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건 주부생활 15년을 넘긴 내가 할만한 상상인가,,하는 자괴감이 드는 거다.  아니다, 주부 생활 1년이고 15년이고간에 이건 내가 게으르다는 사실에 대한 확실한 증거다.

어느날, 그날도 나는 오늘은 또 뭐해 먹나.. 하는 짜증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게 난 별로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다.  어떤 분들은 음식을 만드는 게 즐겁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는데, 도대체 나는 아이를 셋이나 둔 엄마이면서도 반찬 준비하는 게 귀찮기만 한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려놓은 식탁에 앉아 맛있게 먹고 일어나면 그만인 사람들이야 먹는 일이 그저 "즐거운 일'이겠지만, 그 식탁을 차리기 위해선 밟아야 할 절차가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지..

뭘 해먹을까 고민하고, 장볼 물품을 선정하고, 장을 보고, 낑낑대며 들고와, 다듬고, 씻고, 끓이고, 데치고, 무치고, 썰고, 그릇에 담고, 차리고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정리하고....그걸 어떤 건 매일 세 번 해야한다니.. 사람이 먹는 데 들이는 시간이 너무 많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나의 상상은 어느날 설거지를 하며 마구마구 뻗어나갔던 거다. 

사람이 광합성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 햇볕 좋은 날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서 이를테면 시청 앞 광장이나 서울 숲이나 여의도 공원이나 한강 고수부지나 동네 작은 공원에라도 삼삼오오 짝지어 나와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옷을 훌훌 벗어 던지는 거다. 그리곤 돗자리를 깔고 대자로 누워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 양분화 하는 거다. 

"오늘 햇빛은 따뜻한 마파람이 570mg정도 섞여서 아주 부드러운 맛을 내고 있군요, 냠냠.."
"전 이번 주말에 동해로 떠날거에요.  요즘 바다의 짭쪼름한 소금기가 어우러진 동해 햇빛이 아주 별미라지 뭐에요. (군침 꿀꺽~)"
"지난 봄에 여의도 벚꽃축제때 햇빛 맛보셨어요? 얼마나 향긋하던지.. 그 햇빛 먹고 한 보름동안은 온몸에서 벚꽃향기가 났다니까요. (킁킁킁..)"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사람이 광함성을 하며 산다면 세상이 더 평화로웠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굶어죽는 사람들도 없어질테고, 환경과 생태계 파괴도 덜했을 것이며, 멸종동물의 수도 현저히 감소하고, 인류역사에서 전쟁도 훨씬 줄어들었을 거다.  어쩌면 비만문제도 성인병 문제도, 음식물 쓰레기 문제까지도 말끔하게 없어질 듯하다.

인간의 광합성 작용을 상상하는 여자가 만든 반찬이 오죽하랴.  오늘도 우리집 식탁은 초라한데, 아이들은 그 초라한 식탁에서 맛나게 잘도 먹는다. 

이번 주부터 장마라던가.. 장마김장은 해놓지도 않았는데, 이번 주말엔 김치나 담가야할까보다. 

그런데 광합성을 간절히 원하다보면 인간이 그 쪽으로 진화할 수도 있을까?  궁금..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이드 2007-06-2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즐겁게 웃었어요. 정말 즐거운 상상이네요. ^^

섬사이 2007-06-21 08: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하이드in도쿄님. 게으른 저의 상상이 님을 웃음짓게 만들었다니, 게으른 상상도 조금은 쓸모가 있었던 것 같아 저도 흐뭇하네요. ^^ 파란 장미가 참 인상적이에요. '하이드'라는 닉네임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허접한 제 서재에 파란 장미도 피워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프레이야 2007-06-2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합성 하며 살면 정말 여러모로 좋겠어요. 아, 주부의 게으름은 상상력을 발동하게
하네요. 섬사이님~~ 즐거운 상상!

섬사이 2007-06-21 08:22   좋아요 0 | URL
상상도 노동의 한 종류라서 집요하게 파고들어가려면 힘이 들어요. 그쵸? 그래서 상상의 끈을 잡았다가도 끈질긴 지구력과 치밀함이 부족해서 놓치고 말거든요. 상상을 위한 조건으로 겨우 게으름이라는 덕목 하나만 갖췄다니, 좀 우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

향기로운 2007-06-2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진화는 힘들겠지만, 상상은 언제라도 가능하지요. 섬사이님의 엉큼한 상상때문에 웃는하루에요~^^*

섬사이 2007-06-21 08:23   좋아요 0 | URL
진화,, 백만년이나 한 5백만년 후라도 불가능할까요? ㅎㅎㅎ

hnine 2007-06-20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초록색 인간들이 나타나는 것인가요? ㅋㅋ
그런 상상을 하시는 상황이 이해가 되네요. 저는 음식 하기 싫으면 누가 대신 좀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은 했어도 광합성 생각까지는 못했네요. 먹는 즐거움도 큰지라...

