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그의 첫아들이 트리어에서 1818 5 5일에 태어났다. 이 아이는 할례도 받지 않았고, 루터교 의식에 맞추어 세례를 받지도 않았다.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유대인 전통에 따라 자기 아버지의 이름과 트리어의 제사장이었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마르크스 하인리히 모르데차이라고 이름 지었다.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것이다. 바로 그해에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 메리 셀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했는데, 이 두 책은 25년 후 젊은 마르크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게 된다.


(59)

마르크스는 자기 책과 서류 들을 아무도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겉보기에는 무질서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으며, 그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이나 공책을 언제나 힘들이지 않고 찾아냈다. 대화를 하는 가운데도 그는 종종 자기가 막 인용한 글귀나 숫자를 책에서 찾아 보여주려고 말을 멈추곤 했다. 그는 자기 작업실과 일체를 이루었고, 책과 서류는 마치 그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복종했다.”


(119)

그러니까 파리는 제네바, 브뤼셀, 런던과 더불어 중부 유럽 전체, 특히 독일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망명객들의 피난처였다. 망명객들은 정치적인 검열이나 경찰의 박해를 피해 파리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재단사 빌헬름 바이틀링처럼 스위스를 거쳐 파리로 온 은행가의 아들인 루트비히 베르나이스와 요제프 바이데마이어가 있었고, 당시 유명한 독일 시인이었던 게오르크 헤르베그처럼 프로이센에서 직접 온 사람도 있었다.


(128)

마르크스는 머리말을 썼다.

사고하며 고통받고 있는 인류와 핍박당하며 사고하는 인류는 사고할 줄 모르고 소극적으로 즐기기만 하는 속물들의 동물적 세계에서는 당연히 참을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고하는 인류로 하여금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의식을 갖게 하고 고통받는 인류와 결합할 수 있게 할수록, 자기 뱃속에 품고 있는 결실은 더욱 완벽하게 태어날 것이다.”


(142)

그의 노동은 분리되고, 바깥에 존재하며, 그와 독립하여 낯선 존재가 되며, 하나의 자율적인 힘으로 그에 맞선다. 그가 사물에 투여한 생명은 그에게 맞서며, 적대적이고 낯설게 된다. 노동은 고단함이며, 그의 정신을 황폐화게 만들고 몸에 상해를 입히는 고통이며, 그의 활동은 고뇌처럼 보이고, 그의 생활은 인생의 희생처럼 여겨진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모든 노동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146)

공산주의란 인간 스스로 인간의 본성을 실질적으로 획득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적소유의 폐지와 모든 의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며, 이러한 의미가 인간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공산주의는 해방이다…… 이로써 필요나 사용권은 이기적인 성격을 버리고, 자연은 그 순수한 유용성을 버린다. 그 유용성은 인간적인 유용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소외된 노동자는 인간에게 유익한 것을 만들면서 노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스스로 완전히 인간적이 된다.


(152-3)

훨씬 뒤에 엥겔스는 그들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내가 1844년 여름 파리에 있는 마르크스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모든 이론 분야에서 서로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한 것을 확인했고, 그래서 우리의 협력은 시작되었다. 마르크스는 나와 같은 견해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견해를 <프랑스-독일 연보>를 통해 유포했다. 요컨대 부르주아 사회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이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이 부르주아 사회라는 견해였다. 경제적인 조건과 그것의 발전에서 출발해 정치와 경제의 역사를 설명해야지, 그 반대로 해서는 안 된다.”


(196)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전년도에 나열한 열두 조항을 열 조항으로 압축하고, 역사적 유물론에 관하여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을 시도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빈곤화로 내몰린 계층, 당시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근본적으로 환상이 없는 계층으로 나타나 있는 최초의 글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었다. 나이는 서른이 채 안 되었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브뤼셀에 망명해 사는 젊은 독일 철학자가 쓴 이 글은 비종교적인 글 가운데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유포된 글이다.


(261)

엥겔스 추종자들이 후에 두 사람을 동등한 반열에 올려 놓으려 애썼지만 엥겔스는 자신이 마르크스 천재적인 지적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엥겔스가 그토록 싫어한 공장의 사장 역할을 떠맡기 위해 런던을 떠나면서 포기한 것 중에는 저자가 되는 것도 포함되었다. 요컨대 엥겔스의 결단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유일한 저자인 마르크스에게 돈을 대주기 위해서였다. 자본주의의 요새에서 트로이 목마가 된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자신의 이론적 연구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마르크스와 함께 토론하기 위해 빈번히 런던에 왔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거의 매일 편지를 교환했고, 그것은 20년 간 지속되었다. 사상사에서 그와 같은 희생의 예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 때문에 아무리 힘든 처지에 놓여도 그는 결코 마르크스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275-6)

현대사회의 계급의 존재나 그들 간의 투쟁을 발견한 공로는 나에게 있지 않다. 나 이전에 오래전부터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언급했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그것에 관한 경제적인 분석을 행하였다. 내가 새로 한 것이라고는 첫째, 계급의 존재는 생산의 일정한 역사적 발전 국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둘째,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 셋째, 그 독재 자체도 모든 계급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형성한다는 것 등을 논증한 것에 불과하다.


(345)

그 보잘것없는 원고가 끝이 났네. 하지만 보내지를 못했네. 우송을 하고 보험을 들 파딩(1961년에 폐지된 영국 화폐로서 4분의 1 페니에 해당했다-옮긴이)이 없기 때문이지. 그런데 보험은 꼭 들어야 하네. 왜냐하면 다른 복사본이 없거든. 그러니 월요일까지 약간의 돈을 보내주었으면 하네. 부탁하네.”

그러고 나서 그는 후에 아주 유명해진 다음 문장을 냉랭하게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돈이 없으면서도 돈에 대해 글을 쓴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네! 돈에 관해 쓴 작가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연구 주제와 사이좋게 살았지.”


