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통권 149호 - 2016년 7월~8월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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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시대]

이번 149호의 부제는 "자본독재와 민주주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사상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언젠가부터 이 두 가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세상을 살기 어렵게 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어가려고 혈안이고, 부자들은 계속 더 자신의 부를 쌓는데만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한통속이 되어 권력과 돈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추락하고, 자본주의도 더욱 추악지해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이번 녹색평론의 부제다. 사실 이 두 가지 소재는 그간 녹색평론에서 다룬 주된 이야기들 중에 하나다. 그래서 이번 호에 실린 내용들이 낯설지 않다. 민주주의, 기본소득, 자본주의, 석유시대의 종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도 이미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뱅크토크라시라는 새로운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은행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 돈이 권력이 되어버린 세상. 그 돈을 만들어내는 은행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돈을 나라에서 만드는 것 아니냐고 물을 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돈은 은행에서 만들어낸다. 예전에 읽은 녹색평론을 찾아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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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여러분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가 죽은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08년 이후로는 자본주의가 죽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체제 속에 있습니다. 이 체제를 나는 뱅크럽토크라시(bankruptocracy)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파산한 은행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입니다. 은행이 파산을 크게 할수록, 이 파산한 은행이 사회의 다른 부문-산업자본과 노동을 포함한-으로부터 경제적 가치들을 동원해 소모해버리는 능력은 더욱 커집니다. 6년 이상이나 우리는 사회의 생산적 부문에서 형성된 부와 경제적 가치를 금융 영역으로 이전시켜왔습니다. 그런데도 금융 영역은 여전히 지급 불능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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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소득과 노동]

노동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일을 해야만 하는가? 그게 맞을까? 그것이 당연하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당연한 줄 알았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거다. 인류는 아주 오랜 역사 동안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인간은 노동하지 않고, 그냥 자신 마음대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다. 어떤 사람이 게으르다고 그에게 간섭을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굶어 죽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게으르기 싫어도, 일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게으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실업자. 청년 실업. 그냥 게으르고 싶어서 게으른 사람도 굶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라인데, 나라 자신의 무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냥 두는 것은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그래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수당을 주기로 했는데, 그것을 반대하고 있는 이들은 또 어떤 뇌를 가진 이들인가?

기본 소득. 얼마 전에 스위스에서는 기본 소득을 하냐마냐를 두고 국민투표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스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정책을 가지고 있어서 게으른 사람에게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소득에 대한 투표를 했다니, 결과에 떠나서 놀라운 시도이다. 비록 기본 소득에 대해 투표 반대표가 많기는 했지만, 정말 대단한 나라다. 아마 우리나라는 기본 소득이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거다.

 

[GMO]

