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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ㅣ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
제러미 시프먼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0년 1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클래식을 즐겨 듣지는 않지만, 모차르트는 좋아한단다. 예전에 한때 모차르트만 들었을 때도 있었어. 짧은 삶을 살았지만, 수많은 주옥 같은 음악을 남긴 모차르트. 그는 천재였거나 외계인이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 그 짧은 삶에 그런 훌륭한 음악들을
그렇게 많이 남길 수 있었겠니. 그래서 예전부터 모차르트의 삶에 어땠을까? 관심이 많았단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
속 주인공의 이미지가 모차르트의 이미지를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구나. 그리고 예전에 ‘람세스’의 작가로 유명한 크리스티앙 자크가 소설로 쓴 모차르트(전 4권)도 읽었단다. 모두 4권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은이의
상상력까지 가미되어 재미있게 읽었던 생각이 나는구나.
그리고 필립 솔레르스라는 사람의 <모차르트 평전>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은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어. 지은이의 철학적 지식과 수필이 어우러져 있는 기행문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 당시 그 책을 읽고 나서, 실망을 하고 모차르트의 다른 책을 읽어볼까
찾아봤던 기억이 나더구나. 그런데, 맘에 드는 책이 없었던
걸로 기억해. 이번에 읽은 책도 의도적으로 구입한 것은 아니냐. 인터넷
중고서점을 둘러보다가 모차르트라서 살펴보았던 것이란다. 지은이 제러미 시프먼이라는 사람은 음악가 평전
전문 작가인가 싶을 정도로 음악가의 전기에 대한 책들을 많이 썼더구나. 베토벤, 차이콥스키 등등… 지은이에 대해 좀더 알아보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 겸 음악가 겸 교사 겸 방송인 겸 음악 잡지 편집자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읽어보겠다고 구입했어.
1.
이 책의 제목을 잘 뜯어보면, 책의 구성을 알 수 있단다.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책의
제목에 맞게 모차르트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장르별로 설명해 주었단다. 소년 시절의
음악,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 교향곡과 합주곡, 극음악, 실내악곡, 합장
음악으로 구분하여 그의 음악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어. 음악은 설명도 좋지만, 감상하는 것만 하겠니? 아빠는 집에서 이 책을 읽을 때는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서 읽었단다. 오랜만에 모차르트 음악을 집중해서 들어도 참 좋구나. 지금 너희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때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있어.
모차르트의 삶을 이야기해 볼게. 시현이는 얼마 전에 <모차르트> 위인전을 읽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모차르트의 짧은 삶 동안 유럽 세계를 그리 평화로운 시기는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모차르트가 태어났을 때 시작한 7년 전쟁을 비롯하여 3번의 큰 전쟁이 있었대. 그리고 시대로 개혁과 변화의 시대였어. 로마신성제국의 요제프 2세의 개혁의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로 끝났다고 하는구나. 이런 전쟁들과 시대상이 모차르트의 짧은
삶을 살게 했을 수도 있다고 지은이는 생각하더구나.
모차르트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란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교육열을 가지고 있었어. 음악적 재능이 있다 싶은 두 아이, 모차르트와 누나 난네를을 데리고 음악 여행을 했어. 모차르트가 신동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데, 동시대 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했을까?
어떤 한 남작이 그를 평가한 것을 한 번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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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를 테면 프리드리히
멜키오르 폰 그림 남작도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이렇게 그 어린 영혼에게 정복당했다.
“어디서 이런 아이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기가 막히게 매력적인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말씨와 행동은 동심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풋풋함이 어우러져 찬란한 생명력과 원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그 쾌활함은 그 아이가 제대로 영글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적정조차 떨쳐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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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먼 길을 여행하다 보니, 여러 가지 병에 걸리기도
했어. 어렸을 때 이런 무리한 여행이 허약체질로 갖게 한 것은 아닌가 싶구나. 잠시 잘츠부르크에 돌아왔다가 육 개월 만에 다시 여행을 떠났어. 이번에는 3년 반이라는 긴 기간 동안의 여행이었어. 독일 남부 지역,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네덜란드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콘서트를 했단다. 이번에도 어린 아이들에게 무리한 여행 일정이라서 병에
많이 걸렸대. 누나 난네를은 향수병까지 걸렸어.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이들을 부려먹고 돈만 긁어 모은다고 비난을 받았어. 3년 반 만에 고향에 돌아와보니 모차르트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어. 고향에 돌아온 지 9개월 만에 다시 빈에 갔다가 1년 만에 집에 왔단다. 이 때 나이가 고작 13살이었어. 그리고 이미 이때 많은 곡들을 작곡을 했단다. 그 어린 소년에게 여기저기 작곡 의뢰가 들어왔는데, 이탈리아 여행에서
오페라 작곡을 의뢰 받기도 했어. 이탈리아 여행에서 교황도 만났고,
14살에 황금박차 훈장을 받기도 했단다.
