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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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박완서 님의 책을 읽었단다. 박완서 님이 주로 활동하던 시절과 아빠가 책을 즐겨 읽기 시작한 시점과 시간 차이가 있어서 박완서 님의 책은 많이 읽지 않았어. 아빠 독서 기록을 찾아 보니 3권을 읽었더구나. 박완서 님은 1931년에 태어나셔서 비교적 늦은 1970, 불혹의 나이에 등단을 했다고 하더구나. 그 이후 2011년 돌아가시기 전에 많은 작품들을 남기신 지난 세기 우리 나라 대표 여성 작가 중에 한 분이란다.

이번에 읽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부제로 박완서 짧은 소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단편 소설이면 단편 소설이지, 짧은 소설이라고 했을까? 책을 읽어보니 왜 그랬는지 알겠더구나. 정말 짧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단다. 400페이지 남짓에 48편이 실려 있으니 한 편 평균이 10페이지 남짓이구나. 1970년대에 주간지 등에 기고했던 소설들을 모은 책이라고 했어. 1970년대면 지금으로부터 40~50년 전의 이야기들이구나. 그래서 약간은 생소함이 느껴지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시절이나 오늘날이나 사람 사는 것은 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앞표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아빠가 어렸을 때 안방 화장대에서 볼 수 있는 그 장면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란다. 큰 거울이 있는 앉은뱅이 화장대에 유선 전화기가 올려져 있고, 빗통이 있고, 거울 앞에는 결혼 사진이 세워져 있고 말이야. 그 당시 대부분의 집에 가면서 이런 스타일로 안방이 꾸며져 있었지. 옛 생각 물씬 나게 하는 그런 책표지구나. 책표지 뿐만 아니라 책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들도 옛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추억 힐링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단다.

 

1.

48편의 이야기는 1970년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단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어. 그 당시에는 20대 후반만 되어도 노총각 노처녀 소리를 듣던 이야기도 있었고, 남녀 간의 결혼에 대한 갈등, 결혼의 조건을 두고 재는 주인공의 심리 등을 실제처럼 잘 지어냈더구나. 1970년대 집에 유선 전화를 하나씩 놓기 시작해서, 전화기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실려 있었어. 그리고 1970년대부터 서울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서서 그런지 아파트로 이사 가서 겪는 이야기들도 여럿 실려 있단다. 요즘도 교육비 때문에 부모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1970년대에도 교육비로 걱정하는 이들이 있었나 보구나. 그런 이야기들도 실려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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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여보, 당신 이까짓 아파트 하나 샀다고 우리가 무슨 갑부라도 된 줄 알아요. 내가 집에서 살림이나 하게. 아직 멀었어요. 철이 사립 국민학교 치다꺼리도 치다꺼리지만, 철이라고 만날 국민학교만 다니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아유 말도 말아요. 그뿐이면 또 좋게요. 과외 공부 안 시키우? 아이를 낳아놓기만 하면 뭘 해요. 사람 노릇을 시켜야지. 사람 노릇 시키려면 돈이 무진장 드는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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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경제가 계속 발전하던 시기이다 보니 사회도 빠르게 변했단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고유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새로운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간의 의견 차이를 다룬 이야기들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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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82)

생활 양식은 서구화의 첨단을 가고 있는데 의식은 아직도 고전적인 걸 미덕으로 치는 걸 너희들은 조금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니? 과거의 생활양식 속에서도 부부란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와 애정을 확인하면서 살아야 했어. 아내는 옷 수발, 음식 장만 등으로 자기 존재와 애정 표현을 했고, 남편은 돈벌이와 바깥세상의 온갖 거친 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는 걸로 그 일을 했지만 지금 그런 분업의 한계가 모호해진 이상 어쩌겠니? 입으로도 해야지 입 뒀다 뭐 하니? 너희들도 열쇠 부부의 비극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내 방법 써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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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짧게 끝맺음을 하니 콩트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 몇몇 이야기들은 유머가 담긴 이야기들도 많아서 미소 짓게 하는 이야기들도 있었단다. 그 중에 결혼을 앞둔 어떤 예비신랑이 예비신부로부터 궁합이 안 좋다면서 헤어지자는 소리를 듣고, 본인도 궁합을 보러 가서 무당한테 들은 이야기를 읽고는 쿡,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단다. 궁합의 유래가 이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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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286)

실례가 안 된다면 궁합을 보아드리기 전에 궁합의 유래부터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예로부터 궁합이란 원치 않는 청혼을 거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겨났다고 전해지죠. 그건 다 아는 얘기고 오늘날까지 궁합이란 게 소멸하지 않고 날로 발전해온 과정 역시 남녀 간에 있어선 거의 영혼의 문제인 일방적인 사랑의 소멸과, 거기 따른 편리한 거절의 필요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게 나의 현장 체험인데요. 선생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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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여러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단다. 아무래도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다 보니 체온 그대로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어. 책을 가만히 만져보면 36.5℃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단다. 너희들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생소하고 낮 선 단어들이 너무 많아서 한참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서 읽어야겠구나. 불과 50년 전 이야기인데, 우리나라가 너무 빨리 변한 것 같구나.

오늘은 이렇게 짧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상철은 자기가 일등 신랑감이라는 걸 너무 믿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내가 마음으로부터 그 여자의 건강을 빌면서 손자가 결혼하는 걸 볼 때까지 살고 싶은 내 과욕을 줄여서라도 그 여자의 목숨에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문규는 그제서야 친구의 지난날의 그림의 미완성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그 참뜻을 알 것 같았다. 그는 지난날의 친구와, 지난날의 친구의 그림이 가슴에 저리도록 그리웠다. 그러나 미완성을 완성시킬 수는 있어도 완성을 미완성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명 있는 걸 생명 없이 할 순 있어도 이미 생명이 없어진 것에 생명을 줄 순 없는 것처럼. 문규는 친구의 완성된 그림을 갖고 싶지 않았고 친구를 만나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애써 그와 친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귀부인의 장막을 뚫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쓸쓸하게 친구의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화랑을 나왔다. - P138

젊은이나 어린이들과의 이런 언어의 불통에는 편리하게도 세대차이라는 방패막이가 있어 열등감까지는 안 느껴도 된다. 그러나 우리 나이나 우리보다 얼마 젊지 않은 사람들의 말귀를 못 알아들은 척까지 해야 되지 이 아니 서글픈 노릇인가. 그런 못 알아들을 말 중 외국에서 오래 살아온 친구들이 흔히 쓰는, 그쪽의 관용어에다 토씨나 접속사만 우리말로 하는 경우는 대강 넘겨짚어 알아듣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그 물 건너온 티 좀 작작 내라고 핀잔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상당한 지식인이어서 유창하게 논리적인 우리말 중 못 알아들을 말이 섞이면 적어도그게 사람 이름인자, 사람이라면 음악간가 문학간가 과학잔가? 또는 실재하는 사람인가 작중 인물인가, 아니면 새로운 주의나 경향, 사조(思潮)의 이름인가쯤은 짐작할 수 있어야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못 읽었다는 식의 실수를 안 할 수가 있다. 또 상대방을 함부로 높이 평가해 그런 학구적 상상력만 동원할 것도 아니다. - P264

"부인, 그래서 나쁠 것도 없잖습니까. 전 지금 오래간만에 행복합니다. 가슴이 소년처럼 울렁입니다. 늙어도 행복할 권리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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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0)

