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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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소설은 주로 삶에 대한 애증과 냉소, 허무감이 공통된 코드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 소설을 연이어 읽어댔더니 이제 슬슬 그런 코드들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잘 모아지지도 않고, 조각조각 모아진 생각들이 제대로 엮이지도 않는다.  책을 덮고도 며칠을 그냥 보냈다. 엮이지 못한 생각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리뷰를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구석에서 날 노려보고 있고, 나는 "소설만 계속 읽었더니 다 그게 그거 같아."하며 불편해 했다.

정미경님의 단편집.  예리하게 날 세운 칼로 사람의 내면 심리를 도려내어 보여주는 듯한 느낌의 글들이 있었다.  그녀가 글로서 그린 그림은 분명 뾰족한 펜끝에 잉크를 묻혀 그리는 한 장의 펜화의 느낌이다. 읽으면서 TV 베스트 극장인가 하는 프로그램에 드라마화 해서 나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머릿 속에 장면 장면이 그려질만큼 이야기에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서로 혼합되지 못하고 어긋나며, 자기가 가진 결핍에 대한 강박증을 보이고, 삶이 드러낸 배반적인 이면에 몸서리치는 인물들이 차갑게 그려져 있다. 그러다 돌연 마지막 단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에서 살짝 온기를 머금는데, 그 온기가 어쩐지 어색하고 생뚱맞으면서도 책을 읽으며 느끼던 한기가 조금 풀어지는 듯 해서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것도 비극적인 결말을 보는 이야기이지만.

이젠 삶에 대한 냉소, 애증, 그리고 갑자기 모습을 바꾸는 삶 앞에서 피곤을 드러내는, 결핍과 상실의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는 인물들에서 벗어나고 싶단 생각이 든다.  

문득 조르바가 그리워지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이따금씩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우리 기술자들은 '꽈당'이라고 한답니다.  내가 꽈당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하던 조르바.

날카로운 칼로 사람의 내면을 후벼파는 듯한 글을 쓰는 작가 정미경님이 조르바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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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히 독서하고 계시는군요 ^^
정미경의 책은 이책이 처음이라 장미빛 인생보다 저에겐 좋은 책이었죠.
요즘은 사람의 내면을 후벼파는 글보다는
쉬엄쉬엄 묻어가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그런 글을 읽고 싶어요.

섬사이님의 다음 리뷰 고대하겠습니다 :)

섬사이 2007-07-10 18:21   좋아요 0 | URL
요즘은 책 읽기에 속도를 못내고 있어요. 바람 든 막내 비니를 좇아 다니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그러다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고.. 이제 일주일에 한 두 권이라도 읽을 수 있으면 다행일 것 같아요.

씩씩하니 2007-07-1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에 대한 냉소..허무가 주제가 되는 작품이 많은 것이 딱 맞아요..
그런 감정이 보편적이라는 뜻이까요..세태반영이라 생각하면 조금 씁쓸해요....
그래서 마음이 안좋을 때는 소설책도 선뜻 읽지 못하겠드라구요...

섬사이 2007-07-10 18:24   좋아요 0 | URL
씩씩하니님, 반갑습니다.^^ 하니님도 다른 님들 서재에서 자주 뵈었어요. 그래서 낯설지가 않아요. 하니님 말씀대로 정말 냉소적인 사회가 되었나봐요. 빨리 기운 차리고 으쌰으쌰 씩씩하고 활기차고 용감하게 삶과 맞장 뜰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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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두 번째로 읽은 은희경님의 소설이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열 두살 난 평범치 않은 여자 아이 진희를 통해 주변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열 두살 치고 삶에 대해 꽤 냉소적이고 적의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마치 옛날에 하던 TV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이나 '전원일기'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은희경님의 소설 스타일이 원래 그런 건지, <마이너리그>에서도 그랬지만 도시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찾아보기 어렵다.  절대로 '발리에서 생긴 일'이나 '풀하우스'같은 드라마의 자취는 찾아볼 수가 없다.  네꼬님이 은희경님이 드라마를 쓰셔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의 느낌이 확 와닿았다. 

