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마르크스에 관한 책을 또 읽었단다. 정작 그가 쓴 저서들은 감히 도전을 하지 못하고, 그에 관한 책들과 해설서들만 읽는구나. 몇 년 전에도 이사야 벌린이 쓴 마르크스 전기를 읽었는데, 이번에 또 마르크스 전기를 읽었단다. 아빠가 예전에 읽은 이사야 벌린이 쓴 마르크스 전기와 이번에 읽은 자크 아탈리가 쓴 마르크스 평전을 서로 비교해 가면서 이야기를 해 주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정리 능력이 없고, 예전에 읽은 이사야 벌린의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둘째치고, 이번에 읽은 자크 아탈리의 책도 벌써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구나.

그냥 자크 아탈리가 쓴 <마크르스 평전>을 읽으면서 긁적여 놓은 메모로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줄게. 책 제목이 그냥 마르크스 평전이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단다. 자크 아탈리가 누구지?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데공학, 정치학, 경제학 등 다양하게 공부를 하고 경제학 박사가 되었고, 프랑스에서 정치도 하고,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다고 하는구나. .. 프랑스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겠구나. 그런 그가 20세기에 들어서 19세기의 뛰어난 천재 마르크스를 재해석을 하겠다고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란다.


1.

마르크스의 선조들은 대부분은 트리어 지방의 유대인 제사장이었다고 하는구나. 트리어가 지금은 독일 땅이지만, 과거 한때 프랑스 땅이기도 해서, 프랑스와 독일의 스타일이 공존하는 그런 곳이란다. 아무튼 마르크스 선조들은 다들 제사장이었는데, 마르크스의 아버지 하이셸은 변호사가 되고 싶어했단다. 하지만 식구들을 생각해서 유대교를 버리지 못했단다. 유대교를 버리지 못했다는 의미는 변호사를 할 수 없었다는 의미야. 유대교는 직업 제한이 많았는데, 변호사는 할 수 없었거든. 하지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다음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변호사가 되었단다. , 유대인들의 변호를 많이 해주었대. 그리고 이름도 하인리히 마르크스로 바꾸고 변호사를 하다 보니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아버지의 아들로 카를 마르크스가 1818년 태어났단다. 그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마르크스가 그 소설을 좋아했다고 하는구나. 이 평전의 특징 중에 하나는 마르크스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중요한 역사 사건이나 문학 작품, 예술 작품도 같이 이야기해주는 것이란다.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함인 것 같은데, 정작 아빠는 그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 작품을 거의 모르고 있어서 큰 도움은 안 되었단다. ㅠㅠ

마르크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를 본받으려고 한단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이웃 아저씨 베스트팔렌 남작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는단다. 나중에 베스트팔렌의 딸 예니와 사랑에 빠지고 평생 반려자가 된단다. 마르크스는 1853년 본 대학의 법학 공부를 하게 되는데, 이때 젊은 혈기가 넘쳐서인지 방탕한 생활로 빚을 지기도 했대. 아버지가 그 빚을 다 갚아주었다고 하고그 젊은 시절 그는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헤겔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나중에는 헤겔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고 하는구나. 마르크스가 한때 지지하던 이들도 나중에는 비판과 비난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 때문이 등 진 이들도 많단다.

….

베를린으로 옮겨서 계속 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변호사였기 때문에 법을 공부한 것 같았어. 하지만, 마르크스가 하고 싶은 공부는 따로 있었단다. 철학. 그는 장문의 편지로 아버지에게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한참 뒤에 아버지는 오케이를 했단다. 하지만 바로 바꾸지는 않았어. 아버지가 편찮으셨거든. 19세기의 보건 상황은 무척 열악했단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많이 죽고, 젊은 이들도 어느날 갑자기 시름시름 앓다가 죽곤 했어. 마르크스의 아버지도 폐렴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마르크스는 철학으로 진로를 바꿨단다. 당시 예니와 약혼 한 사이였는데, 예니는 트리어에 있고, 마르크스는 베를린에 있어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자주 만나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베를린에서 마르크스는 상류층 사람과 교류를 많이 했는데, 이때 베를린에서 군 복무 중인 엥겔스를 처음 만났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더구나. 마크르스와 엥겔스는 실과 바늘보다 더 심한 사이로써, 평생을 함께한 정신적 동지였단다. 1841년 마르크스는 베를린 대학 졸업장을 받고, 그해 4월에 예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단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논문을 그냥 일기 쓰듯 하는구나.


2.

마르크스는 바우어라는 사람과 함께 퀼른으로 향했단다. 그곳에서 <라인 신문>에 편집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라인 신문>은 진보 성향이 강한 신문이었어. 그렇다 보니 오래 못 가 강제폐간이 되었고, 마르크스도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단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키워온 예니와 결혼을 하게 되고, 예니는 마르크스 공부를 도와주었어. 그들은 퀼른에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당시 망명객들의 도시인 파리로 떠났어. 유럽 각지의 좌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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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그러니까 파리는 제네바, 브뤼셀, 런던과 더불어 중부 유럽 전체, 특히 독일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망명객들의 피난처였다. 망명객들은 정치적인 검열이나 경찰의 박해를 피해 파리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재단사 빌헬름 바이틀링처럼 스위스를 거쳐 파리로 온 은행가의 아들인 루트비히 베르나이스와 요제프 바이데마이어가 있었고, 당시 유명한 독일 시인이었던 게오르크 헤르베그처럼 프로이센에서 직접 온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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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좀 더 자유롭게 잡지고 만들고, 많은 책들도 보고 많은 철학자들, 사상가들과 교류도 했어. 그리고 딸도 출산하게 되었어. 그는 예니의 몸조리를 위해서 에니를 딸과 함께 고향인 트리어로 보냈단다. 그리고 혼자 남아서 실컷 공부를 했어. 이때 열심히 공부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정립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마르크스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완벽주의자라고 알 수 있단다. 그런 완벽주의 때문에 책을 쓰더라도 제대로 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대.

