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11)

설령 그 사진이 잿더미 속에서 재생되어 나온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사진을 발견했을 당시,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그 세 사람은 분명히 유라시아의 정보원에게 나라를 팔아먹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후로 두 번인가 세 번쯤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윈스턴으로서는 몇 번의 변화가 더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자백서는 본래의 사실이나 날짜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쳐 쓰이곤 하기 때문이었다. 과거는 이미 변조되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조될 것이다. 그를 악몽처럼 괴롭히는 것은 ‘왜’ 그 같은 엄청난 사기 행위가 행해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과거를 날조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얻게 되는 이점이 무엇인지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펜을 들고 글씨를 썼다.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216-217)

“이건 예외적인 경우야. 사람이 죽는 문제하고는 달라. 당신은 어제를 비롯한 과거가 깡그리 지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직 과거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건 저 유리덩어리처럼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는 물체일 뿐이야. 이미 우리는 혁명 당시와 그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였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 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물론 나는 과거가 날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나 자신이 날조 행위를 하면서도 내게는 이것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어. 일단 날조되고 나면 그 어떤 증거물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 결국 유일한 증거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인데, 과연 사람들이 내 기억을 믿어 주기나 할까? 그런 장담할 수 없는 일이야.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나는 딱 한 번 그 사건 이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가졌던 적이 있었어.”

 

(263-264)

그러나 이 같은 식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가 파괴다.)을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20세기 초 몇몇 사상가들이 꿈꾸었던 농경 사회로의 회귀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그것은 거의 전 세계에 걸쳐 준본능(準本能)이 되다시피 한 기계화 경향과 맞지 않기로 하거니와 공업에서 낙후된 국자는 군사적으로 무력해질 뿐만 아니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공업 선진국가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82-283)

지배계급들은 언제나 자유사상에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고,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데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중시한 나머지 백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마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관대한 편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어떤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없이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전과 함께 기계 하나로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모든 시민, 적어도 요주의 인물들을 하루 24시간 내내 경찰의 감시 아래 둘 수 있고, 다른 모든 통신망은 폐쇄시킨 채 정부 선전만 듣도록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게 하고 의견 통일까지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287-288)

초기의 위태로웠던 시절에는 당이 세습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대 세력을 무마시키는 작용을 했다. 소위 ‘특권 계급’이라는 것을 상대로 투쟁해 온 지난 시대의 사회주의자들은 세습적이 아닌 것은 영구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그들은 과두 체제가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굳이 드러내 놓고 사실 그대로를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세습적인 귀족 사회는 늘 단명했지만 가톨릭교회 같은 선임 체제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과두 체제의 본질은 아버지에게 아들로 이어지는 부자 세습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세계관이나 생활양식 등을 산 사람이 고수하는 데 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한 지배계급이다. 당은 그들의 혈통이 아니라 당 자체를 영속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계층적 구조를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하는 한 누가 권력을 장악하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362)

윈스턴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피로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열정에 들뜬 광적인 빛이 오브라이언의 얼굴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는 오브라이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은 자체의 목적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고 비겁한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수호할 수도 없거니와 진리와 접할 줄도 모른다. 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 강한 타인에 의해 통치되거나 체계적으로 기만당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행복을 더 선호한다. 당은 약자의 영원한 수호자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희생하며, 선을 구현하기 위해 악을 행하는 헌신적인 집단이다.

 

(366)

“우리는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도 지배할 수 있네. 실재란 머릿속에 있지. 자내도 차츰 알게 될 걸세. 우리가 못하는 건 없네.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도, 공중을 날 수도 있지. 그 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네. 원한다면 비눗방울처럼 이 마루 위를 둥둥 떠다닐 수도 있지. 당이 원하지 않으니까 안 하는 것뿐이네. 자연의 법칙에 대한 19세기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만 하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창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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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나무 아래의 죽음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3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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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어느덧 13권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을 이야기해줄게.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올해 안에 21권까지 마무리하려면 열심히 달려야겠구나. 이전 12권은 1141년 12월 1일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이번 13권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은 1142년 4월에 시작하여 본격적인 이야기는 1142년 6월부터란다. 공간적 배경이야 늘 그렇듯 슈롭셔 지역의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이란다.

수도원의 인근 베스티어 집안의 주디스 펄이라는 20대 초반의 젊은 미망인이 있었어. 주디스는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였단다. 그리고 남편이 죽기 전에 살던 집과 땅을 주님께 기부해서 지금은 수도원이 그 집과 땅을 소유하고 있었어. 수도원에서는 주디스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자, 기부한 집의 정원에 있는 장미나무에서 피는 백장미를 일 년에 한번씩 보내달라고 했어. 그 내용은 집을 기부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었어. 수도원에서는 고마운 마음에 주디스의 부탁을 들어주었어. 성 위니프리드 축일이 되면 백장미 한 송이를 주디스에게 보내주었단다. 그 백장미를 전달하는 일은 엘루릭 수사가 하고 있는데 올해가 3년째란다.

엘루릭 수사는 세 살 때 수도원에 들어와 지금은 십대 후반의 청년이 된 수사로 지금은 제단관리를 담당하고 있었어. 주디스는 대미사가 있어 수도원에 와서 참석했다가 캐드펠 수사를 만나 연고를 받고, 고장난 허리띠를 수리하기 위해서 청동세공업자인 닐을 만나 허리띠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엘루릭 수사가 라둘푸스 수도원장을 찾아와 면담을 신청했단다. 주디스 펄에게 장미를 갖다 주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달라고 부탁했단다. 엘루릭 수사가 수사이기 전에 이제 막 청춘에 들어선 남자이잖니. 어쩌다 주디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서 괴롭다고 했어. 라둘푸스 원장은 이 일에 대해 엔젤름 수사와 캐드펠 수사와 의견을 나누었어. 자신이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면서 말이야. 그들은 주디스에게 장미를 전달하는 일은 수사가 아닌 닐에게 부탁하기로 했어. 닐은 펄이 기부한 집에 세들어 살고 있으니 닐이 장미를 전달하는 것이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어. 닐도 흔쾌히 동의했단다. 닐은 아내와 사별한 40대 초반의 홀아비로 어린 딸이 있었어. 어린 딸은 닐의 여동생 부부가 키워주고 있었단다. 닐도 속으로 주디스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단다.