삶에 대해 냉소적이고 적의를 담고 있다곤 하지만 이야기가 내내 무겁고 진지하진 않다.  중간 중간마다 60년대 신파스러운 코믹한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마치 성우가 더빙한 옛날 영화의 부자연스러운 억양의 대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신파스러움은 아무리 진지함과 사건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웃음의 한 코드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진희의 이모가 빨래를 널려다가 바지랑대와 함께 고꾸라지는 장면도 코믹하거니와 중절수술을 받고 눈 쌓인 산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이모를 홍기웅이 번쩍 안아 트럭 앞자리에 태우는 다소 진지하고 심각한 장면에서도 씨익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보면, 작가 은희경님의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와 표현들이 가진 힘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자잘하고 궁상맞고 어찌보면 추레하고  비루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내면 심리, 또는 삶에 대한 정확한 성찰들을 예리하게 낚아채는 능력이다. 미운 정과 고운 정에 대한 글, 그리움을 모기에게 물려 가려운 할머니의 발바닥에 비유한 것에서 그 능력은 유감없이 드러난다.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흔하게 일어나서 주목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 일상에 들이댄 작가의 날카롭고 매서운 통찰이 급소를 찔린 듯 아프고 서늘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사랑은 자의적인 것이다. 작은 친절일 뿐인데도 자기의 환심을 사려는 조바심으로 보이고, 스쳐가는 눈빛일 뿐인데도 자기의 가슴에 운명적 각인은 남기려는 의사표시로 믿게 만드는 어리석은 맹목성이 사랑에는 있다."(p.180)와 같은 사랑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건드려질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 상처를 갖는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스스로의 조절능력을 상실하는 거였다." (p.130),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대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된다"(p.310) 와 같은 삶에 대한 시니컬한 정의들, 그리고  "자기의 행복과 불행의 조종간을 통째로 타인의 손에 쥐어준다면 그 타인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도 잠시일 뿐이다."(p.304)   "대부분 어른들은 모험심이 부족하다. 진정한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찾아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자기의 삶이라고 믿고 견디는 쪽을 택한다.  특히 여자의 경우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배후에는 '팔자소관'이라는 체념관이 강하게 작용한다.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그 체념은 여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연히 닥쳐온 불행을 이겨내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만듦으로써 더 많은 불행을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p.246) 과 같은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욕망의 글들을 책 갈피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었다.

참 매력적인 작가다.  매력적이지 않은 평범한 인물들을 가지고, 멋지고 근사한 폼나는 분위기 한 번 잡지 않고도 이만큼의 이야기를 써낼 수 있다는 것이, 주변의 자잘한 이야기들이 작가의 시선 하나로 이렇게 심도 있는 소설로 환골탈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것도 화려한 미사여구나 기름칠 해놓은 듯 유들유들하게 흘러가는 문체를 쓰지 않고도 말이다. 그래서 은희경님의 소설은 꼭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베토벤 교향곡같다. 아니면 바흐이거나. (진짜 음악의 영역에서 그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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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06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흐, 저는 박완서님을 떠올렸습니다. 장중하되 거짓말을 하지 않고, 로스트로코비치가 연주하는 것처럼 꾸밈이 없는. 은희경은 약간 모짜르트같아요. 그냥 제 느낌이니 다른 분들과, 섬사이 님과도 다를테지요.