원한을 키우고, 또 잘못을 마음에 새기며 보내기에는 삶이 너무 짧은 것 같아. 우리는 누구든지 흠을 지니고 있고 그럴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이 썩어 갈 육신과 함께 그것들을 다 버리게 되는 날이 곧 올 거야. 이 성가신 육체에 타락과 죄가 떨어져 나가고, 영혼의 불꽃만이 남게 되는 시간이지. 조물주가 창조물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때처럼 순순하게, 무형적인 삶과 사고의 본질만이 남을 때가 올 거야. 그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거야. 어쩌면 다시 인간보다 더 고상한 존재와 소통하게 되겠지. 어쩌면 파리한 인간의 영혼으로부터 하늘의 천사로 밝아지는 영광의 단계를 통과하겠지! 설마 그 반대로 인간에서 악마로 타락하지는 않겠지? 아니야. 그건 확신할 수 없어. 내게는 또 다른 믿음이 있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나도 별로 말한 적 없지만 그 믿음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거기에 의지해. 그게 모두에게 희망을 던져 주니까. 그건 내세를 휴식으로 만들어 주지. 공포도 나락도 아닌 커다란 안식처로. 게다가 이 고의를 통해 나는 죄인과 그의 죄를 아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어. 죄는 밉더라도 죄인은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어. 그래서 복수는 결코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아. 수치를 당해도 그리 깊이 화나지 않아. 부당함은 나를 심하게 짓뭉개지 못해. 나는 마지막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살아.

 

(106)

그래, 내가 나를 좋게 생각해야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외톨이로 미움받는 건 견딜 우 없어. 헬렌 여길 봐. 너한테든, 아니면 템플 선생님에게든, 내가 정말 사랑하는 누구에게든 진정한 애정을 받을 수 있다면 내 팔이 부러져도, 황소가 나를 내던져도, 사나운 말 뒤에 섰다가 발굽에 가슴을 차이는 한이 있어도 난 기꺼이 감수할 거야.

 

(167)

인간에게 평온한 삶에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소용없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활동이 필요하고, 그걸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 내기도 하는 법이다. 나보다 더 적막한 운명에 처한 사람이 수백만이고, 자신의 운명에 말없이 항거하는 사람이 수백만이다. 정치적인 반란 이외에도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반란들이 격동하고 있는지 어느 누가 알고 있을까. 여인들은 보통 매우 차분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자도 남자들과 똑같이 느낀다. 그들의 오빠나 남동생처럼 여자들도 자신의 능력을 연습하고 노력해 볼 기회가 필요하다. 여자도 남자들이 괴로워하는 만큼, 경직된 속박과 답답한 정체를 고통스러워한다. 그들에게 푸딩을 만들고 스타킹을 짜고 피아노를 치고 가방에 수나 놓으라고 하는 것은 더 많은 특권을 가진 남성들의 생각이 편협한 탓이다. 관습이 허락하는 것보다 더 배우거나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웃거나 단죄하는 것은 생각이 얕은 자들의 경솔한 행동일 뿐이다.

 

(177)

나는 손필드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문지방을 넘어가면 정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용한 현관홀을 지나 어둠침침한 계단을 올라, 외로운 내 작은 방으로 들어가고, 늘 변함없는 페어팩스 부인을 만나 오로지 그녀와만 긴긴 겨울밤을 보낸다는 것은, 오늘의 산책이 깨운 나의 희미한 흥분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일이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한결 같은 생활의 보이지 않는 족쇄를 다시 나에게 채우는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감사할 수 없는 것이 되어 가는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의 족쇄. 차라리 힘겹고 불안정한 삶의 폭풍우에 내던져져 모질고 쓰라린 일을 다 경험한 후에, 지금의 이 평온함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너무 안락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지겨워진 사람이 오래도록 산책을 한 것만큼 좋으리라. 그리고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처럼, 나 같은 상황에서 꿈틀거리고 싶은 소망이 일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209)

솔직히, 저는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제 이해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라서 이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겠어요. 다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요. 나리는 자신이 선량하지 않다고 하셨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애석해하셨어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거 하나예요. 나리는 더럽혀진 기억이 영원한 맹독이 될 수 있다고 하셨죠. 제가 보기에 나리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날로부터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 단호하게 시작한다면 몇 년 후에 새로이 오점 없는 기억들, 즐거이 돌이켜 볼 수 있는 기억들이 쌓일 거예요.”

 

(297-298)

그러지, 간단하게. 당신은 혼자이기 때문에 추워. 그 안에 있는 불을 일으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당신은 병들었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최고의 고상하고 달콤한 감정을 멀리 떼어 놓았거든. 스스로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에서 다가오라고 손짓하지 않으니 당신은 어리석어. 당신은 그게 기다리는 곳으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334)

예감이란 이상한 것이다! 교감도 그렇다. 정조도 그렇다. 이 세 가지가 합해지면 인간이 아직까지 풀어내지 못한 하나의 신비가 된다. 나는 이제껏 예감을 비웃은 적이 없다. 나 스스로가 그런 기이한 예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교감이라는 것도 존재한다고 믿는다(예를 들면, 멀리 떨어져 오래도록 왕래가 전혀 없던 친지들 사이에, 그렇게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교감 작용은 인간의 이해력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정조라는 것 역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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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를 추억하며
마크 트웨인 지음, 마음속 샛별 옮김 / 황금비둘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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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잔 다르크에 관한 소설이 눈에 띄었단다. 일단 책표지가 예뻐서 눈에 띄었고, 아빠가 역사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또 눈에 띄었단다. 잔 다르크라고 하면 역사 교양서에서 잠깐 잠깐 스치면서 읽은 것들이 전부라서 온전히 그에 관한 책이라서 호기심을 들게 했단다. 그런데 지은이가 무척 익숙한 사람이었어.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으로 유명한 그 마크 트웨인 맞다. 마크 트웨인이 잔 다르크에 관한 소설을 썼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단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의 지은이까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읽고 싶은 욕구가 더 올라갔단다. 망설일 필요 없지.. 바로 사서 읽었단다.

책 소개를 보면 지은이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으며, 준비 기간만 12, 쓰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처음 이 이야기를 연재할 때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진 프랑수아 올든이라는 연재를 시작했대. 웃긴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한 자신의 이미지를 숨기고 싶었다고 하더구나. 이 소설은 진 프랑수아 올든이라는 사람이 실존 인물이었던 잔 다르크의 비서인 루이 드 콩트가 남긴 회고록을 번역한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단다. 이것은 모두 마크 트웨인이 허구로 만든 설정이었단다. 이런 설정부터 재미있구나.

 

1.

잔 다르크는 1412년 동레미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어. 루이 드 콩트는 잔 다르크보다 2년 이른 1410년에 태어났단다. 잔 다르크가 태어났을 때는 영국과 프랑스가 한창 전쟁 중이었단다. 100년 가까이 이어져서 백년전쟁이라고들 하지. 그런데 프랑스 내에서도 두 개 파로 갈려 있었어. 프랑스와 프랑스 왕을 지지하는 아르마냐크 파와 영국과 영국 왕을 지지하는 부르고뉴 파가 있었단다. 전쟁이 벌어지곤 있지만, 동레미 같은 시골까지 전쟁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단다. 가끔 길 잃은 군인들이 찾아오기도 했단다.

