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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ㅣ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읽었단다. 클라우드 시리즈는 시대를 앞서 살아간 거장 100명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시리즈란다. 기행문과 평전의 콜라보라고 할 수도 있지. 아빠는 그 동안 세 편을 읽어보았는데, 그 인물에 대해 알게 되어
좋고, 책에서 소개된 곳을 가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단다. 모두 100권을 출간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확인해 보니 38권까지 출간되었더구나. 그 클라우드 시리즈의 시작인 1권이 오늘 이야기할 <셰익스피어>란다.
셰익스피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그를 거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여 1권을 셰익스피어로
정하지 않았나 싶구나. 아빠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어보긴 했지만,
그리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구나.
셰익스피어 작품이 대부분이 희곡인데, 아빠에게는 희곡 읽기는 소설보다 쉽지
않거든. 그래서 다른 고전보다 손이 적게 가더라구. 조금씩
천천히 찾아서 읽어는 볼 생각은 있단다.
1.
클라우드 시리즈 1권 <셰익스피어>는 2018년 출간되었고, 지은이 황광수 님이 셰익스피어를 발자취를 여행한
것은 2014년이었단다. 2014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450년 되던 해로 많은 행사들이 있었던 해라고 하는구나.
셰익스피어는 1564년 영국 스트랫퍼스라는 곳에서 태어났대. 그의 생가는 여전히 잘 보존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대. 그의
생가가 잘 보존된 것은 후대 작가들이 돈을 기부하여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는 존
셰익스피어는 장갑 장인이자 지방 최고 행정관이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어려운 일들이 계속 겹쳤어. 윌리엄 이전에 태어난 형제들은 모두 흑사병으로 죽고 말았대. 어렸을
때의 기록들은 어느 정도 남아 있는데, 18살에 결혼을 하고 26살에
연극무대에 짠 하고 나타날 때까지 약 8년 간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셰익스피어 평전을 쓰는 작가들이 이 시절을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채운다고 하더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꽤 있어서 셰익스피어가 그 시절에 이탈리아에 갔었다는 설도
있지만,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에 간 적은 없다고 하더구나.
….
18살에 윌리엄은 26살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을 하는데, 과속을 해서 결혼을 서두른 것 같다고 했어. 결혼한 지 6개월만에 첫 딸을 출산했대. 그런데 아내의 이름이 너무나 유명한 배우의 이름과 똑같구나. 영화배우
앤 해서웨이의 이름이 본명인지 가명인지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아내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인지 궁금하더구나.
지은이 황광수 님은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곳을 떠나 런던으로 이동했어. 그리고 런던을 배경으로 작품인
<헨리 6세>, <심벌린> 등을 이야기를 했어. 이렇게 지은이의 여행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곳들이었어. 그 많은 작품들의 모든 배경지를 갈 수 없었지. <멕베스>의 경우는 스코틀랜드가 배경인데, 그곳을 못가는 아쉬움을 이야기하면서 <멕베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
런던을 떠나 파리로 향했어. 너희도 좋아하는 도시 파리. 파리에는 셰익스피어 관련된 서점이 하나가
있단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서점인데, 우리가 간
날은 하필 쉬는 날이라서 닫힌 문만 보고 왔잖니. 언젠가는 문을 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가 볼
수 있겠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유명한 작가들도 즐겨 찾던 서점을 유명해져 지금은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된 서점이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 <끝이 좋으면 다 좋다>를 소개해주고 독일 바이마르 괴테의
집으로 이동했어. 괴테의 집에 방문한 이유는 괴테가 셰익스피어를 극찬해서
시로 남길 정도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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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괴테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특성, 즉 외적 감각에 호소하기보다는 내적 감각에 호소하는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우리의 내적 감각을 향해 말한다. 이것을 통해, 상상의 그림 세계가 활성화되며, 완벽한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덧붙일 수 없다. 정확하게 여기에
모든 것이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환상의 바탕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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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프라하, 부다페스트, 빈을 거쳐서 이탈리아로 넘어갔단다. 셰익스피아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썼어. 베로나를
배경으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말괄량이 길들이기>, <베니스의 상인>, <오셀로>, 로마를 배경으로 한 <페리클레스>를 설명해주었어. 아빠가 셰익스피어를 잘 모르긴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 처음 들어보는 작품들도 참 많더구나. 페리클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지도자와 이름은 같지만 다른 인물을 그린 작품이래.
<페리클레스>는 서아시아와 지중해에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를 엮은 희곡이라고
하는구나. <트로일로스와 크레시다>라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배경으로 썼다는구나.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실수연발>이라는 작품은 고대 시라쿠사 사람들의 이야기, <한여름 밤의 꿈>은 네 남녀의 사랑싸움 이야기, <아테네의 티몬>은 몰락한 자본가의 이미지를 통해 돈의
속성을 비꼬는 희곡이라고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나중에 읽을 책을 고민할 때 이 책의 차례를 보고 하나 골라서 읽어도 좋을 것 같구나. 오늘은 독서편지가 밀린 것도 있으니 이렇게 짧게 마치련다. 양해
바람.
PS,
책의 첫 문장: 어스푸레한 방 안에 한 소년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셰익스피어 문학의 불멸성에 관해 이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알지 못한다.
안내판 뒤쪽으로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폭풍>을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하고 셰익스피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616년 몸져누웠다. 그의 생애와 함께 흘러왔던 모든 것, 그가 이룩했던 모든 것이 절대적 단절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먼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한번 쓰고 고치는 법이 없었던 창작과 달리, 고칠 때마다 새로 작성한 유서가 무려 134통이나 되었다. - P83
로마인들이 배스를 건설한 것은 기원후 60년이었으니, 그들의 열정은 거의 2천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나를 불가항력적인 감탄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대략 기원전 50년부터 5세기 동안 브리튼을 지배했다. 그들이 로마의 군대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마을을 불태우고, 산과 들과 강을 피로 물들였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로마제국은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샘의 족장들은 제각기 왕국을 건설하여, 브리튼에 일곱 개의 왕국이 생겨났다. 이른바 ‘앵글로 색슨 7왕국’이다. 브리튼 사람들이 로마에 구원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들은 로마제국에 대해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양가적 감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 P107
로미오는 자신을 순례자로, 줄리엣을 성자로 비유하며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하는 종교적 이미지들은 말 그대로 베일일 뿐이고, 이들의 행동과 말에는 자연적 세계관이 더 깊이 침투해 있다. 이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그들의 욕망은 자연의 의지 또는 본성일 뿐이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던 이 세계관은 심리적 층위와 제도 및 관습적 층위 사이의 충돌을 조장하며 등장인물들의 말투에 역설과 모순을 주입한다. - P200
전쟁 속의 사랑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두 남녀의 사랑을 참담한 역사적 현실 속에 던져두고 냉정하게 관찰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극’이라는 미학적 전형까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투철한 현실주의와 빛나는 실험 정신이 런던의 극장가에서 환영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난파될 수밖에 없는 사랑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 P238
테리 이글턴의 말을 들어보자. "셰익스피어의 대담한 말장난, 비유와 생략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위협적이다. 사회적 안정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발화되는 바로 그 언어에 의해 위협받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에게는 글쓰기의 행위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불화하는 인식론(또는 지식이론)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몹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며,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다수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들을 이해하는 데 바쳐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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