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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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천선란 작가님의 연작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천선란 작가의 소설들은 아빠의 취향에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꼭 챙겨보곤 한단다. 이 책은 지난 해에 나왔는데 이번에는 좀 늦었구나. 천선란 님은 주로 SF 소설을 쓰셨는데,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인간미 짙은 소프트 SF 소설이 읽기 편했단다.

이번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는 좀비를 다룬 소설이란다. 좀비라는 소재는 영화, 드라마 등 많은 매체에서 다루어서 좀 식상할 수 있지만, 천선란 님은 자신이 추구하시는 인간미를 더하는 것으로 색깔을 달리하신 것 같았어. 이 책은 연작소설이라고 했어. 3개의 작품이 실려 있단다. 그 세 작품 모두 좀비가 된 지구가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란다. 미래의 어느날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었고, 지구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방호복을 입지 않으면 외출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단다. 그렇게 황폐화된 지구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 세 편을 들려주고 있단다.

 

1.

첫 번째 작품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라는 작품이란다. 주인공은 옥주와 묵호 이렇게 두 사람이야. 필리핀에서 시작한 전염병은 처음에는 단순한 열병인줄 알았는데 치명적인 이 병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단다. 그런데 이 열병은 변형되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었단다. 이 좀비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 보던 좀비와 비슷했어. 말도 하지 못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그런 존재였고 다른 사람들을 물어서 좀비로 만드는 그런 존재였어.

묵호는 진균학자로 발병 초기 한국인 관광객이 병에 걸렸을 때 조사단 중 한 명으로 필리핀에 갔었어. 그도 죽을뻔했다가 살아나서 돌아왔단다. 옥주와 묵호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그들은 다른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에 탑승할 기회를 갖게 되었어. 그들이 탄 우주선에는 모두 20명이 탑승했고, 320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향하고 있었어. 옥주가 동면 장치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이 가기로 했던 행성이 아닌 다른 행성에 도착해 있었고, 우주선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선체 내부 기계들을 고장 낸 것처럼 보였고, 핏자국도 여기저기 있고, 모두들 죽어 있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주선 안에 AI 키사한테 물어보니, 탑승객 중에 타일러 조라는 사람이 감염된 상태에서 탑승했다는 거야. 타일러 조는 깨어나서 사람들을 물어뜯고 죽였다는 거야. 묵호도 타일러 조에게 물렸다고 했어. 묵호는 자신이 물렸음에도 옥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옥주의 동면장치를 타일러 조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옥주는 피해를 보지 않았던 거야. 묵호는 볼살이 뜯겨 잇몸과 치아가 다 드러나 있었어. 묵호는 정신을 잃고 중태에 빠져 있는 상태였어. 묵호는 좀비로 변한 것은 맞지만 다른 좀비들과 달리 전두엽과 해마가 살아 있어서 아직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우주선 안은 여전히 타일러 조가 돌아다니고 있었어. 옥주는 도망가야 했어. 옥주는 묵호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AI 카사는 안 된다고 했어. 타일러 조가 옥주를 발견했어. 이때 정신을 차린 묵호는 타일러는 잡고 막고 있었어. 옥주가 도망갈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지결국 묵호는 논개처럼 타일러 조를 죽이고 자신도 함께 죽었단다. 옥주는 새로운 행성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단다.

 

2.

