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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백수린 작가님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작년에 읽은 백수린 님의 <눈부신 안부>를 재미있게 읽어서 백수린 님의 다른 책들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 오늘 이야기할 <여름의 빌라>라는 책이란다. 2020년에 출간된 책이고, 8편이 담겨 있단다. 그런데 어떤 작품은 읽다가 왠지 읽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었어.
그래서 아빠의 독서 기록을 찾아보니, 백수린 님이 젊은작가상을 탄 적이 있는데, 아빠가 <젊은작가상 수상집>을
읽을 때 읽었던 것이더구나. <시간의 궤적>과 <고요한 사건>이라는 작품이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더구나. 그런데 이번에 읽는데, 왠지 읽은 것 같은 느낌만 있지, 줄거리는 전혀 생각나지 않더구나. 그래서 또 한번 아빠의 기억력에
좌절을 느끼는 순간이었어. 작년에 읽은 <눈부신 안부>도 좋게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여름의 빌라>도 좋았단다. 앞으로도 백수린 님의 작품들은 눈여겨봐야겠다.
1.
<시간의 궤적>
주인공은 나이 서른 살.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미술사 석사 과정을 공부하러 갔어. 파리에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녔는데, 그 학원에는 한국 사람이 두 명뿐이었어. 어느날 나머지 한국인이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와 밥을 같이 먹고 나서 친한 사이가 되었단다. 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아 언니라고 불렀어. 언니는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파리에 와 있다고 했고, 다른 주재원들은 가족들이 같이 왔는데, 자신만
미혼이라고 혼자 오다 보니, 다른 주재원 가족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색하다고 했어. 언니는 예전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주재원으로 온다고 해서
헤어지게 되었다고 했어.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는데, 여전히
가끔 연락한다고 하더구나. 아무튼 주인공과 언니는 엄청 친해져서 같이 놀러가고 같이 밥도 자주 먹었어. 주인공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고 브르스라는 남자친구를 만나 사귀게 되면서 남자친구와 같이 언니를 만나기도 했단다. 주인공은 브르스와 결혼하는 것을 고민했지만 결국 결혼했단다. 시간이
흘러 언니가 주재원을 마무리하면서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그 시기가 주인공이 브르스와 사이가 안
좋은 시기여서 망설이다가 같이 갔단다. 그런데 브르스는 자신보다 언니와 더 사이 좋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어. 주인공은 언니와도 거리가 좀 멀어지고 있었는데 그런 눈에 거슬리는 장면까지
만들고… 주인공은 언니에게 아직 유부남이 된 남자친구에게 연락하냐고 물어봤고, 언니는 그렇다고 하니까… 주인공은 속에 품고 있던 말을 쏟아냈어. 왜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냐면서 말이야… 분위기가 어땠을지 예상되지? 언니가 귀국 전에 다시 만나긴 했지만 예전의 그런 사이는 아니었어. 귀국
이후에 연락이 끊겼단다. 그래서 주인공의 쓴 소리를 들은 언니는 그 이후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싶구나.
….
<여름의 빌라>
두 번째 작품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여름의 빌라. 주인공 이름은 주아. 주아는 오래 전 유럽
유학 중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행에서 며칠 묶었던 집주인 노부부인 베레나와 한스와 친분을 쌓았단다. 그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지냈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주아는
지호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고, 둘 다 시간강사로 힘들게 일하고 있었단다. 한스 부부의 연락을 받고 함께 캄보디아 여행을 갔는데, 한스 부부는
손녀 레오나를 데리고 같이 왔단다. 그들은 예의를 지키면서 잘 지냈지만, 지호는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단다. 한스 부부가 캄보디아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지호 생각에는 자신들이 인종적으로 우월감을 가진 듯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어. 한스 부부는
돈을 내고 관광 서비스를 받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호는 약간 삐딱한 시선을 두고 있었단다. 계속 그 감정을 참던 지호는 결국 폭발하여 말다툼까지 이어졌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지호라는 사람의 속이 좁다고 생각했어. 현지인들도 관광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결국 한스 부부와 안 좋게 헤어져 귀국을 했어. 얼마 후에는 베레나가
할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편지를 받았단다.
