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어린이.어른
폴 아자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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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의 본질에 충실한 책을 사랑한다. 그것이 어떤 책인가 하면 직관에 호소하고 사물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힘을 어린이들에게 주는 책, 어린이들도 읽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책, 어린이들의 영혼에 깊은 감동을 주어 평생 가슴 속에 추억으로 간직되는 책, 그런 책 말이다. -59쪽

나는 또 어린이들이 즐겨 머릿속에 그리는 것을 그대로 담은 책을 사랑한다. 온 세상 삼라만상 속에서 특히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선택된 것. 어린이들을 해방시키고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 이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어린이들한테 덤벼들어 그들의 현실 세계의 굴레로 얽매어 버리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신비의 세계, 그런 것을 어린이들에게 주는 책을 나는 사랑한다. -60쪽

어린이들에게 감상이 아니라 감수성을 자각시켜 주는 책, 인간다운 고귀한 감정을 어린이들의 마음에 불어넣는 책, 동식물의 생명뿐 아니라 삼라만상의 생명을 모두 중시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책, 천지의 만물과 그 만물의 영장인 인간 속에 있는 신비스러운 것을 헛되이 하거나 소홀히 하는 마음을 결코 어린이들에게 심어 주지 않는책, 그런 책을 나는 사랑한다. -60쪽

그리고 놀이라는 것이 대단히 소중하고 중요한 일임을 인식하고 있는 책, 지성과 이성을 단련하는 것은 반드시 당장에 이익을 낳거나 실제 생활에 이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목적으로 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분별하고 있는 책, 그런 책을 나는 사랑한다. -60 쪽

나는 지식을 주는 책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 책이 무엇이든 쉽게 깨닫게 해주는 것처럼 가장하고는 감쪽같이 어린이들을 유인해서 즐거운 시간을 낚아채려고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것은 말도 안된다. 또 실제로 엄청나게 수고하지 않으면 ƒ틈事?수 없는 것이 많으므로 그런 방법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하겠다. 나는 어설프게 다른 것으로 가장한 문법이나 수학이 아니라 솜씨 좋고 적당하게 지식을 가르치려는 의도로 쓰여진 책을 사랑한다. 어린 영혼의 싹을 짓뭉개 버리는 주입식 책이 아니라, 영혼 속에 지식의 씨앗을 뿌리고 건강하게 기르려는 그런 책을 사랑한다. 지식을 과대 평가하고 만물의 척도로 삼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책, 즉 지식의 한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책을 사랑한다. -60쪽

특히 내가 사랑하는 책은, 모든 인식 가운데 가장 어렵지만 가장 필요한 것으로, 곧 인간의 심성에 대한 인식을 어린이들에게 심어주는 책이다. 폐로 같은 사람은 신비한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기지에 찬 매력적인 방법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올바른 지식을 준다. 그는 충분히 인간을 관찰하며 어려운 문장을 쓰지 않는다. 어렵기는커녕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의 문장을 대단히 정확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 밑바닥까지 스며든다. 또 힘이 있어 인간의 정신을 원숙하게 하고 예지의 꽃을 피게 할 수 있다!-61쪽

끝으로 내가 사랑하는 책은 높은 도덕성을 지닌 책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도덕성은 가난한 사람에게 동전 두 닢을 주었다고 해서 자신을 자비로운 사람으로 여기는 그런 째째한 근성의 도덕이 아니다. (중략) 언제까지나 변하지 안흔 진리, 인간의 영혼을 생기 있고 분발하게 하는 진리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책을 나는 사랑한다. (중략) 요컨대 나는 진리와 정의에 대한 신뢰를 북돋는 역할을 하는 책을 사랑한다. -62쪽

어린이를 위한 책이든 어른을 위한 책이든 불후의 명작을 쓰려면 천재성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그런 재능을 얻을 수 있을까?-100쪽

(안데르센에 대해서 늙고 야위고 쇠약해진 노부인이 전한 말)
이 초상화를 보세요, 그분을 그린 거랍니다. 밑부분엔 손수 쓰신 글씨가 있는데 '인생은 온갖 모험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쓰여 있지요.-126쪽

안데르센은 왕이다. 그는 이야기라는 작은 틀 속에 우주의 온갖 장관을 들여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7쪽

안데르센은 왕이다. 그는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의 영혼 속을 파고들 수 있는 유일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130쪽

인간의 본성을 가려내려고 몰두하는 동화작가, 인생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생명이 없는 물건에게까지 살아갈 용기를 주려고 한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추위에 떨면서도 세상은 언제나 따뜻한 곳이라고 떠벌이는 위선자는 아니다. 그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악의 문제, 생존의 문제들을 대담하게 내놓는다. 그러나 진실을 알았다고 해서 살아갈 용기를 잃지는 않는다. 그는 나아가 진실을 더 깊이 알고자 하며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반만 알고 있을 때이다. -136~137쪽

어린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충실하며 그들의 인식은 어른보다 한결 민첩하고 민감하다. 어린이들의 인식은 이론에 치우친 비평이 아니라 본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5쪽

어린이들은 글쓰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던 사람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안겨 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기분을 맞추려 드는 책은 읽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진부하고 거짓투성이인 문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아름답고 정직한 문장에 마음이 끌린다. 쉽게 이해가 잘 되는 것이라면 문체가 어떻든 전혀 개의채 않는다. 요컨대 어린이들은 영원한 예술의 순수한 힘과 영혼의 소박한 가치를 어른들에게 재인식시키는 것이다.-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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