(411)

런던에서는 마르크스의 이중 생활이 계속됐다. 낮에는 공식적으로 인터내셔널의 독일 통신 서기장으로, 유럽 전역의 수십만 노동자와 피고용인, 지식인을 곧 집결시키게 될 정치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로 활동했다. 밤에는 20년 전에 시작해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아직 1장밖에 출간하지 못한 대작을 집필했다. 그는 <자본론>으로 명명할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공헌할 생각이다.


(418-9)

좋아하는 미덕은? 단순성. 남자에게서 좋아하는 미덕은? . 여자에게서는? 약함. 당신의 주요한 특징은? 고집.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나네트를 바라보는 것. 당신이 가장 혐오하는 결점은? 굴종. 당신이 가장 쉽게 용서하는 결점은? 속기 쉬움.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투쟁하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불행은? 굴복하는 것. 당신이 좋아하는 시인은? 아이스킬로스와 셰익스피어. 당신이 좋아하는 산문 작가는? 디드로. 당신이 좋아하는 경구는? 인간적인 것은 그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당신의 좌우명은?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할 것. 당신이 좋아하는 색깔은? 빨강. 당신이 좋아하는 이름은? 예니와 라우라.”


(513)

마르크스는 목표에 도달한 듯 싶었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코뮌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언론에 의해 절대 권력자로 여겨지면서 그는 유일한 다국적 정치조직의 정상에 자리했고, 그의 이름을 내세운 정당과 비밀집단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러시아에서 생겨났다. 코뮌의 마지막 무렵에 쓴 그의 마지막 <인터네셔널에 보내는 담화>는 서방의 모든 언론이 언급했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그와 인터뷰하려고 몰려들었다. 독일의 수십만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읽은 <공산당 선언>은 이제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자본론>도 마찬가지였다.


(538)

함부르크의 출판사에서 개정판 제1권이 출간되었을 때, 마르크스는 자기보다 아홉 살이 많은 다윈에게 한 부를 보냈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이라는 책을 막 출간한 터였다. 마르크스는 다윈에게 보내는 증정본에다 충심의 숭배자라고 표현한 헌정사를 써 넣었다. 다윈은 자신은 그 책을 읽을 만한 능력이 없지만 책을 고맙게 받겠노라는 정중한 편지를 보내왔다. 다윈에게 보낸 마르크스의 책은 104페이지까지만(전체 804페이지) 페이퍼 나이프로 잘려 있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다윈은 마르크스가 352, 385, 386페이지에서 제 차례 언급한 자신의 저서에 관한 부분은 보지 못한 것이다.


(559)

이상한 인연이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는 리사가레의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끝마쳤다. 이 책의 번역자로 제의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거부하고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것이다. 그는 딸이 좋아하고, 그녀를 충심으로 사랑하는 듯이 보이는 그 남자와 딸이 결혼할 수도 있다고 체념했다. 하지만 예니는 그 프랑스 남자에 대한 생각을 절대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예니는 의견이 서로 다른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 문제로 부딪치곤 했다.


(568-9)

독일에 실망한 마르크스에게 러시아는 일정의 집착, 또는 새 희망의 초점이 되었다. 그는 자주 러시아의 민중주의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그의 책을 번역한 니콜라이 프란체비치 다니엘손과 구에르만 알렉산드로비치 로파틴, 그리고 표트르 라브로비치 라브로프가 그의 상태였다 .니콜라이 콘스탄티티노비치 미하일로프스크와 베라 자술리치 같은 아주 극단적인 혁명가들도 마르크스의 자문을 구하러 왔다. 자술리치는 경찰청장인 트레프포 장군을 암살했는데 러시아에서 방면되어 영국에 와 있었다.


(583-4)

몇몇 친지들이 예니를 묘지까지 동반했다. 엥겔스가 추도사를 했다. 라우라와 엘레아노르, 예니헨과 샤를롱게 등과 함께 있던 라파르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독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그녀의 평등의식은 그 누구보다 철저했다. 그녀에게 사회적인 차이와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집과 식탁에 노동복 차림의 노동자들을 맞이할 때면, 왕족에게 대할 때와 똑 같은 예의와 배려를 보이며 맞이했다. …… 그녀는 마르크스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극도로 헐벗은 날들에도 자신이 선택한 것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592-3)

314일 오후 3 15,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생각을 멈추었습니다. 그를 혼자 둔 것은 겨우 10분이었는데, 돌아와보니 그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안락의자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죽음은 유럽과 미국 프롤레타리아의 투사들을 위해, 그리고 역사과학을 위해 측량할 길 없는 손실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정신이 떠나면서 남긴 공백을 곧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다윈이 자연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인간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 게다가 마르크스는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움직임과 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르주아 사회를 이끄는 법칙도 발견했습니다. …… 이 두 발견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는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 둘 중 하나만 이룩한 사람일지라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모든 영역들을 아주 많이 연구했고, 그 모든 영역들 중에서 피상적으로 연구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하다못해 수학에 대해서까지 그는 발견의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그는 과학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이룬 업적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과학은 역사의 원동력, 혁명의 힘이었습니다. 힘들게 예측한 결과를 담은 이론적 법칙을 발견하는 기쁨을 넘어서서 그는 산업에서의 혁명적 변화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 왜냐하면 그는 우선 무엇보다도 혁명가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필생의 사명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모든 국가 제도를 무너뜨려서, 현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될 수 있는 조건을 처음으로 정의 내린 사람은 마르크스였습니다. 투쟁은 그의 기본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정적으로, 끈질기게,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투쟁했습니다. …… 마르크스는 당대에 가장 미움받고 모략을 가장 많이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대주의 정부들도 공화주의 정부들도 그를 유배시켰습니다. 부르주아들, 보수주의자들 또한 민주주의들이 모두 그에 대항하려고 단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광산부터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미국에서 수백만 혁명 동지들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눈물 흘리는 가운데 죽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반대파가 있기는 했어도 개인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608)