…
<고요한 사건>
지방에 살던 주인공의 가족은
부모님이 재건축을 노리고 서울의 소금고개라고 하는 곳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단다. 그런데 그곳의 환경은
정말 안 좋았어. 여름이면 악취로 창문도 열지 못하고, 거리에는
쓰레기가 날리는 그런 동네였어. 길고양이들도 많았는데, 길고양이를
보살펴주는 고양이 아저씨도 있었어. 이사와 함께 서울로 전학을 하게 된 주인공은 해지, 무호라는 친구와 친하게 되었어. 드디어 재건축이 결정되면서,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심해졌단다. 전세를 살고 있던 해지는 이사를
가야 했어. 주인공은 무호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전에, 무호는 주인공을 찾아와 해지에게 사랑 고백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단다. 사랑이라는 것이 쉽지 않지. 어느날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죽은 채
발견되었단다. 재건축 찬성파들의 짓이 뻔했어. 길고양이들이
죽은 것에 대해 고양이 아저씨는 난동을 부렸고, 재건축 찬성파에게 의해 폭행까지 당했어. 주인공은 울면서 아버지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아빠는 별일 아닌
듯 무관심하는 모습에 주인공은 충격을 받았단다. 그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재건축을 하더라도 영리한 고양이들은 제살길 찾아 나섰을 텐데..
…
<폭설>
11살 때 부모임이 이혼을 하시고, 주인공은 아빠와 함께 생활했단다. 엄마는 아빠의 전 회사 동료인
케빈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지내셨어. 주인공은 방학 때마다 엄마를 만나러 미국에 갔지만,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어. 특히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생기는
몸의 변화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도 없었지. 14살 이후에는 미국에 안 가기로 했어. 엄마가 가끔씩 한국에 오면 만나곤 했지만, 그 만남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단다. 세월은 쏜살같이 빨리 흘러 주인공은 서른 살이 되었어.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방황하기도 하던 시기… 오랜
만에 미국에 가서 엄마를 만났단다. 그리고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갔는데, 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폭설을 만나 차가 구덩이에 빠져 한 동안 둘이 차 안에 갇히게 되었어. 그러면 둘이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한번뿐인 인생.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며 자란 주인공. 엄마는 딸의 빈자리를
채웠을까?
….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주인공 희주의 남편은 성형외과의사야. 아이는 둘이고 둘째는 아직 수유중인 평범한 가족을 이루고 있단다. 아니다, 의사 가족이면 일반 평범한 가족의 범위는 벗어났다고 봐야겠구나. 희주의
친구 한나는 <카페 뮐러>라는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개업식날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발레를 하는 남자 후배를 만나게 되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그 후배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거야. 그리고 동네 공사장을 지나가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젊은 남자가 그 발레리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보겠다고 공사장을 자주 지나가기도 하고… 생각으로만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것은 죄악인가? 사랑은 무엇으로 막으려고도
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어코 찾아 드는가 보구나.
…
<흑설탕 캔디>
돌아가신 할머니의 일기장에서
할머니의 따듯한 사랑 이야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란다. 주인공의 엄마가 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함께 사시면서 주인공을 키워주셨어. 아빠가 프랑스에서 일하게
되면서, 주인공과 할머니도 함께 프랑스에 가게 되었단다. 할머니가
대학까지 나오셨지만, 프랑스어는 못하시고 프랑스에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단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살던 집의 아래층에
노신사인 브뤼니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어. 브뤼니에는 4년
전 사별하고 혼자 지내셨어. 일 층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에 우연히 인사를 한 브뤼니에와 할머니…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같이 차도 마시면서 애틋한 정을 쌓아갔단다. 그런데 아빠의 갑작스런 귀국으로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브뤼네에와 헤어지게 되었단다. 할머니와 브뤼니에는 서로 호감을 갖고 있지만, 할머니의 귀국을 반대할
만큼까지 진전은 없었던 것 같아. 그들은 이것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
<아주 잠깐 동안에>
오랜 전 시절의 일을 회상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란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이 대부분 옛 이야기를 회상하는 전개 방식을 쓴
것 같구나. 지은이 백수린 님이 그런 스타일의 소설을 즐겨 쓰시는 건지, 아니면 여러 작품들 중에 그런 소설들만 묶은 건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유럽 배경의 소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건 지은이 백수린 님이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력이 있으셔서 그런 것 같구나.
