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외계 문명이 본다면 아마도 의아할 것이다. 저것들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어디로 가지도 않고, 왜 맴돌기만 하는 거야? 모든 질문의 답은 지구다. 지구는 환희에 찬 연인의 얼굴이다. 그래서 이들은 지구가 잠들었다 깨어나고 자기 버릇에 푹 빠져 사는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지구는 이야기와 기쁨과 그리움을 잔뜩 안고서 아이들이 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다. 이들은 뼈의 밀도가 조금 낮아지고 팔다리가 조금 가늘어진다. 눈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광경들이 가득하다.


(24-25)

몽골이나 러시아 동쪽 끝 황무지에 사는 사람이라거나 이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누구도, 싸늘한 오후인 지금 비행기가 다니는 길보다도 더 높은 하늘에 우주선 한 대가 지나고 있으며, 거기 타 있는 인간이 무중력의 유혹에 굴복해 근육을 잃지 않기 위해, 새처럼 떠다니며 뼈를 다 소실하지 않기 위해 다리 힘으로 열심히 리프트 바를 들어 올리고 있다고는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렇게 힘쓰지 않으면 가엾은 우주여행자는 지구로 되돌아가 다리라는 게 다시 중요해졌을 때 온갖 문제를 겪게 된다. 열심히 들어 올리고 땀을 흘리고 밀어내지 않으면, 재진입할 때의 맹렬한 열기와 충격은 이겨 내더라도 캡슐에서 내릴 때는 한 마리 종이학처럼 맥을 못 춰 끌어내려질 것이다.


(26)

이들은 우주가 날짜 감각을 없애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우주는 말한다. 날이 대체 뭔데? 스물네 시간의 하루를 지키려 하고, 지상 근무원들도 계속해서 그 점을 일깨워 주지만, 우주는 스물네 시간을 열여섯 번의 낮과 밤으로 돌려준다. 그래도 이들은 악착같이 스물네 시간을 산다. 시간에 매여 사는 허약하고 작은 몸이 아는 게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에 맞춰 잠을 자고 변을 누고, 모든 게 거기 묶여 있다. 하지만 첫 주가 지나기도 전에 마음은 시간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 하루 개념이 없는 기이한 영역으로 풀려나가 질주하는 지평선 위를 타고 넘는다. 분명히 낮인데 밀밭에 몰려드는 먹구름처럼 밤이 찾아오는 것을 본다. 그러다 45분이 지나면 또 낮이 찾아와 태평양이 깔린다. 과거에 생각했던 전혀 다른 세상이다.


(49-50)

우주에서 6새월을 보내고 나면 엄밀히 말해 지구에 있는 사람보다 0.007초 덜 늙는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5, 10년은 더 늙는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이해할 따름이다. 시력이 약해지고 뼈가 삭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도 근육이 위축될 것이다. 피가 엉기고 뇌액의 흐름이 달라진다. 척추가 늘어나고 T세포는 재생에 애를 먹는다. 신장 결석이 생긴다. 이곳에서는 입맛도 잘 돌지 않는다. 부비강은 죽을 맛이다. 고유감각이 흐려져 눈으로 보지 않고는 신체 부위가 어디 달렸나 알기 힘들다. 몸이 이상하게 생긴 체액 자루가 된다. 체액이 상체에는 너무 쏠리고 하체에는 부족해진다. 안구 뒤쪽에도 몰려 시신경을 압박한다. 수면이 반란을 일으킨다. 장내미생물군이 새로운 박테리아를 키운다. 암 발병 위험이 올라간다.


(50-51)

가끔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지우고, 저 행성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저 행성은 무척이나 장대하며 위엄 있고 당당하다. 신이 왈츠를 추는 우주 한복판에다 저 행성을 떨어트린 것이라고, 자꾸만 믿고 싶어진다. 앞선 인류가 (발견 이후의 부정, 그 후의 발견과 은폐의 길을 위청이고 더듬거리며) 발견한, 지구는 그저 무()의 중심에 놓인 하찮은 반점에 불과하다는 진실도 죄다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보잘것없는 게 저렇게 빛날 수 없어. 멀리 던져진 별 볼 일 없는 위성이 구태여 저런 장관을 만들어 내고, 쓸데없는 돌덩이가 균류와 인간 정신처럼 복잡한 것들을 조율할 리 없어.


(57)

50년 넘도록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곳, 우리의 달은 인간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리운 마음에 지구를 향해 밝은 면을 내보이고 있는 걸까? 우리의 달 그리고 다른 모든 달과 행성과 태양계와 은하계도 알려지기를 갈망하고 있을까? 떠난 지 사흘이 채 되지 않은 내일이 오면, 이 이상한 집착에 사로잡힌 인간 존재들이 가루로 덮인 달 표면에 귀환할 것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세상에 나부끼는 깃발을 꽂고 싶어 하는 존재들, 집요한 마시멜로들, 두둥실 하늘을 떠다니는 선원들은 자기네 깃대가 쓰러지고 성조기가 해진 것을 발견하리라. 50년 동안 자리를 비우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세상은 당신 없이 계속 돌아간다. 우주비행사 네 명은 그렇게 해변 막사에서 잠을 청했다. 눈을 뜨면 새 시대가 도래하리란 것을 알고서.


