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4)

인간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한다. 무엇인가에 열광하게 되면 그 열망을 한 마디 환호성으로 표현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우연의 바람이 불현듯 하나의 이름을 던져준 행운의 날,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울림 좋고 날개가 돋친 듯한 그 낱말을 서슴없이 받아들여 새로 발견한 세계를 아메리카라는 새롭고 영원한 이름으로 맞이했다.


(22)

1200,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묘를 되찾았다가 다시 빼앗겼다. 순례는 헛된 것이었다. 아니다. 헛되지만은 않았다. 이 원정을 통해 유럽은 비로소 깨어났기 때문이다. 유럽은 스스로의 힘을 깨닫고 용기를 시험했으며,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는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전혀 다른 하늘 아래 다른 땅, 다른 열매, 다른 물건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 다른 풍속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놀라움과 부끄러움 속에서 기사들과 시종들, 그리고 농부들은 자신들이 좁고 답답한 서양의 구석에서 얼마나 어리석게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반면에 사라센인들은 얼마나 풍요롭고 세련되게, 그리고 호화롭게 살아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42)

콜럼버스는 수천 개의 섬을 혼자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낙원에서 발원하는 강물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인도의 해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 모든 섬들과 이 특이한 땅들이 어째서 고대와 아랍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마르코 폴로는 어찌해서 그것들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마르코 폴로가 말한 지팡구와 차이툰은 콜럼버스 제독이 발견한 땅과 얼마나 다른가? 그 모든 것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모순적이며 신비로 가득 차 있어서, 서쪽에 위치한 이 섬들에 대해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62-63)

베스푸치는 위대한 발견자인 콜럼버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장막을 걷어냈다.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앞으로 얼마나 큰 의미를 갖게 될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대륙의 남쪽 부분이 독립된 새로운 땅임을 정확히 인지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베스푸치는 사실상 아메리카의 발견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발견이나 발명은 단지 그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의미와 영향을 인식한 사람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탐험과 발견이라는 공적을 세웠다면, 베스푸치는 앞서 언급한 선언을 통해 콜럼버스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라는 공적을 세웠다. 그는 앞선 사람이 몽유병 환자처럼 방황하며 발견한 것을, 마치 꿈의 해몽가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84-85)

생디에의 인문주의자들은 출판물이 더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도록 후원자인 공작 르네를 세상 앞에 높이 기리기 위해 낭만적인 이야기를 꾸며냈다. 그들은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신대륙 발견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마치 자신들의 영주와 친밀한 친구이며 그를 숭배하는 사람인 양 꾸며댔다. <서한들>은 베스푸치가 직접 로트링겐의 영주에게 보낸 것이며, 이번에 출간되는 것이 그의 서한들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공작에게는 얼마나 극진한 찬사인가! 당대의 위대한 학자로 널리 알려진 베스푸치는 이렇게 해서 스페인 왕뿐만 아니라 작은 공국의 군주에게도 자신의 항해에 대한 보고를 올리게 된 셈이다. 이 경건한 허구를 유지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위대하신 분앞으로 쓰인 헌사는 가장 고귀한 레나투스 왕 폐하’(르네 2)께 바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번 판본이 기존의 이탈리아어 원본을 단순히 번역한 것이라는 흔적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다음과 같은 메모가 덧붙여졌다. 베스푸치가 이 저술을 프랑스어로 작성했고, ‘훌륭한 시인인 장 바쟁이 프랑스어에서 우아한 라틴어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97-98)

지구상에서 북아메리카는 여전히 남아메리카와는 별개의 세계로 존재했다. 당시 사람들의 완고한 믿음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아시아의 일부라고 믿었고, 어떤 사람들은 상상 속에 해협으로 아메리고의 대륙과 분리되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마침내 사람들은 이 대륙이 북쪽 빙해에서 남쪽 빙해까지 이어진 하나의 거대한 땅임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확인하였고, 이 대륙에는 단 하나의 이름이 붙여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오류와 진실 사이에서 탄생한 이 무적의 단어가 그 불멸의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힘차게 일어섰다. 이미 1515년에 뉘른베르크의 지리학자 요하네스 쉐너는 자신이 제작한 지구의에 덧붙인 글에서 아메리카 또는 아메리겜을 신세계인 네 번째 대륙으로 공언했다.