무려 불문학 박사시구나. 이야기가 잠시 딴 곳으로 빠졌네.
다시 <아주 잠깐 동안에> 이야기를
해줄게.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란다. 주인공은 여주와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여주가 이사를 가면서 소식이 끊기고 회사에 취업한
이후 수소문하여 여주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에 골인하게 된단다.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생활해서 드디어 작지만 자신들의 집을 얻을 수 있었어.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도 했어. 집들이에 온 손님들을 배웅하고 집에
오는 길에 주인공은 세탁기를 리어카에 싣고 혼자 끌고 올라가는 할머니를 보았어.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집은 한참 올라가야했단다. 여주는 안주거리 만들어서 기다리고 있어서 마음이 급해졌단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서였나, 뒤에서 밀던 할머니에게 세탁기가 깔리기도 했어.
다행히 할머니는 많이 안 다치시고, 주인공은 할머니 집에 세탁기를 내려 놓고 집으로 달려왔단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 주인공은 자신의 실수로 세탁기에 할머니가 깔려 병이 심해지신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을 그 이후로도 계속 갖고 살았단다. 선한 목적이었으니…
…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주인공은 중학교를 멀리 배정
받아 초등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다니게 되었는데, 반편성고사에서 일등을 하게 되어 그나마 친구들이
무시하지 못했단다. 새로 사귄 친구 중에 선주라는 아이가 있는데, 선주는
범생 스타일이었어. 얼마 후 좀 노는 아이 다미와 친해지게 되었는데,
다미의 친구 무리들과 노래방도 가고, 성행위와 키스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어. 다미를 통해서 사랑도 알게 되고 첫키스도 해보았단다. 그런데 얼마
후 다미는 임신을 하여 퇴학을 당하게 되었어. 그리고 소식이 끊겼다가 대학에 가서 다미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미 아빠가 다른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단다.
자신의 처지를 불만이 없어 보였고 심지어 쿨해 보였단다. 끝.
…
아빠의 기억력이 사라지기 전에
줄거리라도 적어놓아야겠다는 생각에 정신 없이 줄거리만 이야기한 것 같구나. 이미 잘못된 기억력으로 다르게
이야기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단편 소설은 늘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언니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나는 무사히 차도를 건너길 바라는 마음에서
눈으로 개를 좇다가, 그 개가 마침내 반대편 도로에 무사히 닿는 걸 확인한 후 고개를 돌렸다.
기차가 조금씩 속도를 줄이는 것이 느껴집니다. 편지를 마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도착역을 알리는 방송이 곧 나오고 기차는 역사 안으로 들어설 테지요. 때가 되면 우리는 옷가지와 부려놓는 짐을 챙겨들고, 열차에서 내린 후 영원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야 할 거예요. 풍화된 것들 것 바람에 흩어져 없어지고 말겠죠. 그렇지만 나는 덜컹거리는 열차 위에 아직 타고 있고, 여전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당신이나 지호처럼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이 편지를 쓴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요, 베레나, 이것만큼은 당신에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신의 기억이 소멸되는 것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는 폐허 위에 끝까지 살아남아 창공을 향해 푸르게 뻗어나가는 당신의 마지막 기억이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딸이 낳은 그 어린 딸이 내게 그렇게 말한 후 환하게 웃는 장면이요. - P71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김없이 인간이 평생 지은 죄를 벌하기 위해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음은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꼼짝도 못하는 육체에 수감되는 형벌이라니.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할머니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치매나 언젠가 차게 될지 모르는 오줌 주머니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악몽에까지 찾아오는 공포는 언젠가 남편이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에서 보았던 뇌졸중 환자처럼 전신이 마비되고도 또렷한 의식을 지닌 채 울부짖으며 여생을 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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