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와 천둥 - 2015 지역출판문화 및 작은도서관지원 우수도서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이규정 님의 <사할린>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 그 때 지은이 이규정 님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그가 쓴 작품 중에 독립운동가이자 몽골에서 슈바이처급으로 의사 활동을 하신 이태준 님을 모델로 한 소설 <번개와 천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태준 님은 독립운동 관련된 책에서 단편적으로 나와서 알게 되었는데, 안타깝게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어서 가슴이 아팠단다. 그런데 그런 이태준 님을 알리기 위해서 이규정 님이 소설로 쓰신 것이 있었다니, 뒤늦게 알고 아빠도 읽어보겠다고 리스트에 올렸다가 아빠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제서야 읽었단다. 아빠가 당시 구입한 <번개와 천둥>은 2015년에 출간한 것인데, 작년에 개간본이 다시 출간되었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이태준 님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1.

그럼 소설 <번개와 천둥>을 통해서 이태준 님의 삶을 알아보자꾸나. 소설이긴 하지만 일부분만 작가의 상상력을 메운 평전이라도 해도 좋을 것 같구나.

대암 이태준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단다. 이태준은 인천 이씨인데, 조상을 따라 올라가보다 보면 가야를 세운 김수로의 김해 김씨가 나온단다. 이게 어떻게 된 사연이냐면,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는 자신의 아내 허황옥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의 아들 중에 두 명의 성을 허씨가 바꿔서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고… 그들의 후손 중에 신라시대 허기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나라 황제 현종과 함께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우게 되었고, 당현종은 허기에게 고맙다고 자신의 성씨인 ‘이’를 하사하여 이허기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인천 이씨의 시조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시조가 같은 동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인천 이씨도 김해 김씨와 동본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단다.

인천 이씨는 조선시대에는 조선시대 함안에 내려와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대. 이태준은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똑똑해서 부모님은 이태준을 동네 서당에 다니게 했단다. 옛날에는 다들 그랬듯이 이태준도 일찍 결혼하고 딸 둘 낳았는데 아내가 그만 일찍 죽고 말았다는구나. 이태준의 친한 고향 친구로는 조용관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조용관은 개신교로 교회에서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었어. 영어를 독학하던 이태준도 조용관과 함께 교회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개신교도가 되는 건 마음에 걸렸단다.

1905년. 너희들도 잘 아는데 을사늑약이 있었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궐기를 했단다. 이태준도 조용관과 의병 도모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경찰서에 치도곤 맞고 풀려났단다. 그리고 경찰의 감시대상이 되었어. 고향에서 계속 감시를 받게 되자, 이태준은 조용관과 한양으로 가자고 했단다. 마침 한양에는 용관의 누나와 자형이 삼천리 만물상회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딸들이었는데, 다행히 동생 태식 부부가 보살펴 주기로 했단다.

한양에 온 이태준은 용관과 함께 용관의 누나 집에 지냈단다. 그러다가 가게 단골인 세브란스 의대생 김필순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김필순 소개로 세브란스 의학교 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세브란스 의학교 에비슨 박사가 진행하는 면접 시험을 보게 합격하여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1907년 10월 1일 부터 세브란스 의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어. 낯선 학문이라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1911년 6월 21일에 졸업했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망설였던 세례도 받았어.

졸업 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단다. 같은 병원의 간호부 민효례라는 사람이 이태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태준은 김필순의 여동생 순애에게도 마음에 두고 있었어. 이태준은 필순의 여동생 순애와 효례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은 기혼자이고 이미 딸이 둘이 있다는 거야.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민효례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민효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 와중에 데라구치 암살 모의 사건과 신민회 사건으로 김필순에 대해 검거령이 내려졌어. 그래서 김필순과 동생 김순애는 중국으로 도망가기로 했고, 그 도망길을 이태준이 배웅을 했단다. 그들을 배웅해 주고 병원에 오자, 민효례가 알려주어 자신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두어 해 전에 도산 안창호를 치료하고 그가 추천해준 청년모임에 가입하여 은밀히 활동하고 김필순을 도와주었다는 일들을 일경들도 알게 된 거야. 이태준도 도망가야 했어. 민효례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병원에서 도망 나와 무작정 경의선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향했단다. 그 때가 1911년 12월 31일이었어.


2.

이태준은 김필순이 가기로 했던 남경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김필순을 찾지 못했단다. 아는 사람 없이 지내야 했는데 이상섭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어. 이상섭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하는 신규식, 김규식을 만나게 되어 이태준도 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태준의 의사 경력을 살려서 기독회 의원에서 의사로 약 2년간 일하게도 했어. 하지만 여전히 김필순을 여전히 찾지 못해 걱정 되었어. 혹시 김필순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 해서 미국에 있는 안창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 하지만 결국 김필순의 행방을 찾지 못했어.

김규식 제안으로 몽골에서 군사학교 창립하는데 이태준도 참여하기로 했어. 그래서 김규식, 서왈보, 우동열, 이태준은 남경에서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북경에서 마차를 타고 장가구를 거쳐 울란바토르 도착했단다. 이 길은 무척 험해서 북경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데 11일이나 걸렸어. 하지만 몽골에서 군관학교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았단다. 어렵게 부지를 마련했으나 몽골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어. 돈은 떨어지고 겨울이 다가와 김규식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지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이태준은 몽골에 만연한 매독 환자들을 보고 그냥 돌아갈 수 없다고 했어. 그 동안 이태준은 몽골의 길거리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매독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당분간 몽골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했어. 그러면서 김규식에게 북경 도착하면 살바르산이라는 매독 치료를 위한 약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 약을 몽골에서 구하기는 무척 힘들었거든.

이태준의 첫 번째 몽골 환자는 버르테라는 사람이었는데, 다 나은 다음 그는 이태준을 도와주었단다. 이태준의 실력은 금방 몽골 전체에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몰려들었어. 처음에는 처음에는 무료봉사였으나 돈을 조금씩 받기로 했어. 그 돈으로 약도 구입하고, 독립자금으로 보내기도 했어. 돈이 모이는 대로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냈단다. 그리고 동의의국이라는 병원도 세우고 버르테와 다른 몽골인들이 도와주어 잘 정착했단다. 이태준의 소문은 몽골 왕실에도 알려져서 어느 날은 왕실에서 사람이 와서 왕의 병 진료 부탁했단다. 왕의 병도 금방 호전되어 왕의 전담 의사 직함까지 얻게 되었어.

중국에서 김현국이라는 의사가 찾아와 자신도 몽고에서 이태준과 함께 병원도 하고 독립운동 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이태준은 몽골보다 장가구에서 의원 차리라고 조언했단다. 장가구에서 의원을 차리면 몽골과 북경의 증간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어.

한편, 김규식은 미국인 회사에 취직하여 장가구에서 일했어. 그리고 어느날 울란바토르 방문했단다.