마르크스가 구상하고 구축한 인생은 자기를 열정적으로 만드는 활동과 초조하게 만드는 글쓰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론을 투쟁의 도구로 만들었다. 그이 정치경제학은 헐벗은 자들, 핍박당하는 자들, 모욕당하는 자들의 항거 도구로 쓰였다. 그는 정신의 힘을 믿는 유물론자였으며, 경제는 역사의 기반이며 행동이 이론보다 먼저라고 생각하는 철학자였다. 그리고 인간을 신뢰하는 비관론자였다. 곧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이론을 왜곡해 태도를 흉내 내려 애쓰면서 이론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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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 바로 쓰기 4 우리 글 바로 쓰기 4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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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이오덕 선생님이란 분이 계시단다. 43년 동안 선생님을 하셨으니까,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이 잘 어울린단다. 아빠가 이오덕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에 책을 통해서였는데, 그때는 이미 이오덕 선생님은 돌아가신 후였단다. 그의 책 <우리글 바로 쓰기>(3)을 너무 감명 깊게 읽었어. 그 동안 글을 잘못 써왔다는 것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어. 그 이후에도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가끔 찾아 읽었는데, 얼마 전에야 <우리글 바로 쓰기>의 개정판이 나오면서 5권까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알았단다. 알아 보니, 이오덕 선생님의 유고를 모아서 4권과 5권을 추가로 출간했다고 했어.

4권의 글들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쓰신 글들을 모아 놓으신 것 같았어. 이오덕 선생님이 2003년에 돌아가셨으니까, 돌아가시기 전까지 글들을 모아 놓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단다. 마지막까지 우리글을 사랑하셨고, 우리말에 대한 정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정부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셨단다.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모두 맞는 말씀인 것 같은데, 그런 목소리들이 왜 현실에는 전달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단다.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고 나면 글쓰기를 할 때 조심을 하게 된단다. 아빠도 이미 오염된 말과 글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그것을 피해서 글을 쓰고 싶으나 쉽지 않단다. 최대한 생각해서 쓰고 있지만, 이오덕 선생님께서 아빠가 쓴 글을 보면 여기저기 잘못된 부분을 잔뜩 주실 것 같구나.  이오덕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바는 명확하단다. 쉬운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자.

==========================

(21)

우리 온 국민이 날마다 입으로 하는 말, 읽고 쓰는 글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하도록 하여

 서로 생각을 올바르게 알리고,

 서로 깨끗한 마음을 주고받고,

 저마다 하는 일을 바로 하게 되고,

 잘못된 말로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속지 않으며,

 어려운 말을 몰라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어려운 말을 몰라서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게 하고,

 유식함을 자랑하거나 겉치레하는 풍조와 남의 것 부러워하여 우리 것을 멸시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온 국민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마음으로 정답게 살아가는 참된 민주 통일의 나라를 세우는 바탕을 다지는 데 목표를 둔다.

==========================


1.

1990년대 후반 국민의 정부 시절에 한자 교육 활성화와 한자 혼용정책을 쓰자고 했던 것 같구나. 그것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시작하셨단다.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 왜 어려운 한자어를 쓰는지, 한자어를 쓰는 것도 모자라서, 한자 혼용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셨단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한단다. 우리말에 대부분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데, 한자어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이오덕 선생님도 모든 한자어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란다. 이미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은 그대로 써도 된다고 하셨어. 다만, 많이 쓰고 있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는 그런 우리말보다 한자어를 쓰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란다. 예를 들어, ‘계곡골짜기’, ‘호우큰비’, ‘당시그때’, ‘수위물높이등등 그 예가 너무 많아 여기에 다 들 수가 없구나.

가끔 우리말을 사용한다고 하면서,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까지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모르는 우리말까지 찾아내어 대체하는데, 그것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구나. 이오덕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쉬운 말을 쓰자는 것이지, 이미 죽은 우리말까지 찾아내어 쓰자는 것은 아니야. 그 또한 너무 어려운 말이라 사람들이 모르는 말들이니까 말이야.

한자어도 문제이지만 일본말은 더 큰 문제란다. 아빠가 예전에 읽은 이오덕 선생님의 책들에서도 똑같이 주장하셨어. 일본말을 그대로 들여와 쓰는 말들. 그 말들을 보면 너무 많아서, 이것을 안 쓰고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단다. 하지만 될 수 있으면 안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몰랐을 때는 모르고 썼지만, 알게 되고 나서는 안 쓰려고 한단다.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고 일본말을 쓰지 말자고 다짐을 했는데, 사실 그것이 쉽지는 않았단다. 아빠가 알고도 안 쓰기 어려웠던 것이 ‘~()’이라는 말이란다. 구체적으로, 본격적으로, 객관적으로수도 없이 많이 쓰고 있거든.. 이미 우리나라 문법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이 일본에서 생겨난 것이 명백하다고 하니, 아빠도 다시 한번 그 말들을 피해 보도록 노력해야겠구나.

==========================

(471)

본래 일본말에는 우리 말에서 받침에 해당되는 말소리가 없어서 부드럽고 곱기만 하지 힘찬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래서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힘차게 내세우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김씨(관형사)로 만드는 토씨(조사) ‘’()만을 자꾸 써서 이름씨(명사)를 줄줄이 꿰어놓자니 답답할밖에 없다 .이러던 터에 ()이란 말이 나오니까 이 말소리 테끼’ ‘테키가 힘찬 받침소리가 효과가 나서 ' 대신에 이 말은 너도나도 하고 다투어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일본사람들이 이 테키’()란 말이 자기들 말에서 모자란 점을 채워주는 말로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말에는 예사소리와 된소리, 열린소리와 닫힌소리, 부드러운 소리와 힘찬소리가 고루 있기 때문에 조금도 이런 말을 꾸어다가 쓸 필요가 없다. 이런 말을 쓰면 도리어 우리 말에서 닫힌소리나 거친소리가 더 많아져서 말이 사납게 되고 어설프게 되고 만다.