섬사이 2007-07-06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바흐.. 정말 박완서님의 이미지와 딱 떨어질 것 같네요. Jude님은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가 봐요. 저야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선율의 미묘한 차이들을 잡아낼 수 있을만큼 음악을 잘 알진 못해요. 요요마의 첼로연주와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연주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저 부분을 쓸 때 저도 잠시 고민을 했었거든요? 은희경님의 저 소설이 경쾌함이나 밝음만으로 설명되기엔 뭔가 묵직한 게 얹혀있어서 모짜르트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그래서 나름대로 바흐나 베토벤 교향곡이 스타카토로 가볍게 연주되는 것 쯤으로 혼자 합의를 봤던 거예요. 세상엔 존재할 수 없는 연주겠죠?
jude님 덕에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 한 분을 깨달았네요.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바흐를 닮은 박완서님의 글이라.. 이래서 사람은 평생 누군가를 스승으로 삼으며 배워야 한다는 건가봐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

fallin 2007-07-0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읽었는데....-.-;;; 기억이 전혀 안나요 ㅡ,.ㅡ

섬사이 2007-07-09 20:53   좋아요 0 | URL
그런 이유로 리뷰를 쓰기 시작했어요, 저는. 읽은 책들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을 저장해 놓는다는 의미로. ^^
 
장밋빛 인생 - 2002 제2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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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군가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아니, 난 싫어.  지금 이 순간 드러나는 내 표정, 내 눈빛, 내 얼굴의 피부 상태, 확인불가능한, 그러나 분명 엉크러져 있을 머리.. 내 눈으로는 확인 할 수 없는 나의 그런 소소한 부분들이 누군가의 성능좋은 카메라 렌즈에 줌인되어 한 장의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잡혀서 내 눈 앞에 낯설게 떠오르는 거, 그런 거 정말 싫어.

근데 아무리 싫다고 뻗대어도 그게 내 모습이다. 뽀샤시한 소프트필터나 하찮은 뽀샵질 한 번 손대지 않고 내 왼쪽 뺨에 점이 몇 개인지, 사춘기 시절에 만들어진 여드름 흉터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피부 톤이 어떤지, 눈썹의 모양은 반달형인지 갈매기형인지, 웃을 때 이는 몇 개가 드러나는지, 눈가의 잔주름은 어떤 모양으로 접히는지까지 확연하게 드러내는 그 사진 속 모습이 바로 나의 진짜 모습이다.  웃기게도 바로 나 자신이 나에 대해 가장 왜곡된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장본인이라 나의 진짜 모습을 대면하면 타인을 마주할 때보다 더 낯설다.

이 책이 그렇다.  참 잘도 잡아냈다. 사람들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달래지지 않는 외로움, 치료받지 못하는 상처, 해소할 수 없는 갈증,  높고 두터운 장벽을 마주한 듯한 답답함, 그런 것들을 견디고 견디고 견뎌가며 사는 사람들의 깊은 속풍경들을 접사렌즈로 들여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예리하게 잡아서 가슴 시릴만큼 서늘하게 던져놓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정말로 "고통은 부끄러운 것이고 연약함은 악덕이 되어버리는 거리"(p.195)가 되어 버린 것일까.  "정서적인 금치산자"(p.200)이자 ""자의적인 시각 장애인"(p.158)들이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해보고자 발버둥치는 게 우리들이 말하는 사랑이었을까. 

슈퍼에 가서 갈증을 달래줄 음료수를 고르듯이, 나는 더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한계점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음료를 선택했던 것일까.  그것이 톡 쏘는 청량감의 달콤한 콜라 같아서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에는 갈증이 풀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엔 더 심한 갈증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계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캔의 뚜껑을 따고 급하게 삼켰던 것일까. "광고가 추구하는 세 가지. 새로움, 파격성, 놓칠 수 없는 휴머니티."(p.39) - 사랑은 인생 속에서 꿈처럼 현란하게 지나가며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15초짜리 광고 같은 것.  새로움, 파격성, 놓칠 수 없는 휴머니티 - 그러고보니 사랑에게 기대하는 것들과 비슷하게 닮았다.

결국 난 너에 대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했던 거로구나..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핥아준 게 아니라 각자 자기의 상처를 핥았던 거구나. 그 순간은 참 거창했는데 이제 보니 참 보잘 것 없는 남루한 사랑이었구나, 하는 씁쓸함이 목을 넘어오게 하는 소설이다.

