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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1
이광수 지음, 이정서 편역 / 새움 / 2015년 2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지은이가
별로거나 문제가 있으면 책을 꺼리게 된단다. 친일파 변절의 아이콘 이광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란다. 변절하기 전 작품들은 읽을 만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빠도 예전에 이광수의
<무정>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단다. 이번에
읽은 책 <단종애사>는 비운의 왕 단종에 관한
역사소설로 읽고는 싶으나 역시 지은이가 이광수라는 점에서 좀 망설였단다. 이광수가 <단종애사>를 쓴 시점이 본격적으로 친일로 돌아서기 전인
1928년도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광수가 변절의 기미를 보인 것은 1920년대 초반에 쓴 <민족개조론>때라는 이야기도 있단다. <민족개조론>을 쓴 시점이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상하이로 망명 갔다가 여자 문제로 다시 국내로 돌아온 시점이기도 해.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관한 이야기는 아빠가 작년에 이야기해준 강준만의 <근대사산책(6권)>에서 좀더 자세히 알 수 있단다.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단종에
관한 이야기란다. 삼촌인 세조한테 왕자를 빼앗기도 멀리 강원도 영월에 유배를 가서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단종. 이미 여러 책들에서 단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지만 또 단종에 관한 책을
읽은 이유는 소설로는 어떻게 그 이야기를 그랬을까, 궁금했단다. 오래
전에 북한 작가 림종상의 <사육신>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도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어. 그 소설의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읽고 쓴 독후감이 있어서
한번 읽어보았단다. 두 소설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1.
1441년 세종 23년 7월 23일 단종이 태어났단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는 문종을 비롯한 대군 8명, 공주 2명이 있었고, 세종은 다른 후궁으로부터 군 10명, 옹주 2명도 있었어. 그 중에 첫째 아들 문종이 세자로 책봉되었단다. 문종이 세자일 때
세자비 휘빈 김씨였는데, 문종은 세자비를 무척 사랑했단다. 그런데
소헌왕후 심씨가 질투를 했대. 그리고 궁녀들의 모략으로 휘빈 김씨는 누명을 쓰고 폐위가 되었어. 문종이 무척 상심했겠구나.
뒤 이어 세자비가 된 사람은
순빈 봉씨였어. 문종은 순빈 봉씨를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세자비가 된 지 8년째 아이가 없었어. 그런 와중에 궁녀 양씨가 아이를 임신했단다. 그렇게 되자 순빈 봉씨는 궁녀 홍씨와 짜고 궁녀 양씨를 독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어. 이 일로 순빈 봉씨마저 폐위를 당했다는구나. 문종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여자 문제가 자꾸 복잡해지는구나. 그 다음 세자비로 들어선 이가 나중에 왕후가 되는 현덕왕후 권씨란다. 현덕왕후 권씨는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았는데,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거야. 단종은
세종의 후궁 중에 한 명인 혜빈 양씨가 키웠단다. 혜빈 양씨가 얼마 전에 영풍군을 낳아서 모유를 할
수 있었거든. 혜빈 양씨는 심성이 찾아서 자기 아들보다 단종을 더 잘 챙겼고, 단종은 커서서 혜빈 양씨한테 많이 의지했다고 하더구나.
…
문제는 문종이 즉위한 지 3년도 안되어 죽고 말았다는 거야. 당시 단종 나이는 고작 12살이었어. 왕이 어리면 섭정을 하기 마련인데 문종이 죽으면서 그것을
식구들이 아닌 영의정 황보인 등 노신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죽고 말았어.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문종은 수양대군 등 동생들에게 아들을 맡겼어야 했다고 생각해. 물론
그렇다고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하지 안 했을 거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모략꾼인 한명회와 만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구나. 이미 섭정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명분 없이 왕자리까지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물론 아빠의 개인적인 생각이란다.
수양대군은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승하한 문종에 섭섭해 했어. 그걸 눈치 챈 권람이라는 자가 접근하여 수양대군을 떠보기 시작했단다. 에둘러 이야기했지만 결국에는 정권을 차지하라는 거였어. 그러면서
권람은 개성에서 경복궁직이라는 한직에 있는 한명회를 추천해 주었단다. 한명회가 한직에 있었지만 중앙정부에
진출하려는 기회를 복고 있었던 사람이었어. 수양대군 입장에서는 지방의 한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무슨
능력이 있겠냐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수양대군은 한명회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수양대군은 날마다 권람, 한명회와 모임을 갖고
쑥덕쑥덕 했단다.
