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잔 다르크를 추억하며
마크 트웨인 지음, 마음속 샛별 옮김 / 황금비둘기 / 2024년 5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서 잔
다르크에 관한 소설이 눈에 띄었단다. 일단 책표지가 예뻐서 눈에 띄었고, 아빠가 역사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또 눈에 띄었단다. 잔 다르크라고
하면 역사 교양서에서 잠깐 잠깐 스치면서 읽은 것들이 전부라서 온전히 그에 관한 책이라서 호기심을 들게 했단다.
그런데 지은이가 무척 익숙한 사람이었어.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으로 유명한 그 마크 트웨인 맞다. 마크 트웨인이 잔 다르크에 관한 소설을
썼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단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의 지은이까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 읽고 싶은 욕구가
더 올라갔단다. 망설일 필요 없지.. 바로 사서 읽었단다.
책 소개를 보면 지은이 마크
트웨인이 자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으며, 준비 기간만 12년, 쓰는 데 2년이
걸렸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처음 이 이야기를 연재할 때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진 프랑수아 올든이라는
연재를 시작했대. 웃긴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한 자신의 이미지를 숨기고 싶었다고 하더구나. 이 소설은 진 프랑수아 올든이라는 사람이 실존 인물이었던 잔 다르크의 비서인 루이 드 콩트가 남긴 회고록을
번역한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단다. 이것은 모두 마크 트웨인이 허구로 만든 설정이었단다. 이런 설정부터 재미있구나.
1.
잔 다르크는 1412년 동레미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어. 루이 드 콩트는 잔 다르크보다 2년 이른 1410년에 태어났단다.
잔 다르크가 태어났을 때는 영국과 프랑스가 한창 전쟁 중이었단다. 100년 가까이 이어져서
백년전쟁이라고들 하지. 그런데 프랑스 내에서도 두 개 파로 갈려 있었어. 프랑스와 프랑스 왕을 지지하는 아르마냐크 파와 영국과 영국 왕을 지지하는 부르고뉴 파가 있었단다. 전쟁이 벌어지곤 있지만, 동레미 같은 시골까지 전쟁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었단다. 가끔 길 잃은 군인들이 찾아오기도 했단다.
그러던 중 마을 사람들이 격분할
소식이 전해졌단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트루아 조약이란 것이 맺어졌는데 그 내용을 보면, 프랑스의 왕 샤를 6세의 딸 카트린과 영국의 왕 헨리 5세가 결혼한 거였어. 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공동의 왕이 된다는 것이 트루아 조약의 핵심이었단다. 프랑스의 왕 샤를 6세는 당시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왕세자였던
샤를 7세가 프랑스를 이끌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단다. 프랑스가
잉글랜드 군과 부르고뉴 파 군인들에게 밀려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 트라아 조약이 맺어진 거야. 동레미
사람들이 트루아 조약에 격분한 이유는 프랑스의 다음 왕은 당연히 세를 7세가 계승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를 뒤엎고 헨리 5세의 아이가 왕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트루아 조약 이후 동레미의 아이들도 큰소리 치며 전쟁에 참여하겠다 했어.
…
잔 다르크는 어느날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단다. 그것은 하느님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천사의
목소리일 수도 있었단다. 그 목소리는 잔 다르크에게 샤를 7세를
만나고 전쟁에 참여하라고 했어. 이제 고작 16살 소녀였는데, 하느님이 주소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만큼 잔
다르크가 특별한 사람이었나 보구나. 당연히 잔 다르크의 전쟁 참여를 아버지는 반대를 했지. 잔 다르크는 아버지 몰래 자신을 지지해주는 큰 아버지와 루이 드 콩트와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영주를 찾아갔단다.
영주를 만나서 자신이 들었던
목소리들의 내용을 이야기해주었어. 영주는 어린 잔 다르크가 하는 말을 어이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잔 다르크가 멀리서 벌어진 전쟁의 승부를 이야기했는데, 며칠
뒤 잔 다르크가 말한 그대로 결과가 영주에게 전달되었단다. 그때부터 영주는 잔 다르크를 믿고 군대도
지원해주면서 왕세자께 보냈단다. 그렇게 잔 다르크는 참전을 위해 동레미를 떠났단다.
2.