김규식은 아내와 함께 방문했는데, 그 아내가 이태준이 그렇게 찾던 김필순의 여동생 김순애이었단다. 김필순과 김순애는 남경오는 중간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함께 지냈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몽골에서 동지의 아내로 만나다니.. 김규식은 자신의 일을 도와주던 사촌여동생 은식도 함께 왔는데, 은식을 이태준에게 소개를 해주었단다. 둘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되어 결혼하게 되었어.


3.

시간은 흘러 1919년이 되었단다. 3.1운동 이후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어. 그런데 자금이 문제였는데 이것을 이태준이 지원했단다.

...

당시 몽골도 이웃 나라 러시아 때문에 정세가 어지러웠어. 운게른이라는 러시아 군인이 있었는데, 그는 소비에트 군대에 패배하고 쫓기고 있었어. 그는 패잔병을 이끌고 몽골로 들어와 몽골 점령한 중국군대를 몰아내주겠다고 몽골 왕을 설득했단다. 운게른과 그의 부대는 몽골군과 함께 중국군과 싸워 승리하여 중국군을 몰아냈단다. 이때 이태준과 친분이 있던 중국인 장군은 이태준에게 함께 중국에 가자고 했으나 거절했단다. 그 중국 장군에게는 의사의 윤리를 들어 거절했지만, 사실은 이태준은 소비에트의 자금 4만루블어치 금괴를 임시정부에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단다.

그런데 몽골군과 연합하여 중국을 몰아낸 운게른은 몽골인을 상대로 온갖 만행을 저질렀어. 운게른은 군대를 앞세워 몽골인들 약탈하고 잔인하게 죽였단다. 그제서야 그에게 속은 것을 안 몽골 정부는 몽골 군대는 운게른의 군대와 또다시 전투를 벌여야 했어. 운게른은 도망갔지만 여전히 그의 잔당들이 몽골에서 분란을 일으켰고, 몽골 정부는 소비에트 군대를 끌어들여 그들을 소탕했단다. 국력이 약하다 보니 이래저래 고생이 많구나. 그런데 운게른이 이렇게 몽골에서 만행을 저지를 때 이태준 식구들도 그들의 만행에 희생되고 말았단다. 안타깝지만 그 이야기를 해줄게.

...

그 사건이 있기 전 고향 후배이자 세브란스 의학교 후배 이세영이 찾아왔어. 이세영은 이태준에게 임시정부 군의관 감무 임명장을 주기 위해 왔지만, 자신도 몽골에서 일하겠다고 했어. 알고 보니 이세영은 함안 고향 후배로 이태준의 절친 조용관도 알고 있었어. 이세영은 함안에서 조용관에게 영향을 받아 3.1 주동자로 참여했다가 왜경에 쫓기어 상해로 망명했다고 했어. 그 이후 임시정부에 있다가 이태준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돕기 위해 울란바토르에 찾아왔다고 했어. 처음에는 의심의 눈으로 봤지만 그제서야 이태준은 자신과 용관이 친구임을 이야기하고 이세정을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이세정에게 병원 일을 잠시 맡기고 김립과 함께 김립이 숨겨두고 있던, 소비에트로부터 받은 금괴를 전달하기 위해 상해로 떠났단다.

상해에 금괴를 안전하게 전달하고 여력이 되어 고향 함안에 며칠 들를 시간이 있었어. 얼마 만에 온 고향인가. 하지만 동생과 딸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있어서 만날 수 없었단다. 상해로 가는 배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아쉬움만 남긴 채 다시 상해로 왔단다. 그리고 북경에 가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고 의열단에 가입했단다. 김원봉이 폭탄전문가를 구한다고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환자 중에 마자르라는 사람이 떠올랐어. 헝가리인 마자르는 1차세계대전 포로로 몽골까지 오게 되었고 돈이 없어 헝가리에 돌아가지 못하고 거기에 병까지 걸렸던 거야. 그래서 이태준이 그를 무료로 치료해주고 그 이후 동의의국에서 이태준을 도와주면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그 마자르가 군대 있을 때 했던 일이 폭탄제조였단다. 이태준은 마자르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하고 몽골에 돌아왔단다.

….

1921년 11얼 1일. 이태준과 마자르는 군자금을 쓸 금괴를 차에 숨기고 장가구로 떠났단다. 금괴와 마자르를 장가구에 있는 요원에게 인수하고 이태준은 저녁 때쯤 다시 집에 돌아오려는 계획이었어. 그런데 그 시기가 앞서 이야기했던 운게르 군대가 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살인과 약탈을 하던 시기였단다. 태준이 떠나고 난 집에 운게르의 부대가 쳐들어와 딸 수옥을 죽이고 아내 은식을 데리고 갔단다. 그리고 이태준과 마자르도 운게르 부대에 잡혀서 다시 울란바토르에 압송되었단다. 그런데 운게르 부대에는 일본군들도 있었어. 몽골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를 잡으려고 일본군들이 운게르 부대에 합류했던 거야.

마자르는 외국인이라 다시 풀려나게 되었어. 이태준이 마자르에게 북경 가서 김원봉을 만날라고 지시했단다. 이태준이 의사였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운게르 부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했어. 이태준은 의료기기를 핑계로 집에 왔는데, 딸은 죽고 아내가 사라진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 이 울분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었겠니… 그리고 다음날 일본인 군인들이 와서 그 마저 죽이고 말았단다.

이태준은 그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단다. 환생이 꼭 있었으면 좋겠구나. 이태준 님 같은 이렇게 안타깝게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될 분인데 말이야. 다시 태어나셔서 그 전에 이어가질 못한 꿈을 이어나가셨으면 좋겠구나. 너희들도 이태준 님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태준은 경의선 기차가 막 출발할 때에야 가까스로 찻간에 올라탈 수 있었다.

책의 끝 문장: 타키가 큰소리로 한번 울면서 힘차게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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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메이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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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진주 귀고리 소녀>로 유명한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신작 <글래스메이커>라는 소설이야. 아빠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2004년에 읽고 그 이후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책은 읽은 적이 없구나. 의도적으로 읽지 않은 것은 아니고 그 작가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야. 그리고 <진주 귀고리 소녀>가 독특하긴 해도 아주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 이번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책을 읽게 된 것은 몇 달 전에 신간코너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란다..

한 작가의 책을 22년만에 다시 읽게 되다니, 감회가 좀 새롭니다. 얼마 전에 읽은 것 같은데 22년이나 흘렀다니... 작가도 22살 더 먹고, 독자도 22살 더 먹고 말이지. <진주 귀고리 소녀>는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지난 22년 동안 잘 있는지 모르겠구나. 검색을 해보니 지은이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그동안 꾸준하게 작품을 쓰신 것 같구나.

그럼, 22년만에 다시 만난 작가의 책 <글래스메이커>를 이야기해줄게. 글래스. 유리. 메이커. 만드는 사람. 이 소설은 유리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베네치아 인근에 있는 무라노를 주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그런데 판타지 요소가 좀 더해져서 무라노 섬과 베네치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그 밖에 세상과 다르게 흘러간단다. 무라노와 베네치아 밖의 시간은 수백 년이 흘러도 무라노 섬에서는 한 소녀의 한평생 정도만 시간이 흐른단다. 수백 년 동안 유리 공예 제작자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를 하되, 주인공들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그런 판타지 요소를 적용한 것 같더구나.

