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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심윤경 님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할게. 아빠가 심윤경 님의 소설은 <설이>, <위대한 유산> 이렇게 두 권을 읽어봤어. 오늘 이야기할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심윤경 님의 대표작이자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란다. 200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이 작품으로 심윤경 님은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는구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소설은 이미 유명한 작품인데, 아빠는 이제서야 기회가
되어 읽어보았단다. 소문대로 재미있더구나.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도 들었어. 우리나라 아픈 현대사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소설이었어.
이야기는 1977년 인왕산 자락 윗동네에서 시작한단다. 그 윗동네까지 와서
산다는 것은 다들 가난한 사람들이었어. 한 집만 빼고 말이야.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 삼층집이 하나 있었거든. 그런 마을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란다. 주인공은 8살 한동구로 초등학교
1학년이었어. 그 해는 7살 터울 동생 영주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어. 동구는 동생인 영주를 무척 사랑했단다. 하지만
집안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
어린 동구에게도 욕을 거침없이
날리는 할머니가 있었고, 그 할머니가 세상 누구보다 증오하는 사람이 동구의 엄마였단다. 고부간의 갈등이 장난 아니었어. 며느리가 하는 모든 것에 간섭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아버지는 고부간의 갈등을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늘 할머니의 편에 섰단다. 어느 때는 선을 넘어 엄마한테 손찌검까지
했어. 영주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딸이라고 큰 실망하며
엄마한테 잔소리를 할 정도였어. 첫째 동구가 아들인데 말이야. 동구는
영주를 무척 아끼고 잘 보살펴주었어. 어린 영주를 업어서 동네 한 바퀴 도는 것도 재미있었어.
….
시간이 흘러 영주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되어 돌잔치가 되었어. 엄마는 영주의 돌잔치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할머니가 한바탕 소동을 벌였고, 이날도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어. 결국 생일상은 미역국만 간단히 차리는 것으로 끝냈어.
아버지는 여느 날처럼 출근을 하고 할머니는 목욕탕에 갔단다. 그렇게 아버지와 할머니가 집에
없자, 엄마는 잽싸게 영주의 돌잔치 음식을 준비했어. 생일떡, 잡채 등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마을 사람들에도 돌렸어. 그러면서
할머니한테 이야기하지 말라고 입단속도 시켰단다. 물론 동구도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단다. 그렇게 엄마와 동구와 영주만의 돌잔치를 마치고, 할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다 치웠단다.
1.
시간이 흘러 1979년, 동구는 3학년이
되었어. 원래 담임이던 선생님이 일이 있어 그만두시고, 중간에
박은영 선생님이 새로 오셨어. 동구는 3학년이지만 여전히
한글을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어. 그래서 학기초 엄마는 학교에 불려갔고, 동구가 글을 못 읽는 것 때문에 집에서는 또 아버지와 엄마가 싸웠어. 이번에도
박은영 선생님이 엄마를 호출해서 학교에 가셨어.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선생님과 달랐어. 박은영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동구는 셈을 잘하는 것을 보면 머리는
좋은데, 난독증이 있는 것 같다고 했어. 그러면서 특수 학교를
소개해 주셨단다. 하지만 동구네 집안은 특수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되었지.
동구가 한글을 제대로 못 읽는
와중에 아직 세 돌도 안된 동생 영주가 한글을 정확히 읽었단다. 영주가 한글을 읽는 것을 본 식구들은
깜짝 놀랐고,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은 영주를 구경하러 와서 다들 신동이라고 천재라고 한마디씩 했단다. 동구도 그런 영주를 자랑했어. 자신은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상관없어. 자신의 사랑스러운 동생이 한글을 척척 읽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던 거야.
…
동구가 특수학교에 갈 수 없는
사정을 알게 된 박은영 선생님은 동구를 불러 방과 후 한 시간씩 같이 공부하자고 했어.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을 좋아했는데, 같이 한 시간씩 공부하자고 하니 신이 났단다. 그렇게
몇 달을 공부를 하고 나니 동구는 이제 글을 읽을 수 있었단다.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을 짝사랑하며 선생님과
결혼하는 꿈이 생겼단다.
….