그의 행복한 파리에서 생활도 시간이 갈수록 좌파에 대한 통제가 심해졌어. 결국 벨기에 브뤼셀로 갔단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완전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어. 정치 활동을 안 한다는 조건을 달고 그를 받아주었거든. 하지만, 그는 브뤼셀에서 정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였단다. 공산주의자 관련된 모임을 만들고, 열심히 활동했어. 이 즈음이 엥겔스와 함께 일을 시작한 때였어. 트리어에 연락해서 아내 예니와 딸도 오라고 해서 그들은 브뤼셀에서 함께 지냈단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벨기에 내의 공산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영국의 공산주의 단체와 교류하였고,  공산주의자 동맹이라는 연합체를 만들었어. <공산주의자 동맹>의 선언문으로 쓴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이었단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얼마 전에 읽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의 독서편지로 대신할게.


3.

1849 8 26일 마르크스와 식구들은 영국에 도착했단다. 영국은 당시 대륙보다 정치적으로 안정했고, 언론의 자유도 어느 정도 보장해 주었어.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은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어. 주 근무 시간이 64시간이나 되었대. 아이들도 이제 셋이나 되었고, 예니는 넷째 아이를 임신했어. 그렇다고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집세마저 없어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그나마 엥겔스가 집도 좀 갚아주고 생활비도 좀 주고마르크스는 잡지를 출간했지만 집안 경제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어.

예니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 남동생은 마르크스와 예니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할 정도로 마르크스를 안 좋아했어. 그런 예니의 남동생이 프로이센의 내무장관이 되어서, 영국 정부에 마르크스를 경계하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구나. 다행히 영국 정부는 그의 편지를 무시했대.

마르크스는 영어를 하지 못했는데, 런던 생활이 길어지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 예니도 아이들 영어 공부에 신경을 썼는데, 아이들 네 살부터 셰익스피어를 외우라고 했대. , 무슨 뜻이나 알고 외우라고 시켜야 되는 건 아닌지밀린 집세로 결국 더 안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둘째 아들이 죽고 말았단다. 당시 유아 사망률이 높긴 한데, 돈이라도 넉넉히 있었으면 치료라도 할 텐데, 치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가난이 아이를 죽인 것이니라. 부모로써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 이상한 일이 하나 벌어졌어. 하녀로 같이 살고 있던 헬레나가 임신을 한 거야. 그런데 헬레나는 아버지가 누군인지 끝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대. 엥겔스는 자신의 아버지라고 이야기했다가 죽기 전에 사실은 마르크스가 아이 아버지라고 했다는구나. 마르크스는 묵묵부답이었고, 정황상 마르크스가 아이의 아버지였던 것 같구나.

….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마르크스는 글만 열심히 썼단다. 돈이 되지는 않았어. 그러다가 <뉴욕 데일리 트리뷴>으로부터 기사 제안을 받았어. 고민을 살짝 하긴 했지만, 기고하기로 했어. 얼마만의 고정적인 수입인가. 기사를 쓸 때는 예니와 토론하여 쓰고 악필인 마르크스 대신에 예니가 글을 베껴서 신문사에 보냈다고 하는구나. 이 기고뿐만 아니라 그는 간만에 수임이 어느 정도 생겨서 경제적인 안정을 찾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아이들은 몇이 더 죽었단다.


4.

특별한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대영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었단다. 하루 종일그곳에서 책들을 썼어. 하지만 그의 책을 출간해주려고 하는 출판사들이 없었어.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거든출판사를 찾지 못하다가 독일의 라살이라는 자산가가 책을 내주겠다고 하여 출간한 책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시론>라는 책이란다. 책을 내준다고 하면 원고를 독일까지 보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보내지 못하고 하는구나. 정말 가난했나 보구나. 결국 엥겔스한테 또 부탁을 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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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그 보잘것없는 원고가 끝이 났네. 하지만 보내지를 못했네. 우송을 하고 보험을 들 파딩(1961년에 폐지된 영국 화폐로서 4분의 1 페니에 해당했다-옮긴이)이 없기 때문이지. 그런데 보험은 꼭 들어야 하네. 왜냐하면 다른 복사본이 없거든. 그러니 월요일까지 약간의 돈을 보내주었으면 하네. 부탁하네.”

그러고 나서 그는 후에 아주 유명해진 다음 문장을 냉랭하게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돈이 없으면서도 돈에 대해 글을 쓴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네! 돈에 관해 쓴 작가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연구 주제와 사이좋게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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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아버지와 어렸을 때 깊은 정을 쌓았는데, 일찍 돌아가셨어. 하지만 어머니와는 연을 끊고 살았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마르크스에게 상속될 재산도 어머니가 안 주셨어.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단다. 정말 오랜 만에 고향 트리어에 가서 장례식에 참석했어. 장례식을 마치고 곧바로 런던으로 돌아왔는데, 많은 유산과 함께 왔단다. 갑자기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그는 큰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어. 아껴 쓸 만도 한데, 그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못해준 것이 미안해서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는구나. 엥겔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의 아버지는 큰 회사를 가지고 있었어. 그 회사를 고스란히 엥겔스가 물려받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엥겔스도 돈이 많아져서 마르크스에게 보내는 돈도 많아졌지. 이 때가 마르크스 삶에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시절이었던 것 같구나. 마르크스는 예니와 엥겔스가 걱정할 정도로 돈을 많이 썼대.