..

 

1.

시작은 1486년 무라노 섬에서 시작한단다. 아홉 살 소녀 오르솔라 로소가 주인공이야. 로소 집안은 유리 공방을 대대로 하고 있고, 아버지 로렌초 로소가 장인으로 공방을 이끌고 있고, 두 아들이자 오르솔라의 오빠들인 마르코와 자코모, 도제인 파울로가 로렌초의 밑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단다. 오르솔라의 엄마 라우라는 주로 집안 일을 하셨어. 그들의 경쟁 공방으로 바로비에르 공방이 있는데, 사실은 바로비에르 공방이 좀더 잘 나가는 공방이란다. 아버지 안젤로 아래 아들 조반니와 딸 마리아를 중심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 유리 공방의 직책을 간단히 이야기 보면, 처음에는 가르초네트로 시작해서 실력이 늘어나면 가르초네, 세르벤테(도제)로 직책이 올라간다.

…

시간은 흘러 오르솔라는 17살이 되었어. 유리 공방에서 작업 중 직원의 실수로 유리가 깨지는 사고가 났는데 그 깨진 유리에 아버지 로렌초가 목에 찔려 출혈과다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어. 두 아들에게 아직 기술을 모두 전수하지도 못하고 갑자기 죽게 된 거야. 첫 아들 마르코가 공방을 물려받아야 하는데 마르코는 실력도 안 되고 인성도 좋지 않아서 유리 공방을 운영을 제대로 운영할지 모르겠구나. 제품의 품질이 떨어져서 거래선이 줄어들기 시작했단다.

오르솔라는 길에서 우연히 경쟁 공방의 유리 공예사 마리아를 만났는데 그때 오르솔라가 작고 낡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랬는지 마리아는 오르솔라에게 드레스 선물을 주었단다. 오르솔라는 마리아에게 유리장신구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마리아는 사촌 엘레나에게 보내서 장식구슬을 배우게 했단다. 이후 오르솔라는 유리구슬 만드는 것에 열심이었어. 평상시에도 꿀을 이용하여 연습했어. 마리아와 오르솔라의 인연이 나중에도 중요하게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구나.

...

어느 날 큰오빠 마르코가 유리잔을 팔기 위해 베네치아 본토에 있는 상인 클링엔베르크를 만나러 갔는데 하루가 지나 올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아서 둘째 오빠 자코모와 오르솔라가 마르코를 찾으러 베네치아에 갔단다. 당시에도 베네치아의 주요 이동수단은 곤돌라였어. 클링엔베르크를 찾아갔더니 마르코가 가지고 온 유리잔은 품질이 떨어져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공방에서 잘하는 것부터 서서히 하라고 조언해주었어. 오르솔라는 장식유리구슬도 받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단다. 그건 그렇고 마르코는 어디에 있는 거야? 자코모와 오르솔라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찾다가 술에 만취해 있는 마르코를 발견해서 섬으로 데리고 왔단다.

 

2.

얼마 후 마르코는 니콜레타라는 여자와 결혼했고 엄마 라우라는 딸 스텔라를 낳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임신 중이었거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었나 보구나. 오르솔라는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단다. 그렇다 보니 유리구슬 만드는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어. 어느날 베네치아의 어부로 일하던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찾아와 유리 공예를 배우겠다고 했어. 일전에 마르코가 약속했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안토니오도 마르코의 유리 공방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오르솔라의 눈에 자꾸 안토니오가 거슬렸어. 그에게 자꾸 끌린 거야. 오르솔라는 장식유리구슬을 만들어 클링엔베르크에게 보냈는데 소식이 없었단다.

그런데 몇 달 뒤 클링엔베르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한 달에 100개씩 제작해 달라고 했어. 오르솔라의 첫 수입이 성사되는 순간이었지. 오르솔라의 유리구슬 주문량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어. 안토니오는 유리공예에 재능이 있었어. 금방 배우고 창의적인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놨어. 그래서 유리공방이 그럭저럭 다시 자리를 잡아갔단다.

....

그런데 역병이 돌아서 베네치아 전체가 폐쇄되었어. 이제 자리를 잡아가던 공방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 무라노 섬에도 감염자가 생기더니 마르코의 아내 니콜레타가 그만 감염되고 말았어. 당시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큰일이구나. 감염이 되면 신고하고 격리시설로 보내야 하는데 어머니 라우라는 격리시설에 가면 무조건 죽을 거라는 생각에, 몰래 집에서 돌보기로 했단다. 집에 있는 아기들, 스텔라와 마르코의 첫째 아기 마르콜린은 할머니 댁으로 보내고, 집에서 일하던 시녀도 혹시 몰라서 집으로 보내고, 안토니오에게 특효약을 찾으러 베네치아에 보냈어. 그리고 라우라와 오르솔라가 번갈아 가면서 니콜레타를 보살폈단다. 그런데 집으로 보낸 시녀가 역병 증세가 나타나 죽고 말았어. 그래서 조사단이 라우라의 집에 와서 조사를 했고, 니골레타의 감염 사실도 발각되어 니골레타도 격리시설로 가야 했어. 그런데 엄마 라우라가 함께 가겠다고 했단다.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대단한 엄마구나.

오르솔라, 마르코, 자코모, 파울로도 감염자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40일간 집에 격리해야 했어. 다행히 안토니오가 집밖에 머물고 있어서 생필품과 음식, 물 등으로 창문으로 넣어주었단다. 역병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져서 죽는 사람들도 늘어났어. 함께 격리하고 있던 파울로도 그만 감염이 되어 얼마 못 가 죽고 말았어. 할머니도 감염되어 이모와 아기들도 격리해야 했단다. 오르솔라는 구슬을 만들어 역병퇴치구슬이라고 하여 팔기 시작했단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들이 그 구슬을 사기 시작해서 돈을 좀 벌어들였지만 인기는 이내 시들었단다.

...

격리한 지 40일이 지나고 격리가 해제되었단다. 다행히 오르솔라, 마르코, 자코모는 병에 걸리지 않았어. 그리고 격리시설에 갔던 엄마 라우라가 아기만 데리고 돌아오셨단다. 니골레타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거야. 그 아기 이름은 라파엘레라 지었단다. 역병은 베네치아의 3분의 1이 죽고 나서야 역병이 사라졌단다.

..

 

3.

