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1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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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한수산의 <군함도>라는 소설을 신간코너에서 보고 오랜만에 역사소설을 내셨네, 라고 생각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2년 전이라니세월 참. 아빠가 한수산의 소설을 읽은 것은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까마귀>라는 소설 하나야. 그것도 몇 년 전에 읽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2006년이었더구나. 꽤 오래되었네. 일제시대 징용에 끌려가 탄광에서 고생을 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나가사끼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목숨을 잃은, 하지만 역사 속에서 잊혀진 조선의 청년들그들의 아픈 역사를 소설로 그려낸 작품이었어.

그리고 2016년에 출간한 <군함도>라는 두 권짜리 소설. 아빠는 이 신간소식을 보고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예전에 <까마귀>라는 소설을 괜찮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말이야.. 또 그리고 작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군함도가 개봉을 했어.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군함도라는 섬을 알리게 한 영화였어. 아빠는 영화 군함도를 아직 안 봤어. 소설도 읽어보겠다고 했는데 읽지 않았고그러다가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단다.

앗… 그런데, 책을 사놓고 알아 보니, 이 책은 아빠가 2006년에 읽었던 <까마귀>라는 소설의 개정판이라고 하는구나. 음…. 그래서 아빠가 2006년에 <까마귀>를 읽고 쓴 독서일기를 읽어보았어. , 그 책에서는 군함도라고 하지 않고, 군함섬이라고 이야기했더구나. 아빠의 기억력으로는 그나마 대략적인 스토리만 알고 있었지, 그 소설의 배경이 군함섬으로 부르는 하시마 섬이라는 것까지 기억을 할 수 있겠니. 그것도 10년도 훨씬 지난 시절인데, 말이야. 그러면서 기억력이 좀 좋겠다는 생각도 좀 했어. 책을 읽으면 뭐하냐고, 다 까먹는데..^^

그런데 겉표지만 바꾼 것이 아니고, 안의 내용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구나. 2006년에 쓴 독서편지의 내용을 앞부분만 살짝 읽어보고 그 다음은 읽지 않았어.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말이야. 아빠는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다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단다. 물론 대부분의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고, 처음 읽는 기분이었지만, 중간중간 2006년에 읽었던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단다. 그리고 나쁘지 않았어. 군더더기 빼고 핵심만 끌어내어,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1.

항구도시 나가사끼에서 18.5Km 떨어진 섬 타까시마. 거기서 다시 5km 떨어진 작은 무인도 하시마. 이곳 해저에 석탄이 많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오직 채탄시설과 광부 숙소만 들어서게 되었고, 그 모양이 군함처럼 생겨서 군함도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하는데, 그 하시마 섬이 이 소설의 무대가 된단다.

일제 시대가 끝나갈 무렵, 무리한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게 된 일본은 더 많은 석탄이 필요했고, 중국과 조선으로부터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 석탄 캐는 일을 시켰어. 또는 일자리를 찾으러 일본에 온 사람들을 속여서 하시마 탄광에 데려오기도 했단다. 한번 하시마에 들어오게 되면 다시 나가는 것은 무척 어려웠어. 목숨을 건 탈출이 아니고는 나갈 수 없었단다.

명국과 태복도 일자리를 찾으러 일본에 왔다가 속아서 하시마섬까지 왔어. 태복은 동료인 삼식, 경학과 탈출 계획을 꾸몄어. 하지만, 그들은…. 삼식은 죽어서 다시 하시마 섬으로 왔고, 태복은 잡힌 후 구타로 인해 반병신이 되어 하시마 섬으로 왔고, 경학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했어. 그만큼 하시마 섬에서 탈출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어. 가장 가까운 큰 섬까지가 5km이니까 그 5km를 수영으로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어려운 것이지.. 감시병의 눈까지 피해서 말이야.

조선에서 끌려온 징용 노동자를 감시하는 일본 사람들을 노무계라고 했는데, 그 노무계들은 잡아온 태복을 고문하여 행방불명이 된 경학의 행선지를 대라고 했어. 태복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빈 틈을 노려 젓가락으로 노무계 사이또오의 목을 찔러 중상을 입혔단다. 그 일로 태복은 하시마섬 밖으로 후송되었단다.

 

2.

