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한강 작가님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기념으로 책 두어 권을 샀다고 했잖아. 그 중에 한 권이 <디 에센셜 한강>이라는 책이란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기획한 시리즈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엮은 시리즈란다. 당연한 거겠지만, 문학동네 출판사에서는 이미 한강을 높이 평가한 듯 하구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님의 대부분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갔는데, 물론 이 책도 베스트셀러 한 자리를 차지했지. 이 책을 2023년에 미리 기획한 사람은 문학동네에서 보너스 좀 받았으려나?^^ 이런 생각도 문들 들었단다.

책이 예쁘게 잘 디자인되었단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모든 책들이 작가마다 한 가지 색상으로 표지 디자인을 했단다.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작가들의 색을 정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버지니아 울프는 빨간색, 조지 오웰은 밝은 파란색, 김수영은 녹색등등. 한강 작가님은 흰색이었단다. 작품 자체가 순수해서 그럴 수도 있고, 한강 작가님 소설 중에 <>이란 작품이 있어서도 그렇게 정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무튼 디 에센셜 시리즈는 책 디자인이 예뻐서 다른 시리즈들도 다 모아놓으면 인테리어로 좋을 것 같더구나.

이제 <디 에센셜 한강> 책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에는 장편 소설 <희랍어 시간>과 단편 <회복하는 인간><파란 돌> 두 편과 시 5, 산문 8편이 실려 있었단다. 아빠는 그 동안 한강 작가님의 작품은 장편 소설들만 읽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산문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단다. 모든 작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고, 몇몇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1.

장편 <희랍어 시간>은 단행본으로도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 받은 작품이란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보면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라고 했는데, 위 선정 이유 중에 한 부분인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라는 부분이 소설 <희랍어 시간>에 아주 잘 어울리는 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특히 시적인 산문이라는 부분소설이긴 한데, 시와 같은 소설이었어. 소설의 형식으로 쓴 시라고 할까, 시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라고 할까.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도 많이 있어서 읽기는 쉽지 않았어. 하지만 중간중간 언어를 가지고 마법을 부린 듯한 문장들이 영혼까지 닿았단다. 그래서 아빠가 발췌한 문장들도 많은 책이란다.

15살 때 식구들과 함께 독일로 이민간 남자. 17살 때 눈이 불편해서 안과에서 갔는데, 유전병 때문에 앞으로 시력이 계속 안 좋아지다가 마흔 살 즈음에는 결국 실명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어린 나이에 얼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까. 그 이후 남자의 안경은 점점 두꺼워져 갔단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 안과 의사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어. 그 안과 의사의 딸은 청력을 잃어 말을 들을 수 없었어. 하지만 입술 모양으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단다. 그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몸도 허약해서 늘 병원에서 지냈어. 그렇다 보니 그 남자가 소녀가 만난 첫 남자라고 할 수도 있었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남자는 그 소녀에게 고백을 했는데 그만 퇴짜를 맞고 말았지. 소녀는 자신이 건강하지 못해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싶어. 소녀는 결국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20대 때 그는 독일에서 친구와 등산을 갔다가 사고로 친구가 죽었어. 이렇게 젊었을 때 두 번의 큰 죽음은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가 되었어. 이후 방황하다가 남자는 31살에 한국으로 왔단다. 그는 대학에서 희랍 철학 학위를 받아서,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희랍어 교양 강좌를 가르쳤단다.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은 당연히 적었어. 희랍어는 그리스어란다. 예전에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떤 출판사에서는 <희랍인 조르바>로 출간하기도 했단다. ‘희랍이라는 말은 그리스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남자가 한국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6년이 되었고, 그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졌단다. 학생들은 그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지만, 거의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나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어. 그의 수강생 중에 한 여자가 있었단다.