잔 다르크는 왕세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어. 법학자들과 신학자들, 주교 등이 잔 다르크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서 이런 저런 테스트를 했단다, 왕세자라고 하면서 가짜 왕세자를 세우기도 했어. 물론 잔 다르크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왕세자이지만, 금방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렸어. 그들은 잔 다르크가 들은 목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가 아니고 사탄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면서
잔 다르크에게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어보았단다. 긴박한 전쟁터에서는 분초를 다투고 있는데 이곳에서 시간을
계속 지체해야 하다니 잔 다르크도 답답했을 거야.
신학자들과 법학자들은 드디어
잔 다르크가 들은 말이 하느님의 부르심이 맞다고 하고 잔 다르크에게 총사령관의 지위를 주었단다. 시골에서
전쟁 경험이 전무했던 17살 잔 다르크가 프랑스 군의 총사령관이 된 거야. 잔 다르크 자신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하느님으로부터 다 들었기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었단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와 영국의 최대 격전지인 오르레앙으로 향했단다. 루이
드 콩트를 비롯한 동레미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을 호위대로 임명하여 함께 전쟁터로 향했단다.
…
잔 다르크는 군대 문화에도 변화, 그러니까 쇄신을 가져왔어. 욕쟁이 라이르 장군이 사람들에게 욕을
못하겠단다. 욕을 하려거든 지휘봉에 하라고 했고, 라이르
장군은 그 말에 따라 욕을 하고 싶을 때면 지휘봉에게 했단다. 지휘봉이 무슨 죄…^^ 드디어 실전… 사전에 잔 다르크가 작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실전에서 라이르 장군을 비롯한 장군들이 잔 다르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신들이 하던 대로 전투에 참여했단다.
잔은 나중에 그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반박을 했고, 장군들은 잔 다르크의 말이 타당하였기에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단다. 잔 다르크는 오를레앙에 도착을 해서, 오를레앙
재무관에 집에 머물게 되었어. 재무관의 딸 카트린과 같은 방을 쓰면서 친해졌단다. 잔 다르크는 잉글랜드군에게 선전포고문와 싸우지 말고 물러나라는 편지도 보냈지만, 잉글랜드군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단다.
…
잔 다르크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잉글랜드군의 첫 전투. 프랑스군이 승리를 거두었단다. 이게
얼마만의 승리이던가. 다들 승리를 자축하였고, 잔 다르크는
이때부터 ‘오를레앙의 처녀’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단다. 오를레앙에 이어 이번에는 오귀스탱 요새에서 대승을 거두고 점령했단다. 이
전후 이후 잔 다르크는 왕세자 샤를 7세를 만나게 되었고,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에게 뒤 라스라고 하는 귀족을 하사했단다. 잔 다르크는
하느님의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랭스를 진격하자고 했어. 하지만 대신들이 반대를 했단다. 랭스를 가는 길 곳곳에 영국의 요새들이 있다면서 말이야. 잔은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 계속 설득을 했고, 자르조와 파테에서 잇달아 승리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결국 랭스를 점령하게 되었어. 이 공로로 잔 다르크의 고향
동레미는 영원히 세금을 내지 않게 했단다. 이 때부터 약 360년
동안 동레미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
랭스에서 왕세자 샤를 7세의 대관식이 진행했어. 잔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면서 파리까지
진격하자고 했단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신들이 반대를 했어. 랭스에서
머물면서 잉글랜드와 휴전을 하자고 했어. 하지만 그것은 잉글랜드군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전세가 역전되었으니 지금 바로 파리로 진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어. 하지만
대신들의 반대로 심했기에 며칠 동안 시간이 지연되었단다. 샤를 7세라도
결단 있게 결정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뒤늦게 출발한 잔 다르크는 생드니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그만 부상당하고 말았단다.
그 틈을 타 대신들은 다시 왕을
부추겼고, 잉글랜드와 휴전을 체결하려고 했단다. 그리고 부상당한
잔 다르크를 후방으로 옮겼어. 이것은 잔 다르크가 본의 아니게 목소리의 명령을 처음으로 어긴 것이 되었단다. 목소리는 생드니에 머물라고 지시를 했거든. 잉글랜드군과 부르고뉴군이
반격에 나섰고, 프랑스군은 패배를 하게 되었단다. 잔 다르크는
그만 생포되고 말았단다. 대신들과 우유부단한 샤를 7세의
패배였어.
3.
잔 다르크는 감옥에 있을 때
두어 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다시 잡혀왔고 루앙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어. 잉글랜드는 잔 다르크에 높은
몸값을 매겼는데 프랑스는 그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잔 다르크는 계속 감옥에 있어야 했어. 잔 다르크가
없었다면 샤를 7세는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 테고 프랑스도 없어졌을지도 모르는데 고마움을 모르는구나.