"영원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그저 행복한 한 순간일 뿐, 소멸되지 않는 것은 기억이다.  시간 속에서 바래지 않고 간절함 속에 후광마저 얻게 되는 것은 다만 기억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추억만이 영원할 뿐."(p.185)

책을 읽으며 뒤늦게 추억의 맥락을 짚어본다. 이제 웬만한 상처나 외로움쯤, 사는 게 다 그런거지, 하며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소금기가 닿은 듯 오래된 상처가 따끔거려 놀라곤 했다. 나는 나의 상처만 느낄 수 있고, 넌 너의 상처만 느낄 수 있는 거라는 걸 깨닫는다.  누구도 타인의 상처를 알 수는 없다. 알 수 없으니 치료해 줄 수도 없을 터.

장밋빛의 순간은 있을 수 있어도, 장밋빛 인생은 없다. "인생은 30초를 지나서도 꿈틀거리고 끈적거리고 소금 냄새를 풍기며 자꾸만 감겨오는 지독한 것"(p.213)이니까. 그래서 상처든, 외로움이든, 갈증이든, 그 무엇이든 사랑이 치료해줄 거라 기대하지 않아야 했다. 그저 견딜 수 있어야 했다.  "이 세상과 맞서는 칼 하나"(p.215)를 가슴에 품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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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7-01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002년에 읽은 책이네요. 반갑다^^ 실은 부끄럽게도 잘 기억은 안나요. 하지만 섬사이님이 말씀하신 그런 느낌과 이미지가 남아있네요. 그때는 책을 좀 대충 읽어서, 그리고 공감도 많이 못해던 듯..어려서 그랬던 거 같아요. 5년이란 시간 동안 훌쩍 커버려서..다시 읽으면 이젠 쓸쓸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섬사이 2007-07-01 02:33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소설을 뒤늦게 읽기 시작해서요. 뒷북치는 리뷰가 많죠? ^^

다락방 2007-07-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작가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추천도 했었는데, 제가 읽은것처럼 좋아하는것 같지 않으면 서운하기도 했었죠. 언제였던가, 저도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썼는데, 섬사이님과 비슷한걸 느꼈던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감상의 제목을 '절절한 공감'이라고 했던듯 했구요. 아주 잘, 읽고 갑니다.

섬사이 2007-07-01 23:34   좋아요 0 | URL
아주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7-07-01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읽으셨다니 너무 반가워요. 저도 리뷰 올렸었는데...ㅎㅎ
다락님 댓글도 더욱 반갑구요. 정미경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섬사이 2007-07-01 23:32   좋아요 0 | URL
<나의 피투성이 연인>도 책꽂이에 대기중이죠. ㅎㅎ
 
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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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김영하라는 이름의 소설가. 소설을 너무 오랫동안 읽지 않았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다 새롭다.  소설 중에서도 역사의 한 줄기를 타고가는 서사적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은 언제 읽었는지조차도 아득하다.

구한말, 무력한 왕조가 열강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을 때, 무력한 왕조보다 더 힘없고 어수룩했던 그 백성들이 겪어내야 하는 삶의 고초와 절망들을 담아 낸 소설이었다.  책 표지 뒷면에 "유한자 인간의 기품과 슬픔 뇌쇄적으로 그려"라는 2004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선정 이유가 책을 살펴보던 내 눈길을 끌었다. 뇌쇄적이라.. '애가 타도록 몹시 괴롭힌다'는 뜻의 뇌쇄적이라는 용어에 잠시 머뭇거렸다.  소설을 읽으며 그렇게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는 않은데.. 하는 약간의 방어본능 끝에 "뭐가 그리 괴롭길래 표지부터 청승이냐."식의 발끈함이 집요하게 파고 들어, 결국 책을 열게 되었다.

