. -59쪽

나는 또 어린이들이 즐겨 머릿속에 그리는 것을 그대로 담은 책을 사랑한다. 온 세상 삼라만상 속에서 특히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선택된 것. 어린이들을 해방시키고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 이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린이들한테 덤벼들어 그들의 현실 세계의 굴레로 얽매어 버리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신비의 세계, 그런 것을 어린이들에게 주는 책을 나는 사랑한다. -60쪽

어린이들에게 감상이 아니라 감수성을 자각시켜 주는 책, 인간다운 고귀한 감정을 어린이들의 마음에 불어넣는 책, 동식물의 생명뿐 아니라 삼라만상의 생명을 모두 중시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책, 천지의 만물과 그 만물의 영장인 인간 속에 있는 신비스러운 것을 헛되이 하거나 소홀히 하는 마음을 결코 어린이들에게 심어 주지 않는책, 그런 책을 나는 사랑한다. -60쪽

그리고 놀이라는 것이 대단히 소중하고 중요한 일임을 인식하고 있는 책, 지성과 이성을 단련하는 것은 반드시 당장에 이익을 낳거나 실제 생활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목적으로 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분별하고 있는 책, 그런 책을 나는 사랑한다. -60 쪽

나는 지식을 주는 책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 책이 무엇이든 쉽게 깨닫게 해주는 것처럼 가장하고는 감쪽같이 어린이들을 유인해서 즐거운 시간을 낚아채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것은 말도 안된다. 또 실제로 엄청나게 수고하지 않으면 ƒ틈事?수 없는 것이 많으므로 그런 방법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하겠다. 나는 어설프게 다른 것으로 가장한 문법이나 수학이 아니라 솜씨 좋고 적당하게 지식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쓰여진 책을 사랑한다. 어린 영혼의 싹을 짓뭉개 버리는 주입식 책이 아니라, 영혼 속에 지식의 씨앗을 뿌리고 건강하게 기르려는 그런 책을 사랑한다. 지식을 과대 평가하고 만물의 척도로 삼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책, 즉 지식의 한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책을 사랑한다. -60쪽

특히 내가 사랑하는 책은, 모든 인식 가운데 가장 어렵지만 가장 필요한 것으로, 곧 인간의 심성에 대한 인식을 어린이들에게 심어주는 책이다. 폐로 같은 사람은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기지에 찬 매력적인 방법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올바른 지식을 준다. 그는 충분히 인간을 관찰하며 어려운 문장을 쓰지 않는다. 어렵기는커녕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의 문장을 대단히 정확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 밑바닥까지 스며든다. 또 힘이 있어 인간의 정신을 원숙하게 하고 예지의 꽃을 피게 할 수 있다!-61쪽

끝으로 내가 사랑하는 책은 높은 도덕성을 지닌 책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도덕성은 가난한 사람에게 동전 두 닢을 주었다고 해서 자신을 자비로운 사람으로 여기는 그런 째째한 근성의 도덕이 아니다. (중략) 언제까지나 변하지 안흔 진리, 인간의 영혼을 생기 있고 분발하게 하는 진리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책을 나는 사랑한다. (중략) 요컨대 나는 진리와 정의에 대한 신뢰를 북돋는 역할을 하는 책을 사랑한다. -62쪽

어린이를 위한 책이든 어른을 위한 책이든 불후의 명작을 쓰려면 천재성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그런 재능을 얻을 수 있을까?-100쪽

(안데르센에 대해서 늙고 야위고 쇠약해진 노부인이 전한 말)
이 초상화를 보세요, 그분을 그린 거랍니다. 밑부분엔 손수 쓰신 글씨가 있는데 '인생은 온갖 모험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쓰여 있지요.-126쪽

안데르센은 왕이다. 그는 이야기라는 작은 틀 속에 우주의 온갖 장관을 들여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7쪽

안데르센은 왕이다. 그는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의 영혼 속을 파고들 수 있는 유일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130쪽

인간의 본성을 가려내려고 몰두하는 동화작가, 인생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생명이 없는 물건에게까지 살아갈 용기를 주려고 한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추위에 떨면서도 세상은 언제나 따뜻한 곳이라고 떠벌이는 위선자는 아니다. 그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악의 문제, 생존의 문제들을 대담하게 내놓는다. 그러나 진실을 알았다고 해서 살아갈 용기를 잃지는 않는다. 그는 나아가 진실을 더 깊이 알고자 하며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반만 알고 있을 때이다. -136~137쪽

어린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충실하며 그들의 인식은 어른보다 한결 민첩하고 민감하다. 어린이들의 인식은 이론에 치우친 비평이 아니라 본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5쪽

어린이들은 글쓰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던 사람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안겨 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기분을 맞추려 드는 책은 읽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진부하고 거짓투성이인 문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아름답고 정직한 문장에 마음이 끌린다. 쉽게 이해가 잘 되는 것이라면 문체가 어떻든 전혀 개의채 않는다. 요컨대 어린이들은 영원한 예술의 순수한 힘과 영혼의 소박한 가치를 어른들에게 재인식시키는 것이다.-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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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어린이.어른
폴 아자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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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장황하기도 하다. 동화에 대해 이렇게 할말이 많이 있을 줄이야. 어린이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나도 참 무식했구나하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40년 전에 세계적으로 저명한 프랑스 문학사가가 쓴 글이니 장황한 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동화에 대한 구구한 역사에서 어린이를 마구 억압하던 글을 쓰던 작가에 대한 원망과 함께  존뉴베리와 안데르센, 그림형제에 이르는 작가에 대한 예찬을 하고, 걸리버, 돈키호테,로빈슨 쿠르소, 피노키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피터팬 등의 동화에 대한 분석에 열을 올린다.  동화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작가의 확고한 신념을 피력하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와 독일등을 넘나들며 각 나라의 민족적인 특성과 동화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열띤 어조로 글을 풀어가다가 인류의식에 이르러 어린이들의 세계연방이라는 거대한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지 않으면 화려하게 이어지는 저명한 문학사가 폴 아자르의 말을 아차하는 순간에 놓쳐버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겠다.  특히 나같은 사람은.. 나로서는 그 당시에 배웠다는 사람은 꼭 글을 이런식으로 써야 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페로의 예를 들면서 "그는 충분히 인간을 관찰하며 어려운 문장을 쓰지 않는다.  어렵기는 커녕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의 문장은 대단히 정확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 바닥까지 스며든다. 또 힘이 있어 인간의 정신을 원숙하게 하고 예지의 꽃을 피게 할수 있다!"라며 정확하고 단순한 문장에 대해 그토록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 말이다.  뭐, 번역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읽어 봐야지 하는 결심을 해본다.  장황한 글 속에 깊이 새겨야 할 천금같은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문학 이론서의 고전이라 할 만 하다.  모두들 정신 바짝 차리고 일독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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