5.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좌파 세력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모임이 인터내셔널이 생겨나게 되는데, 마르크스는 독일 통신서기장으로 활동하게 된단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자본론>을 쓰기 시작한단다. 아직 그는 집으로 많은 인사들을 초대해서 교류를 나누었어. <자본론> 1권을 출간했지만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유명세는 점점 높아졌고, 그가 이십대에 쓴 <공산당 선언> <자본론>이 외국어로 번역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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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마르크스는 목표에 도달한 듯 싶었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코뮌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언론에 의해 절대 권력자로 여겨지면서 그는 유일한 다국적 정치조직의 정상에 자리했고, 그의 이름을 내세운 정당과 비밀집단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러시아에서 생겨났다. 코뮌의 마지막 무렵에 쓴 그의 마지막 <인터네셔널에 보내는 담화>는 서방의 모든 언론이 언급했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그와 인터뷰하려고 몰려들었다. 독일의 수십만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읽은 <공산당 선언>은 이제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자본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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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멤버들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각 나라의 요직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어. 그들의 활동이 넓어지는 것이 오히려 현정권의 반감을 사게 하여, 여러 나라들, 특히 프랑스에서 인터내셔널을 불법으로 규정했단다. 인터내셔널에는 큰 타격이었어. 추방뿐만 아니라 처형당하는 이들도 있었어. 마르크스는 이런 혼란의 시기에 노동자들이 결집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단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인터내셔널을 불법으로 규정하니 많은 사람들이 영국으로 망명해 봤단다.


6.

마르크스와 예니는 아이를 여섯 명을 낳았으나 셋은 일찍 죽고 딸 셋만 어른까지 성장을 했어. 딸의 이름은 첫째가 예니헨, 둘째는 라우라, 셋째는 엘레아노르였어. 딸들 모두 아버지의 영향으로 커서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단다. 아버지의 일도 도와주고 그랬어. 마르크스를 찾아오는 좌파 청년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는데, 마르크스의 눈에 차지 않았나 보더구나. 특히 셋째 엘레아노르는 17살 연상이랑 결혼하겠다고 하니 극구 말렸지. 그 남자 또한 사회주의자였지만, 바람둥이로 소문난 사람이었거든. 떼어 놓으려고 별 짓을 다했지만, 엘레아노르는 우울증까지 걸려 자살까지 생각하는 것을 안 마르크스는 마음을 돌렸어. 하지만 예니는 끝까지 반대를 했다고 하는구나. 결국 엘레나오르는 그 남자와 맺어지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

세월은 흘러 흘러 예니가 죽었어. 평생을 마르크스 뒷바라지를 하면 살았던 예니. 부잣집 딸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가난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의 남편이 되어 평생 가난과 싸우면서도 남편을 끝까지 지지해준, 그이 또한 위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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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4)

몇몇 친지들이 예니를 묘지까지 동반했다. 엥겔스가 추도사를 했다. 라우라와 엘레아노르, 예니헨과 샤를롱게 등과 함께 있던 라파르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독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그녀의 평등의식은 그 누구보다 철저했다. 그녀에게 사회적인 차이와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집과 식탁에 노동복 차림의 노동자들을 맞이할 때면, 왕족에게 대할 때와 똑 같은 예의와 배려를 보이며 맞이했다. …… 그녀는 마르크스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극도로 헐벗은 날들에도 자신이 선택한 것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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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도 이후 오래지 않아 삶을 마감한단다. 엥겔스가 추도사를 썼어. 마르크스의 영원한 친구인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마지막 길도 함께 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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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3)

3 14일 오후 3 15,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생각을 멈추었습니다. 그를 혼자 둔 것은 겨우 10분이었는데, 돌아와보니 그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안락의자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죽음은 유럽과 미국 프롤레타리아의 투사들을 위해, 그리고 역사과학을 위해 측량할 길 없는 손실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정신이 떠나면서 남긴 공백을 곧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다윈이 자연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인간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 게다가 마르크스는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움직임과 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르주아 사회를 이끄는 법칙도 발견했습니다. …… 이 두 발견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는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 둘 중 하나만 이룩한 사람일지라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모든 영역들을 아주 많이 연구했고, 그 모든 영역들 중에서 피상적으로 연구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하다못해 수학에 대해서까지 그는 발견의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그는 과학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이룬 업적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과학은 역사의 원동력, 혁명의 힘이었습니다. 힘들게 예측한 결과를 담은 이론적 법칙을 발견하는 기쁨을 넘어서서 그는 산업에서의 혁명적 변화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 왜냐하면 그는 우선 무엇보다도 혁명가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필생의 사명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모든 국가 제도를 무너뜨려서, 현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될 수 있는 조건을 처음으로 정의 내린 사람은 마르크스였습니다. 투쟁은 그의 기본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정적으로, 끈질기게,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투쟁했습니다. …… 마르크스는 당대에 가장 미움받고 모략을 가장 많이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대주의 정부들도 공화주의 정부들도 그를 유배시켰습니다. 부르주아들, 보수주의자들 또한 민주주의들이 모두 그에 대항하려고 단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광산부터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미국에서 수백만 혁명 동지들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눈물 흘리는 가운데 죽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반대파가 있기는 했어도 개인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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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갔고 그의 많은 글들이 남았단다. 그 글을 정리하는 몫도 엥겔스였어. 워낙 마르크스가 악필이다 보니 그의 글을 제대로 알아보는 이가 몇 안되었거든. 둘째 둘 라우라와 엘레아노르도 아버지의 글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했어. 그렇게 정리해서 <자본론> 2권과 3권을 내놓았대. 정말 엥겔스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마르크스와 함께 하면서 마르크스보다 뛰어나려고 하지 않았고, 늘 그를 지지해주면서 사회주의 운동도 변함없이 했지. 엥겔스만 다른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엥겔스의 추종자들이 엥겔스를 마르크스와 동급으로 올려 놓으려고 했지만, 엥겔스는 그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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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엥겔스 추종자들이 후에 두 사람을 동등한 반열에 올려 놓으려 애썼지만 엥겔스는 자신이 마르크스 천재적인 지적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엥겔스가 그토록 싫어한 공장의 사장 역할을 떠맡기 위해 런던을 떠나면서 포기한 것 중에는 저자가 되는 것도 포함되었다. 요컨대 엥겔스의 결단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유일한 저자인 마르크스에게 돈을 대주기 위해서였다. 자본주의의 요새에서 트로이 목마가 된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자신의 이론적 연구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마르크스와 함께 토론하기 위해 빈번히 런던에 왔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거의 매일 편지를 교환했고, 그것은 20년 간 지속되었다. 사상사에서 그와 같은 희생의 예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 때문에 아무리 힘든 처지에 놓여도 그는 결코 마르크스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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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딸 엘레아노르가 결국 우울증에 다시 걸려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둘째 딸 라우라마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하늘에 있던 마르크스와 예니 또한 많이 아파했겠지.