여자는 십대 때 갑자기 말이 안 나오는 증세를 겪었어. 그 일로 정신과 진료도 받았지. 나중에 이상한 외래어 발음을 보고 이걸 읽으면서 다시 말문이 트였다고 했어. 그 이력 때문에 나중에 이혼할 때도 아홉 살 아들의 양육권을 남편한테 빼앗기고 말았어. 세 번의 재판을 했지만, 남편은 여자의 정신과 진료 이력을 문제 삼았고, 결국 여자는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기도 만 거야. 그런 여자는 또 다시 말이 안 나오는 증상이 찾아왔단다. 무슨 수를 쓰려고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어. 오래 전에 이상한 외래어를 읽으면서 말문이 트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것을 기대하고 이상한 외래어인 희랍어 수업을 듣게 된 거야.

….

어느날 남자가 자신이 일하는 아카데미 건물에서 새를 쫓아가다가 어두운 지하 계단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말았는데, 안경도 떨어지면서 깨져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단다.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온 여자가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단다. 눈을 잃어가는 남자. 말을 잃어버린 여자. 둘은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소설이란다.

 

2.

단편 <희복하는 인간>당신이 주인공이야. 당신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었어. 언니는 당신에게 열등감을 가졌어. 당신은 고집 세고 서른 넘게 연애도 못하고, 부모와 관계가 안 좋아 경제적인 도움도 받지 못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당신을 부러워했어. 언니는 결혼하여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을 가졌는데 말이야. 당신과 언니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소원했었는데 어느 날 언니가 당신과 함께 병원에 가자고 해서 갔어. 그런데 무서운 병에 걸린 언니그리고 투병하다가 언니는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어. 당신은 발목을 겹질려 한의원에서 쑥찜을 받다가 화상을 입고 며칠 방치했다가 덧나서 병원에 가서 화상 치료를 받았어. 그러면서 아팠던 언니를 생각하며 언니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병원에서는 화상을 입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핀잔을 주고, 수술이 필요해 보이지만, 새 살이 나는지 지켜보자고 했어. 다행히 상처에서 새살이 나긴 했지만 아주 더디게 진행되었어.. 그래도 당신은 언젠가는 다 회복하게 될 거야

<파란돌>이라는 단편은 짝사랑했던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형식의 소설이란다. 오랜만에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었어. 17살 때 먹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당신은 평가를 해주었어.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당신의 화실에 와서 그려도 좋다고 했어. 당신은 친구의 삼촌이었어. 당신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상처가 나면 안 아무는 병을 앓아서 조심하면 지내야 했지. 그 병 때문에 술과 담배가도 안 했어. 혼자 조용히 그림 그리는 화가가 잘 어울리는 직업인 것 같았어. 매일 당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당신을 사랑하게 되고, 첫키스도 당신과 하고당신은 얼른 얼른 크라고 했지. 하지만 당신은 결국 그 병으로 인해 죽고 말았어. 이후 주인공은 자라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결혼 생황도 순탄치 않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때문에 불행했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 그런 상처 입은 영혼의 이야기가 짧게 이어졌단다.

….

아빠가 게을러서 읽고 나서 바로 독서 편지를 써야 하는데, 두어 주 지난 다음에 쓰다 보니... 메모를 해두었지만 위 두 편의 단편 소설들은 제대로 된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는구나. 위 내용이 소설과 다를 지라도 이해해 주길 바래.

….

이 책을 통해 한강 작가님의 산문들도 처음 읽어보았다는데, 소설보다 산문이 더 읽기 편했단다. 붓 가는 대로 쓰신 것 같아서 읽기 편했고, 한강 작가님의 어린 시절 삶과 가족과 일상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 가난하여 진짜 피아노는 못치고 피아노 학원도 가지 못하고 종이 피아노를 치면서 연습했다고부모님도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학원을 보내주셔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어. 한강 작가 님의 아버지도 유명한 작가님이란다. 한승원 작가님으로 아빠는 한강 작가님 책보다 한승원 작가님의 책을 더 많이 읽은 것 같구나. <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라는 산문은 작가인 아버지에 관한 글인데, 공감 가는 문장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

(308)

어느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자식에게 찾아온다. 그것이 자식의 운명이다. 인생은 꼭 그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 없이. 불만도 연민도 없이. 말도 논리도 없이. 글썽거리는 눈물 따위 없이. 단 한 순간에.