지금이 1979년이라고 했잖아. 1979년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해란다. 길고 긴 군사독재가 측근의 총에 의해 끝난 해이고, 그로부터 두 달도 안되어 군사반란이 일어난 해이기도 해. 이 소설의
배경인 인왕산 자락은 청와대와 가까운 동네이다 보니, 이 역사적인 사건이 삶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단다. 1979년 12월 어느 날 엄마는 동구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단다. 동구는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친구들로부터 동네에 탱크와 군인들이 잔뜩 있다고 했어. 동구는 말로만 듣던 탱크를 처음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친구와 함께 탱크로 보러 갔단다.
가는 길에 주리 삼촌을 만났어. 주리 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사람으로 고려대 법학과에 합격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 고시에서 여러 번 떨어지고 지금도 고시 공부를 하는 고시생이었어. 주리
삼촌은 동구와 친구를 붙들고 포장마차에서 먹을 것을 좀 사주고 집으로 돌려 보냈단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이후로 박은영 선생님도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 멍하게 창 밖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았어.
2.
동구는 4학년이 되는 것이 싫었어. 박은영 선생님과 헤어져야 하니까.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 1980년 동구는 4학년이 되었고 4학년 담임은 오준근 선생님이었어. 오준근 선생님은 정말 최악이었어. 귀 물기, 머리카락 뽑기, 겨드랑이 냄새 맡게 하기 등 변태 같은 짓을 하는
선생님이었어. 박은영 선생님은 6학년 2반을 맡았어. 그런데 이 변태 같은 오준근 선생님이 박은영 선생님을
좋아해서 작업을 걸려고 했어. 동구가 박은영 선생님과 친했다는 것을 알고 수업이 끝나고도 동구를 집에
보내지 않고 동구를 이용해서 박은영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어.
동구는 이 일을 주리 삼촌한테
이야기하자 주리 삼촌은 자신이 해결해주겠다면서 학교에 왔어. 주리 삼촌은 자신을 동구의 친삼촌이라고
소개하면서 오준근 선생님을 은근히 압박하면서 동구를 집에 일찍 보내달라고 했단다. 오준근 선생님은 꼼짝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동구는 고마운 마음에 주리삼촌을 박은영 선생님께 소개시켜주었어. 동구가 주리 삼촌을 소개하면서 공부 잘하고 고대 법대 나왔다고 하니, 박은영
선생님은 주리삼촌에게 이태석을 아냐고 물어봤고 주리삼촌은 잘 아는 후배라고 이야기했어.
이 인연으로 주리 삼촌, 박은영 선생님, 이태석, 그리고
박은영 선생님의 제안으로 동구도 함께 자리를 했단다. 박은영 선생님은 대학교 시절 이태석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것 같아. 그리고 박은영 선생님이 이태석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
그들은 당시 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다. 계엄령이 계속 될 것 같은지… 군부가 순순히 물러날 것 같은지… 쿠데타가 또 일어날 것 같은지… 등등 동구는 박은영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았어. 옆에 앉아
맛있는 안주 먹는 것도 좋았어. 근데 주리 삼촌이 권한 술을 먹고 그만 취하고 말았지. 그것도 아주 심하게... 박은영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취중진담까지...
..
그것이 박은영 선생님과 마지막일
줄이야. 박은영 선생님은 휴가를 쓰고 할머니 생신 잔치를 위해 광주에 간다고 했어.. 아.. 설마 그날? 그
다음 주부터 박은영 선생님은 학교에 나오지 않으셨어. 동구는 엄청 걱정을 했지. 여름방학이 되어도 여름방학이 지나 새로운 학기가 되어도 오시지 않았어. 어느
날 주리 삼촌이 동구를 불러서 이야기하기를 선생님이 돌아가셨으니 그만 기다리라고 했단다. 광주에 가셨다가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가하셨다가 그만 변을 당하셨던 것 같아. 광주 민주화 운동은 늘 슬픈 이야기를
담게 되는구나. 동구는 주리삼촌의 말을 믿지 않았어. 그
이후로도 계속 선생님을 기다렸단다. 아빠도 그 소문이 헛소문이고 소설이 끝나기 전에 박은영 선생님이
다시 돌아오시길 바랬단다.