그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 통제하의 생활이었어. 물론 그의 재능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도 그의 아버지였지만, 모차르트 본인은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되더구나.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통제와 간섭을 여전히 받게 돼.
2.
모차르트가 커 가면서 이성에 눈을 뜨기도 했고, 그것으로 아버지와
갈등을 겪기도 했어. 아버지와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면,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엄마를 시켜서 동행하기도 했어. 엄마의 역할은 모차르트를 감시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엄마의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은 것이었단다. 모차르트와 그의
엄마는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일과를 자세히 써서 편지로 보내야 했단다. 모차르트는 여행 중
만하임에서 알로이지아 베버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이를 편지에 썼더니, 아버지는 경악을 했어. 그래서 만하임을 떠나서 파리로 가라고 했어.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 베버와 헤어져 파리로 가게 되었어.
파리에서 모차르트와 엄마는 불행한 생활을 했단다. 그 와중에 병이
생긴 엄마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파리에서 죽고 말았어. 그때 모차르트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쓴 편지가 있는데, 모차르트의 상실한 마음이 절절히
적혀 있었단다. 편지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그런데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모차르트에게 돌렸어.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했어.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궁중 악사들을 흉보면서, 거기서 그런 궁중악사는
하기 싫다고 했어.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의견을 무시하고 반협박을 해서 결국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단다. 오는 길에 만하임에 들렀지만, 사랑했던 알로이지아는 이미 뮌헨으로
떠났고, 다른 이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어. 쓸쓸한 귀향길이었단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너무 무책임한 것 같고, 아이들에게 모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가 생각하기에, 모차르트 엄마의 죽음은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 그런데, 자신은 옳고, 다른 이는 잘못이라는 생각.. 참..
위험하고 무책임한 생각이야. 잘츠부르크에 돌아온 이후
18개월의 생활은 무미건조한 생활이었대. 이때 모차르트의 관심은 극음악이었던, 그것은 잘츠부르크에서는 없었어.. 이때 빈의 대주교로부터 연락이
와서 빈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대주교와 갈등으로 해고되었어. 아버지는
다시 복직을 하라고 했지만, 모차르트는 거절했어. 이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어. 그만한 나이도 되었고. 모차르트는
여러 가지 음악활동을 하기 시작했단다.
모차르트가 있는 빈에서 예전에 사랑했던 알로이지아를 만났는데, 알로이지아는
이미 결혼을 했고, 그들은 친구로 다시 만났어.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알로이지아의 여동생 콘스탄체에 끌리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된단다. 아버지와 갈등은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에게 편지를 계속 썼고, 아버지는 무응답.. 결혼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 했어.
오페라를 작곡하면서 <후궁 탈출> 등 성공적인 작품도 많았어. 모차르트와 콘스탄체는 아이를 낳았어. 이제 그에게도 행복한 시간이 찾아오는 것일까? 모차르트는 그제서야
가족들을 데리고 잘츠부르크에 갔어. 아버지와 화해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 손길을 받지 않았어.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해서였는지, 모차르트의
아들은 태어난 지 9주 만에 죽고 말았단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사이에는 네 아이가 있었지만, 모두 죽고 한 아이만 살았대.
빈에서 계속 생활했어. 어느 날 아버지의 죽음 소식이 전해졌어. 끝내 아버지와 화해를 하지 못했어. 아빠가 생각하기에 모차르트와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사이의 갈등은 레오폴트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해. 그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통제와 책임을 강요했던 거야. 이 책의 지은이의 아래와 같은 평가에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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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13)
언제나 그는 ‘가족’이라는 단위에 방점을 찍었다.