…
단종이 왕에 올랐을 때 명나라에
그 소식을 알리는 사신보을 보내야 했어. 단종은 자신의 매부, 그러니까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을 보내려고 했지만, 수양대군이 자청해서 자신이 가겠다고 했단다. 아무도 수양대군의 말을 막지 못했고, 수양대군이 명나라를 다녀왔단다. 이때 수행하는 사람은 집현전 학자 출신 신숙주도 있었는데, 수양대군이
이때 신숙주를 자기 편으로 포섭한 것이 아닐까 싶구나. 명나라를 다녀 온 후 수양대군은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단다. 한명회는 여러 무인들을 모았어. 그리고 디데이.
2.
이 반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좌의정 김종서였단다. 김종서는 세종 때부터 북벌을 정벌한 장군이자 문신이기도 한 사람이었어.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데 무력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힘으로 거사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김종서를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결사의 날, 수양대군의
측근들도 의견이 분분하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 수양대군은 직접 무리들을 데리고 김종서를 찾아갔단다. 사전에 한명회가 조언해준 대로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를 자리 비우게 한 다음,
데리고 간 무리들로 하여금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쳤단다. 김종서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뒤늦게 아들 김승규가 와서 저항했지만, 김승규도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곧바로 단종을 찾아갔어.
수양대군은 모든 일은 하룻밤
사이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전두환의
1212군사구데타가 생각나는구나. 몇 달 전에 본 영화
<서울의 봄>의 대사도 생각났어.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란이라고 했던 말.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는
것 같구나.
…
단종을 찾아온 수양대군이 말하기를, 영의정 황보인과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왕위를 세우려는 반란을 도모했다고 이야기했어. 그래서 그 반란 사건을 진압하고 있다고 했어. 단종의 처지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단다. 사전에 작성된 한명회의 살생부에
적혀 있던 사람들이 궁으로 소환되었어. 그들은 왕의 부름이 있으니 궁 안에 오게 된 것인데 이유도 제대로
듣지 않고 다 죽고 말았단다. 그 중에는 영의정이었던 황보인도 포함되어 있었어. 역사는 이것을 계유정난이라고 한단다. 나중에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을까 싶구나.
다음날 수양대군과 수양대군의
측근들이 권력을 대부분 차지했단다. 수양대군은 영의정이 되었고, 좌의정은
정인지, 우의정은 한확이 되었어. 그 외 도승지 최항, 대사간 이계전, 좌찬성 신숙주 등 중요 요직을 모두 수양대군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었어. 안평대군도 이 반란에 연루되었다고 하면서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안평대군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 같구나.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반란의 주동자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야. 이후 정인지와 신숙주는 안평대군을 계속 죽이라고 상소를 올렸지만
단종은 계속 거절했단다. 단종도 어리기는 하지만 안평대군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야.
….
한편, 수양대군의 역모 사건을 제대로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어. 도총관
성승의 집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였단다. 성승의 아들 성삼문을 비롯하여 박팽년, 이개, 하위지, 김질
등이 모여서 안평대군을 살릴 방법과 수양대군을 처단하기 위한 회의를 했어. 그들은 안평대군의 무죄를
주장한 글을 가지고 좌참판 허후를 찾아갔단다. 허후는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 중에 수양대군에 포섭되지
않은 사람이었어. 허후도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다음날 정인지를 고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이미 수양대권이 정권을 다 잡고 있었어. 정인지는 계속 안평대군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상신을 올렸고, 단종은 계속 거절했어. 결국
수양대군이 직접 사약을 내렸고, 동생 안평대군을 그렇게 죽고 말았단다.