마르크스는 자신이 죽은 이후 그를 따르려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의 사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해석하여 권력을 누리는 자들도 있었는데, 그런 이들을 보면 마르크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빠가 메모를 띄엄띄엄 해서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준 마르크스의 삶도 띄엄띄엄 같구나. 카를 마르크스는 무엇이 그를 그런 삶을 살게 만들었을까. 평생을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고 새로운 사상을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빠가 그와 같은 두뇌를 가졌더라도 가족들이 눈에 밟혀 그와 같은 삶은 못살았을 것 같구나. 그의 삶은 한번 읽어볼 만한 삶이고, 선택적으로 배워볼 만한 삶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 카를 마르크스의 족보를 죽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와 어머니 쪽 모두 유대교 제사장들에 이른다.

책의 끝 문장 : ‘인간은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마르크스는 자기 책과 서류 들을 아무도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겉보기에는 무질서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으며, 그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이나 공책을 언제나 힘들이지 않고 찾아냈다. 대화를 하는 가운데도 그는 종종 자기가 막 인용한 글귀나 숫자를 책에서 찾아 보여주려고 말을 멈추곤 했다. 그는 자기 작업실과 일체를 이루었고, 책과 서류는 마치 그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복종했다."- P59

마르크스는 머리말을 썼다.
"사고하며 고통받고 있는 인류와 핍박당하며 사고하는 인류는 사고할 줄 모르고 소극적으로 즐기기만 하는 속물들의 동물적 세계에서는 당연히 참을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고하는 인류로 하여금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의식을 갖게 하고 고통받는 인류와 결합할 수 있게 할수록, 자기 뱃속에 품고 있는 결실은 더욱 완벽하게 태어날 것이다."
- P128

"그의 노동은 분리되고, 바깥에 존재하며, 그와 독립하여 낯선 존재가 되며, 하나의 자율적인 힘으로 그에 맞선다. 그가 사물에 투여한 생명은 그에게 맞서며, 적대적이고 낯설게 된다. 노동은 고단함이며, 그의 정신을 황폐화게 만들고 몸에 상해를 입히는 고통이며, 그의 활동은 고뇌처럼 보이고, 그의 생활은 인생의 희생처럼 여겨진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모든 노동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 P142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전년도에 나열한 열두 조항을 열 조항으로 압축하고, 역사적 유물론에 관하여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을 시도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빈곤화로 내몰린 계층, 당시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근본적으로 환상이 없는 계층으로 나타나 있는 최초의 글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었다. 나이는 서른이 채 안 되었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브뤼셀에 망명해 사는 젊은 독일 철학자가 쓴 이 글은 비종교적인 글 가운데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유포된 글이다.- P196

런던에서는 마르크스의 이중 생활이 계속됐다. 낮에는 공식적으로 인터내셔널의 독일 통신 서기장으로, 유럽 전역의 수십만 노동자와 피고용인, 지식인을 곧 집결시키게 될 정치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로 활동했다. 밤에는 20년 전에 시작해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아직 1장밖에 출간하지 못한 대작을 집필했다. 그는 <자본론>으로 명명할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공헌할 생각이다.-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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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진보운동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분들이 이야기할 때에는 항상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을 받거든요.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고 그냥 약자, 민중, 이런 말들이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려요. (김종철) 선생님이 일리치 모임 시간에 말씀하셨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가, 전쟁을 할 때 하늘 위에서 비행기를 타고 있는 사람은 지상의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폭탄을 퍼부을 수 있다는 거죠. 위로부터 보는 관점의 위험성을 말씀하신 거죠. 사람이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표적물로 추상화되어서 보일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였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인간을 보는 감수성을 갖고 계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이념이나 자기 생각에 매몰되면 바로 그런 것을 놓치기가 쉬운 것 같아요.


(24)

또하나 선생님의 혜안이 돋보였던 것은, 우리가 학내 직선제를 민주화의 상징처럼 이야기하는데, 김종철 선생님은 직선제가 꼭 좋은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특히 대학이 이미 자본과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데 직선제는 욕망을 키워나가는 것을 부추긴다고 보셨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면 그 말씀도 맞았어요.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총장들의 면면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형편없는 인물이 총장으로 많이 당선이 됐거든요. 구성원들이 돈 들어가는 일을 요구하고, 돈 잘 끌어오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총장이 되니까요.


(40)

그리고 창당(녹색당)하면서 제기했던 탈핵이라는 안건은 이제 다른 정치세력들도 많이 받아들였고, 기본소득도 그렇습니다. 이재명 지사를 좌담회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녹색당, <녹색평론>이 먼저 제기한 기본소득 이슈를 자기가 잘 써먹고 있다,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하시더군요. 이렇게 저는 몇몇 의제들을 정치의제로 만든 데 녹색당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는데요, 지금 다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성 평등이나 소수자 인권은 외국의 녹색당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의제이고, 한국의 녹색당도 기본으로 가져갈 가치입니다. 그러나 녹색당의 정체성을 한 줄로 말한다면, “생태위기의 시대를 맞아 문명의 전환을 이루기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색당만이 아니라 녹색가치를 지향하는 운동단체들도 그런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54)

그런데 거기서 김종철 선생님이 진정한 평화는 자발적 가난을 통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다는 평소의 지론을 설파하신 거죠. 경제성장과 강력한 무기체계가 뒷받침될 때만 평화가 성취된다는 일반론을 믿고 있는 다수 참석자들로서야 이 의외의 발언에 당혹하고 의아해했겠죠. 그 자리에 있던 꽤 유명한 어느 참석자가 선생님의 사상적 뿌리가 어디입니까하고 물어보더래요. 그래서 김종철 선생님이 우리 외할머니입니다.” 하고 답하셨다는 거잖아요. 저는 이 일화가 선생님의 사상이 선생님의 표현을 쓰면 비근대적농경사회의 토착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고 봅니다.