당시 조선의 상황은 최악이었지. 일본은 무리한 전쟁에 인력 부족, 자원 부족을 채우기 위해 조선의 젊은이들을 잡아가고, 자원들을 긁어가던 시절이었어. 그런 일본의 손아귀는 그동안 일본에게 잘 보였던 친일파 집안에도 손을 뻗었어. 서형의 시댁도 그런 친일파였는데, 아주버님이 징용대상이 된 거야. 서형의 남편 지상은 형 대신 자신이 징용을 가겠다고 아버지한테 이야기했어. 지상의 아버지는 친일 집안으로 사람들에게 일본을 위해 군대를 가라고 외쳤는데, 정작 자신의 아들이 가게 되니까 안절부절 했어.

지상은 아버지와 달리 민족의식이 투철했고, 고등학교 때 저항운동에도 참여했어. 역사적으로도 실제 있었던 춘천 상록회 사건에 참여했다가 학교를 잘린 것으로 나와 이 상록회 사건에 대해서 이 소설에서 비중 있게 다루기도 했단다. 그 중에 상록회 사건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주는 부분을 발췌해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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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1938년 가을 수사에 착수한 상록회 사건에 대해 경찰은 <사건기록>에서상록회는 일본의 국체를 변혁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록회 사건, 이름하여춘천공립중학교 학생의 민족혁명운동사건 검거에 관한 건 1939 3 25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으로 송치될 때까지 졸업생과 재학생 137명을 조사, 검거, 구속하였다. 결국 증거로 제시된 총 147점의 압수품과 함께 법원으로 송치된 상록회원 38명의 피의자 가운데 12명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가운데 백흥기는 수감 중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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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상은 그렇게 징용을 가게 되었단다. 이제 막 임신 소식을 전해준 아내 서형을 집에 둔 채로 기약 없는 길을 떠났어. 서형의 집안은 지상의 집안과는 다른 집안이었어. 서형의 오빠 태형도 상록회 사건에 참여했었고, 오빠 태형을 통해 지상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결혼까지 하게 된 거야. 태형은 지금은 만주에 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어. 지상의 아버지가 친일파인 것을 알면서도, 지상의 사람됨을 보고, 서형의 아버지는 결혼을 허락해 준 것이란다.

..

지상은 춘천에서 경성으로, 경성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시모노셰키로…. 그리고 다시 나가사끼로, 또 다시 하시마 섬까지 오게 되었어. 지상의 아버지가 편한 곳으로 보내달라고 일본에 돈까지 썼지만, 그런 것은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향 친구 우석과 함께 하시마 섬까지 왔단다. 그곳에서 앞서 이야기했던 명국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단다.

 

3.

앞서 이야기했던 태복이라는 사람이었잖아. 그 사람의 아들 길남이라는 이가 있었어. 소식이 끊긴 아버지를 찾아서 무작정 일본으로 왔어. 나가사끼에서 육손으로 부르는 조선 사람을 만났어. 육손은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으로 공사장도 가지고 있었어. 나가사끼에서 아버지 태복이 하시마 섬으로 간 것 같다는 소문이 있지, 정확하지는 않다고 했어. 길남이가 똘똘하게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육손은 자신의 밑에서 일하라고 했어.

지상과 우석은 일과는 하루 종일 해저탄광에 들어가서 석탄을 캐는 일이었어. 월급을 받긴 하지만, 이것저것 다 떼이고 나면 남은 것은 정확하게 0원이었어. 그뿐 아니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하 갱이었어. 그리고 언제 어디서 유독가스가 나올지 몰랐어. 그런 사고와 유독가스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불만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지. 일본인 관리에게 대들었다가는 골병들 정도로 맞을 뿐이지. 지상은 고향에서 간간이 오는 아내 서형의 편지로 이 생활을 참아냈어. 그리고 아들 명조가 태어났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어. 지상의 득남 소식에 명국과 우석이 조그마한 축하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어.

..

우석은 지친 일과를 마치고 나서 가끔 방파제를 나가서 마음을 달래곤 했는데, 그곳에서 조선 여자와 금화와 만나게 되었어. 금화는 여기저기를 거쳐 하시마의 유곽까지 끌려와 유곽에서 일하고 있었어. 일본 관리들을 위한 유곽이지, …. 몇 번 우석과 금화는 우연한 만남을 갖고 나서 서로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되었어.

 

4.