3.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은 지 2년이 되었어. 단종도 즉위한지 3년째가
시작되었어. 1455년이었지. 이제 슬슬 다음 단계를 시작하려고
했어. 단종이 나이를 더 먹게 되면 왕권을 강화할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말이야. 정인지는 단종에게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선위하라고 매일같이 상소를 올렸어. 단종이 꿈쩍하지 않자 신숙주도 동참했어. 이 사실을 알게 된 금성대군은
형 수양대군을 찾아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단종이 왕위를 내려올 명분은 지금 하나도 없었거든. 하지만 정인지 일당은 단종에게 계속 선위할 것을 요청했어…
결국 단종이 지고 말았단다. 이왕 선위를 하는 것 지긋지긋한 정인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우의정
한확을 따로 불러 자신이 선위하겠다고 했어. 선위는 보통 왕이 아들이나 손자한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인데
왕이 삼촌에게 세대를 거슬러 선위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일이었는데 그 일이 일어난 것이란다. 말이
선위이지 그냥 왕자리를 빼앗은 거야. 단종은 이제 상왕이 되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겨 지냈단다.
이제 수양대군은 그렇게 바랬던
왕이 되었단다. 염치 없이 왕이 되었지만 잘 해보겠다고 자신의 측근들뿐만 아니라 반대세력도 포섭하려고
하였지만, 잘 안되었단다. 이번에도 명나라에 왕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명분이 없었단다. 단종이
어리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있어 숙부인 수양대군이 도와주고 있지만 여전히 반란을 도모하는 잔당들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어서 단종 자신은 역량이
부족하여 왕을 숙부에게 선위하겠다는 내용의 가짜 서신을 작성했다는구나.
수양대군은 왕이고 상왕은 단종이니, 단종이 조카이긴 하지만 왕의 족보로 봐서는 단종이 위가 되는 것이란다. 그래서
수양대군은 상왕이긴 단종에게 인사를 하러 가게 되는데 단종은 이를 거절했다는구나. 정인지의 악랄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단종이 살아 있는 한 언제나 역모의 불씨가 있으니 죽이거나 군으로 강등시켜 시골로
보내라고 했어. 수양대군은 단종을 불쌍히 여기는 민심을 알고 있어서 단종을 죽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어.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궁 안에 외진 곳으로 보내는 것이었단다.
…
의식 있는 신하들 사이에서 단종을
다시 왕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단다. 성상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성승, 박쟁, 김질, 유성원 등이 그들이란다. 거의 성공할 뻔한 이 거사는 약간의 우유부단함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이 실패하고 말았어. 결정적으로 김질의 배신으로 거사의 계획이 수양대군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지. 실패 소식을 들은 유성원은 자살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잡혀 들어가 처참하게 사형당하고 만단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 중에 성상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서우언, 유응부를 사육신(死六臣)이라고 부른단다. 그들은 죽기 전까지 시조를 읊으면서 기개를 굽히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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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471)
삼문은
붓을 들어,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하는
단가 한 편을 지어 쓰고, 이개도 붓을 들어,
가마귀
눈비 맞아 흰 듯 검노매라
야광
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하였고, 박팽년은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腔)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며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임마다 좇을 건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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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의 단종복위 실패 후에도
단종의 장인어른인 송현수에 의해 한번 더 복위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실패를 했단다. 수양대군은 단종이
궁 안에 있는 동안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냈단다.
청령포는 우리도 가 본적이 있는데 기억나니? 청령포는 한쪽은 높은 절벽이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그런 곳이었단다. 유배를 갔으니 그 다음 단계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어. 사약을 내리는 것이었지.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반란을 일으키려다 실패하고 마는데 이 일로 단종에게도 사약이 내려지게 된단다. 그렇게 17살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만단다.
할아버지가 세종이었는데, 이렇게 불우한 삶을 마감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성군인
세종에서 어떻게 수양대군이 나올 수 있냐고 하는 있지만, 덧붙여 수양대군의 할아버지가 이방원이었다는
사실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단다. 이방원만큼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동생들을 죽이고 조카까지 죽인
수양대군 세조…. 마음 편히 왕노릇을 했을지 모르겠구나.
….
소설을 그렇게 끝이 났단다. 대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극적인 장면은 없었지만 구성이나 재미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단다. 단지 지은이가 변절의 아이콘 이광수였다는 것. 소설 속에서 변절한
신숙주를 엄청 까곤 했는데, 정작 자신이 변절의 아이콘이 되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하고 한글과 음악, 시계로 유명했던 세종대왕 치세 23년(1441) 7월 23일, 경복궁
안 자선당(資善堂)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책의 끝 문장: 밤에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체를 건져 어머니
위하여 짜두었던 관에 부중에서 북으로 5리 되는 곳에 평토장을 하고 돌을 얹어 표하여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