바깥 세상은 시간이 흘러 흘러 1631년이 되었어. 마르코의 둘째 딸을 위한 유모 모니카라는 사람이 일하게 되었어. 모니카는 로셀라라는 딸이 있었단다. 그런데 얼마 안가 모니카는 마르코와 결혼했단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집안일 도와주는 하녀로 모니카의 사촌 이사벨라가 왔는데 얼마 안가 이사벨라는 자코모와 결혼을 했단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르솔라도 결국 안토니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이 되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유산을 하고 말았어.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이제 공방도 다시 정상궤도를 찾는 듯 했어. 오르솔라도 다시 장식용 유리구슬을 만들었어. 안토니오의 실력도 점점 좋아져서 순리대로라면 마르코의 도제가 되어야 하는데 마르코가 안토니오를 싫어했어. 이웃에 있는 바로비에로 공방에 있던 스테파노를 스카우트해 와서 도제가 되었단다. 아니, 더 큰 공방에서 일하고 있던 스테파노가 왜 작은 공방의 도제로 왔을까. 오르솔라는 자신 때문이라고 눈치챘어. 역시나 얼마 후 스테파노는 마르코에게 오르솔라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마르코도 허락을 했단다. 아마, 사전에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을 거야. 물론 오르솔라는 싫다고 했지.

안토니오는 도제 건으로 화가 나서 공방을 떠나 북부 지역으로 갔단다. 오르솔라는 안토니오에게 남아달라고 하고 안토니오는 오르솔라에게 함께 떠나자고 했는데 결국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안토니오는 홀로 길을 떠났단다. 마르코는 안토니오가 기술을 빼돌렸다면서 그를 신고하여 추적하게 했단다. 역병이 돌았을 때 안토니오가 도와준 일, 공방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된 것을 마르코는 잊은 것인가. 나이를 먹어도 그 더러운 성격은 그대로이구나. 스테파노의 계속된 청혼에 안토니오가 떠난 지 1년이 지나고 오르솔라는 스테파노와 결혼을 하게 되었어. 하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안토니오가 있었단다.

...

8년이 지나고 오르솔라는 네 번의 유산 끝에 딸 안젤라를 낳았단다. 그 8년 사이에 자코모의 아내 이사벨라가 딴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갔단다. 오르솔라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겸 (그런데 사실은 혹시 안토니오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테라페르마에 갔다가 길거리에 말똥이 널브러져있는 등 너무 더러워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어. 그런데 곤돌라에서 어떤 남자가 추파를 던졌어. 얼마 후 그 남자가 어떻게 알고 공방에 구슬을 사러 왔는데 그의 속셈은 오르솔라를 보려고 왔던 거란다. 그런데 그 남자 이름이 카사노바였어. 바람둥이로 유명한 실존인물 카사노바였단다. 굳이 이 사람을 등장시킨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실존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단다. 카사노바가 베네치아 출신이라서 그랬나?

아무튼 카사노바는 오르솔라를 어찌해보려는 이유인지 샹들리에를 포함하여 엄청난 양의 유리 공예를 주문했단다. 공방이 한동안 바쁘게 움직였는데 물건이 거의 다 만들어질 즈음 카사노바가 빚쟁이 사기꾼으로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어. 다 만들어놓은 샹들리에는 팔지도 못하게 되었고, 들어간 비용도 받을 길이 없었단다. 공방은 이 일로 몇 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고 다시 신뢰를 되찾는데 몇 년이 더 걸렸단다.

....

또 시간이 흘러 1794년이 흘렀어.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조금만 나이를 더 먹었단다. 당시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휩쓸던 시기였어. 나폴레옹은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에게 넘겨버렸어. 이 때가 베네치아와 무라노 섬의 암흑기였어. 망하는 유리 공방들도 늘어났어. 마르코의 공방도 주문량이 줄어 힘든 시기를 보냈어. 다행히 나폴레옹의 부인인 조세핀의 유리 목걸이 주문이 들어와서 좀 숨통을 트였단다. 또 한번의 실존인물 출현.

....

바깥 세상의 시간은 또 흘러 1915년이 되었어.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나이를 조금만 먹어 오르솔라는 이제 마흔네 살이 되었어. 오르솔라는 얼마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씨앗구슬을 만들고 있었어. 다른 유리 공예품으로 영역을 넓혀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 그런데 1915년이면 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이겠구나. 전쟁은 그들도 피해가지 못했어. 전쟁 중 조카 한 명도 참전하여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여동생 스텔라는 간호사로 전쟁에 참여했는데 역시 폭격으로 죽고 말았단다. 전쟁이 끝나고 베네치아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 오르솔라네 공방도 유리 공예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가게를 열어 유리 공예품을 팔았단다.

....

시간이 또 흘러 2019년이 되었어. 이제 오르솔라 나이는 65세가 되었어. 이제 베네치아는 관광도시로 한 해에 480만명이 오곤 했어. 그리고 베네치아 풍경도 많이 변했지. 무엇보다 예전에 드물던 홍수가 예삿일이 되었단다. 기후 변화가 그렇게 만든 거야. 2019년 11월에는 대홍수로 베네치아 대부분이 물에 잠기기도 했어. 이 사건을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코로나19 때문에 전세계가 격리되었단다. 베네치아도 마찬가지였어. 남편 스테파노가 이때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황망하게 죽고 말았단다. 오르솔라는 그 옛날 역병이 생각났을 거야.

…

시간이 또 흐르고 이제 60대 후반이 된 오르소라. 어느 날 손님이 왔는데, 깜짝 놀랐단다. 안토니오를 꼭 닮은 손님이었어. 알고 보니 그는 안토니오가 아니고 안토니오의 몇 대 후손이었단다. 안토니오가 당시 간 북부 지역은 시간이 제대로 흘렀던 거야. 안토니오는 이미 수백 년에 죽고, 안토니오가 남긴 유언에 따라 그의 후손들은 정기적으로 베네치아의 어떤 집의 주소로 돌고래 모양의 유리 공예를 보냈던 것이야. 그렇게 돌고래만 보내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결국 안토니오의 만남은 끝내.이루어지지 않았구나.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었단다. 아빠가 시작할 때 이야기했듯이 이 소설은 두 세상의 시간의 속도가 다른 판타지 요소가 있었는데, 아빠는 그런 구성에 다소 반대였단다. 소설의 시작부분인 중세 시대 베네치아의 유리 공예가들의 삶과 그들만의 철학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구나. 지은이 트레이시 슈발리에 소설을 22년만에 읽었는데, 다음에 또 22년만에 읽는다면 아빠 나이가? 아, 상상하고 싶지 않구나. 지난 22년이 휙 갔는데, 앞으로 22년은 더 빨리 가겠지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물 위로 납작한 조약돌을 던져 솜씨 좋게 물수제비를 뜬다면, 돌은 떨어지기 전까지 길게, 혹은 짧게 간격을 두고 물 위를 여러 번 통통 퀴어갑니다.