구한말 비극의 역사가 멕시코에서 팍팍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작가는 굵고 건조해서 거칠게 느껴지는 문체로 슬픔도 비분강개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비극의 역사 안에다 어수룩하고 순진한데다 실리에 밝지 못해 이용만 당하는 백성의 이야기를 엮어 넣었다.  거기엔 황족, 파계신부, 박수무당, 전직 군인들, 내시, 희망을 잃은 부랑자등의 다양한 인간부류가 우울하게 뒤섞여 있다.  보호해줄 나라도, 돌아갈 나라도 없는 그들이 내쳐진 낯선 나라 멕시코는 그들이 새로운 시작을 꿈꾸기엔 너무나 황량하고 거칠었다. 반상과 내외의 모든 차별과 구분, 아니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가치가 그 황량함과 거침 앞에서 해체되고 녹아버렸다. 그 안에서는 그 어떤 대의명분, 정열적인 사랑, 신념이나 희망도 그들의 척박한 삶에 뿌리를 뻗고 자라날 수 없었다. 남들보다 얍삽하던지, 아니면 미련스러울 정도로 우직하던지, 그게 그들의 삶을 연명할 수 있는 그나마 유일한 방법이었다. 떠밀려간 황막한 땅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던져 살아내는 것, 그것이 그들에겐 근대화였다.

떠밀린 그들의 비극적 삶은 말마따나 뇌쇄적이었다. 역사의 줄기를 타고 쓰여진 이야기건만, 그 이야기 어디에도 영웅도 찾아볼 수 없고, 미래에 대한 여리디 여린 한 줄기 희망도 철저하게 닫아버렸다. 과테말라의 마야유적지에서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도 모를 전투를 벌이며 '신대한'이라는 새 나라를 꿈꾸기도 하지만, 모두 그 허황됨을 알고도 묵인할 정도로 그들은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들일 뿐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나는 삶을 보지 못한다. 그저 굵직굵직한 무미건조한 활자들의 사실을 읽어내곤 '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아는 역사가 얼마나 표피적인 것인지 깨닫게 된다.  역사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읽어냈다는 것, 그것도 지구 저 반대편까지 떠밀려간 약자들의 삶을 읽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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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6-2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상하게 이 소설을 집어들지 않고 있는데요, 무슨 고집인지 모르겠습니다. 섬사이님의 리뷰를 보니 이제 김영하에게, 검은꽃에게 마음을 열어야겠어요.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

섬사이 2007-06-29 08:15   좋아요 0 | URL
소설이 주는 '재미'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거에요. 이야기 자체가 거칠고 건조하니까. 그래도 의미있게 읽어볼만 했어요.

토토랑 2007-06-2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저두 추천하고 갑니다.

섬사이 2007-06-29 08: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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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뭐랄까.. 그래, 권투시합으로 따지자면 한 방의 강펀치로 KO당하는 통쾌한 경기같지는 않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겠다 싶은 무른 jab을 연달아 맞고 어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몸이 욱신거려서 "내가 졌소.."하며 다운되고 마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아니면 야구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들이 연달아 짧은 번트를 쳐대는 바람에 주자들을 차례차례 밀어내어 맛보게 되는 홈인의 감격이라고나 할까..  스포츠에 대해선 무식하다 할 수 있는 내가 굳이 스포츠를 예로 드는 건, 아마도 이 소설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들이 모두 남성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은희경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을 처음 읽는 거라 원래 이 작가의 문체가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짧게 툭툭 끊어 치는 어조에 무미건조하다 할만큼 분석적이고 보고서적인 글의 분위기가 느껴져서 소설 첫 부분에서 이걸 계속 읽어, 말어? 하며 잠깐 망설이기도 했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소설 중간에 들어설 무렵부터는 바늘 끝으로 콕콕 찔러대는 것 같은 작가의 글에 점점 빠져들다가 결국엔 공감의 웃음도 흘리고 고개도 주억거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책에서 서정적인 묘사나 낭만적 혹은 지적 감성을 자극하는 표현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세상의 거칠고 단단한 표면을 깨고 찬란하게 부상하는 메이저급 인물이 아니다.  "만수산 드렁칡"이라는, 시시하고 비굴의 냄새도 좀 풍기는 이름으로 한데 묶인 마이너급 남자 네 명의 인생을 좇아 사회의 불합리한 여러 단면들과  197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우리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의 역사 안에 그 어떤 의도도 힘도 없었던, 어찌보면 착하고 순진해빠진  대다수 마이너들의 흔들리는 삶과 내면을 엮어내고 파헤쳐 가는 작가의 집요함과 예리함이 빛나는 소설이다.   