그러던 중 마을 사람들이 격분할 소식이 전해졌단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트루아 조약이란 것이 맺어졌는데 그 내용을 보면, 프랑스의 왕 샤를 6세의 딸 카트린과 영국의 왕 헨리 5세가 결혼한 거였어. 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공동의 왕이 된다는 것이 트루아 조약의 핵심이었단다. 프랑스의 왕 샤를 6세는 당시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왕세자였던 샤를 7세가 프랑스를 이끌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단다. 프랑스가 잉글랜드 군과 부르고뉴 파 군인들에게 밀려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 트라아 조약이 맺어진 거야. 동레미 사람들이 트루아 조약에 격분한 이유는 프랑스의 다음 왕은 당연히 세를 7세가 계승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를 뒤엎고 헨리 5세의 아이가 왕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트루아 조약 이후 동레미의 아이들도 큰소리 치며 전쟁에 참여하겠다 했어.

잔 다르크는 어느날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단다. 그것은 하느님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천사의 목소리일 수도 있었단다. 그 목소리는 잔 다르크에게 샤를 7세를 만나고 전쟁에 참여하라고 했어. 이제 고작 16살 소녀였는데, 하느님이 주소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만큼 잔 다르크가 특별한 사람이었나 보구나. 당연히 잔 다르크의 전쟁 참여를 아버지는 반대를 했지. 잔 다르크는 아버지 몰래 자신을 지지해주는 큰 아버지와 루이 드 콩트와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영주를 찾아갔단다.

영주를 만나서 자신이 들었던 목소리들의 내용을 이야기해주었어. 영주는 어린 잔 다르크가 하는 말을 어이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잔 다르크가 멀리서 벌어진 전쟁의 승부를 이야기했는데, 며칠 뒤 잔 다르크가 말한 그대로 결과가 영주에게 전달되었단다. 그때부터 영주는 잔 다르크를 믿고 군대도 지원해주면서 왕세자께 보냈단다. 그렇게 잔 다르크는 참전을 위해 동레미를 떠났단다.

 

2.

잔 다르크는 왕세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어. 법학자들과 신학자들, 주교 등이 잔 다르크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서 이런 저런 테스트를 했단다, 왕세자라고 하면서 가짜 왕세자를 세우기도 했어. 물론 잔 다르크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왕세자이지만, 금방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렸어. 그들은 잔 다르크가 들은 목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가 아니고 사탄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면서 잔 다르크에게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어보았단다. 긴박한 전쟁터에서는 분초를 다투고 있는데 이곳에서 시간을 계속 지체해야 하다니 잔 다르크도 답답했을 거야.

신학자들과 법학자들은 드디어 잔 다르크가 들은 말이 하느님의 부르심이 맞다고 하고 잔 다르크에게 총사령관의 지위를 주었단다. 시골에서 전쟁 경험이 전무했던 17살 잔 다르크가 프랑스 군의 총사령관이 된 거야. 잔 다르크 자신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하느님으로부터 다 들었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었단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와 영국의 최대 격전지인 오르레앙으로 향했단다. 루이 드 콩트를 비롯한 동레미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을 호위대로 임명하여 함께 전쟁터로 향했단다.

잔 다르크는 군대 문화에도 변화, 그러니까 쇄신을 가져왔어. 욕쟁이 라이르 장군이 사람들에게 욕을 못하겠단다. 욕을 하려거든 지휘봉에 하라고 했고, 라이르 장군은 그 말에 따라 욕을 하고 싶을 때면 지휘봉에게 했단다. 지휘봉이 무슨 죄…^^ 드디어 실전사전에 잔 다르크가 작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전에서 라이르 장군을 비롯한 장군들이 잔 다르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신들이 하던 대로 전투에 참여했단다.

잔은 나중에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반박을 했고, 장군들은 잔 다르크의 말이 타당하였기에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단다. 잔 다르크는 오를레앙에 도착을 해서, 오를레앙 재무관에 집에 머물게 되었어. 재무관의 딸 카트린과 같은 방을 쓰면서 친해졌단다. 잔 다르크는 잉글랜드군에게 선전포고문와 싸우지 말고 물러나라는 편지도 보냈지만, 잉글랜드군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단다.

잔 다르크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잉글랜드군의 첫 전투. 프랑스군이 승리를 거두었단다. 이게 얼마만의 승리이던가. 다들 승리를 자축하였고, 잔 다르크는 이때부터 오를레앙의 처녀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단다. 오를레앙에 이어 이번에는 오귀스탱 요새에서 대승을 거두고 점령했단다. 이 전후 이후 잔 다르크는 왕세자 샤를 7세를 만나게 되었고,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에게 뒤 라스라고 하는 귀족을 하사했단다. 잔 다르크는 하느님의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랭스를 진격하자고 했어. 하지만 대신들이 반대를 했단다. 랭스를 가는 길 곳곳에 영국의 요새들이 있다면서 말이야. 잔은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 계속 설득을 했고, 자르조와 파테에서 잇달아 승리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결국 랭스를 점령하게 되었어. 이 공로로 잔 다르크의 고향 동레미는 영원히 세금을 내지 않게 했단다. 이 때부터 약 360년 동안 동레미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랭스에서 왕세자 샤를 7세의 대관식이 진행했어. 잔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면서 파리까지 진격하자고 했단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신들이 반대를 했어. 랭스에서 머물면서 잉글랜드와 휴전을 하자고 했어. 하지만 그것은 잉글랜드군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전세가 역전되었으니 지금 바로 파리로 진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대신들의 반대로 심했기에 며칠 동안 시간이 지연되었단다. 샤를 7세라도 결단 있게 결정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뒤늦게 출발한 잔 다르크는 생드니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그만 부상당하고 말았단다.

그 틈을 타 대신들은 다시 왕을 부추겼고, 잉글랜드와 휴전을 체결하려고 했단다. 그리고 부상당한 잔 다르크를 후방으로 옮겼어. 이것은 잔 다르크가 본의 아니게 목소리의 명령을 처음으로 어긴 것이 되었단다. 목소리는 생드니에 머물라고 지시를 했거든. 잉글랜드군과 부르고뉴군이 반격에 나섰고, 프랑스군은 패배를 하게 되었단다. 잔 다르크는 그만 생포되고 말았단다. 대신들과 우유부단한 샤를 7세의 패배였어.

 

3.

잔 다르크는 감옥에 있을 때 두어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다시 잡혀왔고 루앙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어. 잉글랜드는 잔 다르크에 높은 몸값을 매겼는데 프랑스는 그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잔 다르크는 계속 감옥에 있어야 했어. 잔 다르크가 없었다면 샤를 7세는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테고 프랑스도 없어졌을지도 모르는데 고마움을 모르는구나.

루이 드 콩트는 고향 친구 노엘과 재회하고 파리고 갔단다. 루이 드 콩트는 망숑 신부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는데, 망숑 신부는 잔 다르크 재판의 기록담당관이었어. 그래서 잔 다르크가 갇혀 있는 루앙의 지하감옥에 갈 수 있었단다.