 

1.

주디스 펄은 이모 애거사와 이종사촌인 마일스와 함께 지내고 있었어. 마일스는 주디스보다 두 살 많았고 주디스의 사업체들을 관리하고 있었어. 주디스 펄은 미망인이 되고 난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구애를 받고 있었는데 모두 거절했어. 본인은 수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그래서 캐드펠 수사에게 매그덜린 수녀와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어. 매그덜린 수녀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 여러 번 나온 사람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할게. 매그덜린 수녀는 여자 캐드펠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구나. 매그덜린 수녀는 주디스를 만나 이야기했는데 주디스가 수녀가 되는 것을 반대하며 주디스를 설득했단다.

…

닐은 가끔씩 딸을 만나기 위해 여동생의 집에 가는데 자고 올 때도 있었어. 그날도 여동생의 집에서 하룻밤 지내고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원에 있는 장미 나무 아래 죽어 있는 시신을 발견했단다. 안타깝게도 엘루릭 수사였단다. 곧바로 수도원장님께 이야기를 드렸고, 수도원장은 캐드펠 수사와 엔젤름 수사한테 조사를 해보라고 했어. 캐드펠은 사건 현장에 가보았어. 엘루릭 수사가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범인을 잡아야 하니 캐드펠은 사건 현장을 조사했어.

누군가와 다툰 흔적이 있었고, 장미나무에 도끼 흔적이 있었어. 범인이 도끼로 장미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그것을 우연히 엘루릭 수사가 보게 되어 막으려고 했고, 그래서 둘은 다투게 되었고 우발적으로 엘루릭 수사를 죽인 것 같았어. 그렇다면 범인은 그 이후에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도망가는 동선을 추측을 해보았어. 북쪽 담벼락에서 범인의 신발자국을 발견했단다. 신발자국이 확실하게 찍혀 있어서 캐드펠은 그 신발자국을 밀납으로 본을 떴단다. 그때 수선을 맡긴 허리띠를 찾으러 주디스가 와서 그들을 보았어. 그래서 주디스에게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해주었어. 엘루릭 수사가 주디스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이야기도 했어. 주디스도 마음이 아팠겠구나.

…

며칠 후 주디스의 사촌인 마일스가 수도원에 찾아와 주디스가 실종되었다고 했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마일스가 이야기하는 내막은 이랬어. 엘루릭 수사가 죽은 사건은 자신이 장미를 받기 때문에 생긴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장미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계약서를 수정하려고 수도원으로 간다며 집을 나왔대. 그런데 그 이후 사라진 거야. 엘루릭 살인 사건과 주디스의 실종 사건은 서로 관련이 있어 보였어. 그렇다면 왜 장미 나무를 베고, 주디스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일까? 목적이 무엇일까? 장미 나무를 베어 버리면 장미를 주디스에게 줄 수 없게 되고, 그렇다면 이것은 계약 위반이 되기 때문에 기부했던 집과 땅은 다시 주디스에게 돌아가게 되는 거야. 그리고 누군가 주디스와 결혼을 하게 되면 주디스의 더 많은 재산을 공유할 수 있게 되지. 정말 이런 걸 노렸던 것일까?

….

주디스의 실종 사건은 이제 시간을 다투는 사건이 되었어. 시간이 늘어지게 되면 주디스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어. 캐드펠 수사는 휴 베링어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주디스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어. 주디스가 사라지고 나서 사촌 마일스는 엄청 걱정을 많이 했단다. 마일스도 다른 일 다 제쳐 두고 주디스를 찾는데 온 힘을 쏟았어. 과할 정도로 보였어. 가족이라서 찾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주디스의 실종은 마일스에게 위기가 될 수 있었어. 주디스가 결혼하게 되면 마일스가 관리하던 주디스의 사업체는 주디스의 남편의 손에 넘어가게 되니까 말이야. 마일스 입장에서는 재산을 빼앗기는 일이었어. 그래서 주디스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 같더구나.

 

2.

주디스의 집과 수도원 사이에 있는 강가에서 주디스의 허리띠에 있던 장식품이 발견되었단다. 그리고 강의 하류에는 훔친 배가 발견되었어. 이제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구나. 주디스를 납치해서 배에 태우고 강의 하류로 내려가서 어딘가에 가둔 것으로 의심되었어. 그렇다면 용의자는 누구일까. 주디스 집에서 일하는 하녀 앨리슨의 아들이자 직공장인 버트레드라는 사람이 있었어. 버트레드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어. 그 사건이 있던 날 저녁 버트레드는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이야기했어.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디스를 감금한 것이 아닌, 누군가 주디스를 감금하는 것을 목격한 것 같은 이야기들을 했단다.

