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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참고 1] 스포일러
주의
[참고 2]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소설가는
시대의 산소]
한강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만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빛을 받은 작가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같다.
이 소설을 통해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음 인정한다.
이 소설은 인터넷 서점 서핑할 때 많이 본 소설이다.
제목 '소년이 온다'로는
어떤 소설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성장소설인가? 로맨스 소설인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 소개를 보게 될 일이 있었고,
이 소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했다는 알게 되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소설가는 그 시대의 산소라고 이야기를 했고,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는 소설가는 진정한 소설가가 아니라고 하신 말씀에 깊이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을 보곤 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렇다고 학교에 다니면서 배운 적도 없다. 당시 이 일은 일종의 터부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1990년 TV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그 이전에도 말로는 들어봤던 것 같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10년 만에 당시 영상들을 TV에서 보여주었다.
당시의 영상들은 나에게 충격을 주어서 TV속의 영상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어른이 되어 책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된 광주민주화운동.
어떻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충격적이고, 우리나라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주범들이 아직도 활개를 치고 있는 나라.
그리고 그때의 피해자들은 아직도 숨죽여 지내고 있는 나라.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정상이 될까?
[이유
없는 죽음]
이 소설의 주인공 동호는 1980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다.
동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가 광주민주화운동에 휩쓸린 이유는 사라진 친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동호네 집 셋방에는 정미, 정대 남매가 세들어 살았다.
정대가 동호의 친구이고, 정미누나는 공장에 다니면서 동생을 뒷바라지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미 누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런 정미 누나를 찾기 위해 동호와 정대는 함께 광주를 샅샅이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위대 행진에 들어가게 되었고, 계엄군이 쏜 총에
그만 정대가 죽고 말았다.
자신의 눈 앞에서 친구가 죽는 걸 본 동호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동호는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죄책감을 느꼈다.
이후 동호는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신보관소들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신보관소에 있으면 정대의 시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동호는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에 있으면서 시신 수습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날마다 들어오는 시신들의 특징들을 적어서 정리하는 것이 동호가 하는 일이다.
시신을 본다는 것이 무서울 만한데, 동호는 죽은 사람들은 무섭지 않다고
했다.
총을 가진 군인들이 무서울 뿐이라면서...
동호는 은숙 누나, 선주 누나, 진수
형 등과 같이 일했다.
그런데, 계엄군이 도청에 진입한다는 날이 왔다.
형, 누나들은 어린 동호에게 저녁
6시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동호도 무덤덤하게 그러겠다고 했다.
...
이야기는 정대의 혼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정대는 군인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
자신의 육신에 실타래 같은 것으로 연결된 영혼으로 존재했다.
정대 육신은 군인들이 싣고 와 다른 시신들과 함께 아무렇게나 쌓여서 썩어가고 있었다.
영혼은 누군가를 생각하면 생각한 대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정대는 알았다.
정대는 사라진 누나를 생각했다. 그리고 누나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정대는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나와 자신..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일하고, 공부할 뿐이었다.
그런데 죽었다.
왜? 왜? 왜 누나와 자신을
죽였냐고 분노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평범한 시민들을 군인이 무차별한 총격으로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정대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정대 같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느날, 정대와 다른 사람들의 시신들에 휘발유가 뿌려지고 불이 붙었다.
그제서야 정대의 영혼은 육신과 떨어져 나와 슬픈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밤, 엄청난 총소리가 들렸는데,
그날 밤을 지새우고 정대는 자신의 친구 동호가 그날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1980년 광주를 겪은 이들은 1980년에 머물러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함께…
김은숙. 동호와 함께 일했던 그 누나다.
지금은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경찰에 잡혀 들어갔다.
일주일 전 일하는 출판사의 번역자를 만났는데, 그 번역자가 수배자였던
것이다.
그 수배자가 어디 있냐고 경찰은 취조했고, 은숙은 사실대로 모른다고
했지만,
경찰은 은숙에게 뺨 일곱대를 선사했고, 얼굴에서 피가 나고 심하게
부어 올랐다.
화가 났지만, 그런 시대였다. 검열과
감시가 일상이던 시절...
당시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시청 검열반에서 검열을 받아야 했다.
2주 전에 맡긴 책을 돌려 받았는데,
책 전체가 검정색으로 칠해져 있어 도저히 책으로 출간할 수 없었다.
그 책은 한참 연습중인 어떤 연극의 대본으로 책으로 먼저 출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연극은 다름아닌 1980년 광주를 다룬 연극이었다.
