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리랑 1
정찬주 지음 / 다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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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정찬주 님의 <광주 아리랑>( 2)이라는 책을 샀는데 이 책은 꼭 5월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깜박하고 5월이 그냥 지나기를 두어 해. 올해는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다가 5월에 읽긴 했단다. 그런데 아빠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제서야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는구나. 매년 5 18이면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을 진행한단다. 그런데 올해는 스타벅스의 몰상식한 이벤트 때문에 난리가 있었단다. 누가 봐도 5.18광주민주화운동기념일을 조롱하는 듯한 탱크데이 이벤트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 같더구나. 이게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의 역사인식인가, 안타깝기도 했어.

5.18을 다룬 책들, 영화들, 드라마들이 이미 많이 있지만 정찬주 님은 왜 또 5.18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까? 지은이는 자신들의 지인들을 비롯하여 5.18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많다면서, 평범한 광주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하더구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총칼을 든 계엄군의 출현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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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 번째는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은 광주시민들을 중심에 두고 써보자는 관점이었다. 평전이 발간됐거나 신문과 방송 혹은 잡지에 집중인터뷰를 했던 분들은 널리 알려졌으므로 동어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의 보편적인 입장에서 참여한 신부님과 스님은 종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한 분들이므로 뺄 이유는 없었다. 한편, 나중에 정치를 한 분은 순수성 측면에서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역할은 가능한 한 줄였다. 따라서 <광주 아리랑>에 등장하는 인물은 식당주방장, 요리사, 시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방직공장 여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대학교 교직원과 수위, 비운동권 학생,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등등이다. 이들도 80 5월에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엄연한 실존이자 최대 피해자였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이분들을 한 분 한 분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영원히 기리고 싶었다. 화강암 같은 개결한 역사의 비석에 이름을 깊이깊이 새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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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아리랑은> 5 14일부터 5 27일까지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그곳에 살던 사람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단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소설이고 그 끝이 슬픈 결말이지만 읽는 내내 해피 엔딩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읽었단다. 소설에서라도 계엄군이 평화롭게 철수하고 그 일을 시킨 살인마를 단죄하는 것으로 끝나면 좋겠다는 마음을 읽었지만 소설은 역사 그대로 고증하여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오늘은 <광주 오리랑> 1권을 이야기해줄게. 1권은 5 14일부터  5 21일까지의 이야기란다.

 

1.

1980 5월은 서울의 봄이라고 부르며, 전국적으로 대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단다. 1979년부터 이어진 계엄령을 철폐하라전두환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노동자 생존권 보장하라등의 구호로 시위를 했단다. 그런 바람으로 광주에서도 시위를 했는데, 5 14일에는 전남대 일부 학생들의 일상적인 시위였단다. 전남대학교 학생회장 박관현과 학생회가 주도로 이루어진 이 날의 시위는 비교적 평화로운 시위로 진행되었단다. 박효선이라는 고등학교 교사가 있었는데, 그는 교사를 그만두고 학생 때부터 꿈이었던 연극을 하기 위해 극단을 차리고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Jiny도 얼마 전에 읽은 적이 있는 황석영의 <한씨 연대기>를 연극으로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어. 광주 YWCA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단다.

이 소설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들이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를 줄거리로 소개하다 보니 맥락이 끊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를 감안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광주 시민들이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화천에 있는 공수여단에서는 진압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단다. 격려금이 내려와 대대적인 회식을 하고, 경기도 김포로 이동했단다.

5 15. 김현채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광주 출신인데 집이 가난해서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에 가서 온갖 일을 했어. 그런데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서 재발급을 받으러 광주에 내려왔단다. 하필 이때 내려왔을까. 그에게는 어떤 운명이 기다릴까. 그날도 시위가 있었는데, 전날 시위가 평화롭게 끝나서, 5 15일에는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단다. 전남대학교뿐만 아니라 광주지역의 여러 대학교 학생들이 참여했어. 그날도 별탈 없이 시위를 했단다. 그런 평화적인 시위와 별도로 7공수여단은 광주로 이동 배치되고 있었단다.

5 16. 전남대학교 학생회장 박관현은 전남경찰국장 안병하를 찾아가 만났어. 오늘 시위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평화시위와 질서 유지를 약속했단다. 안병하 경찰국장도 경찰들에게 시위를 안전하게 지도하고 원칙을 지키겠다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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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군인이듯,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경찰의 본분이라고 안병하 경찰국장은 생각했다.