(65)

(김종철) 선생님이 진정 전하고 싶어 했던 말은 바로 이 희망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생태학적 사유와 실천에 부단한 최선을 다한다면, 마른 나뭇가지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기적을 우리는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세계적 한국적 차원을 두루 고려한, 이 땅에서 찾기 드문 진정한 생태사상가였다. 나를 포함한 후학들이 이제는 선생님의 생태사상을 이어가야 할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삼가 머리 숙여 선생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72~73)

비겁한 마음이 폭력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의 쇠퇴는 죽음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안팎의 자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 간에도 폭력이 난폭하게 행사되는 것이 당연한 삶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나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훨씬 더 성숙한 것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시의 마음과 생명 공동체> 김종철 선생님 강연 중에서


(121)

게다가 기후변화라는 건 점진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꾸준하게 점진적으로 변해서 악화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돌발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될 수 있습니다. 금년에 태풍이 몇 개 왔습니까. 그저께인가는 미국 뉴욕에 대설이 왔다죠. 스웨덴은 북극권인데 작년에 산불이 났잖아요. 지구사회 곳곳에서 혹심한 가뭄과 홍수, 태풍과 폭풍, 대규모 산불 등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후재앙은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가 해수면에 잠겨서 수도를 옮긴다고 그러죠? 미국 플로리다에 마이애미라는 도시가 있잖아요. 부자들이 많이 사는 휴양지죠. 마이애미에서 부자들이 사는 지역은 전통적으로 저지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이 흑인들을 몰아내고 고지대로 이사를 가고 있다고 합니다.


(123)

저는 근대문명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근대문명이라는 게 결국은 자본주의 문명이고 산업문명이죠. 그리고 달리 이야기하면 석유문명입니다. 19세기에는 주로 석탄을 썼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탄소문명입니다. 탄소문명 시대에서 생태문명 시대로 빨리 넘어가야 되고, 그래서 생태, 생명사상이 100년 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무슨 일이든지 결국 사상이 뒷받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경제를 전환해야 되고 문명을 전환해야 되고, 우리 생활을 전환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됩니다.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해요. 우리의 행동을 뒷받침해주는 게 말하자면 사상적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 후기의 동학사상으로 이어져오는 우리의 전통, 이것을 한마디로 생명사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이 생명사상이 지금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138)

이명박이 4대강을 파괴한 과정을 보세요. 그 밑의 공무원들, 건설업자들 등등 숱한 사람들이 그저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다가 보니까 우리나라 아까운 생태계 보고(寶庫)가 작살이 난 거 아닙니까.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꼭 무슨 큰 사건이나 예외적인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래요.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다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순응해서 살 뿐입니다. 자기가 자주적으로 판단해서 생각하고 할 공간이 전혀 없어요. 아렌트가 그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아이히만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질문을 못 하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없어요. 그렇게 멍청하게 있다가 보면 결과적으로 가공할 악행을 번하게 되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게 이 시스템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근대의 본질이다, 라고 이반 일리치는 환대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185)

지구온난화를 1.5℃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몇 달, 몇 해가 결정적입니다. 시간은 가고 있습니다. 이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기후위기를 무시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당신의 자손들에게 그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입니다. 현재 어린아이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곳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갈 시대의 현실입니다. 우리들은 정치지도자들에게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할 것을 요청합니다.


(196)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우리 교육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은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이 코로나와 같은 비상한 사태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무한 성장주의를 부추기고 인간과 지구의 생태위기를 방관한 우리 교육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을 인간자원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효용과 쓸모의 대상으로 전락시켜온 지난날의 교육은 반드시 다른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전환은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지는 길에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도를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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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2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20주년 개정판)
J.K. 롤링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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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2권을 달려보자꾸나. 해리 포터가 원래 마법약 수업을 안 받으려고 했다가 나중에 받기로 해서 교과서가 없었어. 그래서 헌 교과서를 받아서 공부하게 되었단다. 먼저 쓰던 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책의 여백에 많은 메모들이 있었어.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이었다 보구나. 수업 시간에 슬러그혼 교수님이 내는 문제들의 답이나 마법 실습할 때 어려움에 만났을 때 해결 방법들이 적혀 있었어. 그렇다 보니 마법약 수업 시간에 해리는 두각을 보이게 되었지. 헤르미온느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았지만….

그 마법약 교과서의 맨 뒷면에는 책 주인의 이름 대신 혼혈왕자라는 적혀 있었어. 책 주인의 별명인 것 같은데, 혼혈왕자는 누구일까. 혼혈왕자의 메모에 도움을 받은 해리 포터는 수업 시간에 가장 먼저 좋은 성과를 내어 상으로 행운의 약인 펠릭스 펠리시스를 받았어.

해리는 덤블도어와 특별 개인 수업을 받기로 했어. 덤블도어가 무슨 일인가 하고 있는데, 그것을 도와주기 위한 개인 수업이었어. 그 개인 수업은 펜시브를 이용해서 볼드모트의 어린 시절을 아는 것이란다. 펜시브 기억하지? 사람의 기억을 담아 놓아 볼 수 있는 대야. 주로 덤블도어의 기억 속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가지고 와서 펜시브에 넣어서 보기도 하였단다. 볼드모트가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사람인지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업이었지. 알고 보니 볼드모트도 마법사 엄마와 머글 아빠를 둔 혼혈이었더구나. 마법사 엄마가 마법을 걸어 결혼을 하였지만, 엄마는 머글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죽고 말았어.