명국과 지상은 같은 방을 쓴다고 했잖아. 그들은 몰래 탈출 계획을 세웠어. 그런데 탈출 준비를 하는 와중에 탄광붕괴사고가 났는데, 그때 명국은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한쪽 다리를 절단할 수 밖에 없었어그로 인해 계획도 무기한 연기가 되었지. 우석이 지상의 탈출 계획을 눈치채고, 자신과 함께 하자고 했어. 우석을 통해서 우석의 친구 성필수도 탈출 계획에 동참하게 되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석은 자꾸 금화가 눈에 밟혔어. 그들은 이미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거든.

지옥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기가 쉽지는 않겠지. 금화는 우석의 탈출 시도를 알고, 그를 보내주겠다고 했어. 자신도 가고는 싶지만 짐이 된다는 것을 알았어. 지상, 우석, 필수가 탈출하기로 한 밤에금화는 경비병을 꼬셔서 같이 술을 먹었어. 탈출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했던 거야. 경비병의 시선이라도 지우려고 말이지.

금화가 경비병을 붙잡고 술을 먹는 사이에, 지상, 우석, 필수는 탈출을 시도했어. 그런데 우석이 점프를 하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을 크게 다쳤어. 절룩거리면서 움직여야 하는데 탈출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우석은 결국 탈출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고, 지상과 성수만 탈출을 시도했어. 우석은 결국 금화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싶구나.

그들이 탈출이 있고, 며칠이 지나고 금화는 일본 경찰에게 불려가서 모진 고문을 받았어. 그날밤 금화의 행적이 알려졌고, 금화의 행동은 누가 봐도 탈출을 돕기 위한 행동이었으니까 말이야. 금화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우석이 무사히 탈출했기를 바랬어. 그것 하나로 버텼어. 그런데, 이상하게 일본 경찰의 입에서는 우석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어. 금화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금화는 손님으로 알게 된 어떤 일본 관리의 도움으로 풀려나긴 했어. 하지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어. 금화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바다에 몸을 던졌단다. 너무 슬프구나. 석이 하시마 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금화는 다시 희망을 가지지 않았을까?

병원에 있던 명국도 지상 일행의 탈출 계획을 알고 성공하기를 기도했어. 그런데 병원에서 우석을 보고 깜짝 놀랐어. 그리고 금화가 온갖 고문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금화가 자살하기 전이었어. 결국 우석은 금화의 자살을 막지 못했단다. 평생 죄책감을 하나 어깨에 얹고 살아가겠구나.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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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 사람들에게는 한이 맺힌 하시마 섬그 하시마 섬이 지난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하는구나. 그 이유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산을 떠받친 이유였대. 그러나, 그 등록의 내용에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의 눈물과 분노와 희생은 없었다고 하는구나. 일본은 자신의 잘못된 과거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정말 할 줄 모르는구나. 그런 것들이 덮어진다고 덮어지나.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렵나. 일본의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참 이해하기 어렵구나. 그것이 일본이라는 국가 이미지에 큰 더러운 얼룩이란 걸 모르나.

 

(242)

어디 그뿐이랴. 오랜 역사가 서려 있지 않은가. 지상은 말없이 생각했다. 그놈들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거치면서 땅에서만 분탕질을 쳤던가. 그때도 돌아가는 배에는 비단 같은 물자에 도자기 만들 흙까지 실려 있었다. 거기다가 석공과 도공 같은 사람들끼리 실어가지 않았나. 선조 임금 때 그렇게 당하고도 3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조선은 또 똑 같은 짓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여기 끌려와 있는 것도 그때와 끈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더 원통하다. 우리는 왜 지난날에서 배우려 하질 않는가. 왜 이다지도 과거를 잘 잊어버리는가.

(298)

1938년 가을 수사에 착수한 상록회 사건에 대해 경찰은 <사건기록>에서 "상록회는 일본의 국체를 변혁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록회 사건, 이름하여 ‘춘천공립중학교 학생의 민족혁명운동사건 검거에 관한 건’은 1939년 3월 25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으로 송치될 때까지 졸업생과 재학생 137명을 조사, 검거, 구속하였다. 결국 증거로 제시된 총 147점의 압수품과 함께 법원으로 송치된 상록회원 38명의 피의자 가운데 12명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가운데 백흥기는 수감 중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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