(77-78)

콜린스가 촬영한 사진 속 달 착륙선에는 암스트롱과 올드린과 타 있다. 착륙선 바로 뒤에 달이 있고 25만 마일 위에는 푸른 반구 모양의 지구가 인류를 품고서 깜깜한 암흑 속에 떠 있다. 사진에서 빠진 인간은 마이클 콜린스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그게 이 사진이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였다. 인류가 아는 한 현존하는 모든 인간이 빠짐없이 들어 있는 사진에 정작 그걸 촬영한 사람만 빠져 있다는 것이.


(112-113)

그리고 우리는? 우리는 하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재사용하고 공유한다. 우리는 갈라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다. 그럴 수 없으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오줌을 재활용해 마신다. 서로가 뱉은 숨을 재활용해 숨 쉰다.


(125)

처음에 이들은 밤 풍경에 매료되었다. 화려한 도시 불빛을 외피에 두른 지구는 인간이 만든 것들 것 황홀하게 빛난다. 도시 태피스트리가 두껍게 수놓인 밤의 지구는 또렷하고 선명하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유럽 해안지대에는 1마일이 멀다 하고 사람이 산다. 유럽 대륙 전체가 도시 별자리들과 황금빛 도로 실들로 아주 정교하게 엮여 윤곽을 드러낸다. 황금 실들은 눈이 내려 가의 언제나 회청색으로 보이는 알프스산맥까지 누빈다.


(128)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에게 욕망이 싹튼다. 이토록 거대하면서 작디작은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욕망. 아니 (열정이 추동하는) 요구. 이렇게나 기적 같으면서 별나게 사랑스러운 존재라니. 대안이 마땅치 않으므로 지구는 의심할 여지없는 집이다. 무한한 공간, 충격적일 만큼 환히 빛나며 우주에 떠 있는 보석. 인간들이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순 없는 걸까? 지구와도 잘 지내면 안 되나? 이건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아니라 다급한 요구다. 우리 삶이 달린 유일한 세상을 탄압하고 파괴하고 약탈하고 낭비하는 짓을 멈출 순 없을까? 그러나 이들도 뉴스를 보고, 이미 세상을 살아 봤다. 희망을 품는다고 순진해지진 않는다. 그러면 뭘 하지? 어떤 실천을 해야 하지? 말해 봤자 소용 있을까? 이들은 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들이다. 그건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129-130)

그러다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온다. 이들은 지구를 보다가 진실을 마주한다. 정치가 정말로 촌극인 게 아닌가. 정치는 그저 터무니없고 어리석고 가끔은 정신 나간 쇼일 뿐이며, 그걸 제공하는 인물들은 어느 구석이라도 혁명적이거나 혜안이 깊거나 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목소리가 크고 힘이 세고 과시에 능하고 뻔뻔하게 권력 싸움을 갈망했기에 그 자리까지 오른 자들 아닌가.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해 여기서 끝났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은 정치가 촌극이 아님을, 촌극에만 그치지 않음을 서서히 깨닫는다. 정치는 아주 거대한 힘이어서, 우주에서 봤을 때는 인간의 힘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지상의 모든 것을 일일이 다 결정지었다.


(132)

인간의 욕망이라는 실로 놀라운 힘이 지구를 형성한다. 그 힘이 모든 걸 바꿨다. , 극지방, 저수지, 빙하, , 바다, , 해안선, 하늘을, 욕망에 따라 윤곽이 그려지고 조경된 행성을.


(170)

빛나는 서구 자본주의가 꿈꾸는 우주 같은 건 여기 없다. 이곳은 불굴의 공학 기술과 천재적인 실용주의를 숭배하는, 칙칙하고 효용을 중시하는 육중한 사원이다. 소련 붕괴 후에 살아남은 타임캡슐, 지나간 세기의 마지막 메아리다. 이곳을 집처럼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가 바닥이고 여기가 천장이고 이렇게 서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정하면서, 위아래와 좌우 구분이 사라진 다른 모듈들을 지배하는 우주 공간의 우주다움을 무력화하려고 해 봤다. 그러나 아늑해지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벨크로가 붙은 벽과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케이블과 침침하게 깜박이는 불빛은 아늑해질 수 없다. 결국 이곳은 도래한 우주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편한 집도 아니며 그저 지하 벙커에 가깝다. 편안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끝내 실패했지만 그래도 이들은 애지중지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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