볼드모트의 어린 시절의 이름은 톰 리들이니 톰 리들로 부를게. 그래서 톰은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톰은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런 것으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등 고아원에서는 문제아였어. 10살이 되던 해 덤블도어가 찾아와 톰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호그와트 학교에 입학하게 해주었단다. 그렇게 덤블도어와 톰 리들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이었어. 톰 리들이 마법 세계 최고의 빌런 볼드모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니.


1.

해리는 이제 6학년이 되어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주장이 되었어. 선수 선발시 측근을 뽑는다고 불만을 내놓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실력대로 뽑았는데 측근들이 뽑힌 것이었단다. 론도 파수꾼으로 선발되었어.(사실 헤르미온느가 아무도 모르게 살짝 마법을 사용했어.) 첫 퀴디치 경기에서 론이 너무 자신 없어 했어. 예전부터 론의 단점을 심리 상태가 실력에 너무 영향을 많이 준다는 것이었어.

해리는 펠릭스 펠리시스를 넣어서 론에게 주었어. 이것을 본 헤르미온느가 그건 나쁜 짓이고 걸리면 징계를 받는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모두 해리의 작전이었단다. 사실 넣는 척만 했거든. 물론 론은 자신이 펠렉스 펠리시스를 먹은 줄 알고 있었어. 그날 론은 완전 날라 다녔고, 그리핀도르 승리의 최고 수훈 선수였어.

새로운 호러스 슬러그혼 교수는 계속 파티를 열었단다. 자신이 좋아하는 학생이나 유명한 집안의 학생들만 초대했어. 해리는 그 자리가 불편했는데, 일단 참석은 했단다.

….

호그스미드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케이티라는 학생이 누군가로부터 호그와트의 누군가에게 전달해 달라고 받은 상자가 있었는데아빠가 왜 정확한 이름이 아니고 누군가로 이야기하냐면, 케이티가 사고로 중상을 입어서 이야기를 할 수 없었거든케이티는 상자 속에 있는 오팔 목걸이를 했다가 온몸에 마법이 걸려 마비가 되고, 고통 속에 비명을 질렀단다. 폼프리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세인트 망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어. 해리는 이 짓을 말포이가 했다고 강하게 의심을 했지만, 의심뿐이지 증거는 없었단다.


2.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그들은 어느덧 열여섯 살이 되었단다. 첫사랑도 할 나이가 넘었지. 론과 헤르미온느가 서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툭하면 다툼을 해서 틀어지곤 하는구나. 그런 와중에 론을 짝사랑하는 라벤더라는 아이가 나타났고, 론은 라벤더와 사귀게 되는데, 이 일로 헤르미온느가 속상해했어. 론은 헤르미온느가 여전히 빅토르 그룸를 좋아하고 키스도 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론이 라벤더와 사귄 것도 사실은 헤르미온느를 자극하려고 한 것이었어. 론도 사실은 라벤더를 극성맞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슬러그혼 교수가 파티를 자주 열었다고 했잖아.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는데, 초대받지 않은 드레이코 말포이가 왔다가 스네이프가 따로 데리고 나갔어. 그리고 그들이 이상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볼드모트에 관한 이야기였어. 말포이를 보호해 주기로 스네이프 교수가 말포이의 엄마와 깨뜨릴 수 없는 맹세도 했다고 했어.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이가 있으니바로 해리 포터였단다. 그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스네이프가 볼드모트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보였어. 해리는 자신이 들은 것을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스네이프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 스네이프가 누구 편인지 정확히 모르겠구나.

크리스마스에 해리는 론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그곳에 새로운 총리 스크림저가 해리를 찾아왔어. 그가 찾아온 이유는 해리가 마법 정부에 편에 서서 마법 정부가 하는 일에 지지해 달라는 것이었어. 해리는 단칼에 거절했단다. 마법 정부가 지금까지 한 행태를 안다면 그런 제안을 할 수 없는 것이지. 이 정도까지가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2권의 이야기란다. , 혼혈왕자는 누구일까? 설마 볼드모트는 아니겠지?


PS:

책의 첫 문장 : 다음 날 아침, 해리와 론은 식사를 하러 내려가기 전 휴게실에서 헤르미온느를 만났다.

책의 끝 문장 : 해리는 마법 정부 총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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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25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옮겨 주시니 좋습니다. 흥미로워요.

bookholic 2020-09-25 23:53   좋아요 0 | URL
특히 소설 같은 경우는 첫문장과 끝 문장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페크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1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20주년 개정판)
J.K. 롤링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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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1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꾸나. 그 전에 출판사에 아쉬운 이야기 한 마디해리 포터와 혼혈왕자가 네 권으로 나누어 출간했는데, 원서 두께를 보면 잘 해야 세 권으로 나누어 출간해도 되는 분량이었단다. 3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원서의 페이지는 462페이지인데 두 권으로 분책. 6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의 원서는 542페이지인데 네 권으로 분책. 다섯 권으로 분책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어느덧 해리 포터가 6학년이 되었구나. 아이들도 무척 컸겠구나. 우리가 책을 읽고 나서, 영화도 같이 보잖아. 영화 속에 해리, , 헤르미온느 그리고 다른 친구들을 맡은 배우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정말 쑥쑥 자라는구나. 너희들만 쑥쑥 자라는 줄 알았는데, 세상 모든 아이들이 쑥쑥 자라네..^^

6권의 이야기는 마법 세계가 아닌 머글 세계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단다. 머글 세계의 영국 총리가 최근 일어난 이상한 사건 사고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단다. 본적이 없는 먹구름이 몰려오질 않나, 멀쩡하던 다리가 끊어지지 않나집무실에서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무실에 있는 벽난로로 마법 세계의 총리가 튀어나왔어. 이젠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지. 처음 총리가 되었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이젠 놀랄 일도 아니지. 마법 세계의 총리가 머글 세계의 총리에서 와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 주는 관례가 있었고, 머글 세계의 총리는 그 사실을 혼자만의 비밀로 알고 있었어.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해봤자 믿을 리도 없고 말이야.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데,  최근에 자주 찾아오고

이번에 찾아온 이유는 머글 세계에 있었던 이상한 사건 사고들이 사실은 못된 마법사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어. 그러면서 이 사태를 빨리 처리하겠다고 하면서 머글 세계의 총리에게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단다. 당황한 머글 세계의 총리. 그런데 이번에 온 총리는 예전에 본 총리가 아니었단다. 마법 세계의 총리였던 퍼지는 최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하였고, 루퍼스 스크림저라는 마법사가 새로운 총리가 되었단다.