책의 끝 문장: 그를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안토니오가 떠날 때마다 로소 가족 세 사람은 그가 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자기들도 폰다멘타 데이베트라이를 따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걷다가 캄포산토 스테파노에 들러 굴을 먹고 로모 살바데고에서 술 한잔하고, 산티 마리아 에 도나토에 들어가서 기도를 올리거나 바닥의 모자이크를 감상하고, 북쪽의 정원들을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체리를 따고 은방울꽃 향기를 맡아보고 싶었다. 또 캄포 산 베르나르도에 서서 누가 다투고 누가 결혼했는지, 누가 아이를 가졌는지, 누가 육아로 고생하는지, 어떤 공방이 다른 공방을 앞섰는지, 누가 사업을 그만두었는지, 누구의 와인이 상했는지, 누구의 치즈가 남아도는지, 로소가의 도제가 누구를 만나고 그가 정말로 좋아하는 건 누군지 같은 소문을 얻어듣고 싶었다. 인생에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 - P187

인생은 다양한 자극 없이는 지루했다. 장소, 소리, 사람들. 오르솔라는 자기 자신에게 싫증이 났고 다른 사람들이 그리웠다. 전화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는 건 그들과 같은 방에 함께 있는 것과 같지 않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루치아나가 비웃겠지만, 그래도 오르솔라는 베네치아가 그리웠다. 낯선 사람의 존재, 산 마르코 광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유리 제품을 집어 들었다 다시 내려놓고, 로셀라가 구슬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관광객들이 그리웠다. 오르솔라가 직접 만든 사람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무례하게 평하는 짜증스러운 손님들까지도 그리웠다. - P487

그 여행 후, 라파엘라는 각 카지노가 어떻게 모두 다른 주제, 대개 장소들을 본떠 지어졌는지 설명해주었다. 파리, 로마, 이집트, 그리고 물론 베네치아까지. 라파엘라는 모형 캄파닐레, 두칼레 궁전, 리알토 다리, 수영장처럼 맑고 푸르게 염소 소독한 물이 가득한 운하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곤돌라까지도 있었지만, 어떤 사공들은 노를 틀린 방식으로 젓고 있었다. 심지어 베네치아에서 정통성 있는 곤돌라 사공들을 데리고 간 거라고 하는데도 그랬다. 라파엘레가 그들 베네치아인 중 한 명에게 그것을 지적하자 그는 정통 베네치아식으로 욕을 내뱉더라고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라파엘레는 이 ‘베니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미국인이 이러는 거예요. ‘굳이 이탈리아까지 한참 비행기 타고 갈 필요가 있겠어?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시란 리조트에 가면 똑 같은 게 다 있는데, 게다가 도박도 할 수 있잖아! -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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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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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작년 말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기에 맞춰 출간된 여러 책들 중에 하나란다. 루스 윌슨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할머니가 쓴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 라는 책이란다. 책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은이 루스 윌슨의 이력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삶을 살고 계시더구나. 지은이 루스 윌슨은 예순 살까지 평범한 가정을 일구며 살아왔단다. 그러다가 예순 넘어서 가까운 사람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등 외로움이 느껴지고 지난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뭔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시골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홀로 지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어. 나이 70살에 졸혼을 하고 혼자 시골집에 혼자 칩거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그때 루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제인 오스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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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가족과 일 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뭘까 생각하니 예나 지금이나 소설 읽는 즐거움만 한 것이 없었다. 읽은 소설을 통틀어 내 즐거움이 비교 기준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에게서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작품들에 대한 향수가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활 치료라 생각하고 다시 독서에 열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선은 오스틴의 소설 여섯 편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를 오스틴의 애독자로 만들어준 그 촌철살인의 위트와 귀가 닳도록 인용되는 문구들과 생기 넘치는 대화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독서법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오스틴의 작품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그 세계관의 프레임에 비추어 내 인생의 만족과 불만족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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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시절 처음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70대가 되어 다시 읽은 지은이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 장편 소설 6편을 다시 읽으면서 침체되었던 삶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여 88살에는 독서 관련된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90살에는 이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자기인생의 첫 번째 책을 나이 아흔에 낸 사람이 있을까 싶구나. 기네스북에도 기록될 만 기록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 이 책을 산 것은 지난 연말인데 막상 이 책을 읽으려고 하니 제인 오스틴의 책을 너무 적게 읽어서 공감하지 못하는 내용이 많을 것 같아서 먼저 제인 오스틴의 책을 좀 읽고 읽어야겠다고 미뤄두었어. 그 이후 <설득>, <이성과 감성>을 읽었어. 이제 그 전에 읽은 <오만과 편견>까지 포함하여 세 권을 읽었으니 이제 이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를 읽어봐도 될 것 같아서 읽었단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섯 권을 모두 읽고 읽으려면 너무 늦어질 것 같기도 해서 지금 읽은 거야. 물론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어도 문제되지는 않지만 읽고 나서 읽으니 지은이의 어떤 의견에는 공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의견에는 공감하지 않으면서 읽다 보니 책 읽기에 도움이 많이 되더구나. 좀 늦어지더라도 나머지 세 권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나머지 세 권은 <에마>, <노생거 수도원>, <맨스필드 파크>란다.

 

1.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지은이의 자서전이기도 해.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해주었어. 1932년생인 지은이는 15살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처음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는구나. 그러면서 10대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엄청 자세히 당시 있었던 대화까지 이야기를 해주었어. 기억력만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일기를 꾸준히 썼을 것 같구나. 지은이는 영어교사를 하다가 은퇴를 했고 1974년부터 5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었대. 지은이는 유대인이었지만,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어서 다행히 유대인 핍박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했어.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같은 민족들이 핍박 받고 희생당하는 것에 슬프고 힘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민족들이 오늘날은 이웃 나라에 무자비하게 폭격을 가해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니…  악마는 멀리 있지 않는 것 같구나. 지은이는 지금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악마와 같은 만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득 궁금해지는구나. 이스라엘에 이주할 때 원래 그곳에서 살다가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이 있었는지도...

...

이 책에 소개된 여섯 편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 각 챕터 별로 소설들의 줄거리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대충 읽었단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의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지. 소설 속 주인공들을 이야기하면서 지은이의 주변 사람들과 매칭해보기도 했어.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책들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기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도 소개되어 반가웠단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60대에 들어선 지은이의 불안한 마음을 제인 오스틴의 소설로 완전 치유가 되었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통해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관계의 복잡성, 우정의 가치, 사랑의 의미, 삶의 균형 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졸혼했다고도 했는데 그렇다고 남편과 헤어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하는구나. LAT(live-apart-together)족 생활을 했다는구나. 따로 살면서 같이하는 삶을 실천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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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가능성의 영역이고, 현실의 우리는 우리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이럭저럭 그 선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보면 내가 한때 나의 남주인공으로 착각했던 사람, 그러나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나의 친밀한 동반자가 된 사람과 따로 또 같이 사는 지금의 내 인생에는 소중한 우정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편과 내가 공유하는 관계도 있고 애정의 방향이 갈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나한테 더 중요한 건 ‘정녕 진실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꾸려갈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준 일등 공신이 지금도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길잡이 제인 오스틴이다.

======================

…

지은이의 꼼꼼한 책읽기를 보면서 아빠의 책읽기도 생각해보았어. 어린 시절에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아빠는 이십 대 중후반 문득 책 좀 읽어볼까 하고 시작한 독서생활은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단다. 하지만 내적 성장이라든가, 글솜씨가 좋아졌다든가, 지적 성장이 있었다든가, 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구나 ㅎㅎ 아빠의 독서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냥 재미있으니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어서 그런가. 힘들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책이 치유를 해준다기보다 오히려 책읽기가 힘들어지고 독서생활에 슬럼프가 찾아오는데 말이야. 아니면 힘들 때 고른 책들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제인 오스틴의 책들을 골랐어야 했나?^^

...