==========================

일본말인 것을 알고 쓸 수 밖에 없는 말들 중에 축제라는 말이 있단다. 우리 나라 계절마다 지방마다 온갖 축제가 열리잖아. 마치 축제의 나라 같잖아. 그런데 그 축제라는 말이 일본말이고, 뜻도 우리나라에서 쓰는 말과 다소 다르게 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알고 계속 써야 하나 싶구나. 그런데, 다른 이들은 모두 축제라고 하는데 말이야. 그리고 축제를 대체하는 말로 잔치가 있긴 한데, 잔치로 모두 바꾸기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벚꽃 축제를 벚꽃 잔치라 하기 좀 그렇잖아. 바꿀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알고도 이런 말들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만큼 우리나라 말들이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란다.

영어에서 온 말들도 많이 있단다. 단순 외래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야. 외국어를 번역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사용하지 않던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야. 예를 들어, ‘그녀도 우리나라 말에는 없었대. 우리나라의 3인칭 대명사는 남녀 구분 없이 ’, ‘그이’, ‘저이를 썼다는 거지. 그리고 더 많이 쓴 것은 원래 이름을 많이 썼지, 3인칭 대명사를 잘 안 썼다고 하는구나. 하기야,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구나. 이 사실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가끔 글을 쓸 때, 여성 3인칭 대명사가 필요한 경우 라고 써 놓으면, 읽은 이들이 혼동을 하는 경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리고 또 영어를 번역하면서 잘못된 것 중에 하나가 과거형을 쓸 때, ‘이 두 번 들어간 문장이란다. 아마 영어의 대과거시제 번역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사실 아빠도 별 생각이 있었었다.”라는 말을 쓴 적이 있는 것 같아. 우리나라는 대과거 시제가 없기 때문에 그냥 을 하나만 써야 한다는 거야. 또 하나만 더 예를 들게. 이건 아빠가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고 안 쓰는 말 중에 하나인데, ‘불린다라는 말이야. 피동형으로 불리다라고 쓰는 위치를 보면 대부분 그냥 부른다라고 바꿔 쓸 수 있거든.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부른다라는 말도 대부분 한다라고 바꿔 쓸 수 있다고 해. ‘부른다라고 쓴 것도 잘못 쓴 경우가 많다고 말이야. 아무튼 불린다라는 대부분 잘못 쓰고 있으니 안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

(601)

부른다를 입음꼴(피동형)로 만들어놓은 불린다란 말은 경찰서에 불려갔다.” “어느 학생이 교무실에 불려 갔다고 할 때 말고는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 말로 바르게 쓰는 말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예사로 쓰고 있다. 다음에 들어놓은 보기글은 좀 양이 많은데,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많이 오염되어 있는가를 알리고 싶었고, 또 혹시 어쩌다가 이런 글에서는 이대로 써야 하지 않겠나싶은 경우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싶어 눈에 띄는 대로 적어놓았던 것이다.

==========================

….

아빠가 기억나는 것만 몇 개 적어보았지만,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 중에 정말 많은 말들을 잘못 쓰고 있단다. 이 책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그 예를 들어 주었는데, 대부분이 신문과 방송이란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만나는 매체인 신문과 방송요즘에는 인터넷을 더 많이 보겠지만아무튼 이런 매체들에서 잘못된 우리글을 쓰고 있으니까, 그것을 날마다 보는 국민들도 잘못된 글들을 쓰게 되는 것이란다. 예전에 잘 쓰지도 않던 어려운 말들을 이젠 글뿐만 아니라 말로도 쓰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이 오염된 말과 글을 고치려면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언론과 방송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란다. 그들이 잘못된 말과 글을 안 쓰고 쉬운 우리말을 쓰다 보면 국민들도 그것을 따라 쓰게 될 텐데 말이야. 이오덕 선생님이 이런 주장을 20여 년 전에 주장을 하셨지만, 오늘날 언론과 방송에서 쓰는 말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단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할 수도 있어. 전혀 없던 새롭고 어려운 말들을 만들어내니까 말이야. 오염된 우리말과 우리글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이는구나.


2.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는 친일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단다. 그래서 이 애국가를 그대로 두어야 하는 논란이 있는 것을 들은 적 있어. 그런데, 작곡가뿐만 아니라 애국가의 작사가도 친일파 윤치호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단다. 애국가의 작사가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대. 그랬다가 나중에 윤치호라고 알려졌는데, 윤치호도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란다. 그 시대 겁을 먹고 친일을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문인이나 공인들은 생각을 잘 하고 처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은 것 같구나. 친일파가 작곡하고 친일파가 작사를 한, 이 애국가를 계속 불러야 하는 것 맞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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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바로 며칠 전에 어느 일간신문에서, <애국가>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 윤치호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신문은 윤치호가 자신이 지은 <애국가>를 손수 붓으로 써서 윤치호 작사라 해놓은 것을 사진으로 공해했다. 이래서 지금까지 누가 지었는지 확실히 몰랐던 <애국가> 작사가가 윤치호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윤치호라면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로 우리 민족을 배반한 사람이다. 우리가 얼마나 부를 노래가 없어서 하필이면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가 지은 노래를 의식 때마다 불러야 하나? 지금까지는 몰라서 불렀지만, 그 사실을 안 다음에는 부를 수가 없다.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내 감정과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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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희들도 학교 생활을 하면서 점점 한자어와 외래어를 배우고, 글쓰기를 할 때 그런 말들을 쓰게 될 거라 생각이 드는구나. 얼마 전에 숙제를 하는 것을 봐주었더니, 어디서 본 말인지 모르겠지만, ‘착공이라는 말을 썼더구나. 그래서 아빠가 넌지시 착공이라는 말보다 짓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쓰는 게 어떨까? 이렇게 이야기해주었잖아. 어려운 한자어와 외래어보다 우리가 평상시 쓰는 말들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그런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너희들이 학교를 다니다 보면 너희 글들을 평가를 받게 될 텐데, 너희가 쉬운 우리말과 글로 쓴 것을 평가하는 이들이 어려운 한자어에 오염된 이들이라면 좋지 않게 평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오염된 곳에서는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로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지금 우리가 살리려고 하는 말은 우리 온 겨레가 나날이 살아가면서 입으로 주고받는 말이다.