루이 드 콩트는 고향 친구 노엘과
재회하고 파리고 갔단다. 루이 드 콩트는 망숑 신부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는데, 망숑 신부는 잔 다르크 재판의 기록담당관이었어. 그래서 잔 다르크가
갇혀 있는 루앙의 지하감옥에 갈 수 있었단다.
…
잉글랜드와 부르고뉴파도 잔 다르크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었고, 명분이 필요했단다. 그래서 재판이
열리게 되었어. 주 재판관은 코숑 신부라는 사람이 맡았고, 그
외에 판사만 62명이 참석하였단다. 잔 다르크의 유죄 판결에
대한 강한 의지가 보이는구나. 재판부는 잔 다르크를 사탄이라고 고발했고, 위증죄까지 포함하여 유죄라고 주장했어. 잔 다르크는 변호사도 없이
혼자 변론해야 했단다. 프랑스 왕 샤를 7세와 대신들은 이
재판에 대해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단다. 와서 부당한 재판이라고 항변을 하거나
잔 다르크를 구출하려는 작전을
펼쳤어야 했는데 말이야. 루이 드 콩트는 당연히 프랑스군이 잔 다르크를 구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라고
믿었단다. 잔 다르크가 전쟁에서는 훌륭한 사령관이었지만, 재판에서
위대한 변호사였단다. 자신에 대한 혐의를 하나하나 반박을 했단다. 계속된
재판으로 지치기도 해서 잘못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잔 다르크는 위기를 잘 넘겼단다. 재판이 이어질수록 잔 다르크에게 유리하게 되자, 코숑 신부는 재판을
비공개 재판으로 변경하였단다. 잔
다르크에 대한 좋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어. 잔 다르크가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잘 변호하다 보니, 재판관은 고문도 하고 협박까지 했단다. 코숑 신부는 파리 신학대학의
교수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잔 다르크의 12항목에 대한 죄를
물었고, 신학대학의 교수들은 유죄라는 의견을 주었단다.
결국 잔 다르크는 유죄 판결을
받았어. 코숑 신부는 루앙의 대주교 자리를 받는 조건으로 잔 다르크의 유죄 판결을 처음부터 정해놓고
재판을 진행했던 거란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부패의 상징 코숑 신부가 아닐까 싶구나. 죽음을 앞둔 잔 다르크는 심신이 다 약해져 갔단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재판부의 문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어. 그러자 내내 입고 있던 남자 군복을 벗기고 드레스를 입혔단다. 당시 중세 유럽에는 마녀사냥이라는 악습이 퍼져 있었는데, 잔 다르크도
그렇게 드레스를 입히고 마녀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아. 여전히 루이 장 코트는 프랑스군이 나타나서
잔 다르크를 구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끝끝내 오지 않았고, 결국 잔 다르크는 화형에 처해지고 하늘의 별이
되었단다.
잔 다르크가 죽은 지 25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 재판에 대한 이의 신청이 진행되었고, 교황이
승인을 해주어 복권하게 되었다는구나. 참, 슬픈 일이구나. 시골의 한 소녀가 갑자기 나타나 짧은 시간에 계속 밀리던 전쟁의 분위기를 한꺼번에 바꾸어 놓았고, 또 짧은 시간에 사라져 버린, 역사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가 아닐까
싶구나. 지은이 마크 트웨인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잔 다르크의 전체적인 평가를 해주었는데, 그 중에 일부를, 좀 길지만 함께 읽어보자꾸나.
========================
(626-627)
잔
다르크에게 애국심이란 감정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열정이었다. 잔의
애국심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었다. 잔은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도록 애국심으로 몸으로 변한 존재였다. 사랑과 자비, 동정심과 용기, 전쟁과
평화, 시와 음악, 이런 것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곧 남자로나 여자로나, 또 어떤 나이로나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국심이라는 것은 이제 막 피어난 젊고 가녀린 이 소녀의 모습으로만, 곧 순교자의 화관을 머리에 쓰고 조국을 얽어매던 굴레를 끓어버린 칼을 손에 든 이 소녀의 모습으로만 세상 끝날까지
남게 되지 않을까?