(113-114)

학자들의 세계에서 베스푸치가 이토록 엄청난 명성을 누리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출간한 매우 얇고 신뢰성이 다소 의심스러운 두 권의 책들이 학자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권위를 부여한 것은 무엇보다도 <지리학 입문>이라는 책이었다. 그러한 책을 최초로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베스푸치는 행동보다 말을 중시하는 학자들에 의해 서슴없이 신대륙의 발견자로 찬양받게 되었다. 지리학자인 쇼녀는 두 사람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으며 이렇게 말했다.

콜럼버스는 단지 몇몇 섬만을 발견했을 뿐이고, 베스푸치는 진정한 신세계를 발견했다.”


(128)

콜럼버스라는 한 인물이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은 후 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부당한 처우를 겪었는지를 생각하면, 이는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콜럼버스는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그를 향한 모든 경멸과 그의 이미지에 드리워졌던 모든 그림자는 깨끗이 지워졌다. 사람들은 그의 형편없었던 통치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의 생애를 이상적으로 그려냈다. 그가 겪었던 어려움은 극적으로 부각되었다. 선원들의 모반을 제압하고 배를 끝까지 이끌었던 일, 한 악당의 음모로 쇠사슬에 묶여 고향으로 압송된 일, 굶주림에 처한 자식과 함께 라비다 수도원에 숨었던 일 등 이 모든 사건들은 이전에는 그의 업적을 칭송할 때 별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끊임없는 영웅화 욕구 덕분에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회자되었다.


(158-159)

다행히도 역사는 뛰어난 극작가다. 비극을 쓸 때처럼, 희극을 마무리할 때에도 그녀는 언제나 눈부신 결말을 마련해둔다. 4막 이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스푸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으며 최초로 본토에 발을 들인 사람도 그가 아니다. 그를 오랫동안 콜럼버스의 라이벌로 만들어 주었던 첫 번째 항해를 그는 결코 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학자들이 무대 위에서 베스푸치가 자신의 책에서 언급한 항해들 가운데 몇 번을 실제로 했는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갑자기 한 인물이 무대 위로 올라와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명제를 제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32쪽짜리 글은 결코 베스푸치가 쓴 것이 아니며, 그 글은 누군가가 베스푸치의 육필 원고를 멋대로 변형하여 만든 무책임하고 임의적인 조합물이라는 것이다.


(183-184)

4세기에 걸쳐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를 던져준 이 남자는 정작 파란도 위대함도 없이, 소외된 채 조용히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베스푸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세계의 영역을 넓힌 사람도 아니었다. 위대한 저술가도 아니었고,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위대한 학자도, 심오한 철학자도, 천문학자도 아니었으며 코페르니쿠스나 튀코 브라헤와 같은 인물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를 위대한 항해자나 탐험가의 제일선에 놓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라도 모른다. 불운한 운명 탓에 어느 순간에도 주도권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쥐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나 마젤란처럼 함대를 지휘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주역이 아닌 조연에 머물렀고, 늘 다른 이들의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


(185-186)

역사의 전환점을 만드는 것은 발견 자체가 아니라 발견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베스푸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그것이 새로운 대륙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 단 하나의 업적이 그의 삶과 이름에 영원히 결부된 것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행위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 행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떤 행위를 이야기하고 설명한 사람이 그것을 실제로 해낸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종종 아주 작은 계기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역사에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역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바라는 것이다. 종종 역사는 평범한 인물에게 불멸의 업적을 안겨주고, 진정으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채 던져버렸다.


(186)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는 자신의 세례명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 이름은 올곧고 용감한 한 남자의 이름이다. 그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세 차례에 걸쳐 조그마한 배를 타고, 아직 탐험되지 않은 대양을 건너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 역시 시대의 모험과 위험 속에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수백 명의 이름 없는 선원들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민주주의 국가에 잘 어울리는 이름은 왕이나 정복자의 이름이 아니라 이름없이 용감했던, 그런 평범한 사람이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는 서인도라든가 뉴잉글랜드, 뉴스페인 또는 성스러운 십자가의 나라 같은 이름보다 분명히 더 공정한 명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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