책의 끝 문장 : ‘우리 말인가? ‘우리말인가? 어쭙잖은 띄어쓰기 문제 하나가 사실은 아주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말이지 나는 내 방에 가득 차 있는 이 책들, 그 가운데서도 지식인들, 학자들이 써놓은 책들이 싫다. 우리 글로 썼다는 이 책들이 철학이고 역사고 사회고 경제고 문학이고, 문학에서 소설이고 수필이고 시고 아동문학이고 모든 책이 잘못된 한자말, 잘못된 일본말, 일본말법, 서양말법 투성이로 되어 있다. 책이 이렇고 신문이 이렇고 방송말이 이러니 우리 말 우리 얼은 자꾸 죽어간다. 그래서 대낮에 나타난 도깨비 같은 한자말을 쓰자, 한자말을 알 수 있도록 한문글자를 쓰고 가르치자고 하는 미친 소리까지 나올 판이 됐다.- P59

그런데 우리 말과 우리 글자를 쓰자고 하는 것은 취미가 아닌가?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이것은 다르다.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의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고, 우리 민족의 말을 적는 글자를 쓰자고 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밥을 같이 먹고 물을 같이 마시자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 말 우리 글은 우리가 먹는 밥이고 마시는 물이고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P116

방송인들이여, 책에서 말을 배우려고 하지 말라! 학생들이여, 제발 방송을 멀리하라! 책도 보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 속에 빠져버리지는 말라!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글(책)이 말을 잡아먹고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이 아주 엄연한 현실이다! 말은 언제나 삶 속에, 자연과 어울린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쉬운 말 하는 사람은 마음도 고와요!
- P310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 잣대는 결국 삶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물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은 참고가 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삶을 키워가는 데 참고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 그것만 따라가려 하고 거기에 기대어서는 그만 자기 것을 잃어버린다. 삶, 그것만이 사람을 사람으로 되게 하고,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 되게 하는 길이다. 이래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는 아이들을 참되게 키우는 교육에 될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다시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P386

이 진검승부(眞劍勝負)란 말은 일본어사건이나 일본 역사책을 찾아볼 것도 없이 그 옛날 일본의 무사(사무라이)들이 서로 원수가 되었을 때, 마치 서양사람들이 권총으로 서로 쏘아 죽이는 판을 벌이듯이 진짜 일본칼로 마주서서 사생결단을 내던 야만스런 풍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째서 이런 말이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자꾸 쓰이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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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2 (무선) - 개정판 해리 포터 시리즈
J.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2권을 부지런하게 이야기해보자꾸나. 록허트와 스네이프 교수가 마법 결투 클럽을 만들었잖아. 해리와 말포이가 마법 대결을 펼치다가 큰 뱀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뱀이 학생 중에 한명인 저스틴을 공격하려고 했어. 해리는 다급하게 뱀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경고를 했어. 그러자 뱀이 물러갔는데, 다들 해리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았단다. 해리는 뱀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경고를 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그 경고는 무섭고 알 수 없는 소리로 들렸거든

그래, 해리가 자기도 모르게 뱀의 말을 한 거야. 1부에서도 나온 것처럼 해리가 뱀의 말을 할 수 있잖아. 그런데, 뱀의 말을 할 줄 아는 마법사는 아주 먼 옛날 슬리데린과 볼드모트밖에 없었으니, 다른 이들은 해리가 그들의 후계자일 거라고 생각을 한 거지. 그렇게 뱀의 위협을 받았던 저스틴이 얼마 후에 얼마 전에 콜린이 그랬던 것처럼 돌처럼 굳은 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모두 해리를 의심하게 되었단다. 모든 나쁜 일들이 해리와 엮이게 되는구나.

..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비밀의 방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말포이에게 접근하기로 했어. 말포이가 슬리데린의 정보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헤르미온느가 폴리주스 마법의 약을 만들어, 해리와 론이 말포이의 친구인 크레이브와 고일로 변신을 했어. 그렇게 말포이에게 접근해서 비밀의 방에 대해 알아 보았지만, 말포이는 아는 내용이 별로 없었어. 그저 말포이의 집 거실 바닥 밑에 무엇인가 불법적인 것이 있다는 것만 알아냈지. 비밀의 방의 정체는 누가 알고 있는 것일까.


1.

50년 전에 비밀의 방에 있던 괴물을 물리친 톰 리들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때 그 괴물을 물리친 공로로 리들은 공로상을 받기도 했어. 그런데 해리는 우연히 리들의 비밀일기장을 얻게 되었지. 그 비밀일기장으로 비밀의 방의 정체를 알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 비밀일기장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어. 백지우연히 그 일기장에 글을 쓴 해리그 다음 리들의 답이 일기장에 나타났어. 그 일기장으로 그렇게 글로 대화할 수 있는 일기장이었어.