잉글랜드와 부르고뉴파도 잔 다르크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고, 명분이 필요했단다. 그래서 재판이 열리게 되었어. 주 재판관은 코숑 신부라는 사람이 맡았고, 그 외에 판사만 62명이 참석하였단다. 잔 다르크의 유죄 판결에 대한 강한 의지가 보이는구나. 재판부는 잔 다르크를 사탄이라고 고발했고, 위증죄까지 포함하여 유죄라고 주장했어. 잔 다르크는 변호사도 없이 혼자 변론해야 했단다. 프랑스 왕 샤를 7세와 대신들은 이 재판에 대해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단다. 와서 부당한 재판이라고 항변을 하거나

잔 다르크를 구출하려는 작전을 펼쳤어야 했는데 말이야. 루이 드 콩트는 당연히 프랑스군이 잔 다르크를 구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라고 믿었단다. 잔 다르크가 전쟁에서는 훌륭한 사령관이었지만, 재판에서 위대한 변호사였단다. 자신에 대한 혐의를 하나하나 반박을 했단다. 계속된 재판으로 지치기도 해서 잘못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잔 다르크는 위기를 잘 넘겼단다. 재판이 이어질수록 잔 다르크에게 유리하게 되자, 코숑 신부는 재판을 비공개 재판으로 변경하였단다.  잔 다르크에 대한 좋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어. 잔 다르크가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잘 변호하다 보니, 재판관은 고문도 하고 협박까지 했단다. 코숑 신부는 파리 신학대학의 교수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잔 다르크의 12항목에 대한 죄를 물었고, 신학대학의 교수들은 유죄라는 의견을 주었단다.  

결국 잔 다르크는 유죄 판결을 받았어. 코숑 신부는 루앙의 대주교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잔 다르크의 유죄 판결을 처음부터 정해놓고 재판을 진행했던 거란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부패의 상징 코숑 신부가 아닐까 싶구나. 죽음을 앞둔 잔 다르크는 심신이 다 약해져 갔단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재판부의 문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어. 그러자 내내 입고 있던 남자 군복을 벗기고 드레스를 입혔단다. 당시 중세 유럽에는 마녀사냥이라는 악습이 퍼져 있었는데, 잔 다르크도 그렇게 드레스를 입히고 마녀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아. 여전히 루이 장 코트는 프랑스군이 나타나서 잔 다르크를 구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끝끝내 오지 않았고, 결국 잔 다르크는 화형에 처해지고 하늘의 별이 되었단다.

잔 다르크가 죽은 지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 재판에 대한 이의 신청이 진행되었고, 교황이 승인을 해주어 복권하게 되었다는구나. , 슬픈 일이구나. 시골의 한 소녀가 갑자기 나타나 짧은 시간에 계속 밀리던 전쟁의 분위기를 한꺼번에 바꾸어 놓았고, 또 짧은 시간에 사라져 버린, 역사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가 아닐까 싶구나. 지은이 마크 트웨인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잔 다르크의 전체적인 평가를 해주었는데, 그 중에 일부를, 좀 길지만 함께 읽어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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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627)

잔 다르크에게 애국심이란 감정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열정이었다. 잔의 애국심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었다. 잔은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도록 애국심으로 몸으로 변한 존재였다. 사랑과 자비, 동정심과 용기, 전쟁과 평화, 시와 음악, 이런 것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곧 남자로나 여자로나, 또 어떤 나이로나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국심이라는 것은 이제 막 피어난 젊고 가녀린 이 소녀의 모습으로만, 곧 순교자의 화관을 머리에 쓰고 조국을 얽어매던 굴레를 끓어버린 칼을 손에 든 이 소녀의 모습으로만 세상 끝날까지 남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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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그러나 잔은 법률 책을 읽은 적도 없고 법원에 가본 적도 없었지만 열여섯 살에 재판에서 탁월한 능력을 드러냈다.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지만 첫 전투에서 탁월한 지휘관의 능력을 보였다. 첫 전투에서 보인 용기도 교육의 결과가 아니었다. 남자아이라면 남자는 겁을 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기에 용감해질 수 있지만 잔은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였다. 젊음이 꽃을 피우던 시절, 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힌 잔은 몇 주 동안 자신을 죽이려고 애쓰는 많은 재판관들, 곧 프랑스의 가장 명민한 지성들 앞에 앉아 있었다. 잔은 자기 편이 아무도 없었고 재판에 관련된 일을 모른 채 혼자 싸웠지만 재판관들의 학식을 무학의 지혜로 압도했다. 그리고 저들의 속임수와 계략을 타고난 지혜로 무찔러 저들을 놀라게 했고, 이 모든 불리한 상황에도 날마다 승리를 거두어 한 발도 후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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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

잔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행복하지 않았다. 잔은 동정심이 많았다.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둔 전투에서 잔은 승리를 잊은 채 죽어가는 한 적군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누인 채 동정어린 말로 위로해 주었다. 전쟁 포로들을 학살하던 잔인한 그 시절에 잔은 아군을 가로막아 적군의 포도들을 모두 살려 주었다. 잔은 너그러웠고 잘못을 쉽게 용서해 주었으며 이타적이고 너그럽게 베푸는 사람이었다. 야비한 것이라고는 한 점이 없이 잔은 순결했다. 그리고 언제나 잔 다르크는 소녀였다. 소녀답게 귀엽고 고매했다. 처음 부상을 당했을 때 잔은 겁을 먹고 가슴에서 붉은 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는 잔 다르크였다! 이내 수하의 장군들이 퇴각 나팔을 불게 하는 것을 보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공격을 이끌어 적의 요새를 점령했다. 잔의 성품은 모난 데가 없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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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년에 파리 여행을 갔을 때 루브르 박물관 근처 길거리에 말을 탄 사람 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Shawn이 그것을 보고 잔 다르크 같다고 했잖니. 아빠가 구글링으로 찾아보니 잔 다르크 동상이 맞았지. 프랑스 국민이라면 잔 다르크는 국민 영웅이 아닐까 싶구나. 100년 전쟁에서 잔 다르크가 없었다면 오늘날 프랑스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야. 여전히 잔 다르크에게 고마움을 느끼니 파리 거리 한복판에 동상을 세워둔 것이라 생각되는구나. 당시 샤를 7세가 몸값을 주고 잔 다르크를 구해주거나 재판장에서 항의를 해서 잔 다르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게 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안타깝지만 과거를 돌릴 수 없는 법이 책은 좀 두껍기는 하지만 너희들도 읽어볼 만하다 생각했어.. 지금은 바쁜 것 같으니 나중에 한번 읽어 보렴.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유명한 사람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우리 시대가 아닌 그 시대의 잣대로 그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

책의 끝 문장: 앞에서 내가 얘기했던 잔 다르크의 그 모든 환경을 볼 때, 즉 출신과 어린 나이, 여자라는 것과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점, 어린 시절의 환경, 그리고 장애가 되는 온갖 조건에서도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갈고닦아 전장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재판에서 승리한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인간이 낳은 가장 비범한 사람이 잔 다르크임을 알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우리 시대가 아닌 그 시대의 잣대로 그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 한 시대의 잣대로 그 이전 시대의 고귀한 인물들을 평가하면 그 빛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잣대로 평가하면 아마도 사오백 년 전에 살던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 모든 면에서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잔 다르크만큼은 예외이다. 어느 시대의 잣대로 평가해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하거나 의심할 필요 없다. 어느 한 시대의 잣대로도, 또 모든 시대의 잣대로도 잔 다르크는 흠 없고 이상적일 정도로 완벽하다. 잔 다르크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 자리는 죽을 수밖에 사람이 오른 그 어떤 높은 곳보다도 위에 있다. - P12

무자비한 잔혹함이 법이었을 때에 잔 다르크는 동정심으로 가득했다. 절개를 찾아볼 수 없는 때에 굳은 절개를 가진 사람이었고 영예가 무엇인지 잊어버린 시대에 영예로운 사람이었다. 어떤 것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비웃는 시대에 잔 다르크는 자신의 신념을 바위처럼 굳게 지킨 사람이었고, 속까지 거짓으로 물든 시대에 한결같이 진실한 사람이었다. 아첨과 비굴이 난무한 시대에 잔 다르크는 품격을 흠 없이 유지했다. 조국의 가슴에서 희망과 용기가 죽어 사라진 때에 잔 다르크는 꺾이지 않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사회 고위층의 몸과 마음이 더러운 때에 잔 다르크의 몸과 마음은 흠 없이 순결했다. - P13