그날 밤 버트레드는 연장들을 들고 주디스가 갇혀 있던 창고로 갔어. 지붕에 올라가서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 창고에서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몰래 엿듣다가 미끌어져서 땅으로 떨어져 넘어졌어. 개가 짖고 문지기가 쫓아와서 버트레드는 도망가야 했단다. 강물까지 달려가서 강물로 점프해서 다이빙을 했는데, 하필 강물 아래 바로 바위가 있는 곳으로 다이빙을 한 거야. 바위에 부딪혀 기절을 하고 말았단다. 그런데 한참 뒤 누군가 자신을 안아주면서 조금씩 의식이 돌아왔어. 그 사람이 자신을 구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그를 강 한가운데로 끌고 나서 놓아버렸어. 아직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베트레드는 그냥 그렇게 강에 빠져 죽고 말았단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렇게 베트레드가 창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을 때 창고 안에는 누가 있었을까? 창고 안에는 주디스와 주디스를 납치한 비비언 하인드라는 사람이 있었어. 비비언 하인드는 주디스에게 구애했던 사람의 한 사람이었어. 주디스를 납치한 것은 약간 우발적인 것 같았어. 주디스를 납치한 것을 후회하면서 주디스에게 용서를 구했어. 자신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주디스에게 도와달라고 했어. 주디스도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을 싫어했고 이런 상황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소문이 나는 것도 싫다고 했어. 그러면서 한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아무도 모르게 고드릭 포드에 있는 베네딕토 수녀원에 계신 매그덜린 수녀원에게 데려가 달라고 했어. 그러면 자신은 납치당한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고 수녀원에서 며칠 있다가 돌아온 것으로 위장할 수 있다고 했어. 그들은 다음날 밤에 함께 베네딕토 수녀원에 가기로 했단다.

….

한편 다음날 날이 밝고 캐드펠 수사는 강가에서 버트레드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이마에 멍이 들고 익사한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그의 구두를 보니 많이 익숙해 보였어. 장미나무에서 범인의 신발을 본뜬 것과 같은 구두와 비슷해 보여서 둘을 맞춰 보니 똑같았어. 그렇다면 엘루릭 수사를 죽인 범인이 바로 베트레드인 것인가? 그런데 그는 왜 강에서 익사한 것일까? 캐드펠 수사는 버트레드의 엄마 앨리슨 부인에게 버트레드가 죽었다고 알렸어. 앨리슨 부인을 충격을 받았어. 그러면서 어제 버트레드가 했던 말들을 캐드펠 수사에게 이야기해주었어. 버트레드가 자신을 호강시켜주겠다고 했고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다음날 알려주겠다면서 나갔다는 거야. 버트레드의 익사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비비언 하인드의 집의 문지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어젯밤에 비비언 하인드의 창고에 누군가 들어와서 자신과 개가 그 사람을 쫓다가 놓쳤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 보통 이맘때 양털 도둑들이 가끔씩 창고에 오기 때문에 이번에도 양털 도둑이라고 생각했대. 베트레드는 왜 그 창고에 갔던 것일까. 캐드펠은 그 창고에 가보았는데 그 창고에는 비밀의 방이 있었어.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단다. 비비언 하인드의 집에 방문했더니 비비언의 어머니가 이야기하기를 비비언은 아침 일찍 아버지와 함께 양떼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고 했어.

….

그날 밤, 비비언과 주디스는 몰래 말을 타고 베네딕토 수녀원으로 향했어. 그런데 그걸 우연히 닐이 보았는데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주디스는 알아봤어. 주디스가 납치당한 것인 줄 알고 닐은 그들을 몰래 쫓아갔단다. 한참을 가던 그들 중 남자는 말 타고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갔고 주디스는 혼자 걸어가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주디스를 공격했단다. 닐은 바로 달려가 그 남자를 공격하여 싸움이 붙었고 그 남자는 도망을 가버렸단다. 닐도 부상을 입었어. 주디스는 닐을 알아보았어. 주디스는 그곳에 왜 닐이 있었는지 깜짝 놀랐는데 닐은 자신이 어떻게 주디스를 따라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했어.

주디스는 닐과 함께 베네딕토 수녀원에 갔단다. 주디스는 매그덜린 수녀를 만나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자신이 수녀원에 온 이야기도 이야기하면서 도와달라고 했어. 매그덜린 수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단다. 닐도 주디스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단다. 하룻밤을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지낸 주디스는 매그덜린 수녀와 함께 수도원에 도착했단다. 그날은 성 위니프리드 성녀 축일의 전날이었어.

다들 깜짝 놀랬어. 납치당한 줄만 알았던 주디스가 멀쩡히 나타났으니 말이야. 주디스와 매그덜린 수녀는 사전에 약속한 각본대로 이야기했어. 주디스는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며칠 머물고 있었는데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래서 돌아온 것이라고 했어. 자신 때문에 걱정을 끼쳐드려서 미안하다고도 했단다. 매그덜린 수녀까지 함께 와서 그렇게 이야기하니 그 말을 안 믿을 수가 없었지.

…

주디스는 매그덜린 수녀에게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시라고 했어. 매그덜린 수녀가 주디스의 집에 가는 길에 캐드펠 수사도 동행했단다. 캐드펠 수사는 버트레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주디스에게 이야기해주었어. 그리고 엘루릭 수사를 죽인 범인도 베트레드로 밝혀졌다고 했어. 주디스는 두 가지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했어. 버트레드는 수영을 잘 해서 익사했을 리 없다고 했고, 평상시 버트레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 하지만 모두 팩트인 걸 어쩌겠니. 버트레드는 죽고 없으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야.