허풍과 허세로 자신의 열등함과 무능력을 메우려하고, 매력없음으로도 모자라 철까지 없고, 세상사에 대해 대책없는 낙관 아니면 어정쩡한 비관의 인생관을 가졌고, 그래도 저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58년 개띠 남자 넷의 삶을 작가의 문력文力을 도구 삼아 꿰뚫어 가다보면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그들의 작태가 우스워서 소설 속 인물이 너무 과장되었다는 생각을 했건만, "무슨 소설에 제대로 된 인물 하나가 안 나와?"하며 잘난 척도 했건만, 결국엔 "삶의 여정이란 것이 사실로도 칡처럼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p.17)이었다는 형준의 고백이 곧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나 또한 마이너의 한 사람이었고, 그들과 같은 만수산 드렁칡의 한 뿌리이며 줄기였고, 얄팍하지만 치명적이지 않은 위선으로 세상에 대한 예의와 융통성을 발휘하는 나름대로의 처세도 익혔으며, 짧고 굵은 위험한 삶보다 가늘고 긴 편안한 삶을 선호하는 취향을 가졌고, 그러면서도 메이저리그에 대한 황홀한 환상의 홀로그램에 매료되어 허세와 허풍으로라도 메이저 근처에라도 날아가볼까 기웃거리는 자가당착의 우스운 꼬락서니를 하고 있었던 거다.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고맙게도 은희경이라는 작가가 소설 속 "만수산 4인방"을 통해 우리 시대의 저물어가는 연배의 마이너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성 비판과 함께 연민의 감정을 보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마이너들을 위로한다.
"그런 거 생각하면 사는 것도 정말 별거 아니야.  말하자면 내가 세월과 함께 닳아가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돼.  산에 한번 가봐.  전나무숲, 대나무숲, 소나무숲, 이름은 그렇게 붙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전나무 대나무 소나무 입장에서만 본 거지,  사실 숲을 울창하게 만드는 것은 이끼 같은 거. 그리고 드렁칡 같은 하찮은 식물이더라구." (p.241) 하면서.

비록 누군가가 "우리의 인생을 원격조정하고 있다는 기분"(p.232)이 들고 "우리의 삶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어떤 낯모르는 힘에 의해 이끌려진다는 생각"(p.232)이 들어 인생에 대한 체념이나 무기력증을 느끼게 되더라도 "언제나 자기의 시대를 위기라고"(p.242)라고 말하는 지식인들과 "하나같이 자기의 시대를 국난이라고"(p.242)이라고 떠드는 애국자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우리는 우리식 대로 살면 되는 것"(p.242)이라고 속삭여준다.

작가가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아 얄밉다고 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이야기를 짜넣는 재주가 출중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나는 또 어정쩡한 마이너의 모습을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한 권의 책을 덮으며 곰곰 생각에 잠겨 본다.
마이너들이 드렁칡이라면 메이져들은 뭔데?  독야청청 푸른 소나무라고?  대쪽 같은 절개를 지닌 대나무라고?  하늘을 찌를 듯 기세등등 높이 자란 전나무라고? 
'치, 웃기시네~ '라는 비웃음이 새어나오는 것도 내가 마이너로서의 열등감을 가졌기 때문일까?  매일매일 신문의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대선 후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이렇게 저렇게 자꾸 뻗어가려는 생각의 가지들을 쳐내며 입에 담아본지 오래 된 옛시조를 웅얼거려본다.