"아빠, 주지 말라 하시면 아빠 말씀대로 해야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몸의 한 부분이 한 일 때문에 몸의 다른 부분이 벌을 받는 건 옳지 않잖아요. 군인 아저씨의 머리가 나쁜 짓을 했더라도 배고픈 건 머리가 아니라 배잖아요. 배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으니 아무 잘못이 없잖아요. 그리고 그럴 마음이 있어도 배는 실행할 수가 없었을 테니 제발…" - P50

너희는 파테 전투를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너희는 프랑스인이고 파테 전투는 너희 나라의 길고 긴 역사에 기록된 가장 장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파테 전투는 우뚝 서서 구름 위로 머리로 내밀고 있다! 너희가 어른이 돼서 파테로 순례를 떠나게 된다면 그곳의 어떤 것 앞에서 모자를 벗고 묵념에 잠길 수 있을까? 구름에 닿을 듯한 기념비 앞에서일까? 그래, 모든 나라는 어느 시대나 전장에 기념비를 세워 공을 세운 이들의 이름과 승리에 대한 기억을 파릇파릇 새롭게 하려고 한다. 프랑스는 파테 전투와 잔 다르크를 홀대하고 잊어버릴까? 오랫동안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다른 전쟁과 영웅과 비교해 그에 걸맞은 큰 기념탑을 세우게 될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그만한 것을 세울 공간이 있다면 말이다. - P355

그런데 외딴 시골에서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는 시골 처녀가 나와서 백발노인같이 오래된 이 전쟁, 3세대 동안 이 땅을 휩쓸고 모든 것을 불태운 이 전쟁에 맞섰다. 그리고 가장 짧지만 가장 놀라운 전투가 역사에 기록되었다. 7주 만에 전쟁은 끝났다. 7주만에 91살 먹은 거인 같은 거대한 전쟁을 일어나지 못하도록 때려눕혀 버렸다. 시골 처녀는 오를레앙에서 그 거인에서 놀라운 한 방을 먹이고, 파테에서는 도망가는 거인의 등에다가 마지막 한 방을 먹였다. - P356

왕들은 대신들과 장군들을 배신하고 대신들과 장군들도 국가의 수장을 배신하면서 서로를 배신해 왔다. 병사들은 잔을 전적으로 의지했고 또 잔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잔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잔은 얼어붙은 급류를 녹여서 끓어오르게 하는 태양이었다. 그 태양이 없어졌으니 다시 얼어붙은 것이다. 프랑스군과 온 프랑스는 이전의 모습, 곧 죽은 시체로 되돌아갔다. 단지 죽은 시체일 뿐이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각도 희망도 포부도 움직임도 없는 시체일 뿐이었다. - P446

그러나 그리 생각하고 바랐던 내가 바보였다. 잔 다르크는 다른 인간들과 다른 존재였다. 원칙에 대한 충성, 진리에 대한 충성,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충성, 이 모든 것들이 잔의 뼈와 살 속에 있는 잔의 일부였다. 잔은 변할 수 없었다. 잔은 자기 몸속에 있는 것을 내쫓을 수 없었다. 잔은 충성 그 자체였고 인간이 된 절개였다. 잔이 어느 곳에 서서 발을 딛고 있으면 그곳에서 잔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옥도 그곳에서 잔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잔의 음성들은 잔이 저들이 요구하는 항복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잔은 굳건히 서 있었다. 잔은 온전히 복종하며 무슨 일이 닥쳐와도 기다릴 것이다. - P555

잔은 바쁜 나날의 음악 같은 즐거운 소리들, 수천 가지 다양한 소리들에 둘러싸여 살아왔지만, 이제는 자기를 감시하는 감시병들의 단조로운 걸음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잔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지만 이제 이야기 나눌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었다. 잔은 쉽게 깔깔대며 웃곤 했지만 이제는 벙어리가 되었다. 잔은 친구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명랑했으며, 바쁘게 이런저런 일로 하고 온갖 재밌는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오로지 쓸쓸함과 납처럼 무거운 시간을, 우울한 정적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루하게 가만있을 따름이었고, 낮이든 밤이든 같은 원을 빙빙 돌면서 머리를 피곤하게 하고 가슴을 부서뜨리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살아 있지만 죽은 것, 바로 그것이 분명 잔이 여기서 누리는 것이었다. - P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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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8-27 0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크 트웨인의 글로 잔다르크를 어떻게 썼을지 궁금하네요.
이 책 읽고 싶네요, 장바구니로!

bookholic 2024-08-27 18:41   좋아요 1 | URL
마크 트웨인이 이런 책을 쓴 것으로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천재 작가들은 역시 정해진 영역이 없나 봅니다.
그레이스 님도 취향이 맞길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4-08-27 1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어요!! 장바구니로!!^^

bookholic 2024-08-27 18:43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이 꼬마요정 님 취향에 맞길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고요~~
 















(36)

집단생활의 역학은 아른험 집단에서 일어난 지도력의 변화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변화 과정은 수개월에 걸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리더십의 변화가 단 몇 차례의 투쟁으로 결판나지 않았다. 내 연구는 결코 눈에 띄지 않게 계속되는 사회적 책략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최종적으로 리더의 추방으로 이어진다. 집단의 안정성은 그 토대부터 천천히 무너진다. 개체들은 제각기 음모에 찬 감시망 속에서 자기가 완수해야 할 역할을 가지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리더는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해 나가지만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단독으로 자기의 리더십을 집단에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지위는 부분적으로 다른 침팬지에 의해 주어진다. 리더, 즉 우두머리 수놈도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감시망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39)

1년 중 침팬지들이 가장 기쁜 날은 바로 겨울 주거지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날 아침이 되면 사육 담당자가 야외 사육장으로 통하는 문을 통보 없이 열어젖힌다. 침팬지들도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는 없지만, 건물에 있는 모든 문의 움직임을 소리만으로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집단 전체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반응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집단 별로 나뉘어 야외로 나간다. 비명과 후우후우하는 소리는 여전히 계속된다. 광장 여기저기서 침팬지들이 서로 포옹하거나 키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세 마리, 또는 그 이상의 침팬지들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거나 서로의 등에 올라타기도 한다.

 

(49)

침팬지의 표정은 각각의 특정한 기분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즐거운 기분과 불안한 기분 사이의 차이는 이빨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지로 추측할 수 있다. 침팬지는 놀라거나 괴로울 때면 즐거울 때보다 훨씬 길게 이빨을 드러낸다. 보통의 구경꾼에게 입을 크게 벌린 표정이 즐거워서 웃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적어도 침팬지의 경우는 웃을 만한 일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 확실하다. 이와 같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엄마가 제멋대로 방치해서 외톨박이가 된 새끼가 집단 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구성원과 싸우게 된 제법 나이든 침팬지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서열이 높은 침팬지는 좀처럼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

 

(76)

이런 견해에 따르면 기술적인 창의성은 부차적인 발전이다. 영장류 지능의 진화는 꾀로 상대방을 이기고, 속임수 전략을 감지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타협을 이루며,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사회적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침팬지들은 이런 영역에서 분명히 뛰어나다. 그들이 가진 기술적인 재주는 인간보다 떨어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들의 사회적인 능력도 그렇다고는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79)

침팬지들은 각기 나름대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얼굴 생김새의 특징으로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듯 침팬지들도 서로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침팬지들은 각자 걷는 법, 잠자는 자세, 그리고 앉는 모양새에도 특징이 있어 머리를 돌린다거나 등을 만지는 것만 보고도 어떤 놈인지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개성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각각의 침팬지들이 집단 내에서 동료들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이다. 이런 차이는 사람들을 특징 짓는 데 사용하는 것과 똑 같은 형용사를 쓰지 않는다면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다.