책이 그렇게 검열이 되었으니, 당연히 연극도 올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연극의 연출자는 예정대로 연극을 올렸다. 객석에는 사복경찰들도 있었다.
어떻게 위기를 벗어나지? 그냥 모두 잡혀가려고 작정한 것인가?
방법이 있었다. 연기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연기를 했다.
단지 입모양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관객들은 연기자들의 입모양을 보고, 그들의 대화를 알아냈다.
그렇게 연극은 1980년 광주를 이야기했고, 가득 메운 객석은 소리 없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1980년 5월 그날 밤. 은숙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밤 12시가 넘어서 방송을 맡은 3명을
제외한 모든 여자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은숙도 도청을 나오는데, 그때까지 어린 동호가 집에 가지 않고
그곳에 있었다.
분명 아까 6시에 간다고 했는데 말이다.
동호한테 얼른 집에 함께 가자고 했는데, 동호는 그곳에 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 동호를 그곳에 두고, 은숙은 도청에서 빠져나왔고, 살았다.
나중에 동호가 죽었고, 은숙은 죄책감이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또 다른 살아남은 자.
은숙보다 더 큰 죄책감으로 자신의 삶마저 포기해버린 자. 김진수.
이번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진수와 함께 감옥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1980년 광주의 이야기, 그리고 진수의 이야기,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에게 가해진 국가권력의 만행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날 살아남은 자들에게 기다린 것은 감옥이었고,
말도 못할 고문이 이어졌고, 진실을 철저히 숨겨지고 왜곡시켰다.
살아남은 자들은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사람들이 많았다.
김진수도 그 일이 있고 10년 정도 폐인처럼 살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진수가 자살한 원인은 동호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었던 것 같다.
그날 밤, 진수는 동호를 비롯한 어린 학생들에게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말고 숨어 있으라고 했고,
군인들이 오면 손을 들고 항복하면서 나오라고 했다. 그러면 죽지는
않을 거라고...
군인들과 총격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진수는 체포되어 도청 앞
분수대 앞으로 끌려나갔다.
그런데 그때 동호를 비롯한 어린 소년들이 두 팔을 높이 들고 항복하는 자세로 줄지어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때 격분한 계엄군 장교가 그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것도 봤다..
그렇게 순식간에 동호를 비롯한 어린 소년들은 모두 죽는 장면을 모두 봤다.
동호는 진수가 말한 대로 했는데, 죽었다.
모든 걸 봤다.
진수가 정상이면 그게 비정상이다.
국가 권력이 동호를 죽인 것이지만,
진수의 자책감은 줄어들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커졌다.
그래서 그렇게 폐인처럼 살다가 스스로 삶을 끊었다.
진수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그 또한 국가 폭력에 의한 타살이라고
생각한다.
....
임선주...
동호와 함께 일했던 선주 누나.
그날의 기억...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
그날을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선주는 그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도저히 그날의 기억과 잔인한 고문을 사실대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몇 번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선주는 그날 밤, 가두 방송을 위해 도청에서 꼬박 밤을 새웠웠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운이 나빴던 것인지....
그날의 아픈 기억은 평생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
마지막은 동호 엄마의 이야기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사실 그날 오후에 동호 엄마는 동호를 데리러 오기 위해 도청에 갔었다.
동호가 저녁 6시가 되면 집에 간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그냥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6시가 한참 지나서도 동호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동호 엄마는 동호의 둘째 형과 함께 다시 도청으로 향했다.
그때는 이미 너무 긴박한 상황이라서, 동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은 밖에서 애만 쓰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동호가 죽었다.
이 일로 동호 엄마와 동호의 둘째 형은 죄책감으로 살아가야 했다.
동호의 첫째 형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동호의 둘째 형에게 도청까지 갔으면서 왜 동호를 데려오지 못했냐고 화를 내고 둘은 싸우기도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울분을 싸움으로 푸는
것이다.
동호 엄마는 동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다.
그 묘사 하나 하나가 너무 애절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오늘날
국Ga 폭력은 사라졌는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36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자들은 사라지고,
대통령도 국민들이 직접 뽑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국가폭력을 봐야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준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오히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 죄도 없는 국민을 희생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의나 도덕을 위해서도 아니고 돈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더욱 먹먹하다. 답답하다.
이 소설도 에필로그에서도 2009년
1월 용산참사를 보면서 광주를 연상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제쯤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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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칙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었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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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칙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었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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