우리나라 사람들도 먹거리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용 GMO 수입 1위 국가라니.. 왜 그럴까? 사람들이 GMO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해서가 아닐까? 나도 예전에 녹색평론에서 GMO에 관한 글을 읽기 전에는 GMO가 그렇게 나쁜 것인지 몰랐으니까 말이다. 그저 크게 만들고, 빨리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게 된 진실은 GMO는 먹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농약에 내성을 갖제 조작한 곡식, 씨앗 장사를 독점하기 위해서 번식을 못하게 만든 곡식들… 이런 것들이 모두 늘어나는 불임과 관계 없다고 누가 이야기하겠는가. 이렇게 위함한 GMO.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GMO를 먹고 있다. GMO의 안전성을 아직 확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많은 사람들이 GMO 수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자랑스럽게 GMO를 수입하고 있다. 그것도 가장 많이. 그리고 표시도 해두지 않는다. 그동안 얼마나 먹었을까? 최근에는 주식인 쌀도 GMO 쌀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왜 나라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지 모르겠다. 모두 돈 때문인가? 예전에도 비슷한 글이 실렸는데, 다시한번 GMO에 각성을 하기 위해 이번 호에 나온 글 일부를 발췌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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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GMO작물을 재배하면 안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GOM 반대’ 이런 형태로 운동을 해왔습니다만 이 시작부터는 그렇게 해가지고는 안됩니다. 이 정부나 몬산토가 절대 중단하지 않습니다. 안정성 검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몬산토 장학생들입니다. 볼 것도 없이 ‘다 안전하다’ 이렇게 결정이 될 겁니다. 기반 확충을 다 해놓고 바로 심도록 돼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절대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막아야 합니다. Non-GMO에 대한 법을 지금 식약처에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내가 농사지은 것이 GMO 아니다’ 이렇게 표시하면 (법에)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은 GMO를 안 먹기 때문에 농민들은 ‘이것은 GMO가 아닙니다.’하고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위법이라는 겁니다. 이런 못된 짓을 하는 게 이 정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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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한국에서 GM농산물에 대한 검역 및 검사 제도와 GMO 표시 제도는 있으나 마나 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전자조작 DNA 또는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은 식품은 표시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한국의 GOM표시제도이다. 이에 따라 간장, 식용유, 당류 등과 같은 식품은 표시를 안해도 된다. 그런데 한국이 수입하는 유전자조작 콩, 옥수수, 카놀라의 대부분이 식용유, 간장, 전분당 원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GMO표시제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같은 허술한 제도 때문에 식용 유전자 조작작물 수입이 세계 1위이고 수많은 가공식품들이 이를 원료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GMO 표시가 된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한국이 이미 GM농산물의 주요 소비처가 된 가운데, 국내에서도 GM농산물 생산이 추진되고 있으며 그 중심지는 농촌진흥청이 있는 전북혁신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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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세계적 거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부부는 몬산토 주식 20%를 소유하고 있다. 그가 아프리카를 돕겠다며 GMO곡식을 무상 원조하겠다고 나섰다가 짐바브웨가 거부하여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이 먹어서는 안될 GMO 따위는 안 받겠다고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러한 GOM작물을 한국정부에서는 상용화하겠다며 이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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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몇몇 공감가는 글을 발췌해 보았다. 내 생각을 대신하는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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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늘날 기계화, 자동화가 이미 깊숙이 생산 현장 속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예전처럼 장시간 노동에 얽매여 있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자본과 국가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진지하게 숙고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정규직 사원들의 비정규직화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아직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은 노동자들은 예전보다 더 긴 노동시간, 더 힘든 노동조건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

 

(37)

첫째, 누군가 게으르다고 사회가 그에게 간섭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굶주려 죽게 해야 합니까? 만약에 그게 제 자식이라면, 저는 꾸짖고 야단을 치겠지만 집 밖으로 내쫓아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둘째,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만, 어떤 일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는 원활한 노동시작의 작동을 위해서나 사회와 문명화를 위해서나 불가결하다는 점입니다. 그 권리, 즉 일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진정한 권리를 갖자면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아무 일자리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41)

우리의 실수는 저 순간적인 번영을 신성한 것, 영속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누리는 번영이 영구적으로 지속할 것이라는 확신은 지난 10~20년간 우리가 ‘대안적인 것’이나 ‘재생 가능한 것’을 미친듯이 찾아온 까닭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현재의 정치가들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 하고 대중들이 평정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을 끝없이 찾아왔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있을 것이며, 테크놀로지가 계속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유혹적인 세뇌작용에 길들어왔다. 우리 대다수는 무엇인가를 바라기만 하면 실현되는 ‘풍요의 경제학’을 신봉하면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게 실은 한정된 탄소연료에서 온다는 사실을 무시해왔다. 그리하여 우리가 돈만 들인다면 ‘대안’이 발견되어 우리의 생활양식을 유지시켜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석유를 둘러싼 갈등과 싸움은 그게 그렇지 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세계 석유경제의 중심축은 사우디아라비아이다(‘사우디아메리카’라는 개념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는 여기서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모래언덕과 높은 탑들로 이루어진 저 환상의 땅은 지금 세계 석유의 동맥이 끊어지면 선진 산업사회들이 죽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광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63)