 

(106-107)

그 사육사는 일하는 날이면 종종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아침에 단디를 잠자리에서 밖으로 불러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단디는 다른 침팬지들과 같은 시간에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매몰차게 거부했다. 그에 대한 벌칙으로 사육사가 하루 종일 음식을 주지 않으려고 하자 나는 이렇게 충고했다. 그런 심한 수단은 옛날에나 통하던 것이었고, 그러자 사육사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영리한 묘안을 생각해냈다. 며칠 지나서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다른 챔팬지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는데도 단디는 손을 놓고 실내에 앉아 있었다. 사육사는 단디의 손에 바나나 두 개를 들려주었고, 그러자 곧 단디가 밖으로 나왔다. 사육사는 자신이 단디가 밖으로 나오도록 가르친 것으로 여겼지만, 내 생각에는 거꾸로 단디가 사육사로 하여금 바나나를 가지고 오도록 훈련시켰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았다. 만일 침팬지에게서 그런 뇌물 수수가 유행처럼 번지기라도 한다면 매일 아침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127-128)

큰 소란이 순식간에 시작된 것처럼 평화도 그렇게 찾아온다. 이에룬이 자리를 잡으면 다른 침팬지들이 서둘러 그의 곁으로 와 인사를 한다. 마치 왕이나 된 것처럼 집단적 경의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신하 몇쯤은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는 듯 무시한다. 이 같은 의례(formalities)’가 끝나면 모두가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고 새끼들도 어미에게서 떨어져 멀리 돌아다니며, 이에룬은 편안한 자세로 암놈들의 털고르기에 몸을 맡기거나 요나스나 바우터 같은 새끼들과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 새끼들은 늘 두목과 장난 싸움을 할 태세가 되어 있다. 새끼들은 이에룬에 대한 경의는 까맣게 잊어버린 양 그를 쫓아다니며 모래를 뿌리거나 나무 막대기를 집어던진다.

 

(142)

내 경험에 의하면 장성한 수놈 침팬지 사이에서 나타난 위협 과시의 경우, 열 번 중 네 번 정도가 이에룬이 비명을 지르고 라윗이 빰을 강하게 후려치는 것과 같은 실제적인 충돌로 이어졌다. 이 같은 사건은 대개 위협, 추적, 비명 같은 일련의 행동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놈들 사이에서 서로 때리는 일은 흔하지 않지만 한 번 가격을 했다고 그 자체로 싸움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다툼일 때는 실제로 맞수끼리 서로 붙잡고 물어뜯는다. 백 번의 충돌 가운데 한 번 이하, 정확하게는 수놈까리의 대결 중 0.4퍼센트만이 진짜 결판을 내는 결투에 이른다. 빈도는 낮지만 결투의 위협은 늘 상존하고 있고, 바로 이런 점이 우위 다툼 과정의 긴장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164)

우리는 싸움의 결과를 사회적 관계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회 관계가 싸움의 결과를 결정했다. 뒤에 살펴볼 우열을 둘러싼 교섭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 사회적인 배경이 경쟁자들의 자신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다른 구성원들의 태도에 의해 그들의 실력이 결정되는 것과 같았다(이것은 축구팀이 원정 경기보다는 홈 경기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것과 비슷하다). 한 달쯤 뒤 숙소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라윗은 이에룬보다 육체적으로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집단 전체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인하기까지는 9주일이나 더 걸렸다. 그 무렵 이에룬은 더 이상 다른 동료들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파위스트는 이미 그의 진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라윗은 이에룬에게 노골적으로 도발하기 전에 먼저 집단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최후의 결전에서 거둔 그의 승리는 단순히 야만적인 힘의 과시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라윗이 이에룬에게 다른 구성원들의 태도가 이미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71)

털고르기, 눈길 맞추기, 평화 협정, 중재 등을 생각하면 화해라는 주요 테마가 우리의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행동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분명 집단생활을 파괴할 우려가 있는 여러 세력에 대한 건설적인 균형추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화해 행동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인간이나 동물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막대한 연구비가 투여되었지만 그 행위가 어떤 식으로 종결되는지에 대한 연구에는 무심했다.

 

(185)

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 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 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 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룬의 몰락은 그가 라윗이나 니키의 공격으로부터 다른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라윗의 행동도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라윗은 암놈들을 공격하거나 이에룬에게 지원을 요청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을 시위했던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자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서 스스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231)

동물원 관람객들 중에는 침팬지의 성행위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함께 온 아이들의 손을 잡아당기며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인간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고, 숨을 죽인 채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섹스는 누구라도 냉정함을 잃게 만든다. 부풀어오른 암놈들의 음순은 즉각적으로 주목을 끈다. 외부인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부풀어오른 암놈들의 아랫도리에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암버르나 호릴라 같은 암놈의 성기는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침팬지의 성기가 역겹게 느껴지거나 만성적인 종기로 오해받기도 한다. 언젠가 한 여성이 동물원의 안내창구로 찾아와서는 괴물처럼 빨간 머리를 한 침팬지가 있다고 제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암놈 한 마리가 팽창된 성기를 자랑스럽게 공중에 드러내고 잠시 물구나무를 섰던 모양이다. 그것은 발정한 암놈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세였다.

 

(248)

왜 이토록 너그럽지 못한 것일까? 어째서 수놈들은 다른 놈들을 가만 놔두지 못하는 것일까? 질투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관건은 그런 질투의 기능이 무엇인가이다. 질투에 수반되는 긴장과 위험이 아무런 긍정적인 기능을 갖지 못했다면 질투는 이미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성행위를 둘러싼 수놈 간의 경쟁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암놈은 한 마리의 수놈에게서만 수정된다. 수놈은 다른 수놈들은 암놈에게서 멀리하도록 해야 그 암놈이 낳은 새끼의 아비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너그러운 수놈보다는 질투심 많은 수놈이 자신의 자식을 임신시킬 확률이 높아진다. 만약 질투심이 유전되는 것이라면(이것이 이 이론이 전제하는 바이다) 이런 성질을 가진 새끼들이 점점 많이 태어날 것이며 훗날 어른이 되어 다른 수놈들을 번식 행위에서 배제하려 들 것이다.

 

(270)

서열을 결정짓는 원리를 성별에 따라 다르다. 수놈 사이에서는 연합이 우열을 결정한다. 수놈이 암놈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주로 육체적 우월성에 기인한다. 한편, 암놈끼리의 서열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성격나이.