캐드펠은 주디스의 이 발언이 마음에 걸렸단다. 그래서 다시 수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주디스 일행이 집에 도착하니 이모 애거사와 사촌 마일스가 반갑게 맞이해주었어. 주디스와 매그덜린 수녀와 캐드펠 수사는 휴 베링어를 만났어. 휴 베링어가 이야기하기를 납치범 비비언을 성에 가두었다는 거야. 휴 베링어는 자체적으로 수사를 하고 비비언을 납치범이라 확신하고 체포한 것이었어. 주디스는 그 동안 있었던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자신은 소문에 엮이고 싶지 않다면서 비비언을 용서해주었으니 풀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이야기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단다. 당사자가 용서를 해주어 풀어달라고 하니 휴 베링어도 비비언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단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주디스의 이야기를 듣고 캐드펠은 다시 수사를 하기 시작했어. 매그덜린 수녀에게 부탁해서 주디스의 집에 있는 구두들의 왼쪽 구두들을 몰래 빼달라고 했어. 캐드펠은 그 구두들과 버트레드가 신고 있었던 구두와 비교해 보았어. 그런데 구두의 닳은 모양이 이상했어. 버트레드가 신고 있던 구두와 매그덜린 수녀가 가지고 온 버트레드의 구두의 닮은 모양이 달랐어. 버트레드가 신고 있던 구두는 마일스의 구두와 닳은 모양이 똑같았어. 범인이 드디어 밝혀지는구나.

왜 마일스는 장미나무를 베려고 했을까. 장미나무를 베면 장미를 주디스에게 못 주게 되니 계약 위반이고 기부했던 주디스의 집과 땅은 다시 주디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주디스는 희망대로 수녀가 된다면 주디스의 재산은 모두 누구 것이 되겠니. 이모인 애거사와 사촌 마일스의 것이 된단다. 마일스는 최대한 재산을 더 차지하기 위해 일을 벌이려던 거였어. 그러나 그 일을 실패했잖니. 그렇다면 마일스는 또 일을 꾸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캐드펠 수사는 다급히 정원에 있는 장미나무로 갔단다. 하지만 한발 늦었어. 장미나무는 기름을 머금고 활활 타고 있었어. 다음날 캐드펠 수사와 휴 베링어는 주디스의 집에 가서 마일스를 체포했단다. 그렇게 진범을 잡게 되었단다. 닐은 딸과 함께 주디스를 찾아와 장미 한 송이를 전해주었단다. 그렇게 올해도 계약을 지킬 수 있었단다. 닐이 딸에게 주려고 어제 장미 한 송이를 꺾어 두었다고 했어. 마일스가 장미나무를 태우기 전에 말이야. 주디스는 닐에게 자신의 곁에 머물러 달라고 했단다. 닐의 진실한 사랑을 주디스가 알아봐주어 다행이구나. 그렇게 이번에도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면서 소설은 끝났단다.

….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늘 흥미진진하구나. 이제 여덟 권 남았는데, 계속 기대가 되는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여유가 생기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래. 이미 독서편지를 읽었다면 스포일러가 되어 책 읽는 재미의 반감이 서려나? 그렇다면 이 독서편지를 나중에 알려주어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142년 봄, 4월 내내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더니 5월이 되었는데도 봄기운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책의 끝 문장: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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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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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전에 이야기했듯이 제인 오스틴의 장편 여섯 편을 모두 읽겠다고 했잖아. 오늘은 그 네 번째로 <에마>를 읽고 이야기해줄게. <에마>는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니구나.  700페이지가 넘으니 벽돌책의 반열에 들겠다고 하겠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제인 오스틴의 짧은 삶이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작품을 남겼을 텐데… 이번 <에마>도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여성의 시각을 통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단다. 아빠의 상상력이 부족해서 머릿속에서 당시 풍경을 제대로 그릴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말이야. 혹시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있나 싶어 찾아보니, 예전에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가 있고, 최근에는 안야 테일러 조이 주연의 영화가 있더구나. 아빠의 부족한 상상력을 영화가 채워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중에 기회 되면 영화로도 봐야겠다. 책 두께가 두꺼운 만큼 할 이야기가 많으니 바로 책 이야기를 시작할게. 아참,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1815년이라고 하는구나.

…

주인공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에마라는 스물한 살의 아가씨야. 에마 우드하우스. 엄마는 일찍 돌아가시고, 언니 이저벨라는 존 나이틀리와 결혼해서 출가하고, 에마는 아버지와 함께 하트필드에서 살고 있었어. 에마의 어린 시절부터 16년 동안 에마를 가르친 가정교사이자 친구인 테일러가 얼마 전에 웨스턴 씨와 결혼했단다. 웨스턴 씨는 첫째 아내와 사별하고 지내다가 테일러와 결혼한 거야. 웨스턴 씨는 아들 프랭크가 있었는데 아내가 죽은 다음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기 어려워 프랭크는 외삼촌 부부가 키워주셨단다. 프랭크는 어느덧 스물세 살이 되었어.

에마는 늘 테일러와 함께 지내서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테일러가 결혼하고 나서 아버지와 둘이 지내다 보니,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 무료함을 느꼈단다. 사실 테일러와 웨스턴 씨의 결혼을 주선한 것은 에마였단다. 에마는 다른 사람들의 짝을 지어주는 것을 좋아했어. 테일러와 웨스턴 씨의 짝을 지어주고 그 다음은 엘튼 씨의 짝을 찾아주려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은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이 정도면 에마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대충 알겠지?

 

1.

테일러는 결혼 후에도 가끔씩 에마의 집에 찾아와 놀다가 갔단다. 하트필드에서는 자주 사교 모임을 가져서 저녁이면 이웃들이 모였단다. 당시 영국 사회는 사교 모임은 일상이었던 것 같은데, I성향의 사람들은 좀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에마는 그 사교모임에서 해리엇 스미스라는 사생아와 친하게 되었어. 해리엇이 사생아이다 보니 에마는 은근히 자신보다 낮은 신분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에마는 해리엇을 더 챙겨주려고 하고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했어. 앞서 이야기했던 엘튼 씨가 해리엇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에마는 엘튼 씨와 해리엇을 짝지어 주려고 했단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로버트 마틴이라는 사람이 해리엇에게 청혼 편지를 보낸 거야. 해리엇은 그 편지를 에마에게 보여주고 조언을 구하려고 했어. 에마는 이미 해리엇의 짝은 엘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틴의 청혼 편지라니.. 자신을 방해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에마는 해리엇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거절하도록 유도했단다. 그래서 해리엇은 마틴에게 청혼에 거절하는 편지를 썼어.