(중략)

”시위진압 시 안전수칙 잘 지키기를 바란다. 시위 학생에게 돌멩이를 던지지 말라. 도망가는 학생은 쫓지 말라. 시민이 다치는 일 없도록 하라. 알겠는가?“

(중략)

”부대 지휘관은 과격한 행동을 금하고 시위대를 추격하지 말라. 사과탄은 안면에 던지지 말고 공중에 투척하라. 최루탄도 각도를 유지해서 발사하라. 알겠는가?“

(중략)

”시위 시민에게 절대로 자극적인 언행을 삼가라. 시민들의 야유와 비난이 있어도 절대 대응하지 말라. 시민과 우리 경찰의 안전을 최우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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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광주의 시위는 그 어떤 시위보다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단다. 이날은 시민들도 참여하고 저녁에는 횃불 시위까지 했지만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끝까지 잘 마무리했단다.

5 17일 토요일. 이날은 시위를 쉬기로 한 날이란다. 그렇게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간 밤에 뉴스 속보가 나왔단다. 5 17 24시부터 포고령 제 10호를 발령한다는 속보였어. 전국의 모든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정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고, 계엄령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단다. 정말 뜬금없고 무식하기 그지없는 포고령이구나.

이 속보가 나오자마자 계엄군들은 광주의 대학교들로 습격해서 학교 안에 남아 있던 학생들을 잡아갔단다. 조용히 잡아간 것도 아니고 무차별 구타를 해서 끌고 가다시피 연행했어. 그렇다고 그들이 죄가 있는 것도 아니야. 죄를 예방해서 미리 잡아가는 예비검속을 이유로 들었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구나.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죄를 질 것 같아서 미리 잡아간다니 황당하구나. 전남대, 조선대 등에서 많은 학생들이 잡혀갔어. 간신히 피신한 학생들은 자신들만 도망쳤다는 죄책감을 가졌어.

 

2.

5 18. 전남대학교 학생과장인 서명원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사태 파악을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학교는 계엄군이 점령하고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었어. 밤새 일어났던 난리를 접한 대학생들은 금남로에 모여 시위를 시작했단다.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며 강경 진압을 하기 시작했어. 연극 준비를 하던 박효선은 계엄군의 광주 시내 출동으로 연극은 무기한 연기를 해야 했어. 자신의 첫 연극부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좌절감이 들었지만 그는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위에 참석했단다. 공수 부대원들은 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가격하며 학생들을 색출해서 연행해 갔단다.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으러 광주에 왔던 김현채도 학생으로 오해 받아 군홧발에 진압봉에 이유 없이 맞았단다. 시위에 전혀 생각 없던 김현채도 시위에 휘말리게 되었어.

5 19.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가는 광주의 대학생들을 본 광주 시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어. 인간이라면 다 그런 심정일 거야.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어. 당시 고등학교 선생님인 박석무도 동료 선생님인 박행삼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면서 자신들의 제자인 고등학생들의 시위는 막으려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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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선생님,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도 답답하고 암울하기는 여러분 같아요.“

”지금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합니까?“

”여러분 마음을 나도 알아요.“

”금남로에서 우리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학생이 역시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울먹였다. 박행삼도 학생들과 같은 심정이었으므로 교사 신분을 잊어버리고 분필을 집어던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박행삼이 비통하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어째서 비극의 역사를 반복하는지 참담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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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박석무는 아빠가 읽은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편역하신 분이란다. 그 분도 광주에 계셨었구나.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시위를 하는 청년들도 좀더 가격해졌단다. 억울하게 계엄군에서 구타당한 김현채도 동참했단다. 시민들도 시위대에 참여해서 시위대도 점점 커져갔단다. 그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비합리적인 장면과 억울함 때문에 시위에 참가했을 거야.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시민들은 광주 MBC 방송국을 점령하려고 했는데, 이때 계엄군 7공수여단 35대대와 11공수여단 63대대가 시위대를 막아 섰어.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 시민을 향해 발포를 해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김영찬 군이 총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되었어. 뿐만 아니라 농아장애자 김경철 씨는 계엄군의 구타로 죽고 말았단다. 김경철 씨가 계엄군에 의한 첫 사망자였는데 이후 사망자들이 속출했단다. 광주 사람들의 억울함을 달래줄 언론은 없었어. 신문들은 광주 시민들이 폭도라고 보도했어. 시민들이 직접 호소문을 써서 배포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단다.

5 20. 시민들은 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차에 앰프를 설치해서 차량 방송을 하기로 했어. 전옥주, 차명숙 두 분이 본격적인 가두방송을 하기 시작했단다. 진실을 알리는 한편, 시민들에게 시위에 동참해달라는 호소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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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305)

전옥주의 가두방송 멘트는 전날보다 더 거칠었다.