 

(279)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 선천적인 사회적 성향을 사용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날개를 갖고 태어난 어린 새가 비행에 숙달하려면 몇 달 간의 연습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적 전략의 경우에 경험은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나는 경험을 사회적 과정 자체에 직접 활용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경험을 사회적 과정 자체에 직접 활용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경험을 미래에 투영하는 경우다. 이 중 첫 번째 가능성은 이에룬 같은 침팬지가 니키를 지원함으로써 그가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올지를 알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조건화될 수 있다. , 특정한 행동이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283)

인간은 말하는 영장류이지만 행동은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말다툼, 도발적인 언어폭력, 항의와 간섭, 화해의 언사 등 여러 형태로 언어를 활용하지만, 침팬지는 그것들을 언어가 아닌 형태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인간이 말 대신 행동으로 무언가를 표현할 경우에는 침팬지와 더욱더 유사해진다. 침팬지는 비명과 큰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리고, 물건을 던지고, 도움을 청하고, 나중에는 우호적인 접촉이나 포옹으로 무마하려 한다. 우리 인간들도 보통 의식적인 결정 없이 그러한 형태의 행동을 모두 연출한다. 이러한 행동들의 동기를 볼 때 인간과 침팬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298)

다른 침팬지들을 위해 가지를 붙들고 있어주는 행위는 연합 형성 행위 그 이상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도움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뭇잎과 고기를 나눠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가 성적 특권을 양보한다거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보다는 선뜻 이뤄질 수 있는 관용적 행위라고 여긴다. 물론 이 두 가지 형태의 협력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침팬지 수놈은 물질적인 것을 나눌 때에는 놀랄 정도로 너그럽다. 자기 손에 있는 물건을 암놈들이 낚아채는 것조차 용인할 정도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적 행동에서도 나타난다(라이벌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지만). 그들은 도움을 줌으로써 동시에 통제하려 한다. 이를 보호해주는 대신에 그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아내는 것이다.

 

(312-313)

인간을 침팬지와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욕적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죄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동기를 더욱 동물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들 사이에서 권력 정치는 단지 나쁘다거나 더럽다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른험 집단에 사는 침팬지들에게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주적 구조도 안겨주었다. 모든 파벌들은 일시적인 권력 균형에 이를 때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서열상의 지위를 새롭게 결정한다. 다소 유동적인 지위가 고정될 때까지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 같은 서열의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 경쟁과 충돌을 제한하는 응집적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육아, 놀이, 섹스, 협력 등은 그로 인해 찾아오는 안정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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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대한민국 스토리DNA 1
이광수 지음, 이정서 편역 / 새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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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지은이가 별로거나 문제가 있으면 책을 꺼리게 된단다. 친일파 변절의 아이콘 이광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란다. 변절하기 전 작품들은 읽을 만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빠도 예전에 이광수의 <무정>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단다. 이번에 읽은 책 <단종애사>는 비운의 왕 단종에 관한 역사소설로 읽고는 싶으나 역시 지은이가 이광수라는 점에서 좀 망설였단다. 이광수가 <단종애사>를 쓴 시점이 본격적으로 친일로 돌아서기 전인 1928년도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광수가 변절의 기미를 보인 것은 1920년대 초반에 쓴 <민족개조론>때라는 이야기도 있단다. <민족개조론>을 쓴 시점이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상하이로 망명 갔다가 여자 문제로 다시 국내로 돌아온 시점이기도 해.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관한 이야기는 아빠가 작년에 이야기해준 강준만의 <근대사산책(6)>에서 좀더 자세히 알 수 있단다.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단종에 관한 이야기란다. 삼촌인 세조한테 왕자를 빼앗기도 멀리 강원도 영월에 유배를 가서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단종. 이미 여러 책들에서 단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지만 또 단종에 관한 책을 읽은 이유는 소설로는 어떻게 그 이야기를 그랬을까, 궁금했단다. 오래 전에 북한 작가 림종상의 <사육신>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도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어. 그 소설의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읽고 쓴 독후감이 있어서 한번 읽어보았단다. 두 소설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1.

1441년 세종 23 7 23일 단종이 태어났단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는 문종을 비롯한 대군 8, 공주 2명이 있었고, 세종은 다른 후궁으로부터 군 10, 옹주 2명도 있었어. 그 중에 첫째 아들 문종이 세자로 책봉되었단다. 문종이 세자일 때 세자비 휘빈 김씨였는데, 문종은 세자비를 무척 사랑했단다. 그런데 소헌왕후 심씨가 질투를 했대. 그리고 궁녀들의 모략으로 휘빈 김씨는 누명을 쓰고 폐위가 되었어. 문종이 무척 상심했겠구나.

뒤 이어 세자비가 된 사람은 순빈 봉씨였어. 문종은 순빈 봉씨를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세자비가 된 지 8년째 아이가 없었어. 그런 와중에 궁녀 양씨가 아이를 임신했단다. 그렇게 되자 순빈 봉씨는 궁녀 홍씨와 짜고 궁녀 양씨를 독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어. 이 일로 순빈 봉씨마저 폐위를 당했다는구나. 문종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여자 문제가 자꾸 복잡해지는구나. 그 다음 세자비로 들어선 이가 나중에 왕후가 되는 현덕왕후 권씨란다. 현덕왕후 권씨는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았는데,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거야. 단종은 세종의 후궁 중에 한 명인 혜빈 양씨가 키웠단다. 혜빈 양씨가 얼마 전에 영풍군을 낳아서 모유를 할 수 있었거든. 혜빈 양씨는 심성이 찾아서 자기 아들보다 단종을 더 잘 챙겼고, 단종은 커서서 혜빈 양씨한테 많이 의지했다고 하더구나.

문제는 문종이 즉위한 지 3년도 안되어 죽고 말았다는 거야. 당시 단종 나이는 고작 12살이었어. 왕이 어리면 섭정을 하기 마련인데 문종이 죽으면서 그것을 식구들이 아닌 영의정 황보인 등 노신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죽고 말았어.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문종은 수양대군 등 동생들에게 아들을 맡겼어야 했다고 생각해. 물론 그렇다고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하지 안 했을 거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모략꾼인 한명회와 만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구나. 이미 섭정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명분 없이 왕자리까지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물론 아빠의 개인적인 생각이란다.

수양대군은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승하한 문종에 섭섭해 했어. 그걸 눈치 챈 권람이라는 자가 접근하여 수양대군을 떠보기 시작했단다. 에둘러 이야기했지만 결국에는 정권을 차지하라는 거였어. 그러면서 권람은 개성에서 경복궁직이라는 한직에 있는 한명회를 추천해 주었단다. 한명회가 한직에 있었지만 중앙정부에 진출하려는 기회를 복고 있었던 사람이었어. 수양대군 입장에서는 지방의 한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무슨 능력이 있겠냐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수양대군은 한명회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수양대군은 날마다 권람, 한명회와 모임을 갖고 쑥덕쑥덕 했단다.

단종이 왕에 올랐을 때 명나라에 그 소식을 알리는 사신보을 보내야 했어. 단종은 자신의 매부, 그러니까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을 보내려고 했지만, 수양대군이 자청해서 자신이 가겠다고 했단다. 아무도 수양대군의 말을 막지 못했고, 수양대군이 명나라를 다녀왔단다. 이때 수행하는 사람은 집현전 학자 출신 신숙주도 있었는데, 수양대군이 이때 신숙주를 자기 편으로 포섭한 것이 아닐까 싶구나. 명나라를 다녀 온 후 수양대군은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단다. 한명회는 여러 무인들을 모았어. 그리고 디데이.

 

2.