이 책에서 지은이가 한 것 중에 아빠도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단다. 지은이는 오랜 친구와 함께 책을 낭독해서 읽기를 했단다. 아빠는 함께 읽기를 너희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너희들은 지금 너무 바쁘니 뒤로 미뤄둬야겠구나.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픈 것은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는 것. 아빠도 나이가 들고나서 무엇인가 새로 배우거나 새로 시작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겼는데 반성해야겠구나.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한 아직 읽지 않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세 편도 올해 안에 꼭 읽도록 하마.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행복이 대체 뭐란 말인가.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준 일등 공신은 지금도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길잡이 제인 오스틴이다.

 


제인 오스틴이 보여준 언어의 가능성을 활자로, 또 내 귀로 발견했을 때 내 앞에 소설로 통하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문이 닫혔다. 어머니와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울타리 너머에서 우리 앞마당에 던져놓고 가는 잡지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어머니는 유명 인사의 가십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나는 틈새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어치우던 그런 시절이 안녕을 고했다. 클리셰니 스테레오타입이니 하는 말은 모를 때였지만, 햄릿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작법과 인물들이 어딘지 "식상하고 밋밋하고 쓸모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아침에 흥미가 사라져버렸다. - P51

사춘기에 접어든 그때 나는 현실에서처럼 빛과 그림자가 불가분하게 뒤섞인 세상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체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세상이 아닌 한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였다. 그가 소리와 인격과 생각을 불어넣어 완성한 정연한 패턴 안에 단순한 결혼 플롯을 뛰어넘는 인생의 비전이 담겨 있었다. 내가 평생 이어갈, 궁극적으로 내 삶의 암흑기에 빛을 비춰줄 허구의 경험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P157

나는 세월이 쌓이고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게 느껴질수록 소설 안에서 역사가 다뤄지는 방식에 관해서 관심이 증폭되다 못해 이제는 역사적 호기심의 노예라고 해도 될 판이다. 소설이 어떻게 과거로 현재를 재구성하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소설 안에서 인생살이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발견하는 유익한 효과도 따라온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캐서린은 역사책이 온통 "짜증 나고 지루한" 이야기뿐이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틸니 양은 친구의 의견을 받아주는 것 같으면서도 역사를 집필하는 사람들 쪽으로 슬쩍 주제를 선회한다. "역사가들은 기꺼이 공상의 나래를 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군요. 흥미를 자아내지 않더라도 그들도 상상력을 발휘하긴 하죠."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리저리 튀며 두 아가씨의 정신세계를 비춰 보인다. - P167

그리하여 나는 팔십 줄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모든 여학생들이 졸업 앨범 방명록을 간직하던 시절, 브레인 선생님으로 짐작되는 이가 내 졸업 앨범 방명록에 대략 이런 의미의 글귀를 남겼다. 공중에 누각을 지은들 어떠랴, 토대만 단단히 세우면 그만이지. 글귀 아래에는 철학자 소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미 나만의 누각에서 살고 있었고, 어쩐지 앞으로 10년 안에 그럭저럭 토대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어떤 예감이 찾아오고 있었다. 흔히들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그런 황홀한 도취가 다시 한번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 이번 상대는 인생이라는 것도. - P225

어떻게 해야 더 명료하게 내 뜻이 전달되려나.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까놓고 말하자면 관습의 틀 안에 살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기망한 거야. 안전한 삶에 안주한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튕겨 나가고 있더라. 내 자리를 지키기는커녕 밖으로 밀려나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라니, 내가 고작 이 정도인가, 인생에서 얻은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좌절했어."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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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157-158)

빨간색 윗도리를 입었어야지, 그게 더 어울리는데, 오늘은 머리가 엉망이네, 방 좀 정리해라, 물건들 좀 여기저기 두지 마, 네가 내 립스틱 가져갔었구나, 그래, 알았어 우리 강아지, 이건 벗기는 것 좀 도와주렴, 가게에 같이 가자, 오후 4시에 데리러 갈게, 네가 물어봐서 대답한 거야, 시간이 없구나, 숙제는 했니, 이게 다 뭐니, 저것 봐, 너무 예쁘지, 그건 안 돼, 이걸 사줄게,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식탁 좀 차려줘, 아니, 안 돼, 안 돼, 좋아, 알았어, 정말 이번 한 번뿐이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마, 저녁 6시 이후엔 초콜릿이나 탄산음료 금지야, 아침 안 먹으면 못 간다, 외투 입어, 밖이 추워, 이 난장판이 다 뭐니, 양치질은 했니, 언제 다 클래, 가서 샤워해, 염려 마, 괜찮으니까, 사랑해, 잘 자렴, 오늘 아침엔 왜 이렇게 예쁠까, 그거 너한테 아주 잘 어울린다, 네 역사지리 선생님이 전화하셨더라, 늦었다, 이제 그만 자렴,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데, 괜찮아, 우리 아기, 저 남자애는 누구니, 넨가 독서 싫어하는 거야 알지만 그대로 이 책은 좋아할 거야, 몇 시에 데리러 갈까, 그 애 부모님은 뭘 하시니, 전깃불 꺼, 맨발로 걷지 마, 병원 가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토 달지 말고, 이리 와서 안아줘, 말 안 들으면 아빠 부른다.


(297)

루이 할아버지네 카페를 매각한다는 소식은 밀리에 폭탄을 투하한 듯한 충격을 안겼다. 남자들 대부분이 거짓 루머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카페 앞에 모여들었다. 엘렌 엘이, 자기들의 엘렌 엘이 자기들의 카페를 판다니! 너나없이 모두 모였다. 늙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 은퇴자들, 알코올의존자들, 한창때의 노동자들, 농부들, 용감한 사람들, 게으른 사람들, 퇴역 군인들, 수공업자들, 사제, 노동자들, 관리반장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그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그녀 없이 그들은 어쩌라고? 이제 그들의 바짓단 길이는 누가 맞춰주고, 주중에 그들이 먹고 마실 것은 누가 제공하며, 그들의 똑 같은 푸념은 누가 들어주고, 담배는 누가 팔고, 보들레르는 누가 돌보고, 1등처럼 3등까지 경주마 순위는 누가 예상해주고, 누가 그녀처럼 웃어준단 말인가? 그들 모두가 아침과 정오와 하루 끝의 진액을 잃은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일상의 골칫거리, 돈 걱정, 아이들, 아내, 꼬박꼬박 가져와야 할 월급의 압박 속에서,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와 두서너 마디 흰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이 술병들의 정원에 들어서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할아버지 카페는 그들이 마주치고, 악수를 나누고, 공장과 납품과 가축과 고용주의 수확에 대한 정보와 최신 뉴스들을 교환하는 교차로였다. 그곳은 겨울에도 늘 따뜻했다. 엘렌 엘이 직접 난로의 장작을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선 늘 좋은 냄새가 났다. 그것이 정오에 제공되는 단일 메뉴의 냄새든 장미 향이든. 좀 취했다고 장미 향 좋은 걸 모르는 건 아니니까. 라디오가 뉴스와 사랑 노래를 흘려 보내며 시간에 리듬을 부여했고, 그들이 한 잔의 커피나 술에 입술을 적시는 사이 삶은 제각각 흘러갔다. 가볍게, 너무나 가냘파서 한 손가락으로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상화된 여인 엘렌 엘만큼이나 가볍게.