”형제 동생들이 죽어가는데 다리를 쭉 뻗고 잠이 옵니까. 공수들이 광주 시민을 다 죽이려고 하는데 도대체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갑니까. 일제 때 학생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광주입니다. 광주정신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광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팔십만 광주시민 모두가 나서 대한민국 군인이기를 포기한 공수 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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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들도 단체로 동참하고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많은 시민들도 대거 참여하게 되었어. 그들은 버스와 화물차와 택시를 몰고 나와 차량 시위를 했어. 공수부대는 더욱 과격해지고 이제는 시민들을 상대로 조준사격까지 했어. 사태가 급격하게 악화되니 종교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조비오 신부 등 가톨릭 신부들은 기도를 했단다.

5 21. 이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어. 가두 방송을 하던 전옥주는 계엄군 중령과 만나서 협상하자고 제안을 했어. 계엄군 중령도 이에 동의하여 시민들은 협상대표를 뽑아 도지사를 만나러 도청에 갔는데 이것은 계엄군의 속임수였단다. 지휘부가 빠진 시위대를 계엄군이 공격했어. 시민들은 다시 차량을 끌어 모아 2차 차량 시위를 진행했단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이날 금남로에서는 사망자들이 대거 발생했단다. 계엄군은 무장헬기까지 동원해서 사격을 했어. 시위대도 더 이상 비무장으로 계엄군을 맞설 수 없었고 생각했어. 시위대는 광주 경찰서를 점거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화순과 광주 지역의 파출소와 예비군 부대에게 총기와 수류탄을 확보했단다.

이젠 강대강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구나. 도대체 광주 시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된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볼 때마다 울분이 치솟는구나.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이렇게 억울한데, 당시 광주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계엄군의 총칼이 죽었다고 하면 평생 그 억울하고 아픈 기억을 어찌 안고 살아갈까. 그런 역사는 꼭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역사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모든 국민이 다짐을 해야겠구나. <광주 아리랑> 1권은 여기까지. 2권도 부지런히 이야기할게.

 

PS,

책의 첫 문장: 40대 초반의 사내가 책상 옆의 창가에 앉아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조원들에게는 잠을 자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14일 전남대생들의 시위는 처음 가두로 진출할 때는 최루탄을 쏘는 경찰과 격렬하게 맞선 양상이었는데, 오후 3시쯤에 시작한 민주성회와 이후 가두 행진 때는 뜻밖에 평화로웠다.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태도로 나왔던 것이다. 한복에 고무신을 신은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오후 6시까지 집회를 마치고 귀교하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해서였다. 경찰은 전남대생들이 귀교할 때는 시위 행렬을 따라가며 교통정리까지 해주었다. - P89

문장우는 체격이 날렵하고 단단했지만 그의 친구는 둔하고 허약해 보였다. 허약한 친구가 문장우를 잡았지만 오히려 그가 끌려갔다. 창 너머는 바로 충장파출소였다. 학생 예닐곱 명이 진압봉을 든 공수부대원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러나 충장로 지리에 밝은 학생들은 잽싸게 골목으로 달아나버렸다. 그러자 공수부대원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나 붙들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청바지에 긴팔 티를 입은 여학생을 잡아당기더니 길바닥에 내팽개쳤다. 여학생의 티가 벗겨져 가슴이 보일 만큼 난폭하게 질질 끌고 갔다. 그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오십으로 보이는 남자를 붙잡은 뒤 진압봉으로 두들겨 팼다. 시민들 보란 듯이 자전거는 길바닥에 사정없이 던져 망가뜨렸다. 지켜보는 시민들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항변을 못했다. 문장우 역시도 처음에는 말을 못하다가 꾸역꾸역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야, 개새끼들아. 니들이 대한민국 군인이냐? 죄읎는 사람들까지 왜 때려!"
- P199

‘국민들이 낸 방위세로 무장한 군인이 아닌가! 외적을 막으라고 지급한 총을 시민들에게 돌리고 있다니. 이런 군대는 필요 없다. 주인을 모르고 미쳐 날뛰는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 누가 이 군인들을 미치게 했는가? 시민을 살상하라고 명령한 원흉은 누구인가?’ - P222

그때였다. 바퀴 달린 시위 장갑차 한 대가 도청 분수대 쪽으로 달렸다. 장갑차 뚜껑을 열고 한 청년이 용감하게 상체를 드러냈다. 머리에 흰 띠를 두른 청년은 윗옷을 벗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도청 광장을 지키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그 청년을 향해 가차 없이 집중사격을 했다. 목에 총을 맞은 듯 청년의 머리가 푹 꺾였다. 공수부대원의 집중사격으로 충장로 입구 빌딩에 있는 노인과 동구청 앞의 학생과 처녀, 시민 등 여덟 명이 쓰러졌다. 도청 광장으로 돌진했던 시위 장갑차는 분수대를 돌아 노동청 쪽으로 빠져나갔다. 그제야 시민들이 쓰러진 사람들 중에 경상자는 동구청 뒤 홍안과로, 중상자는 전대병원과 적십자병원, 기독병원으로 시위 차량에 실어 갔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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