그 일기장을 통해 해리는 50년 전으로 갈 수도 있었는데, 50년 전으로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비밀의 방의 문을 연 사람이 바로 해그리드라는 거야. 다시 현재로 돌아온 해리는 론, 헤르미온느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고, 해그리드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어. 한동안 학생들의 미지의 괴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다가 두 명이 습격을 당해 또 돌처럼 굳었단다. 그런데 그 두 명 중에 한 명이 헤르미온느였어. 그제서야 론과 해리는 해그리드를 찾아갔어. 해그리드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덤블도어가 해그리드를 찾아와 론과 해리는 투명망토로 몸을 숨겼지.

덤블도어가 해그리드를 찾아온 이유는 습격 사건이 또 일어나자, 예전에 비밀의 방의 문을 연 해그리드를 사람들이 의심해서, 이사회에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해그리드를 아즈카반의 감옥에 가두기로 했다는 거야. 참 나쁜 사람들이네. 덤들도어 교장은 착한 사람이지만 이사회 결정을 거절할 수 없었단다. 해그리드는 해리와 론에게 비밀의 방에 대한 힌트로 거미를 따라가라고 했어. 얼마 뒤 수많은 거미들이 금지된 숲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해리와 론은 그 거미를 따라갔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라고그라는 엄청나게 큰 괴물을 만났어. 50년 전 해그리드가 비밀의 방의 문을 열고 그곳에서 나왔다고 하는 그 괴물이 바로 아라고그였어.

그러나 아라고그는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고 했어. 해그리드가 아라고그를 보살펴 주고 사람들을 피해 몰래 숨겨 주었던 것이래. 자신은 비밀의 방의 괴물이 아니고 말이야. 그러니까 해그리드가 자신이 죄를 뒤집어 쓰고 아라고그가 도망갈 수 있게 했대. 해그리드도 비밀의 방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거야. 그 일로 학생이던 해그리드는 마법학교를 졸업도 못하고 쫓겨나서 호그와트의 오두막을 그 오랫동안 지키고 있었던 거야.


2.

헤르미온느 병문안을 했는데 여전히 굳은 상태였어. 그런데 헤르미온느 손에 쪽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니 비밀의 방의 괴물의 정체가 적혀 있었단다. 헤르미온느가 비밀을 알아 낸 것이었어. 비밀의 방 괴물의 정체는 비살리스크, 그러니까 엄청 큰 뱀이었어. 그리고 그 괴물은 호그와트의 수도관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고 했어.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가끔씩 해리 혼자 벽에서 들리는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잖아. 바로 그 괴물이 커다란 뱀이라서 그 뱀의 목소리를 해리가 들었던 거지. 해리는 뱀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잖아. 그 와중에 또 습격사건이 있었단다. 이번에는 돌처럼 굳는 사건이 아니고, 납치를 당했다고 했어. 바로 론의 동생 지니.

해리는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어. 화장실 유령 모우님 머틀이 50년 전 괴물이 죽인 아이였다는 것을 말이야. 머틀은 비밀의 방의 위치를 알 거라 생각하고 해리와 론은 머틀을 찾아갔지. 그래, 머틀은 비밀의 방의 위치를 알고 있었는데, 그 비밀의 방의 입구를 들어가는 장치가 바로 화장실 세면대에 있었어.

그렇게 찾아간 비밀의 방에서 해리가 만난 이는 뜻밖의 인물, 톰 리들이었어. 정확히 이야기하면 비밀일기장에서 나온 톰 리들이었지. 톰 리들이 자신의 비밀일기장을 갖고 있던 지니를 조정해서, 호그와트의 이상한 사건들을 일어나게 했다는 거야. 벽에 붉은 색 글씨로 경고한 것을 포함해서 말이야. 지니는 처음에는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되고 그 비밀일기장을 화장실에 버렸는데, 그걸 우연히 해리가 갖게 되었던 것이고.

톰 리들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어. 톰 리들의 풀 네임의 알파벳 스펠링의 순서를 바꾸니 나는 볼드모트다라는 문장이 만들어졌어. , 뭐라고? 그러니 톰 리들이 바로 볼드모트라고? 톰 리들은 16살 때 자살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그것이 아니고 볼드모트라고 이름을 바꾸고 어둠의 마법사가 되었던 거야. 지금 비밀의 방에 있는 톰 리들은 일기장에서 나온 톰 리들이니까 어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리들은 비살리스크라는 큰 뱀 괴물을 조정하여 해리를 죽이려고 했으나, 때마침 나타난 덤블도어의 불사조 퍽스와 도움을 주어 해리는 그 괴물을 물리치게 된단다. 리들의 일기장에 비살리스크의 독이빨을 찔러서 일기장과 톰 리들을 파괴시켰지. 그렇게 톰 리들과 비살리스크를 물리쳤더니, 돌로 굳었던 사람들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단다.

….

그런데 의문점이 드는 것이 있었어. 지니가 어떻게 톰 리들의 비밀일기장을 갖게 되었을까. 새 학기 입학하기 전에 다이애건 앨리에서 론의 식구들이 말포이의 아빠 루시우스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루시우스가 몰래 지니의 바구니에 넣었던 거야. 밤의 손을 빌려 해리를 없애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실패를 했구나. 그리고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의 앞부분에서 해리에게 경고를 했던 집유령 도비그 도비는 바로 루시우스 말포이의 집에 살던 집유령이었단다. 결과에 어찌되었던 도비는 해리를 도우려고 했던 거야. 그 착한 도비가 루시우스 말포이의 나쁜 이의 집유령이라는 사실을 알고, 해리를 꾀를 부려서 도비를 풀려나 자유를 얻게 해 주었단다. 그렇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소설 속에서 톰 리들의 이름의 알파벳 순서를 바꾸어 나는 볼드모트다라는 말을 만들었잖아. 이렇게 알파벳 순서를 바꾸어 다른 문장이나 단어를 만드는 것을 애너그램이라고 한단다. 소설을 읽다 보면 가끔 이 애너그램이 나오는데, 예전에 처음 이걸 알게 되었을 때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구나. 너희들도 해리 포터에서 그 장면을 읽었을 때 재미있었는지 궁금하구나.