이런들 엇떠하리 저런들 엇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엇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어릴 땐 충신 정몽주를 떠보는 간교한 계략의 시조라고 하찮게 여겼더니 이제 정몽주의 단심가보다 더 마음을 저미게 하는 시조가 된 듯하다.
그래도 요즘 같아선, 정말 단심가가 잘 어울리는 독야청청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를 바라보는 시원함을 느끼고 싶단 생각이 간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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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6-22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님도 이책 보셨군요..저도 사오년 전에 선배소개로 읽게 되었던 책인데 이렇게 님 리뷰보니 새삼 스럽네요..

섬사이 2007-06-22 08:33   좋아요 0 | URL
오랫동안 우리나라 소설을 안 읽다가 요즘 조금씩 읽고 있어요. 그래서 거의 대부분 낯선 작가들이에요. 남들은 예전에 다 읽었을 소설을 뒤늦게 읽으며 요란하게 뒷북치고 있는 제 모습, 웃기죠?

네꼬 2007-06-2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쫌 엉뚱한 얘긴데 해도 돼요? 저는 은희경 작가의 팬인데, 부디 이 작가가 드라마 작가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싸늘한 줄거리에 멋진 대사로 여럿 사로잡을 텐데. 하지만 둘 중 하나만 하셔야 한다면 소설가 하시라고 할래요. (뭐 저한테 물어보진 않으시겠지만.)

저는 단편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와 장편 <<그것은 꿈이었을까>>를 좋아해요.
: )

섬사이 2007-06-22 16:36   좋아요 0 | URL
네꼬님 말씀 듣고 생각해보니, 은희경 작가가 드라마를 쓰면 대사도 깔끔하게 잘 칠 것 같고, 스토리 진행도 꽤 산뜻하겠단 느낌이 드네요. 정말 괜찮겠어요. ^^ 님이 추천하신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어요.

홍수맘 2007-06-22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희경"님 하면 <새의 선물>이 먼저 떠올라요. 워낙 제목이 눈에 익어 읽었나, 안 읽었나 헷갈리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봐야한다는 얘기겠죠?
참, 네꼬님이 말씀하신 <그것은 꿈이었을까>도 챙겨놔야 겠어요.

섬사이 2007-06-22 16:38   좋아요 0 | URL
이래서 정말 좋다니까요. 전 달랑 책 한 권 읽고 리뷰를 썼는데, 그 리뷰 댓글에다 다른 좋은 책 이야기를 줄줄이 달아주시잖아요.ㅎㅎㅎ 이게 바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의 실천이 아니겠어요? ㅎㅎㅎ

2007-06-22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22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6-2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은희경 작가의 책이라면 이 마이너리그도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새의선물]이 역시 제일 근사하다고 생각을 해요. 물론 [마지막 춤은 그대와 함께]도 재미있게 봤지만요. 그녀의 냉소적인 시선이 잘 드러났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비밀과 거짓말]은 잘 읽히질 않더군요. 재미있게 읽었던게 몇년전인가 기억도 나질 않는데 오늘 이 리뷰를 읽으니 아, 그래, 재미있었지, 하게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아침부터 몇번이나 클릭을 했거만 이 리뷰가 이제서야 열렸어요. 흑 ㅜㅜ)

섬사이 2007-06-22 16:46   좋아요 0 | URL
전 은희경님의 작품을 처음 읽은 거라 잘 모르는데 다락방님도 그렇고 다른 분들이 유용한 정보를 많이 퍼주셔서 기분이 좋네요. <새의 선물>이랑 <그것은 꿈이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춤은 그대와 함께>는 꼭 읽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