1.

벨라트릭스와 동생인 나르시사. 벨라트릭스라는 마법사 기억나니? 시리우스를 죽였잖아.. 나쁜…. 그런데 벨라트릭스는 시리우스의 사촌이었어. 사촌끼리 어찌 다른 길을 가는지그리고 나르시사는 드레이코 말포이의 엄마였어.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에서 드레이코의 아빠이자, 나르시사의 남편 루시우스가 아즈카반의 감옥에 잡혀 갔잖아. 벨라트릭스와 나르시사는 스네이프 교수를 찾아갔어. 뭐야? 스네이프가 죽음의 먹는 자들과 친분이 있는 거야? 벨라트릭스와 나르시사는 스네이프를 찾아가 아들 드레이코에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했어. 볼드모트가 드레이코에게 무슨 위험한 일을 시킨 것 같았어.

스네이프가 오래 전 죽음을 먹는 자들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덤블도어의 사람이자 불사조 기사단인 줄 알았는데그런 스네이프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스네이프는 혹시 이중 간첩이었나? 여전히 볼드모트를 위해서 몰래 일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덤블도어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인가? 앞으로 스네이프의 정체가 궁금한 사항으로 남아 있겠구나. 스네이프는 벨라트릭스와 나르시사의 부탁을 들어주었단다.

해리는 이번 방학에도 이모네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 덤블도어가 찾아왔단다. 해리에게 시리우스의 유언을 이야기해주려고 왔어. 시리우스의 모든 재산을 해리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이었지. 하지만 시리우스가 이 세상에 없는데 무슨 소용이겠니. 시리우스의 집요정 크리처의 주인도 이제 해리가 되었는데, 해리는 크리처를 호그와트 식당으로 보냈단다.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함께 은퇴한 호러스 슬러그혼 교수를 찾아가자고 했어. 비어 있는 호그와트의 마법방어법 교수로 초빙하기 위해서 말이야. 해리와 함께 가자고 한 이유는, 해리와 같은 능력 있고 이목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호러스가 좋아하기 때문에, 덤블도어의 부탁에 들어줄 거라 생각했거든. 덤블도어의 예상대로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해리와 이야기를 하면서 승낙을 했어. 호러스는 오래 전에 해리의 부모님들도 가르친 적이 있고, 볼드모트도 가르친 적이 있는 사람이야. 호러스가 아주 능력 있는 교수는 아는 것 같았는데, 그를 교수로 초빙한 이유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어.


2.

호러스의 집에서 나와서 덤블도어는 해리를 론의 집 버로로 데리고 갔어. 남은 방학은 그곳에서 보내라고 했지. 론의 집에 와보니 헤르미온느도 며칠 전에 와 있었어. 그리고 뜻밖의 사람, 플뢰르도 와 있었어. 플뢰르, 기억나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보바통 학교의 대표선수로 트리위저드에 참가했던 사람. 플뢰르가 왜 버로에 있냐고? 플뢰르는 론의 형 빌의 여자친구였어. 내년 여름 빌과 결혼한다고 했단다.

버로에 있을 때 호그와트에서 부엉이들이 날아와 O.W.L. 성적표를 갔다 주었어. 예상했다시피 헤르미온느는 한 과목을 빼고 모두 출중함. 해리와 론도 괜찮은 성적을 받았단다. 이제 개학 준비를 해야겠지. 필요한 물품을 사려고 다들 다이애건 앨리에 방문했어. 그리고 그곳에서 장난감 가게를 열어 엄청 장사가 잘되고 있는 프레드와 조지의 가게도 가보았어. 길거리에서 드레이코를 보게 되어 몰래 그의 뒤를 따라가 보았는데, 드레이코가 녹턴 앨리의 보긴 앤 버크라는 상점으로 들어갔어. 죽음을 먹는 자들이 드나드는 곳혹시 드레이코가 죽음을 먹는 자들이 된 것인가? 드레이코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드레이코가 앉아 있는 객차의 선반에 투명망토를 쓰고 몰래 드레이코와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단서가 될 만한 이야기는 없었어.

그런데 드레이코가 해리가 엿듣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호그와트에 기차가 도착했을 때 해리에게 마법을 걸어 마비시키고 기차에서 나가지 못하게 했어. 호그와트도 못가고 다시 런던으로 갈 뻔했는데, 불사조기사단의 통스가 나타나서 도와주었단다. 간신히 호그와트에 도착. 새 학년 시작. 그런데 스네이프 교수가 올해는 마법약 수업이 아닌, 가장 중요한 수업 중에 하나인 마법방어법을 가르치기로 했대. 마법약 수업은 새로 온 호러스 슬러스혼 교수가 맡기로 했고험난한 일년이 예상되는구나.

여기까지가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1권의 이야기로구나. 제목만으로 이번 6부는 혼혈왕자가 누구인지 추리하면 읽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직 혼혈왕자의 단서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2권에서는 나타나겠지?


PS:

책의 첫 문장 :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책의 끝 문장 : 가장 아끼는 학생 셋이 자신의 과목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면 해그리드가 정확히 뭐라고 말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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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5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20주년 개정판)
J.K. 롤링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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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마지막 5권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호그와트를 떠나버린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 뒤숭숭한 호그와트에서 가장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엄브리지가 아닐까 싶구나. 마법정부는 엄브리지를 호그와트 교장으로 임명했단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해그리드를 쫓아낸 거야. 해그리드는 끝까지 저항하다가 금지된 숲으로 도망을 갔고, 이를 만류하던 맥고나걸 교수는 엄브리지의 일행이 쏜 기절마법에 맞고 병원에 갔단다. 이제 호그와트에는 덤블도어도 없고, 맥고나걸도 없고, 해그리드도 없었단다.