(308-309)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잠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402)

그녀가 명언을 남기고 떠났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의 새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여러 사람이 같은 것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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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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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줄리 클라크라는 미국 작가의 <라스트 플라이트>라는 소설을 이야기할게. 작년에 신간 코너에서 <투 오브 어스>라는 책소개를 보고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해서 지은이 소개를 보다가 검증된 이전 작품을 먼저 읽어봐야겠고 생각하고 읽은 책이 오늘 이야기할 <라스트 플라이트>라는 책이란다. 속도감 있고, 초반의 얽힌 실타래가 시원하게 풀려가는 것이 도파민 발산하는 소설이더구나.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법한 스토리인 것 같아 검색을 해봤더니 이름만 같은 다른 영화가 한편 있긴 하더구나. 아무튼 아빠는 한 편의 영화를 본듯한 소설이었어.

 

1.

2월 21일. 주인공 클레어는 거물급 정치계 가문의 로리 쿡의 아내야. 로리 쿡은 정치인답게 대외적으로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가정폭력범이야. 사실 로리는 이번이 두 번째 결혼이었는데, 로리의 전 부인 매기도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았고, 의문의 화재사고로 죽었다고 하는구나. 물론 당시 로리도 조사를 받긴 했지만 아무런 혐의도 없었단다. 하지만 수상한 냄새가 짙게 풍기는구나. 클레어는 오랫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고 남편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지만, 남편의 주변에는 클레어를 감시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어. 친구들과 만남도 남편의 측근들에게 모두 감시 당하고 있었어. 감옥이 따로 없구나.

고등학교 때 친구 페트라만이 남편이 모르는 유일한 지인이었어. 2년 전 피트니스 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그 이후 가끔씩 피트니스 클럽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 그리고 페트라와 함께 탈출 계획을 짰단다. 클레어와 페트라의 또 다른 고등친구 니코가 있었는데.. 니코는 마피아 보스인 아버지로부터 조직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어. 니코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니코에게 부탁하여 가짜 신분증을 만들고 클레어가 실종되는 계획을 세웠단다. 그런 기회가 찾아왔어. 정치인의 아내의 역할을 위해 혼자 디트로이트 출장을 가게 된 거야. 클레어는 디트로이트에서 묵을 호텔에 미리 가짜 신분증과 현금을 보내서 맡겨두고 그곳에 출장을 가게 되면 그 가짜 신분증과 현금을 가지고 사라지려고 했어. 그런데 마지막에 변수가 생겼어. 당일 아침 로리가 직접 디트로이트에 간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클레어에게는 푸에르토리코로 가라는 거야. 난리 났네... 디트로이트로 보낸 가짜 신분증과 현금이 있는데 그걸 로리가 보게 될 텐데. 공항에서 클레어는 패트라에게 전화해서 이 위급함을 알렸어. 페트라도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단 푸에르토리코로 가라고 했어. 그런데 이 전화통화를 유심히 듣던 이바라는 여자가 있었어.

이바는 클레어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자신도 어디론가 도망을 가야 한다면서 서로 신분증을 바꾸고 비행기를 서로 바꾸어 타자는 은밀한 제안을 했어. 클레어도 이바의 생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둘은 신분증뿐만 아니라 소지품이랑 핸드폰이랑 옷까지 바꿔 입으면서 철저하게 서로의 신분을 바꾸고 사라지려고 했어. 클레어는 이바의 비행기 티켓을 받아 오클랜드로 날아갔단다. 이바는 푸에리토리코 행 탑승 대기하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줄에서 이탈했어.

...

오클랜드에 도착한 클레어.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어. 클레어가 타려고 했던 푸에르토리코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야. 남편 로리의 소행으로 깊게 의심되는구나. 클레어는 자신 때문에 이바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이 일었어. 갈 곳이 없는 클레어는 일단 이바의 집으로 갔단다. 페트라에게 전화를 해보았는데 연결이 안되었어. 그런데 이바의 전화로 문자가 왔단다.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단다.

...

 

2.

이번에는 이바의 이야기를 해보자. 6개월 전. 이바는 버클리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남자친구한테 속아서 마약을 만들어주다가 발각이 되어 퇴학을 당하고 말았어. 그 이후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다가 덱스라는 남자를 만났고, 마약을 제조하고 거래하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어. 이것 때문에 마약단속반의 추격을 당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덱스의 조언으로 2주 동안 잠적하기로 했단다.

그때 이웃 리즈라는 초로의 노인과 친하게 되었단다. 리즈는 버클리대학교에 교환 교수로 와서 잠시 머무르고 있었어. 이바는 리즈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게 되어 예전에 희망하던 삶을 다시 꿈꾸게 되었어. 하지만 마약 조직의 협박과 감시로 무작정 떠날 수는 없었어. 그 조직의 우두머리는 피시라는 의문의 사람인데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어. 이바는 덱스와 함께 피시로부터 도망치려는 계획을 세웠어. 그런 와중에 마약단속반의 카스트로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피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피시를 잡는데 도움을 준다면 이바의 죄는 경감해주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데 도와주겠다고 했어.

이바는 이상하게 생각했어. 자신은 피시를 본 적도 없는데, 자신에게 찾아온 이유… 그리고 잘못되면 피시에게 살해당할 것이 두려웠어. 그래서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요청했어. 이젠 많이 친해진 이웃 리즈는 이바를 걱정하면서 고민거리를 이야기해보라고 했지만, 이바는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어. 리즈는 버클리대학교에서 일정을 마치고 원래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단다. 이바에게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했어.

…

카스트로는 상부와 검토한 결과 증인보호프로그램은 어렵다고 했어. 하지만 불구속으로 해줄 수도 있다고 했어. 그러나 이바에게는 피시의 복수가 너무 두려웠어. 카스트로는 피시와 만날 때 도청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바는 피시를 만난 적이 없고 만날 일도 없다고 했어. 그러자 이미 여러 번 만났다면서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건 피시가 아니고 덱스였어. 그러니까 덱스가 피시였던 거야. 이바가 친하게 지냈던 덱스가 악명 높은 조직의 보스 피시였다니… 그러자 더욱 두려워졌어. 그래서 이바는 어떻게든 버클리를 떠나 도망하기로 마음먹었단다. 우선 리즈를 만나기 위해 뉴어크로 날아갔단다.

 

3.