두 번째 작품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라는 소설은 좀비로 많은 이들이 감염된 지구에서 도망가지 도 못 가고 숨어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나와 아버지와 병든 어머니와 함께 80년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었어. 어머니의 병명은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증상으로 보았을 때 치매에 걸리신 것 같았어. 그런데 그 병에 걸리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숨소리로 대화를 한다는 이야기가 가슴 아프면서도 그래도 소통할 수 방법을 찾아서 안도감도 들더구나. 지은이의 실제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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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엄마는 이제 숨으로 우리랑 대화할 거야. 그러니 잘 듣고, 온몸으로 기억해 둬. 아가가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한때 너의 숨이기도 했던 숨의 말을 잘 들어야 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숨에 모든 말이 새겨져 있으니까. 어렵지 않아. 집중의 문제지. 긴장할 때 숨은 빨라지고, 편안할 때 숨은 느려지고, 두려울 때 숨은 딱딱해지고, 슬플 때 숨은 축축해진단다. 화가 날 때 숨은 잘게 쪼개지고, 답답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욕망할 때 숨은 뜨거워지고 낙담할 때 숨은 미지근해진다. 사랑을 느낄 때 숨은 찬란해지고 그리움을 느낄 때 숨은 잠시 멈춘단다. 그리고 이런 숨은 코나 입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야. 아빠는 엄마의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어깨와 등에서도 숨을 느낀단다. 특히 엄마처럼 숨으로 소통하는 인간들은 더 잘 느낄 수 있어. 엄마 품에 안겨봐. 아가를 가장 온전하게 안고 있던 품. 한때 아가의 전부였던 품.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의 리듬을, 아가가 영원히 기억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럴 거거든. 그럴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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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밖에는 좀비들이 득실거려서 밖에 나가기 쉽지 않았어. 하지만 먹거리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지. 어느날 아버지가 그렇게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어. 좀비로 변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아버지가 사라진 지 3.. ‘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어. 그러다가 은미라는 여자를 만났어. 은미는 왼쪽다리를 절단한 상태였는데, 지체장애인 딸 노윤이 있었어.

노윤을 안전한 아파트에 피신시켜 두고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나와 있던 거야. ‘는 은미에게 50내 남자를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모른다고 했어. ‘는 마지막으로 지구를 떠날 수 있다는 광고 전단지를 보았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곳으로 가려고 했어. 은미는 그 광고 전단지를 믿지 않았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그들과 함께 했어. 딸 노윤이도 데리고 왔어. 노윤이는 보육원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옥주와 묵호가 일하고 있었단다. 그렇게 첫 번째 소설과 이어져 또 다른 재미도 주는구나.

헬기 소리가 났어. 그들은 아파트 옥상으로 가서 헬기를 부르려고 했어. 그렇게 가는 길에 는 좀비로 변한 아빠를 보고 말았어. ‘는 잠시 망설였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다시 발걸음을 옮겨 옥상으로 갔어. 하지만 헬기는 멀어져 갔어. 소리를 지르지만 헬기에서는 들리지 않았어. 헬기로 총을 쏘았단다. 그렇게라도 존재를 알려서 헬기가 돌아오게 하려고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그들은 과연 안전하게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을까.

….

 

3.

세 번째 작품은 <우리를 아십니까>라는 작품이야. 레즈비언 커플로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란다. 주인공 는 뇌종양에 걸리고, 존엄사 센터를 찾아갔어.  ‘의 아내는 언젠가 깨어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를 위해 있었던 일들을 녹음기에 녹음해 두었단다. 예정대로 존엄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간호사가 오더니 를 물어서 감염시켰단다. 간호사도 좀비 바이러스 보균자였던 거야. ‘는 좀비가 되었지만 얌전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침대에 누워만 있었단다.

원래 좀비로 감염이 되면 뇌가 완전히 망가져야 하는데, 여전히 사람일 때의 기억을 갖고 있었어. 아무래도 뇌종양이 좀비의 일반적인 상태를 억제하는 것 같았어. 몇 년이 지나고 아내는 어떤 소녀 보균자에게 물려서 감염이 되었어. 아내는 좀비로 완전히 변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인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때 존엄사 간호사로부터 얻어 보관하고 있던 주사를 자신과 에게 반씩 넣고 정신을 잃었단다.

그런데 그때 가 깨어났어. 아내가 그동안 녹음해 둔 것을 듣고 있었던 일을 알게 되었어. 그들의 집에는 그들이 키웠던 거북이 장풍만 제대로 된 생명체로 존재했고, 아내는 좀비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어. 자신은 좀비의 몸에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는 장풍을 바다에 데려다 주기로 하고, 아내를 카트에 넣어서 같이 데리고 갔어. ‘에게 나타난 또 하나의 증상, 장풍이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어. ‘는 장풍이를 바다에 놓아주고 아내와 둘이 바다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세 연작소설 중에 <우리를 아십니까>를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희망을 던져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구나. 비록 몸은 좀비의 몸이었지만, 옛 기억 다 가지고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는 거잖아. 그 존엄사에 사용했던 약과 뇌종양을 잘 이용하면 좀비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

아빠가 게을러서 소설을 읽은 지 한참 뒤에 독서편지를 쓰다 보니 기억력이 오락가락 하는구나. 메모를 한 것이 있긴 한데, 그것도 제대로 적혀있지 않고.. 그래서 오늘은 잘못 이야기한 부분이 있을 거야. 이야기 흐름의 전체적인 맥락만 참고하면 좋을 듯.. 너희들이 좀 여유 있으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으련만숙제하느라 이런 재미있는 소설을 보지 못해 안타깝구나. 그나저나 이 소설 속 같은 무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 목소리 들려?