....
동구의 집에도 어둠이 드리웠어...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서 빚쟁이한테 돈을 빼앗겨서 살림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어. 엄마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버지한테 대들기 시작하면서 부부싸움도 전보다 더 잦아졌어. 이웃에 어떤 할머니가 이사 왔는데 알고 보니 할머니의 고향 사람이었어. 할머니보다 2살 어리셔서 둘은 금방 친해져서 자매처럼 지내고 같이 여행도 갔단다. 어느
날 할머니는 여행가시고 아버지와 엄마는 여느 때처럼 부부싸움을 하고 있을 때 동구와 영주는 감나무 아래서 놀고 있다가 감을 딴다고 동구가 영주를
무등 태웠다가 그만 잘못 떨어져서 영주가 그만 죽고 만 사고가 일어났어. 지은이가 어린 주인공에게 너무
가혹한 벌을 주는 것 같구나. 선생님과 이별의 아픔도 아직 치유하지 못했는데 어려서부터 그렇게 예뻐했던
동생이 죽다니.. 그것도 자신이 무등을 태워주다가 말이야. 동구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 일로 집안은 거의 풍비박산. 여행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엄마한테 더욱 욕지거리를 날리고.. 결국
엄마는 안방에다 항아리를 깨뜨리고 실성한 듯 집을 뛰쳐나가 들어오지 않았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신병원에
입원하셨어. 엄마의 식구들, 그러니까 외가 식구들은 할머니가
집에 계속 계시면 집에 안 보내겠다고 했어. 동구는 할머니에게 이야기했어. 할머니와 단둘이 할머니의 고향 노루더미에 가서 살자고.. 동구 자신도
여기에 있으면 영주 생각이 자꾸 나서 괴롭다고 했어. 엄마를 한동안 볼 수 없지만, 엄마가 나아질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렇게
동구와 할머니는 할머니의 고향으로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결국 박은영 선생님도 돌아오시지 않았구나. 책을 읽을 때도 찡했는데 지금 독서편지를 쓸 때도 또 찡하구나.
…
소설 제목이 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일까? 생각해 봤어. 소설 초반부에 잠시 언급되었던 삼층집에 있는 커다란
정원을 이야기하기에는 그 정원은 주인공 동구와 큰 인연이 없었단다. 그저 동구가 갈 수 없는 이상향일
뿐이었어. 소설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정원은 마음 속의 정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 동구가 가장 행복했던 3학년 시절이 동구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었던
거야. 그런데 그 행복했던 시간이 너무 짧고,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기에는 동구 나이는 너무 어려서 너무 안타까웠단다.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동생은 성질이 급한 아기였다.
책의 끝 문장: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쿠데타가 또 일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지? 그동안 권력은 군부의 손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어. 권력자에게나 국민에게나 독재는 지겹도록 신은 낡은 구두 같은 거란 말이야. 반면 민주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새 구두지. 언제까지나 낡은 구두를 신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장은 새 구두보다 편안해. 군부는, 우리에게 다시 헌 구두를 내밀면서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신으라고 말할 거야. 지금 민주의 희망을 꺾고 다시 군부독재의 시절로 돌아가도록 강압한다면 사람들은 새 구두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새 구두를 신고 발뒤꿈치가 쓸리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할 테지. - P255
"선배의 눈빛을 보자마자 못마땅해하는 거 알 수 있었어요. 사실 나, 선배의 그런 눈빛 때문에 선생님이 되려는 꿈도 접고, 평생 구겨진 바지만 입고 살겠다고 결심했던 적도 있었어요. 기억나요? 영등포의 인쇄소에 선전 문건 초안을 받아 들고 갔던 날, 내가 면바지를 다려 입고 왔다고 선배는 화를 냈잖아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얘야? 아까 다섯 시 전에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다들 양치질도 못하고 며칠씩 날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는데 너는 집에 가서 바지나 다려 입고 왔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었지요." - P259
문득, 지금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들도 아버지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버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절대적인 권위가 오늘날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애써 생각해낸 위로의 말이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할머니가 저렇게 한심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책임지지 못하고, 아버지가 한 번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끔찍한 무력함일 것 같았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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