7부 중에 이제 2부를 너희들과 이야기를 해보았구나. 다음 이야기도 또 천천히 해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해리는 일요일 아침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책의 끝 문장 : 그리고 그들은 함께 개찰구를 지나 다시 머글의 세계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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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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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하워드 진이라는 사람은 유명한 역사가로 알고 있었단다. 인터넷 중고서점 둘러보다가 그가 쓴 미국 역사에 관한 책이 있길래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유명한 역사가의 궁금했던 미국 역사 이야기이니까 말이야.(예전에 한 권으로 읽는 미국사를 읽은 적이 있긴 한데, 기억 속에 저편이 되었어.)

책을 읽기 전에 지은이 하워드 진에 대해 좀 찾아왔어. 그런데 그냥 그런 역사가가 아니었더구나. 그를 유명하게 만든 역사책은 <미국민중사>라는 역사책인데,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민중의 처지에서 쓴 미국의 역사였던 거야. 원래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단다. 그렇다 보니 몇몇 영웅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단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이름은 없지만 수많은 민중들의 눈으로 본 미국의 역사를 이야기했던 거야.

<미국민중사>가 미국에서 크게 히트를 쳤지만, 그 책이 결코 쉬운 책은 아니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미국사를 처음 접하거나 조금 쉬운 <미국민중사>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다시 쓴 책이 바로 <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라는 책이란다. 다시 쓰면서 <미국민중사>를 쓴 1980년애 이후의 미국 역사도 추가하여, 21세기초 부시 정권의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단다. 그가 2010년에 세상을 등졌는데, 만약 오늘날까지 살고 있어서, 첫 흑인 대통령과 괴짜 대통령 시대를 겪었다면, 이 시대를 어떻게 써냈을지 궁금하더구나. 하워드 진 이후 그처럼 미국현대사를 민중의 낮은 눈으로 쓰는 역사가는 또 어떤 이가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1.

미국을 세우고 지금의 영토까지 확장하는데 공을 세운 이들. 일반적인 미국 역사에서 그들을 영웅으로 이야기한단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다르단다. 그들은 그저 금을 찾아 폭력을 휘두른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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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리는 여태껏 영웅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실상은 그런 찬사를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관해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콜럼버스가 했던 일에 대해서 영웅답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 땅에 도착해서 황금을 찾기 위해 광란의 폭력을 휘두른 게 그가 했던 일인데 말이다. 왜 우리는 앤드루 잭슨이 인디언들을 살던 곳에서 내몬 일을 영웅답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영웅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는 미국-스페인전쟁을 일으켜서 스페인 세력을 쿠바에서 축출했지만, 그것이 실상 쿠바의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서 했던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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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패배했지만 불의의 권력에 맞서 저항하고, 비판한 이들이 진정한 영웅인 것이다. 미국이라는 땅에는 오래 전부터 수많은 원주민, 즉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단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들이 그 원주민들을 무참히 짓밟고 죽이고 세운 나라가 미국이란다. 얼마 전에 <, , >라는 책을 읽고 아빠가 그 이야기를 했었잖아. 유럽인들은 황금과 땅을 찾아 왔기에 원주민들과 타협은 없었던 거야. 인디언들은 그들의 살아온 방식대로 이주민들을 대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짓밟히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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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우리는 포와탄(인디언 추장)이 했다는 말에서 자기 영토에 침입한 백인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우리 부족 그 누구보다도 평화와 전쟁 간의 차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사랑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을 무력으로 빼앗으려 하는가? 어찌하여 당신들은 먹을 것을 제공한 우리를 파멸시키려 하는가?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경계하는가? 우리는 무기도 들지 않았고, 당신들이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면 원하는 것도 기꺼이 내줄 것이다. 그리고 내 가족들과 함께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에 조용히 생활하면서 영국인들과 웃고 즐기며 동존과 도끼를 교환하는 것이, 영국인들을 피해 도망쳐 숲 속에서 도토리나 풀뿌리 등을 먹고 추적을 당하며 춥고 불안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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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워드 진의 미국 역사를 읽다 보니 굵직한 특징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차별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미국이 생겨난 이래 계속 차별이 있었고, 그 차별을 없애려는 자와 유지하려는 자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았어. 개국 초기 영국 본토와 식민지의 갈등이 심해진 이유도 영국 본토에서 온 이들과 식민지에 살고 있는 이들의 차별로 시작되었어. 그런 차별로 인해 영국 본토에서 온 군인들과 식민지 노동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 그 사이네 노동자가 죽게 되었는데 군인들이 대부분 무죄를 받으면서 보스턴 차 사건까지 일어나고그것을 시작으로 독립 전쟁이 일어났지.

독립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13개의 주의 연합국 형태의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지. 그리고 처음 만든 헌법... 그 헌법 또한 차별을 위한 헌법이었던 것이었단다. 일부 부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었어. 힘없는 노동자들, 여성들을 위한 법은 없었단다.

======================

(75)

1935년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가 발표한 헌법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접한 사람들은 분노했다. 찰스 비어드가 헌법 작성을 위해 모였던 55인에 관해 연구한 결과 그들 대부분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사체업자들이었고 대부분은 변호사였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경제 시스템을 유지해줄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연방정부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찰스 비어드는 여성, 흑인, 계약 노동자, 빈민들의 헌법 작성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힘없는 사람들의 요구 사항이 헌법에 반영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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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색인종의 차별그 시작은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아닐까 싶구나. 노예 해방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에이브러햄 링컨. 링컨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분리 독립을 선언한 남군. 링컨이 이끄는 북군. 신생국가 최대의 위기는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으로 이어지고, 북군이 승리함으로써 노예제도는 폐지되게 된단다.

