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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41년 봄에 태어났다. 2차
대전의 발발로 유럽은 이미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고 미국이 곧 참전하려고 할 때였다. 세계는
뿔뿔이 갈라졌고 대혼란이 새로 태어나는 모든 방문자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그 무렵 태어났거나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구세계가 가고 신세계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시계가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바뀌는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둘 중의 어느
한 편이었다. 히틀러, 처칠, 무솔리니, 스탈린, 루스벨트-세계가 다시는 볼 수 없는 뛰어난 인물들이고 자신의 결단에 의지하는 사람들로서,
잘했든 못했든 그들 모두는 칭찬과 부와 사랑에 냉담하고, 혼자 행동을 준비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알렉산더, 줄리어스 시저, 징기스칸, 샤를르마뉴, 그리고 나폴레옹으로 이어지는 그들은 고상한 향연을 준비하는
것처럼 세상을 개척했다. 가르마를 가운데 탔거나 바이킹 모자를 썼거나 부인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미개한 야만인들이 우르르 지구를 가로지르며 생각나는 대로 지도를 만들었다고 평가될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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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의 노래를 쓰겠다는 생각이 언제 떠올랐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포크송
가사와 공통점이 있거나 가깝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 나는 세상에 대해 느낀 것을 정의하기
위해 노래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점차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노래를 써야겠다고 결심하지는 않는다. 자기
곡을 많이 가진 가수이고 매일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도록
뭔가를 변화시키는 기회가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이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방법으로 일하기를 원하면서 안개 자욱한 커튼 뒤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보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노래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맞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삶보다 위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일어났고 자신이 보았던 이상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해야 하고 고유의 언어로 나타내야 한다. 옛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마음이 앞서서
뛴다. 사물에 대해 생각할 때도 비슷한 패턴을 볼 수 있다. 나는
노래를 ‘좋다’ ‘나쁘다’로
보지 않고 오직 종류가 다른 좋은 노래들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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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상황이 변해야 하고, 변하고 있는 것을 안다. 샘 쿡의 노래 <변하게 될 거야(Change is gonna come)>처럼 느끼기만 할 뿐 깊이 있게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사소한 일들이 변화를 미리 암시하지만 깨닫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서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본능적으로 자유로운 것을 이해한다. 질문할 필요가 없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마법처럼 빠르게
일어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둔한 굉음이 사라지고
그 순간이 온 것처럼, 눈이 활짝 열려서 갑자기 뭔가를 확신한 것이 아니다. 늘 낮에 일을 하던 사람이 어느날 해가 일찍 지고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과, 늦도록
일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사적으로 아는 일이다. 누군가 문을 확 열고 당신을 밀어 넣으면 당신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가끔
특별한 사람이 그것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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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는 춥고 모호하고 불가사의한 세계의 수도였다. 7번가에 월트
휘트먼이 살면서 작업하던 건물이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가 참된 영혼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계속 출판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떠올렸다. 3번가에 있는 포우의 집 밖에서도 잠시 서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뉴욕은 사람의 이름이나 모습이 새겨지지 않은 블록이 없었고, 그것을
편견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항상 새롭고, 항상
변하고 있었다. 길 위에 사람들도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167)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고 다차원으로 돌아왔다. 나도 놀랄 지경이었다. 몸이 약간 흔들렸지만 즉시 높이 날고 있었다. 이 새로운 일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났다. 에너지의 차이가 감지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뿐이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에너지는
수많은 각도로부터 왔고,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새로운 능력을 가졌고 그것은 모든 다른 인간의 필요조건을 능가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그것도 얻었을 것이다. 새로운 연주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30년
이상 공연을 해왔지만 그 단계에 가 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나를 새로 만들었어야 했다.
(169)
나는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 바닥은 아니었다. 계획하는 일에
진전된 것은 없었고, 그것을 예상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장르를 전적으로 나 자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육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모든 실린더가
순조롭게 작동하고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반드시 모든 실린더가 순조롭게 작동하고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반드시 새로운 청중이 필요했다. 당시 나의 청중은 내 음반을 좋아하기에는
다소 나이를 먹었고, 나를 새로운 가수로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들은 전성기를 지나
있었고, 그 반응은 습관적이었다. 그들은 공연을 보러 왔지만,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불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를 발견해야
하는 청중은 어제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는 청중들이었다. 내 명성은 대단했으므로 축구 경기장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색다른 졸업장을 가지고는 아무 대학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프로모터들 역시 나와 접촉하려고 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종종 불을 켜고 달려들었으며 화를 내지도 않았다.
(179)
노래는 꿈과 같고 우리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이상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노래는 열차의 침대칸이나 보트 위, 혹은 말 잔등 위, 어디서나 쓸 수 있다.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끔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전혀
노래를 쓰지 않는데 그것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노래들에서, 어쨌든 외부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를 나처럼 침울하게 만들었다
가끔 보고 듣는 것들이 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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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서 상황을 적절하게 만들어야 한다. 음반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슬퍼하는 순교자의 목소리가 되지 말아야 했다. 나는 고집을 포기했을 때 일이 되기
시작했다. 그의 많은 감정적인 실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우리는 무슨 친척이나 되는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앞으로 올 많은 날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는 내가 가진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노래는
패배가 아니라 영광을 위해 씌어진 것이지만 이 곡들을 모두 합계를 내는 것이 내 인생의 전체 비전에 근접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과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도 처음 듣거나 보았을 때,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 곡들 중에 몇 곡이 그랬다.
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고 충분하다고 가정한다.
(311)
포크뮤직 무대는 아담이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내가 떠나야 하는 파라다이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떠나는 것이 최상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폭풍우가 몰아쳤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여권운동과 징집영장 혹은
민권운동 같은 문제들이 폭발했고 사람들은 이 문제들을 헤쳐 나가기를 꿈꾸었다. 국민적인 정신이 변했고
여러 면에서 조지 로메로 감독의 공포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을 닮아 있었다. 길 바깥은 위험했고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랐지만 나는 아무튼 그 길을 따라갔다. 앞에는 번개를 가진 검은 구름이 잔뜩 낀 이상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으나 나는 곧장 그리로 갔고 그 안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세계는 신이 주관하지도
않았지만 악마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