섬사이 2007-06-21 08:25   좋아요 0 | URL
저도 광합성을 상상하면서 슈렉과 피오나 공주를 떠올렸더랬어요. 열대우림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체격도 크고 아주 짙은 초록색의 피부를 갖게 되겠죠? 냉한대지역 사람들은 침엽수처럼 깡마르게 될까요? ^^

홍수맘 2007-06-2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역시 님이세요.
정말 인간들이 "광합성"을 하면 이 지구가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섬사이 2007-06-21 08:29   좋아요 0 | URL
전 이 상상하면서 홍수맘님네 생선가게 걱정을 했는데... 인간들이 모두 광합성을 하면 홍수맘님네 생선가게 문을 닫아야 할 지도 모르니, 그건 좀 안좋다고, 그러면서 홍수맘님네 생선 생각에 입맛을 다셨어요. 이 얼마나 저의 광합성 상상을 배반하는 신체의 조건반사인지.. 나의 의지를 무시한 아밀라아제의 분비여~~^^

비로그인 2007-06-2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읽은 <이게 다예요> 님의 "밥" 에 관한 페이퍼가 생각나요 :)
잘 읽었습니다 유쾌해요

섬사이 2007-06-21 08:35   좋아요 0 | URL
체셔님 댓글 보고 "이게 다예요"님 서재까지 찾아들어가 '밥' 페이퍼를 훔쳐보고 얼른 나왔어요. 당당하게 보고 댓글까지 남겨도 뭐라 할 사람 없을텐데, A형의 소심함은 이럴 때 여지없이 드러나곤 해요. 어쨌든 밥하기 싫어하는 주부가 나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다소 위로가 되려다가 전 15년차 경력의 주부이고 그 님은 아직 신혼의 달콤함이 가시지 않은 신참 주부라는 그 아득한 간격이 떠올라 그저 "에고~"하고 한숨만 흘렸다지요. 체셔님이 유쾌하셨다는 그 한 마디를 위로삼기로 했어요. ^^

무스탕 2007-06-2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덥썩~!! 저요저요!! 저도 밥하기 반찬하기 싫어요.
도대체 뭘 해도 잘 못하고 맛도 잘 못내겠고... ㅠ.ㅠ
정말 햇볕먹고 살고 공기먹고 살고 물먹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가끔 간식으로 잎사귀 몇 장..

섬사이 2007-06-21 09:13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전 광합성 인간을 상상하며 슈렉과 피오나공주를 떠올렸는데, 님의 댓글로는 팔랑팔랑 하늘하늘 우아하게 날개짓하며 꽃밭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요정이나 깊은 숲속 신비스런 샘물가에 앉아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는 샘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여신의 모습이 떠오르잖아욧~!!! (반칙이에요, 반칙!!!ㅋㅋㅋ)

토토랑 2007-06-2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저두 인간이 광합성을 하면 참 좋겠어요 >.<
ㅋㅋ 그럼 물과 산소가 광합성의 부산물로 나오나요? 생수회사들이랑 산소파는 회사랑은 없어질지두요

섬사이 2007-06-21 09:08   좋아요 0 | URL
토토랑님, 안녕하세요? 다른 님들 서재에서 종종 뵈었었는데, 정식으로 인사드리긴 처음인 것 같아요. 제 서재에 찾아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거기다 댓글로 말문을 터주시기까지~~ ㅎㅎ 정말 정말 고마워요. 꾸벅~ 사람들이 광합성을 하면 지구의 대기오염도 확 줄어들거에요, 그쵸? 그럼 별도 더 많이 볼 수 있을텐데.. 그럼 사람들 마음도 조금 더 착해지려나...^^

네꼬 2007-06-20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합성을 해도 배는 부른 거겠죠? 전 "배불리" 먹는 게 무척 중요한 세속적인 고양이거든요. (그것만 보장된다면 나도 광합성 찬성!)

섬사이 2007-06-21 09:06   좋아요 0 | URL
네꼬님, 그러구보니 식물들도 포만감이라는 걸 느낄까요? 왜 식물들 중에도 잉여양분을 저장해놓는 것들 있잖아요. 당근이나 감자 같은 알뿌리들.. (맞나요? 과학 상식이 부족해요.)ㅋㅋㅋ 네꼬님이 몸에 감자같은 알뿌리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요. ㅋㅋㅋ 제가 상상하는 네꼬님은 이미지 사진 속의 저 고양이라는 거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