자, 다시 클레어의 이야기를 해보자. 오클랜드에 있는 이바의 집에 잠시 머물기로 했어. 이바를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이바의 서류를 읽어보았어. 이바는 클레어에게 암투병을 하던 남편이 죽어 여행가는 일이라고 했었는데 그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집 이곳 저곳 조사를 해보았단다. 그리고 중간중간 뉴스를 보면서 여객기 추락 사고도 확인해 보았단다. 클레어가 남편 로리 계정을 알고 있어서 로리의 메일과 메신저를 몰래 보면서 상황을 체크했단다. 로리는 디트로이트 호텔로 보냈던 클레어의 가짜 신분증을 확보하고 클레어의 계획을 알아챘고 협력자를 찾으려는 듯했어. 이것을 로리의 측근 데니엘이라는 여자가 맡고 있었단다. 그렇게 뉴스를 체크하다가 뉴스 속에서 로리의 기자회견장소에서 이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설마 이바가 비행기를 안 탄 것인가? 그럼 그나마 다행일 텐데…

클레어는 언제까지 이바의 집까지 머물 것인가도 고민이었어. 친구 페트라와 연락이 닿으면 같이 고민해 볼 텐데, 페트라는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어. 여객기 사고를 생각하다가 문득 예전에 로리의 고모 메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 로리의 전 부인 매기의 죽음은 로리의 짓이라고 클레어에게 이야기했었거든.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객기 사고를 자신을 노렸다는 생각에 매기의 죽음도 우연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어.

…

클레어는 이바의 집에 머물면서 돈도 떨어졌어. 조심스럽게 신분을 알리지 않아도 되는 파트타임 일자리도 알아보았어. 로리의 계정으로 메일과 메신저를 감시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어. 그리고 비행기에서 클레어의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로리도 알게 되었다고는 클레어도 알게 되었어. 이바가 정말 그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았던 것일까? 클레어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단다. 그리고 메신저를 통해 의심만 하고 있던 매기의 죽음에 로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도 알게 되었어. 클레어는 위험하긴 했지만 돈이 부족해서 파트타임을 하게 되었어. 어떤 만찬 행사의 서빙 일이었는데, 함께 일하던 켈리의 난처한 상황을 도와주다가 카메라에 찍히고 SNS에 게시되었어. 누군가 그 사진을 보고 로리의 아내를 닮았다는 댓글을 달게 되었어. 이제 오클랜드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닐 수도 있어. 파트타임에서 함께 일했던 켈리는 클레어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걱정해주었어. 그런데 이바의 전화로 로리의 측근 다니엘의 전화가 왔어.

다니엘이 어떻게 이바의 전화를 알고 있지? 이제 로리도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거기에다가 임대할 집을 찾고 있다면서 낯선 남자가 이바의 집 근처를 서성였어. 그 남자가 말을 걸어와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어. 점점 좁혀오는 감시망… 클레어는 이바의 집을 둘러보다가 지하실로 내려가는 비밀 문을 발견했어. 그곳에 내려가 보니, 이바가 만들었던 마약과 각종 약물들, 그리고 이바의 진술서와 녹음 기록을 듣게 되었어. 그런데 그 녹음 속에 집 근처에서 서성이던 남자의 목소리도 있었어. 이제서야 이바가 클레어에게 거짓말을 하고 오클랜드를 도망가려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어.

클레어는 이바의 진술서와 녹음 등을 챙겼어. 클레어가 로리의 계정으로 메일과 메신저를 감시하다가 실수로 흔적을 남기고 말았어. 이후 로리의 계정 비밀번호가 바뀌어 더 이상 로리를 모니터할 수 없었어. 그런데 다니엘은 계속 전화를 해왔어. 계속 받지 않았더니, 다니엘은 음성을 남겼는데 약간을 뜻밖의 내용이었어. 다니엘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면서 연락을 하라고 했어. 자신이 클레어에게 연락하고 있는 것은 로리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로리가 클레어를 찾으러 캘리포니아로 가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고, 로리의 음모가 담겨 있는 녹음파일을 보낼 테니 이용하라고 했어.

음.. 대니엘의 말은 진심일까? 믿어도 될까? 대니엘이 보낸 녹음 파일을 들어보니 로리의 육성 맞았어. 로리는 그 파일을 방송국에 제보했어.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그 파일로만은 증거가 부족하고 방송에 출현해 달라고 요청했어. 그리고 방송국에서 클레어를 태우러 오겠다면서 안심하라고 했어. 로리의 일행이 먼저 클레어를 납치할까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있었으나, 클레어는 방송국에 도착을 하고 로리의 만행을 모두 폭로할 수 있었단다. 자기 대신 죽게 된 이바의 명복도 빌었단다. 로리는 매기의 죽음과 여객기 사고에 대해 조사를 받게 될 것이고, 클레어는 드디어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단다. 클레어의 방송 출현 이후 페트라와 다시 연락이 닿았어. 클레어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줄 알고 핸드폰을 해지했다고 했어. 클레어의 가짜 신분증 때문에 자신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

그런데 로리의 측근 다니엘이 왜 클레어를 도와준 것일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다시 이바의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이바가 오클랜드를 떠나 뉴어크에 있는 리즈의 집에 들렀다고 했잖아. 그날이 비행기 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이었어. 이바는 리즈를 만나 지난날에 대해 모든 것을 이야기했어. 그러면서 이제 외국으로 도망가려고 한다고 했어. 리즈는 이바를 이해하면서 설득해서 카스트로에게 가서 협력하라고 했고, 결국 이바는 리즈의 말을 듣기로 하고 다시 오클랜드로 가기로 했단다. 그때 리즈의 딸 엘리가 방문했어. 그런데 엘리의 지금 이름은 다니엘이었단다. 그 로리의 측근 다니엘 맞아. 다니엘은 로리의 측근이지만 로리가 아내 클레어를 폭행하고 괴롭히는 것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나중에 클레어가 오클랜드에 숨어 지내는 것을 알고 그제서야 도와주겠다고 마음 먹은 거야. 다니엘은 이런 고민을 엄마 리즈에게 이야기를 했어. 이 이야기도 이바도 듣게 되었고, 이바는 클레어가 비행기를 하고 푸에르토리코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머릿속에서 새로운 계획이 생겼단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이바가 클레어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란다. 그렇다면 이바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소설은 다시 비행기 사고 당일로 돌아간단다. 무슨 마음에서 비행기 탑승 줄에서 벗어난 이바…. 그러나 다시 고민 끝에 탑승 줄에 서게 되었단다. 소설 읽는 내내 이바도 어디선가 안전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허를 찔렸구나. 이바는 안타깝게도 그 비행기를 그대로 탔고, 클레어 대신 죽고 말았구나. 소설 속 반점을 위해 그런 설정을 했을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바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소설을 그렇게 끝이 났단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스릴러 영화 한편을 본 듯했어. 지은이 줄리 클라크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줄리 클라크의 최신작 <투 오브 어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4번 터미널은 사람들로 끓어 넘친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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