우리가 애써 노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진정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조건들을 확보해야 하는지, 우리 자신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은 무엇인지,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이런 질문들을 부단히 던지고 공부하며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에 대해 이분법 내지 흑백논리 식의 찬반 논란에 머물 일이 아니라, 서울시의 선구적 시도를 계기로 현재의 조건 속에서나마 경영참여의 폭을 넓혀나가면서도 현장 조직력과 교섭력을 기초로 연대성을 강화해 마친내 (자본독재라는) 두꺼운 벽을 허물겠다는, 보다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다. 열린 마음으로 모이고 배우고 나눠야 한다. 참자유(liberty)를 위해선 노동과 자본, 권력과 국가의 굴레에서 해방(liberation)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제대로 된 변화는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110)

금주주의사회가 되면서 생명의 소중함이 잊혀졌다. 생명은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다. 생명은 각각이 특유한 삶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가지면서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환경은 다양한 생명들로 구성되어서 자신의 생명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환경을 문명의 힘으로 억눌러서 수탈해온 것이 물량물량이었던 것 아닐까.

 

(115)

혹독한 미애에 대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절망적인 미래이기 때문에 오히려 삶의 힘에 자신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량문명의 파탄이 가깝다. 인류의 멸망도 가까울지 모른다. 중동의 참극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불신과 증오가 뒤덮고 정의의 가면을 쓴 힘들이 서로 싸우는 악순환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자신의 정의와 상대의 약함을 맹신한 채 힘이 충동하고 있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의 불행을 보아서일까. 북한의 김정은은 핵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불신을 선동해서 전쟁준비를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곤란한 상황이라며 인상만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힘에 의해서 나아가는 부조리를 다른 힘으로 멈출 수는 없다. 힘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길을 찾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활을 바구고 사치스러운 식생활의 물량문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에 의한 문명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생활의 문화를 찾아야 한다. 주어진 풍토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소중히 해야 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데는 기쁨도 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택한다면 평온하고 조용한 행복이 약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참한 파국을 저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파국을 막는 노력은 ‘정신의 개벽’으로부터 시작되고, 이를 위해서는 원한과 증오 그리고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해원상화’가 필요하다. 공감하고 협조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동원도리’를 기초로 하여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할 것이다.

(136)

우리사회가 20대 총선에서 희망과 절망의 기로에 서 있다고는 볼 수 있는데, 전체적인 표심을 보면 적어도 “절망으로 가는 것은 안돼”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 “그렇게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진보정당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사실상 진보정당은 대중에게 의미 있는 세력으로서 평가를 못 받은 거죠. 일반 대중이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당신들을 미래의 대안 세력으로 볼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 거예요. 저는 이 점에 대해서 뼈저린 성찰을 기대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139)

거칠게 평가하자면 이번 선거는 보수당들의 승리로, 진보정당들이 그 존재가치를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정리하는 것이 맞겠죠. 진보정당 국회의원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게 유의미한 정도의 당선인가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비빌 언덕이 있으니 이것을 키워나가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저는 경계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1987년 민주화투쟁으로 만들어졌던 열기, 노동자 대중과 농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민주노동당, 어떻게 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하면서 만들어졌던 운동에 뿌리를 둔 민주노동당이 사실상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생명을 다했다고 평가하는 게 솔직한 것 아닐까요. 3당의 지위, 즉 캐스팅보트를 쥔 추게도 끼지 못하는, 매우 미약한 존재로 전락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러한 상태로 계속 갈 때 진보정당이 위력적인 세력으로서 존재를 드러내게 될 가능성이 있을까. 현재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그마한 지분을 나누어 가지고 겨우 숨만 쉬면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번 선거로 고공에 올라간 노동자들이 내려왔습니까? 백남기 농민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가 달라졌나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에 대한 해법이 보입니까? 공권력에 의해 노동자들이 짓밟히고 있는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공권력의 창끝은 종전에 마찬가지로 가혹하게 노동자와 민중들을 향하고 있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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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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