========================
========================
(643)
그러나
잔은 법률 책을 읽은 적도 없고 법원에 가본 적도 없었지만 열여섯 살에 재판에서 탁월한 능력을 드러냈다.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지만 첫 전투에서 탁월한 지휘관의 능력을 보였다. 첫 전투에서 보인 용기도
교육의 결과가 아니었다. 남자아이라면 남자는 겁을 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기에 용감해질 수
있지만 잔은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였다. 젊음이 꽃을 피우던 시절,
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힌 잔은 몇 주 동안 자신을 죽이려고 애쓰는 많은 재판관들, 곧 프랑스의
가장 명민한 지성들 앞에 앉아 있었다. 잔은 자기 편이 아무도 없었고 재판에 관련된 일을 모른 채 혼자
싸웠지만 재판관들의 학식을 무학의 지혜로 압도했다. 그리고 저들의 속임수와 계략을 타고난 지혜로 무찔러
저들을 놀라게 했고, 이 모든 불리한 상황에도 날마다 승리를 거두어 한 발도 후퇴하지 않았다.
========================
========================
(646)
잔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행복하지 않았다. 잔은 동정심이 많았다.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둔 전투에서 잔은 승리를 잊은 채 죽어가는 한 적군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누인 채 동정어린 말로 위로해 주었다. 전쟁 포로들을 학살하던 잔인한 그 시절에 잔은 아군을 가로막아 적군의 포도들을 모두 살려 주었다. 잔은 너그러웠고 잘못을 쉽게 용서해 주었으며 이타적이고 너그럽게 베푸는 사람이었다. 야비한 것이라고는 한 점이 없이 잔은 순결했다. 그리고 언제나 잔
다르크는 소녀였다. 소녀답게 귀엽고 고매했다. 처음 부상을
당했을 때 잔은 겁을 먹고 가슴에서 붉은 피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는 잔
다르크였다! 이내 수하의 장군들이 퇴각 나팔을 불게 하는 것을 보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공격을
이끌어 적의 요새를 점령했다. 잔의 성품은 모난 데가 없이 아름다웠다.
========================
…
우리가 작년에 파리 여행을 갔을
때 루브르 박물관 근처 길거리에 말을 탄 사람 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Shawn이 그것을 보고 잔 다르크
같다고 했잖니. 아빠가 구글링으로 찾아보니 잔 다르크 동상이 맞았지.
프랑스 국민이라면 잔 다르크는 국민 영웅이 아닐까 싶구나. 100년 전쟁에서 잔 다르크가
없었다면 오늘날 프랑스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야. 여전히 잔 다르크에게 고마움을
느끼니 파리 거리 한복판에 동상을 세워둔 것이라 생각되는구나. 당시 샤를 7세가 몸값을 주고 잔 다르크를 구해주거나 재판장에서 항의를 해서 잔 다르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게 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안타깝지만 과거를 돌릴 수 없는 법… 이 책은
좀 두껍기는 하지만 너희들도 읽어볼 만하다 생각했어.. 지금은 바쁜 것 같으니 나중에 한번 읽어 보렴.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유명한 사람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우리 시대가 아닌
그 시대의 잣대로 그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
책의 끝 문장: 앞에서 내가 얘기했던 잔 다르크의 그 모든 환경을
볼 때, 즉 출신과 어린 나이, 여자라는 것과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점, 어린 시절의 환경, 그리고 장애가 되는
온갖 조건에서도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갈고닦아 전장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재판에서 승리한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인간이 낳은 가장 비범한 사람이 잔 다르크임을 알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우리 시대가 아닌 그 시대의 잣대로 그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 한 시대의 잣대로 그 이전 시대의 고귀한 인물들을 평가하면 그 빛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잣대로 평가하면 아마도 사오백 년 전에 살던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 모든 면에서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잔 다르크만큼은 예외이다. 어느 시대의 잣대로 평가해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걱정하거나 의심할 필요 없다. 어느 한 시대의 잣대로도, 또 모든 시대의 잣대로도 잔 다르크는 흠 없고 이상적일 정도로 완벽하다. 잔 다르크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그 자리는 죽을 수밖에 사람이 오른 그 어떤 높은 곳보다도 위에 있다. - P12