이쯤에서 조지 나이틀리라는 사람을 소개해야겠구나. 조지 나이틀리는 에마의 언니 이저벨라의 남편의 형이란다. 그러니까 에마에게는 아주버님이 되겠구나. 그렇지만 에마의 집안과도 친분이 있어 자주 집에 방분했단다. 그 조지 나이틀리가 에마가 해리엇에게 조언한 사실을 알게 되어 에마에게 화를 내며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단다. 에마의 속마음도 꿰뚫었는지 혹시 해리엇과 엘튼을 짝지어 주려고 하는 것이라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단다. 엘튼은 결혼 상대로 해리엇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 조지 나이틀리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엘튼을 다시 만나 그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엘튼이 해리엇을 좋아한다고 에마는 확신했단다.

…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언니 식구들이 하트필드에 방문했단다. 또 사교모임이 열렸는데 해리엇이 심한 감기가 걸려 모임에 오지 못해서 에마는 병문안을 다녀 왔단다. 사교 모임에서 에마는 엘튼을 만났는데, 엘튼은 해리엇이 감기 걸린 것을 알면서도 걱정을 별로 안 하는 것을 보고 에마는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런가? 하고 생각했어. 그날 사교 모임을 지켜보던 에마의 형부 존은 에마에게 이야기하기를 엘튼이 에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에마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에마는 엘튼이 해리엇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

웨스턴 씨 부부의 집에서 모임이 있었어. 웨스턴 씨의 아들 프랭크가 조만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가 취소를 했는데, 에마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는 한편, 조지 나이틀리는 프랭크가 핑계를 대고 안 온 것이라고 했어. 별 거 아닌 것으로 에마와 조지는 의견 충돌로 말싸움을 하기도 했어.

…

어느 날 사교모임 후, 엘튼은 에마를 찾아와 구애를 했단다. 형부 존의 생각이 맞았던 거야. 남자는 남자가 더 잘 보는 것 같구나. 아니면 엘튼이 에마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에마의 편견 때문에 에마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튼 에마는 해리엇을 좋아하다가 어떻게 다시 자신을 좋아할 수 있냐면서 엘튼에게 화를 냈어. 하지만 엘튼은 해리엇을 좋아한 적 없고, 처음부터 에마를 좋아했다고 했어. 조지의 말대로 에마가 헛다리를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구나. 에마는 엘튼의 구애를 거절하고 엘튼도 화를 내며 가버렸단다. 이를 어쩐다. 해리엇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엘튼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틴의 청혼을 거절하도록 부추긴 것도 마음에 걸렸어. 에마는 고민 끝에 해리엇을 만나 이야기를 했단다. 해리엇은 에마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담담히 받아들였단다. 에마는 그동안 괜히 해리엇에게 바람만 넣은 것 같아 미안했단다.

 

2.

또 한 사람을 소개해야겠구나. 제인 페어팩스라는 아가씨인데 에마와 동갑이었어. 에마는 제인 페어팩스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안 좋아했어. 제인은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어. 아버지가 은혜를 베풀어준 캠벨 씨가 어린 제인을 친자식처럼 키워주셨단다. 교육도 잘 받아서 자랐는데, 최근에는 베이츠 양 집에 머물고 있었어. 조지는 에마가 제인을 안 좋아하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라고 팩폭을 날렸단다.

….

웨스턴 씨의 아들 프랭크가 마을에 방문했단다. 에마도 프랭크와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 에마는 선입견을 많이 갖는 편인데, 첫인상이 좋았던 프랭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그런데 프랭크는 앞서 이야기했던 제인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대. 에마는 속이 아프겠는데? 프랭크는 2주간 머물다가 돌아갔는데, 에마는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생각해 보았어. 프랭크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자신은 결혼할 생각은 여전히 없기 때문에 그 감정은 사랑은 아니라고 단정했어.

…

그런 와중에 약간은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어. 에마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엘튼이 결혼했다는 소식이야. 그것도 외모도 괜찮고 경제력도 좋은 호킨스 양과 결혼했다는 소식이야. 에마가 생각하기에 엘튼이 자신에 비해 좀 과분한 여자와 결혼한 거야. 에마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신분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 같았어. 얼마 후 엘튼 부부가 사교 모임에 등장했어. 에마는 엘튼 부인인 호킨스 양을 처음 만났는데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좋지 않았어. 그렇게 첫인상이 좋지 않아서 그 이후 계속 안 좋은 면만 보게 되었어.

…

어느 날, 해리엇이 집시들에게 곤경에 빠진 적이 있는데, 프랭크가 도와주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어. 그 일이 있고 나서 해리엇은 에마에게 이야기하기를 독신으로 살겠다고 했어. 에마가 생각하기를 해리엇이 집시 일을 겪고 프랭크에게 빠지게 되었으나 신분 차이가 나서 그와는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독신으로 살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생각했어.

…

에마는 인성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았어.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꼬면서 이야기하기도 했단다. 그런 모습을 본 조지는 따끔하게 에마에게 충고를 하기고 하고, 그 일로 에마가 상심해서 울기도 했단다. 이 소설에서 에마에게 따끔하게 충고하고 지적하는 사람은 조지 나이틀리뿐인데, 그것에 사랑의 다른 형태가 아닌가 싶구나. 비록 둘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들이 여럿 있었잖니…

….