하지만,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고, 노예들이 백인들과 같은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었단다. 노예들 대부분이 흑인이었는데, 흑인들에 대한 차별 대우는 오랫동안 이어졌단다. 그런 흑인들에 대한 차별 폐지를 위해 루터 킹 목사, 말콤 엑스 등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노력을 했단다. 그들은 실제로 테러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많이 차별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얼마 전에도 무장하지 않은 흑인을 백인 경찰이 무장 진압을 하다가 죽은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단다. 그런 일들이 간간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 미국이란다. 여전이 백인 남성들의 DNA에는 차별 DNA가 있는 것 같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국이라는 나라가 백인 남성들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보니, 여성에 대한 차별도 오랫동안 심했다고 하는구나. 신대륙에 여자들이 부족해서 유럽에서 여자들을 데리고 왔는데, 신대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병에 걸리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해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여자들의 사회 진출도 어려웠다고 해. 그런 여자들에 대한 차별에 최초로 반기를 든 이가 베티 프리던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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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

여성운동에서 최초이면서 최대의 영향력을 갖는 저서는 베티 프리던이라는 중산층 가정주부가 쓴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였다. ‘신비라는 것은 사회가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즉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내로,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데 완벽하게 만족하는 여성상을 의미한다. 그런 이미지에 맞추어 살기 위해 여성들을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베티 프리던은 여성이 남성들처럼 자아를 찾고 자신이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만의 일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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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많이 없어진 걸로 알고 있어. 오늘날 미국에서 여성 차별은 어떤 상황인지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단다.


3.

미국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갖고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것은 바로 전쟁 때문이라고 생각한단다. 그 또한 백인 남자들이 싸우기 좋아하는 성격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구나. 나라가 만들어진 지 불과 수백 년밖에 안되었는데, 미국은 크고 작은 전쟁에 참여했단다. 특히 세계1차대전을 참가하고 나서, 전쟁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절실히 깨달은 것 같았어. 세계2차대전을 겪고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겠지. 세계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 세계 유일 절대 강국이 되어 있었지.

미국의 처지에서 보면 다행히 세계의 흐름은 냉전의 시대가 되었고,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일어나서 국가 번영에 도움이 되었겠지. 심지어 전쟁을 하고 싶어서 조작까지 했어. 그럼에도 실패한 전쟁이 있으니 베트남 전쟁이란다. 참여한 국제 전쟁에서 첫 패배잃은 것만 있었던 전쟁이었지. 그리고 그 이후 큰 전쟁은 걸프만 전쟁이었는데, 베트남 전쟁의 패배가 쓰려는지 걸프만 전쟁은 현대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어. 그런 전쟁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내 줄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아랍국가들과 벽을 쌓은 미국은 결국 뉴욕 쌍둥이 빌딩을 공격 당하는 참사를 겪게 된단다. 그 이후 다시 보복을 위한 전쟁을 일으키고아빠가 정리가 잘 안되어 그렇지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끊임이 없는 것 같구나. 앞으로는 또 누구를 적으로 만들고 전쟁을 고민할까. 미국은 다른 답을 찾아야 한다.

….

최근 코로나로 전세계가 마비되면서,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나아가 국가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단다. 세계 최강이라고 하던 미국이 이것 밖에 안되었나 싶을 정도로 전염병에 대한 대처 능력이 많이 부족했단다. 우리나라와 같은 날 첫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겼기 때문에 미국 언론에서는 우리나라와 많이 비교를 하기도 했어. 도대체 코로나는 언제 끝날 것인지 모르겠구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얼른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25년 전 세상에 나온 이래, 학부모와 교사들은 젊은 세대가 흥미를 느낄 만한 수정판을 낼 계획이 없는지 줄곧 내게 문의해 왔다.

책의 끝 문장 : 너희는 다수이고, 그들은 소수니까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야생의 세계에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유럽과 다를 바 없이 번화한 곳도 있었다. 인디언들은 고유의 역사와 법률, 문학이 있었다. 그들은 유렵인들보다 훨씬 훌륭한 평등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과연 ‘진보’라는 말에는 그들의 사회를 파멸시켜도 될 명분이 충분히 있는 것일까? 인디언들의 이러한 운명은 정복자나 지배자들의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한 무언가가 역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P29

하지만 토머스 제퍼슨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그런 봉기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여겼다. 그는 "이따금 일어나는 작은 반란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정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약이기 때문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P74

에이브러햄 링컨은 경제적인 요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화당과 정치적 야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뛰어난 화술로 도덕적인 차원에서 열정적으로 노예제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동시에 그는 노예제 폐지론이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여 정치적으로도 신중을 기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가 옳지 못한 제도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흑인들이 백인들과 동등하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했던 가장 좋은 해결책은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P120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아리안이나 노르딕이라고 불렀던 백인 게르만 민족이 다른 민족들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민족우월주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틀림없이 미국의 흑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군대는 인종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혈액은행조차도 백인의 혈액과 흑인의 혈액을 따로 보관했다. 혈액은행의 시스템을 만든 흑인 의사 찰스 드루는 혈액 분리에 반대하여 해고당했다.- P205

빌 클린턴은 자신이 내린 결정들이 미국 국민의 여론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미국인들이 사람들 모두 건강보험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국민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원했으며, 정부가 빈민들과 집 없는 사람들을 돕고, 군사 예산을 감축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공화, 민주 양당에는 이런 일을 추진하는 정치가가 없었다.
미국인들이 여론조사에 나타난 대로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국민이 독립선언서에 적힌 대로 모든 사람들의 생활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단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려 깊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부를 분배하는 경제체제의 요청이 될 것이며, 젊은이들이 탐욕을 숨긴 채 성공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 문화를 의미할 것이었다.-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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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7-31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이야기하는 책이군요 :-)
금 차별 전쟁 권력 등
 

오늘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날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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