=====================

인터뷰를 통해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도 그 소설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실려 있는데, <소년이 온다>를 쓸 때 작가님의 심정이 담긴 글이 좋았단다. 다시는 이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이 없기를 바라며

=====================

(331)

2012년 겨울부터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한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나는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어 있었다. 신대륙의 학살,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관동과 난징의 학살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한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

오늘은 이렇게 이 책에 실린 몇 편의 작품을 소개해주면서 마칠게. 한강 작가님의 다른 책을 또 읽게 되면 이야기해줄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책의 끝 문장: 허락된다면 다음 소설은 이 마음에서 출발하고 싶다.



수년 전, 아이가 마음껏 놀게 하려고 일부러 맨 아래층에 얻은 집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발을 구르거나 뛰어다니려 하지 않았다. 거실에서 줄넘기 연습을 해도 된다고 그녀가 말하자 아이는 물었다. 지렁이랑 달팽이들이 시끄러워하지 않을까? - P25

그렇게 상상하며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 지루해질 때쯤. 천천히 뒷산의 산책로를 오르기도 합니다. 연푸른 나무들은 한 덩어리로 일렁이고, 꽃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채로 번져 있습니다. 산기슭에 있는 작은 절의 대중방 마루에 앉아 나는 쉽니다. 무거운 안경을 벗어들고,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흐릿한 세계를 둘러봅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 - P42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할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 지난 이십 년 가까이 잊은 적 없는 소리. 내가 아직 그 목소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다시 내 얼굴에 그 단단한 주먹을 날리겠습니까. - P49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기 전에 이미 당신의 얼굴은 내 눈꺼풀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눈꺼풀을 열면 당신은 천장으로, 옷장으로, 창유리로, 거리로, 먼 하늘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겨 어른거렸습니다. 어떤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도 그토록 집요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 여름밤 내 책상 옆의 작은 거울 속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설픈 수화를 연습하는 내 상반신이 비쳐 있었지만, 거기 어른을 나는 매 순간 알아보았습니다. - P50

그에 비하면 언어는 수십 배 육체적인 접촉이었다.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간다. 혀가 마르고 침이 튀고 입술이 갈라진다. 그 육체적인 과정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낄 때 그녀는 오히려 말이 많아졌다. 긴 문어체의 문장으로, 유동하는 구어의 생명을 없애며 말을 이어갔다. 목소리도 평소보다 커졌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수록 점점 사변적으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는 시기에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없었다. - P62

아름다운 사물들을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은 꿈을 꾸는 상태에 있는 거라고 플라톤은 생각했고, 그걸 누구에게든 논증을 통해 설득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세계에선 그렇게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오히려 모든 꿈에서 깨어난 상태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실 속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믿는 대신 아름다움 자체만-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만을-믿는 자신이. - P105

그 순간, 불쑥 오래된 한 단어의 기억이 절반쯤 잘린 채 떠올라 그녀는 그것을 붙들려 한다. 오래전에는 해가 진 직후와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을 호(呼)……로 시작하는 한자어로 불렀다고 했다. 멀리서 오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어, 큰 소리로 불러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는 뜻의 단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서양식 표현과 비슷한 연원을 가진, 호……로 시작되는, 끝끝내 완전해지지 않는 그 단어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뒤척인다. - P176

지금 내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펜촉 또는 송곳을 들고 자신이 뚫다 만 종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어렴풋한 옆얼굴이다. 그들이 내쉬는 더운 숨이 구멍들을 통과해 가장 단순한 언어가 된다. 그들은 어떤 소리를 내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데, 간결한 부호 같은 언어들이 그 구멍들에서 새어나온다(들립니까, 나는 지금 온 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 말을 듣고 있습니까).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피 같은, 우리가 가진 생명의 가장 연한 부분, 또는 어떤 목소리의 이미지. - P3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