책의 끝 문장: 이제 이 행성에는 우리뿐입니다.

 


옥주, 너는 찾았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줄 줄 알았던, 바깥에서 얻어 온 상처를 감싸줄 줄 알았던, 언제든 돌아갈 둥지인 줄 알았던 하나뿐인 부모가 우리의 삶을 종말로 만들려 했던 이유. - P49

꼭 날아야만 새인가? 우리를 정확히 분류하려면 공룡까지 거슬러 올라 가야 해. 고작 인간 따위 따위 뿌리의 깊이가 달라. 우리에겐 날개와 부리가 있어. 알을 낳지. 그런 여러 특징이 있어. 하지만 날개가 꼭 날기 위해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모든 인간이 자기 신체를 전부 활용하며 사는가? 사용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닌가? ‘비행’은 날개의 활용일 뿐, 새의 정의가 될 수는 없지. 마찬가지로 ‘보행’도 ‘언어’도, 다리와 입의 활용일 뿐 인간 본질이 될 수 없지.

이런, 아빠가 너무 나약한 소리를 하는구나. 아빠가 이럴 때마다 이해해 줄 수 있니? 사실 나약한 소리처럼 들렸겠지만, 이건 정말로 약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더 단단해지기 위해 마음에 낀 거품을 빼는 거란다. 거품을 뺄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밀도가 높아져.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거품을 빼는 과정은 필수야. 그러니 아빠가 하는 나약한 말들을 깊이 새기지 말고, 여러 번 곱씹지 마. 온도가 높아지면 지워지던 펜 기억나? 그 펜으로 쓴 문장이라 생각해. 제비의 따뜻한 온기가 닿으면 거품이 다 터져버려 사라지는 문장들이야. - P146

"태어난 게 벌이 될 수는 없어. 살아 있는 게 죄인 사람은 없어. 오해하지 마. 가끔 벌처럼 느껴질 땐, 등을 봐. 그 사람의. 노윤이의. 한참 동안 바라보면 햇살에 반짝이는 털들이 보여. 특히 뒷덜미에. 숨을 쉴 때마다 그것들이 움직여. 광대에도 털이 나 있어. 반짝여. 어깨가 미세하게 위로, 아래로, 또 위로, 다시 아래로… 숨을 쉴 때마다 바뀌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어서 더 편하고 때로는 슬퍼. 얇은 옷에 앙상하게 튀어나온 척추가 보여. 오돌토돌. 가녀리지만 단단함이 느껴져. 뼈로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몸에도 이토록 단단한 뼈가 있구나. 무너지지 않겠구나. 나약하지 않구나. 살아 있구나. 살아 있는 걸 마음에서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는데 미리 죽이지 말아야지. 살아 있다는 것만 생각해야지." - P195

‘우주를 정의 내린 건 인간이잖아요. 저 밖에 있는 공간을 우주라고 부르자고. 저기에 우주가 있다고. 더 큰 것에 작은 것이 담기는 게 진리니까. 우주는 제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팽창하지만, 인간은 우주를 알고, 우주를 명명하고, 우주를 헤아리려 하잖아요. 사람들은 우주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예요. 우주가 우리 뇌에 담긴 거예요. 더 큰 쪽이 늘 작은 걸 이해해요. 더 큰 게 언제나 더 고요하고, 잠잠하고, 잘 견뎌요. 노윤이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참고, 견디고 있어요. 세상이 노윤이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노윤이가 세상을 훨씬 빨리 이해했으니까.’ - P206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바다는 변하지 않거든.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어. 하지만 파도가 닿지 않는 바다 깊은 곳은 묵묵해. 아름다워. 휩쓸리지 않아. 지구의 대부분은 바다였어. 지구는 원래 묵묵해. 담담하고. 하지만 변했어. 인간이, 그렇게 했어.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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