어린 모차르트를 데리고 연주 여행을 돌아다니던 시절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자기는
오로지 아들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돈을 쏟아 부었으며, 그 결과 경제적으로 말할 수 없이 쪼들리게
되었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모차르트에게는 죄의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실은 레오폴트는 자식들 덕에 한 재산을 벌었으며 그 대부분을 여기저기에 빼돌렸고, 그러면서도 남들에게는 쉬지 않고 돈이 없다고 불평을 해댔던 것이다. 레오폴트는
심리전의 명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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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활동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경우도 있는데, 콘스탄체가 임신을
하고 있거나 몸이 안 좋을 때도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어. 당시의 유럽 환경이 그리 위생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 모차르트 본인도 늘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렸어. 가족과
자신의 건강 등으로 오페라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레퀴엠>. 어떤 귀족의 익명으로 의뢰하여 만들게 된 작품. <레퀴엠>은 진혼곡으로 보통 해석이 되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을 말해. 이 때 모차르트는 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이 곡을 결국 마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자신의 <레퀴엠>이
된 것이지. 마지막 작품이 <레퀴엠>이다 보니, 그의 인생은 더욱 극적인 것 같구나. 그리고 그 레퀴엠이 의뢰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다 보니, 그의 사후
독살설이라는 등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대. 그리고 그의 죽음의 수수께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나 소설
등에서 다루고 있었어. 모차르트가 미완성한 레퀴엠은 다른 사람이 나머지 부분을 완성했다고 하는구나.
4.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빠가 너희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잘 안 들려
주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래서 일상에서 들어 귀에 익숙한 음악들을 들려주었더니 너희들도 좋아하는구나. 그 노래 속에는 모차르트의 음악도 포함되어 있었지.. 앞으로는 너희들에게
클래식음악을 더욱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해야겠구나. 그리고 아빠도 그동안 모차르트 음악을 안 들었는데, 다시 모차르트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희들도 모차르트를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29) 모차르트는 알았을 리가 없지만 트럼펫은 이 세상 어느 인간 집단에서나 강력한 남성, 더 나아가 남근을 상징했다.(아직도 그런 지역이 많이 남아 있다) 다시 말해 꿰뚫는, 공격적인 독재적이고 위협적인 속성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은 것이, 트럼펫은 어느 나라에서나 군대를 집합시키거나 적을 위협하기 위해 고안된 군악기이다. 18세기 유럽 음악, 특히 바로크 음악에서는 왕의 영광을 찬양하는 음악에서 가장 도드라진 악기로 쓰였다. 모차르트의 트럼펫 공포와 아버지에 대한 공포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면? 그의 어린 시절 모토는 ‘하느님 다음은 아빠’였다. 성인이 된 뒤에도 스트레스로 힘겨울 때면 종종 그 모토를 읊조리곤 했다. 하느님이 그러하듯이 아버지도 베풀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는 존재였다. 그게 아버지의 주요한 교육 기법 중 하나였다. 모차르트에게 스승이라고는 오로지 아버지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이들을 학교 문전에도 데려가지 않고, 또래와의 우정을 거의 박탈한 채로 키웠다.
(134) 모차르트는 헨델 이래로 후원자라는 족쇄 대신에 자유를 선택한 첫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를 함께 해방시켜 그들이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게 만든 첫 작곡가로 불려 마땅하다. K.271에 나오는 대화는 그 수준과 내용이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관악 파트(오보에와 호른)를 음악적 대화의 일선에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이다.(첫 악장 알레그로에서 오보에와 피아노가 나누는 대화는 이런 매력적인 자리바꿈의 첫 시도이다.) 이때부터 그는 협주곡에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관악 밴드에게 이중의 역할을 주었다. 그 하나는 오케스트라라는 팔레트 위에서 색조를 혼합하는 마법의 중개자 역할이고, 또 하나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조정자 역할이다. 다수에 둘러싸인 독주자를 아우르고 각 파트를 하나의 위대한 전체로 연합해나간 것이 모차르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이다.
(169) 이 헌정의 편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 가지 특징은 모차르트의 ‘힘든 고생’에 대한 언급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그 어떤 일에도 힘들여 고생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저 음악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고 여겼다. 마치 모차르트는 하느님의 물길을 열어준 도랑이나 도구적인 존재였다는 듯이(언제나 악전고투하며 창작에 임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베토벤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비범하게 조직적인 두뇌의 소유자이기도 했으며, 따라서 사실상 모든 작곡 행위가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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