어느날 웨스턴 부인, 그러니까 테일러가 에마를 찾았어. 에마가 테일러를 찾아가보니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어. 프랭크가 제인과 작년 10월에 비밀 약혼한 사이라고 이야기했어. 테일러는 에마와 프랭크가 서로 좋아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이 소식을 에마에게 알려주는 것이 고통이라고 했어. 하지만 에마는 이미 몇 달 전부터 프랭크에게 관심이 없어졌다면서 괜찮다고 했어. 오히려 속으로는 해리엇에게 또 상처 줄 말을 전할 생각이 고통스러웠지. 에마가 해리엇을 찾아가니 해리엇은 그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 아무렇게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 에마는 의아해했어. 해리엇이 말하길 자신이 좋아한 사람은 프랭크가 아니고 조지 나이틀리 씨라고 했어. 에마는 또 헛다리를 짚었구나. 해리엇이 이야기하기를 이번에는 조지 나이틀리 씨와 자신이 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에마는 약간 충격을 받았어. 자신이 독신주의자이긴 하지만, 조지 나이틀리 씨에게 일순위는 자신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해리엇이 조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사실 해리엇이 조지를 마음 속에 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이 해리엇을 사교 모임에 함께 해서였을 거야.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마틴의 청혼을 거절하게 만든 데서부터인가? 이제서야 가볍게 내뱉었던 자신의 언사에 대한 후회감도 들었어…

..

또 한번의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어. 어느 날 조지 나이틀리가 방문하여 에마에게 고백을 했단다. 예상된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이제서야 퍼즐이 제대로 맞춰진 것 같구나. 에마는 조지의 고백을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 해리엇이 걱정되었단다. 해리엇에게 일단 편지로 자신과 조지의 소식을 알리고, 해리엇이 슬픔을 잊게 하려고 런던에서 이저벨라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했어. 그리고 얼마 후 해리엇으로부터 소식이 왔어. 해리엇이 로버트 마틴과 결혼한다는 소식이었어. 멀리 돌아왔지만 해리엇과 마틴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에마는 이제서야 마지막 단추가 제대로 채워진 기분을 느꼈을 거야.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에마는 완벽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더 친근해 보이더구나.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들, 사랑하는 모습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미인이지 총명하지 부유하지 거기에다 안락한 가정에 낙천적인 성격까지 갖춘 에마 우드하우스는 인생의 여러 복을 한 몸에 타고난 듯했고, 실제로 세상에 나와 스물한 해 가까이 살도록 걱정거리랄 것이 거의 없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이런 결함들에도 혼례식을 지켜본 작은 무리의 진정한 친구들의 소망과 희망, 확신, 예언은 이 결혼의 완벽한 행복으로 완전히 실현되었다.


완전한 진실에 접하게 되는 것은 인간에게 드문, 아주 드문 일이다. 뭔가 약간의 위장이나 약간의 오해가 개입되지 않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행동에 대해서 오해했을지언정 감정에 대해서는 오해하지 않은 그런 경우라면, 오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틀리 씨가 아무리 에마가 가슴으로 후회하고 있다고 여긴들, 또 그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고 여긴들 에마의 실제 마음보다 더하지는 않았다. - P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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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나는 앞에서 우리를 버리고 간 아버지가 홀연히 찾아와 고무공을 사준 것을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때 얼마나 아버지가 그리웠는지. 하지만 나를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아버지를, 아버지의 사랑을 포기한 상태였다. 단 한 사람, 어머니만을 믿고 의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마저 나를 버리고 간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유곽의 기생으로 팔려 한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저 고달픈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팔아버리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121-122)

이웃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근처 들판에서 놀곤 했다. 내가 집에 돌아와 마당 청소 등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누구누구야, 하며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토라지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웃거나 하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뜰 앞 울타리 사이를 비집고 보면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데 모여 오비가 땅에 끌리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잡거나 잡히거나 하는 모습이 잘 보였다.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자유로울까.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가난뱅이’가 부러웠다.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둘 순 없어.”라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 ‘고상’한 교육방침에 따라 집에 갇혀 있는 내 자신이 불쌍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이 단지 나를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더욱 슬퍼졌다.

 

(185-186)

‘아아, 기차여! 7년 전 너는 나를 속이고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고통과 시련 속에 나를 혼자 두고 갔다. 그동안 너는 몇백 번 몇천 번 나를 지나쳐 갔다. 늘 곁눈으로 흘끗 보며 말없이 지나쳤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너는 나를 데리러 왔구나! 너는 나를 잊지 않았구나. 아아. 어디든 데려가주렴! 얼른, 얼른! 그저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렴!’

 

(262)

나의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쓰에서, 나는 줄곧 학대당했다. 나는 ‘자신’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든 과거에 감사한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도, 외삼촌에게도, 이모에게도. 아니,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열입곱 살이 되었다.

 

(331)

사회주의는 나에게 특별히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겪어오면서 느낀 감정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뿐이었다. 나는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그 때문에 나는 돈을 가진 자로부터 혹사당하고 괴롭힘을 받았으며 들볶였고 억압당했다. 또한 자유를 빼앗겼으며 착취당하고 지배당했다. 이런 나는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해 항상 마음 속 깊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조선의 할머니 집 아인 고 씨를 동정했던 것도, 불쌍한 개마저 동지처럼 느꼈던 것도, 그 외에 이수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할머니 주위에서 일어난 많은 일에서 억압당하고 고통받고 착취당하는 불쌍한 조선인에 대해 한없이 동정했던 것도 이러한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던 반항심과 동정심은 순식간에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 불이 붙어버렸다.

 

(360)

실제로 당시의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열정을 갖던 당시 나는 고학을 해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훌륭하다고 대접받는 사람만큼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373)

“나는 당신 가슴속에서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했어요. 당신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하찮은 사람이오. 나는 그저 죽을 수 없어 살고 있는 사람이오.”