마법 나라의 입시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O.W.L 시험이 시작되었단다. 2주간 진행되는데, 해리는 그래도 선방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떤 시험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또다시 볼드모트의 영혼 속에 들어가서 볼드모트의 눈이 되어 보게 되었어. 시리우스가 붙잡혀 있는 것을 보았어. 잠에서 깨어난 해리는 시리우스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했어. 전에 론의 아빠를 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덤블도어 교수도 안 계시니까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 했어. 이성적인 헤르미온느는 볼드모트의 속임수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 벽난로 통신을 이용하여 시리우스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시리우스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오히려 엄브리지에게 걸려서 벌을 받아야 했지. 헤르미온느가 똑똑하긴 똑똑하구나. 이 순간에도 머리를 잘 써서 엄브리지를 금지된 숲으로 유인했단다. 금지된 숲 켄타우로스 무리들이 이끌고 있는 곳으로 엄브리지를 데리고 갔고, 엄브리지는 그곳에서도 자신의 성격을 죽이지 못하고 오만하게 굴다가 켄타우로스들에게 잡혀가고 말았단다. 헤르미온느의 작전 성공.

해리와 헤르미온느도 켄타우로스들에게 잡혀갈 뻔했지만, 해그리드의 거인 동생 그롭이 나타나서 그들을 구해주었단다. 엄브리지를 따돌린 해리와 헤르미온느. 시리우스와 연락이 닿지 않아 직접 찾아가보기로 했단다. D.A.의 핵심멤버였던 해리, 헤르미온느, , 지니, 루나, 네빌그들은 세스트럴(전에 이야기했었는데, 기억나니? 죽음을 본 이들에게만 보이는 날아다니는 말)을 타고 런던에 있는 마법정부로 향했단다. 해리가 꿈속에서 본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면서…. 또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1.

마법정부에 도착한 해리 일행들마법정부 미스터리부에 도착을 해서 꿈에서 본 문들을 거쳐가서 꿈에서 본 장소까지 왔지만 시리우스는 없었어. 속은 것인가? 헤르미온느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곳에 루시우스 말포이를 비롯하여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나타났어. 볼드모트의 미끼에 걸려든 것이지. 볼드모트가 해리를 마법정부 미스터리 부로 유인한 이유는 해리와 볼드모트의 예언구를 얻기 위해서였어. 볼드모트와 해리의 예언은 서로 엮여 있었고, 볼드모트는 그 구슬을 만질 수 없어서 해리를 이용해서 차지하려고 했던 거야.

죽음의 먹는 자들과 해리의 친구들의 마법 결투가 시작되었단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이 사악한 마음을 먹은 어른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았지.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는데, 시리우스가 불사조 기사단 단원들을 데리고 왔어. , 시리우스가 이렇게 멀쩡했는데, 볼드모트에 속았다니해리는 무척 후회했단다. 싸움은 치열했고, 조금의 방심으로 죽을 수도 있었어. 그런데 그런 일이 시리우스에게 일어났어. 시리우스의 사촌인 벨라트릭스에게 죽음을 당했단다. 사촌이지만 벨라트릭스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었거든

해리의 슬픔은 얼마나 컸을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시리우스가 자신의 대부라는 것을 알고 많이 의지했는데지은이는 굳이 시리우스를 죽게 했어야 했는가

시간이 지나도 팽팽하게 이어져 오던 싸움…. 볼드모트도 오고, 덤블도어도 나타나면서 마법 싸움을 최고조를 이루었단다. 결국 볼드모트는 덤블도어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을 갔단다. 또 도망을 갔구나. 자신의 부하들은 보살피지도 못하고 말이야. 그런 볼드모트가 뭐가 좋다고 그를 따르는 이들이 줄지 않다니죽음을 먹는 자들 일부는 체포되었어. 루시우스 말포이도 포함되어 있었어. 아즈카반으로 고고


2.

뒤늦게 마법정부의 리더인 퍼지 총리가 나타났어. 그 동안 볼드모트의 부활을 믿지 않고 덤블도어와 대립을 세웠지만, 두 눈으로 보았으니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단다. 덤블도어도 호그와트 교장선생님으로 복직하게 되었어. 호그와트에 돌아온 덤블도어는 해리를 불러서 숨겨진 이야기를 했단다. 해리가 태어나기 전에 트릴로니의 예언이 있었는데, 볼드모트에 저항할 아이가 7월에 태어난다고 했어. 그 아이와 볼드모트의 운명은 엮여 있는데, 그것은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였어. 해리의 부모님이 죽고 나서 해리를 이모집에 둔 이유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어. 해리의 엄마의 피가 볼드모트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피라는 것을 알고, 해리의 엄마와 피를 나눈 해리의 이모집에 두었던 것이란다.

덤블도어가 최근에 해리를 멀리한 이유도 이야기했어. 볼드모트가 오클루먼시로 해리의 영혼으로 들어와 자신을 감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멀리했다고 했단다. 이제 남은 것은 대결밖에 없단다. 마법 세계 최고의 빌런 볼드모트와 죽음을 먹는 자들과 덤블도어와 불사조 기사단의 대결. 마법정부도 이해 볼드모트의 존재를 인정했으니, 그들을 무찌르기 위한 노력을 하겠지.

여기까지가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이야기란다. 이제 6부와 7부 둘만 남았구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7부 마지막 페이지 덮을 때까지 이어지기를


PS:

책의 첫 문장 : 론은 그리핀도르가 퀴디치 우승컵을 차지하는 데 한몫했다는 사실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다음 날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책의 끝 문장 : 그리고 퍼뜩 정신을 차린 버넌 이모부와 피튜니아 이모, 더들리가 다급히 그의 뒤를 따르는 가운데, 역을 나서서 햇빛이 비치는 거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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