무자비한 잔혹함이 법이었을 때에 잔 다르크는 동정심으로 가득했다. 절개를 찾아볼 수 없는 때에 굳은 절개를 가진 사람이었고 영예가 무엇인지 잊어버린 시대에 영예로운 사람이었다. 어떤 것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비웃는 시대에 잔 다르크는 자신의 신념을 바위처럼 굳게 지킨 사람이었고, 속까지 거짓으로 물든 시대에 한결같이 진실한 사람이었다. 아첨과 비굴이 난무한 시대에 잔 다르크는 품격을 흠 없이 유지했다. 조국의 가슴에서 희망과 용기가 죽어 사라진 때에 잔 다르크는 꺾이지 않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사회 고위층의 몸과 마음이 더러운 때에 잔 다르크의 몸과 마음은 흠 없이 순결했다. - P13
"아빠, 주지 말라 하시면 아빠 말씀대로 해야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몸의 한 부분이 한 일 때문에 몸의 다른 부분이 벌을 받는 건 옳지 않잖아요. 군인 아저씨의 머리가 나쁜 짓을 했더라도 배고픈 건 머리가 아니라 배잖아요. 배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으니 아무 잘못이 없잖아요. 그리고 그럴 마음이 있어도 배는 실행할 수가 없었을 테니 제발…" - P50
너희는 파테 전투를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너희는 프랑스인이고 파테 전투는 너희 나라의 길고 긴 역사에 기록된 가장 장엄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파테 전투는 우뚝 서서 구름 위로 머리로 내밀고 있다! 너희가 어른이 돼서 파테로 순례를 떠나게 된다면 그곳의 어떤 것 앞에서 모자를 벗고 묵념에 잠길 수 있을까? 구름에 닿을 듯한 기념비 앞에서일까? 그래, 모든 나라는 어느 시대나 전장에 기념비를 세워 공을 세운 이들의 이름과 승리에 대한 기억을 파릇파릇 새롭게 하려고 한다. 프랑스는 파테 전투와 잔 다르크를 홀대하고 잊어버릴까? 오랫동안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다른 전쟁과 영웅과 비교해 그에 걸맞은 큰 기념탑을 세우게 될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그만한 것을 세울 공간이 있다면 말이다. - P355
그런데 외딴 시골에서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는 시골 처녀가 나와서 백발노인같이 오래된 이 전쟁, 3세대 동안 이 땅을 휩쓸고 모든 것을 불태운 이 전쟁에 맞섰다. 그리고 가장 짧지만 가장 놀라운 전투가 역사에 기록되었다. 7주 만에 전쟁은 끝났다. 7주만에 91살 먹은 거인 같은 거대한 전쟁을 일어나지 못하도록 때려눕혀 버렸다. 시골 처녀는 오를레앙에서 그 거인에서 놀라운 한 방을 먹이고, 파테에서는 도망가는 거인의 등에다가 마지막 한 방을 먹였다. - P356
왕들은 대신들과 장군들을 배신하고 대신들과 장군들도 국가의 수장을 배신하면서 서로를 배신해 왔다. 병사들은 잔을 전적으로 의지했고 또 잔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잔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잔은 얼어붙은 급류를 녹여서 끓어오르게 하는 태양이었다. 그 태양이 없어졌으니 다시 얼어붙은 것이다. 프랑스군과 온 프랑스는 이전의 모습, 곧 죽은 시체로 되돌아갔다. 단지 죽은 시체일 뿐이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각도 희망도 포부도 움직임도 없는 시체일 뿐이었다. - P446
그러나 그리 생각하고 바랐던 내가 바보였다. 잔 다르크는 다른 인간들과 다른 존재였다. 원칙에 대한 충성, 진리에 대한 충성,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충성, 이 모든 것들이 잔의 뼈와 살 속에 있는 잔의 일부였다. 잔은 변할 수 없었다. 잔은 자기 몸속에 있는 것을 내쫓을 수 없었다. 잔은 충성 그 자체였고 인간이 된 절개였다. 잔이 어느 곳에 서서 발을 딛고 있으면 그곳에서 잔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옥도 그곳에서 잔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잔의 음성들은 잔이 저들이 요구하는 항복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잔은 굳건히 서 있었다. 잔은 온전히 복종하며 무슨 일이 닥쳐와도 기다릴 것이다. - P555
잔은 바쁜 나날의 음악 같은 즐거운 소리들, 수천 가지 다양한 소리들에 둘러싸여 살아왔지만, 이제는 자기를 감시하는 감시병들의 단조로운 걸음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잔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지만 이제 이야기 나눌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었다. 잔은 쉽게 깔깔대며 웃곤 했지만 이제는 벙어리가 되었다. 잔은 친구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명랑했으며, 바쁘게 이런저런 일로 하고 온갖 재밌는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오로지 쓸쓸함과 납처럼 무거운 시간을, 우울한 정적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루하게 가만있을 따름이었고, 낮이든 밤이든 같은 원을 빙빙 돌면서 머리를 피곤하게 하고 가슴을 부서뜨리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살아 있지만 죽은 것, 바로 그것이 분명 잔이 여기서 누리는 것이었다. - P5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