그는 이렇게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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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ㅣ 범우 사르비아 총서 301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범우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독립운동에 관한 책을 읽다가 이미륵이라는 분에 대한 짧은 내용을 읽었단다. 이미륵이라고 하면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소설의 지은이로만 알고 있어서 소설가인줄만 알았어. 그런데 그 분은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다니다가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수배 명단에 오르게 되고 고향으로 도망갔다가 독일로 유학을 가셨고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에서 삶을 마감하셨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어. 짧은 이야기인데 너무 가슴 아프더구나. 이미륵이라는 분에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책을 살펴보았는데 오래 전에 출간된 <이미륵 평전>이 한 권 있었단다. 책이 오래되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이미륵 평전> 개정판이 나왔단다. 그래서 얼마 전에 그 책을 샀단다.

<이미륵 평전>을 읽으려고 펼쳤다가 그에 앞서 먼저 이미륵 님의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빠가 분명 몇 년 전에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을 사둔 기억이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더구나. 책더미를 한참 뒤지고 나서야 겨우 찾아내어 읽었단다. 범우사에서 출간한 책인데, 아빠가 살 때는 몰랐지만, 지은이 이미륵 뿐만 아니라 옮긴이도 유명하신 분이구나. 전혜린. 전혜린 님은 1950년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독일로 유학을 가서 뮌헨대학교에서 독문과를 전공했다는구나. 그 때 이미륵 님의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을 번역하여 1959년 여원사라는 출판사에서 초판이 나왔다고 하는구나. 전혜린은 독일에서 유학하면서 이미륵과 친분이 두터웠던 분들을 알게 되었고, <압록강은 흐른다>를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서 번역을 하셨다고 하더구나. 독일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시고 여러 독일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자신의 작품도 쓰시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31살 어린 나이에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등졌다고 하는구나. 안타깝구나. 지은이 이미륵 님에 대해서는 아빠가 조만간에 <이미륵 평전> 독서 편지에서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할게.

 

1.

이미륵 님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 망명 시절 독일어로 쓴 작품으로 우리나라를 독일 사람들에게 알려준 책으로 독일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는구나. <압록강은 흐른다>는 지은이 이미륵 님의 자전적 소설이란다. 오랜 시절부터 독일에 정착하기까지의 긴 여정이 따뜻한 동화 같은 문체로 이야기를 해준단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란다.

….

어린 시절 주인공 나(미륵)은 사촌이자 친구인 수암과 줄곧 함께 했단다. 수암은 숙부의 아들이었으나 숙부가 일찍 돌아가셔서 미륵의 집에서 함께 지냈어. 미륵과 수암은 함께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어. 미륵은 누이만 셋이고, 수암은 누이만 둘이어서 미륵과 수암은 더 친해질 수 있었단다. 미륵과 수암은 장난꾸러기여서 아버지가 숨겨 놓은 약을 몰래 먹었는데 알고 보니 독약이어서 수암이 거의 죽다 살아난 적도 있었어. 그리고 글씨 공부에 쓰는 종이로 연을 만들다가 걸려 회초리를 맞은 적도 있어. 그렇게 미륵과 수암은 어린 시절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개구쟁이 짓도 하면서 추억을 쌓아갔단다. 어느날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고모와 고종사촌 칠성이가 미륵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어. 그 때부터는 미륵, 수암, 칠성이 함께 놀았지만, 고모와 칠성은 얼마 안 있다가 이사를 가셨단다.

행복한 시간만 있을 줄 알았던 어린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시고 말았어. 중병을 앓고 회복하신 아버지는 예전만큼의 기력이 없으셔서 서당을 그만 두셨단다. 문중회의를 했는데 수암은 계속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해서 수암의 가족들은 서당이 있는 마을로 이사를 갔단다. 수암과 헤어져 혼자된 미륵은 아버지에게 간간이 한시와 역사 공부를 했단다. 나이가 좀 더 먹고 나서는 술 교육도 받았단다.

 

2.

미륵은 얼마 후 근처 신식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어. 신식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기존에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과는 많이 달랐어. 수학, 의술, 천문학 등 처음 접하는 학문들이 많았어. 그러다 보니 무척 어려워했단다. 집에 오면 학교에서 배운 것에 대해 아버지가 질문을 하셨어. 그렇게 질문하시면서 아버지도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시는 것이었어. 특히 천문학에 관심이 많으셨어.

===================

(89)

“언제든 하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 조심스럽게 들어라. 그것은 아주 높은 학문이다.”

“제가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영혼은 언제나 맑아야 한다.”

===================

신식 학교에서 사귀기 된 친구로부터 <링컨>이라는 책을 빌려 읽었는데 이 책은 미륵보다 아버지가 더 열심히 읽으셨단다.

….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은 좋지 않았어. 경술국치로 인해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에 합병되고 말았어.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병에 걸리시고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그래도 미륵은 신식학교를 계속 다녔는데 내용이 점점 어려워졌어. 어머니한테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어머니는 그만 다니라고 해서 학업을 중단했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시곤 했단다. 학교를 그만 두고 4년 동안 송림 마을이라는 곳에서 지냈단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운 유럽에 대한 동경이 점점 커져갔고 어느 날은 자신의 꿈을 실천에 옮겼단다. 무작정 유럽에 가려고 나섰다가 역무원에게 유럽에 가려면 여권 등 서류도 필요하고 돈도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단다.