이 반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좌의정 김종서였단다. 김종서는 세종 때부터 북벌을 정벌한 장군이자 문신이기도 한 사람이었어.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데 무력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힘으로 거사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김종서를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결사의 날, 수양대군의 측근들도 의견이 분분하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 수양대군은 직접 무리들을 데리고 김종서를 찾아갔단다. 사전에 한명회가 조언해준 대로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를 자리 비우게 한 다음, 데리고 간 무리들로 하여금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쳤단다. 김종서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뒤늦게 아들 김승규가 와서 저항했지만, 김승규도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곧바로 단종을 찾아갔어.

수양대군은 모든 일은 하룻밤 사이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전두환의 1212군사구데타가 생각나는구나. 몇 달 전에 본 영화 <서울의 봄>의 대사도 생각났어.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란이라고 했던 말.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는 것 같구나.

단종을 찾아온 수양대군이 말하기를, 영의정 황보인과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왕위를 세우려는 반란을 도모했다고 이야기했어. 그래서 그 반란 사건을 진압하고 있다고 했어. 단종의 처지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단다. 사전에 작성된 한명회의 살생부에 적혀 있던 사람들이 궁으로 소환되었어. 그들은 왕의 부름이 있으니 궁 안에 오게 된 것인데 이유도 제대로 듣지 않고 다 죽고 말았단다. 그 중에는 영의정이었던 황보인도 포함되어 있었어. 역사는 이것을 계유정난이라고 한단다. 나중에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을까 싶구나.

다음날 수양대군과 수양대군의 측근들이 권력을 대부분 차지했단다. 수양대군은 영의정이 되었고, 좌의정은 정인지, 우의정은 한확이 되었어. 그 외 도승지 최항, 대사간 이계전, 좌찬성 신숙주 등 중요 요직을 모두 수양대군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었어. 안평대군도 이 반란에 연루되었다고 하면서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안평대군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 같구나.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반란의 주동자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야. 이후 정인지와 신숙주는 안평대군을 계속 죽이라고 상소를 올렸지만 단종은 계속 거절했단다. 단종도 어리기는 하지만 안평대군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야.

….

한편, 수양대군의 역모 사건을 제대로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어. 도총관 성승의 집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였단다. 성승의 아들 성삼문을 비롯하여 박팽년, 이개, 하위지, 김질 등이 모여서 안평대군을 살릴 방법과 수양대군을 처단하기 위한 회의를 했어. 그들은 안평대군의 무죄를 주장한 글을 가지고 좌참판 허후를 찾아갔단다. 허후는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 중에 수양대군에 포섭되지 않은 사람이었어. 허후도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다음날 정인지를 고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이미 수양대권이 정권을 다 잡고 있었어. 정인지는 계속 안평대군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상신을 올렸고, 단종은 계속 거절했어. 결국 수양대군이 직접 사약을 내렸고, 동생 안평대군을 그렇게 죽고 말았단다.

 

3.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은 지 2년이 되었어. 단종도 즉위한지 3년째가 시작되었어. 1455년이었지. 이제 슬슬 다음 단계를 시작하려고 했어. 단종이 나이를 더 먹게 되면 왕권을 강화할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말이야. 정인지는 단종에게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선위하라고 매일같이 상소를 올렸어. 단종이 꿈쩍하지 않자 신숙주도 동참했어. 이 사실을 알게 된 금성대군은 형 수양대군을 찾아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단종이 왕위를 내려올 명분은 지금 하나도 없었거든. 하지만 정인지 일당은 단종에게 계속 선위할 것을 요청했어

결국 단종이 지고 말았단다. 이왕 선위를 하는 것 지긋지긋한 정인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우의정 한확을 따로 불러 자신이 선위하겠다고 했어. 선위는 보통 왕이 아들이나 손자한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인데 왕이 삼촌에게 세대를 거슬러 선위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일이었는데 그 일이 일어난 것이란다. 말이 선위이지 그냥 왕자리를 빼앗은 거야. 단종은 이제 상왕이 되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겨 지냈단다.

이제 수양대군은 그렇게 바랬던 왕이 되었단다. 염치 없이 왕이 되었지만 잘 해보겠다고 자신의 측근들뿐만 아니라 반대세력도 포섭하려고 하였지만, 잘 안되었단다. 이번에도 명나라에 왕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명분이 없었단다. 단종이 어리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있어 숙부인 수양대군이 도와주고 있지만 여전히 반란을 도모하는 잔당들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어서 단종 자신은 역량이 부족하여 왕을 숙부에게 선위하겠다는 내용의 가짜 서신을 작성했다는구나.

수양대군은 왕이고 상왕은 단종이니, 단종이 조카이긴 하지만 왕의 족보로 봐서는 단종이 위가 되는 것이란다. 그래서 수양대군은 상왕이긴 단종에게 인사를 하러 가게 되는데 단종은 이를 거절했다는구나. 정인지의 악랄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단종이 살아 있는 한 언제나 역모의 불씨가 있으니 죽이거나 군으로 강등시켜 시골로 보내라고 했어. 수양대군은 단종을 불쌍히 여기는 민심을 알고 있어서 단종을 죽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어.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궁 안에 외진 곳으로 보내는 것이었단다.

의식 있는 신하들 사이에서 단종을 다시 왕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단다. 성상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성승, 박쟁, 김질, 유성원 등이 그들이란다. 거의 성공할 뻔한 이 거사는 약간의 우유부단함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이 실패하고 말았어. 결정적으로 김질의 배신으로 거사의 계획이 수양대군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지. 실패 소식을 들은 유성원은 자살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잡혀 들어가 처참하게 사형당하고 만단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 중에 성상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서우언, 유응부를 사육신(死六臣)이라고 부른단다. 그들은 죽기 전까지 시조를 읊으면서 기개를 굽히지 않았단다.

=======================

(470-471)

삼문은 붓을 들어,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하는 단가 한 편을 지어 쓰고, 이개도 붓을 들어,

 

가마귀 눈비 맞아 흰 듯 검노매라

야광 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하였고, 박팽년은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腔)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며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임마다 좇을 건가

 

하였다.

=======================

….

이들의 단종복위 실패 후에도 단종의 장인어른인 송현수에 의해 한번 더 복위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실패를 했단다. 수양대군은 단종이 궁 안에 있는 동안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냈단다. 청령포는 우리도 가 본적이 있는데 기억나니? 청령포는 한쪽은 높은 절벽이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그런 곳이었단다. 유배를 갔으니 그 다음 단계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어. 사약을 내리는 것이었지.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반란을 일으키려다 실패하고 마는데 이 일로 단종에게도 사약이 내려지게 된단다. 그렇게 17살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만단다.

할아버지가 세종이었는데, 이렇게 불우한 삶을 마감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성군인 세종에서 어떻게 수양대군이 나올 수 있냐고 하는 있지만, 덧붙여 수양대군의 할아버지가 이방원이었다는 사실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단다. 이방원만큼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동생들을 죽이고 조카까지 죽인 수양대군 세조…. 마음 편히 왕노릇을 했을지 모르겠구나.

….

소설을 그렇게 끝이 났단다. 대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극적인 장면은 없었지만 구성이나 재미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단다. 단지 지은이가 변절의 아이콘 이광수였다는 것. 소설 속에서 변절한 신숙주를 엄청 까곤 했는데, 정작 자신이 변절의 아이콘이 되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하고 한글과 음악, 시계로 유명했던 세종대왕 치세 23(1441) 7 23, 경복궁 안 자선당(資善堂)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책의 끝 문장: 밤에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체를 건져 어머니 위하여 짜두었던 관에 부중에서 북으로 5리 되는 곳에 평토장을 하고 돌을 얹어 표하여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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