유럽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다시 공부하기로 했어. 의학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가족과 헤어져 서울로 가야 했기 때문에 망설였는데 이번에도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주셨단다. 그래서 의학 전문 학교를 가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단다. 미륵이 열심히 공부한 것도 있지만 신식 학교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책을 빌려주고 자신들이 공부한 내용을 알려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그 학교에서 새로 사귀게 된 약원이라는 친구와 함께 공부했어. 세상은 미륵을 얌전히 공부하게만 두지 않았단다. 미륵이 의학전문학교 3학년이던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이 일어났어. 약원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가했다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단다. 고향에 가서 어머니를 만났는데 어머니는 미륵이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유럽으로 가라고 하셨어. 세월이 빨리 흐르니, 곧 만날 수 있을 거라면서 걱정하지 말고 떠나라고 하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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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1)

어머니는 오랫동안 잠자코 걷다가 말하였다.

“너는 자주 낙심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충실히 너의 길을 걸어갔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에는 유럽에 갈 것이다. 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 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겠다. 세월은 그처럼 빨리 가니, 비록 우리가 다시 못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 마라. 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내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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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고향을 떠나 미륵은 압록강 강변까지 가서 사공들의 도움을 받아 몰래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도착하게 된단다. 그리고 심양과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유럽에 유학 가려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 준비했어. 그들 중에는 안중근의 사촌동생인 안봉근도 있었어. 안봉근은 이미 프랑스에 다녀왔는데 이번에 다시 간다고 했어. 안봉근은 미륵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유럽에 가는 유학생들은 상하이를 떠나 사이공, 싱가포르, 지부티에 들렀다가 홍해와 지중해를 거쳐 마르세유 항구에 도착을 했단다.

그곳에 도착한 후에 미륵은 안봉근의 도움으로 독일의 작은 도시에 있는 독일인의 집에 머물 수 있게 되었어. 독일에 도착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 고향 생각이 많이 났어. 특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지. 편지를 썼으나 회신은 없어서 답답했어. 그러다가 5개월 뒤 큰 누나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지난 가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도 담겨 있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세월이 빨리 흘러가니 곧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구나.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결말인 것 같구나.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아는 이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보고 싶은 가족들을 볼 수 없는 낯선 타지에서 삶.. 상상만 해도 무척 힘든 생활일 것 같구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압록강은 흐른다>의 뒷이야기인 2부도 있었는데 지은이 이미륵의 타계 후 그의 서재에는 몇 장 남아있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전혜린 님이 이 책을 옮기고 난 이후 이미륵 님의 글들이 더 발굴되었는지,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면 이미륵 님의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책이 있더구나. 지금은 품절이 되어 살 수가 없는데 중고책이라도 알아봐야겠구나.

….

아빠가 이 책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 보고 이야기를 하면 좋겠는데, 독서편지는 늘 밀려 있고, 요즘에 바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구나. 지금도 잘 시간이 지나서 이 정도 마무리해야겠구나. 조만간에 <이미륵 평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또 있지 않을까 싶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수암-이것은 나와 함께 자라난 내 사촌 형의이름이다.

책의 끝 문장: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사연이었다.

 


우리는 산신령과 죽어버린 동무에게 술 대신 한잔씩의 물을 바쳐 죽은 짐승의 넋이 편히 쉬기를 빌고, 해질 무렵에 시체를 묻었다. 호박 크기만한 무덤이 다 만들어졌을 때, 나는 무척 슬픔을 느꼈다. 거북은 오랜 생명을 가지며 수천 년이나 산다고 한다. 그러나 희귀한 동물이 우리 집에서 죽었을 때에는 아마 좋은 것을 뜻하지는 않으리라. - P66

"그렇지, 원님께서 몸소 나와서 그렇게 무기도 없이 적에게 대했더라면 그야 옳았을 것이야말고. 아마 다른 원님 같았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원님은 무척 겁쟁이였거든. 유감스럽게도 그건 원님이 아니라 그 손자였더란 말이야. 바로 김삿갓이란 거야. 그렇고말고.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그렇지만 참으로 원님의 손자였다는 거야. ‘적군을 물리치자!’고 그는 조부에게 요구했으나 조부는 들은 체도 않고 적군에게 항복해버렸지 그만...... 그러므로 적군은 계속해서 딴 고을을 무찔렀고 김삿갓은 임금에게 충성하였으므로 조부와 적대하여 도모하지 않고 그만 걸인과 방랑의 시인이 되어버렸지." - P82

"과거를 너무 생각지 마라."
끝으로 어머니는 말하였다.
"네가 자주 말한 것처럼 시대가 변하였다. 과거는 새 문화에 앞서 갔다. 새 문화는 자주 분수를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든지 그것이 생소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하며, 또 언제나 온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 P178

그런 고귀한 한방 의원은 병자의 신체를 거의 만지지조차 않았다. 그들은 등을 두드리지도 않았고, 내부 기관을 청진하지도 않았다. 다만 병자의 얼굴을 보았고 병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스레 듣고는 맥을 짚었다. 그러고는 처방을 썼고 처방에 따라 조수가 약을 곧 준비하였다. 조제실에는 모든 필요한 약초며 뿌리며 구근이 보관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환약이며 고약이며 즙을 의원의 감시 아래 만들 수 있게 해 두었다. 병자에게는 그 외 아무 일도 없었다. X-레이는 물론, 수술, 주사도 한방 의원은 몰랐다. 다만 특정한 병에만 여러 곳에 침을 놓았다. 이런 곳은 생명선 위에 있어야 했고 그 방해가 병이 된다고 했다. - P195

"너는 너무 말이 없고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침묵은 오래된 동방에서는 아직도 미덕으로 인정되나, 서방에서는 그렇지가 않아. 여기선 그게 비사교성의 표시로, 심지어는 거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언제나 이야기하는 데에 섞여 같이 대화를 나누어라. 무엇에 관한 이야기든 간에. 날씨나 기후나 또는 음식이나 옷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과 사교하는 동안에는, 땅에서 살고 있는 이상엔 언제나 철학적인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단다. 유럽 사람도 땅위에서 살고 있으며 즐겨 세상 이야기를 한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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