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작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41)
전태일은 두 손에 이마를 대고 차가운 방바닥에 엎드렸다.
“주여, 약한
저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소서. 제가 저의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저의 죽음이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주소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돈 많고 권력 가진 자들의 서로 작당해서 속이고 또 속이고, 거기에 정부까지 한통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 벽은 높고 높으며, 두껍고 두껍습니다. 그 벽을 어찌해야 깰 수 있겠나이까. 그 벽을 깨고 모든 사람끼리
빈부도, 강약도, 귀천도 없는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
한 몸을 육탄으로 날리는 길뿐이라고 여겨지옵니다. 이 미천한 몸 하나 육탄으로 날아가 산산이 부서져서
천대받고 억눌려 사는 모든 노동자들이 눈 똑바로 뜨고 자기들을 보게 하고자 하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함께 뭉쳐 일어나 그 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인간다운 세상을 이룩해 내는 데 한 톨 불씨이고자 하나이다. 이
결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번뇌하였으나 이 길이 가장 옳은 길이라 여겨지옵니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2천 년 동안 끝없이 부활하시기 위함이었나이다. 이
나약한 자 감히 주님의 가르침을 한 중 거름이 거고자 하오니 주여, 부축하여 주소서…..”
(57)
“응, 나도
이번 사건으로 모든 걸 알게 된 건데, 우리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법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근로조건이라는 게 있어. 하루에
일은 여덟 시간만 한다. 야근을 시키면 야근 수당을 따로 지급해야 한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쉬어야 한다. 공장 안의 작업환경은 건강을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는 식으로 정해놓은 거야. 그밖에도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많은데, 그 법들을 다 합해놓은 게 근로기준법이라는 거야.
그런데 사장들은 그 법을 하나도 안 지키잖아. 그래서 그 사람은 모든 걸 법이 정한 대로
하게 하려고 우리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들고일어나게 하는 일을 시작했어. 그걸 노동운동이라고 해.”
(60)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일까…… 배운 것이 많은가…… 아니지, 스물두 살에 벌써 재단사 노릇을 했다면 아무리 짧아도 5년은 봉제공장밥을 먹었을 것 아닌가. 그럼 아무리 많이 배웠어야
중학교밖에 더 나왔겠는가. 그렇다면 많이 배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스텐공장은 일하는 모든 조건이 봉제공장에 비해 나빴으면 나빴지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은 막소주나 마시며 불평을 했을 뿐이지 그 사람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공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어린 사람이 남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다니…… 그게 똑똑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이 야박하고 약아빠진 세상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니……
(95)
월출산은 바위산의 아름다움이 더없이 빼어난 산이었다. 월출산의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은 두 가지 사실이 합해져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방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줄기라고는
없이 질펀한 들녘일 뿐인데 어찌 그렇게 거대한 바위산이 솟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바위산이 되 무작정
커서 위압적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산을 이루고, 그 산들은 겹겹이 큰 산을 이루어내며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게 조화되어 있었다. 넓은 들판 가운데 솟아 더욱 우람해 보이고, 그러면서 수많은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월출산은 바위산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 겹겹의 봉우리에 안개가 감겨 있을 때는 범접하기 어렵게 신령스럽기 그지없었고, 눈이 하얗게 내려 있으면 신선의 세상이 저기가 아닌가 싶게 신비스러움은 절정을 이루었다.
(155-156)
“바로 그거요. 모든
신문들도 은근히 그런 냄새를 풍기고 있고, 세상 인심도 그리 돌아가고 있듯이 이번 선거는 분명 우리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일 수밖에 없소. 여러분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유권자들에게 주지시켜야
해요. 우리끼리니까 터놓고 하는 얘긴데, 유권자 설득작전에서
그냥 막연하게 우리가 같은 경상도니까 경상도를 찍자 해서는 효과가 좋지 않아요. 특히 지식수준이 낮고
단순한 사람들일수록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이건 된장이고 간장이고 고추장이다 하는 식으로 꼭꼭 찍어서
쉽게 말해야 효과가 나요. 다시 말하면, 우리 경상도가 이렇게
잘살게 된 건 누구 덕이냐? 다 각하 덕이다. 왜냐하면 각하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1차, 2차 단행하시면서 덕을 제일 많이 입히신 데가 우리 경상도 아니냐. 부산, 대구를 양대 중심으로 해서 발전시키는 것은 더 말할 것 없고, 울산을
개발했고,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을 만들었고,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지 않았느냐. 다 이런 혜택으로 딴 데보다 더 잘살게 된 것이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폐일언하고 우리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똘똘 뭉쳐 또다시 각하를 찍어 대통령으로 받들어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아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지금까지
누렸던 그 모든 혜택이 다 전라도땅으로 가버린다. 여러분, 이런
사실들을 명백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그겁니다.”
(270)
“으응, 그거야
뭐……” 김명숙은 그까짓 거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심드렁하게 말끝을 흐리고는, “이런 말 들으면 우리 원장님 또 싫은 기색할지 모르지만 말야, 디자이너로
말하자면 노력으로나 능력으로나 앙드레 김을 당할 사람이 없어. 네가 말을 꺼냈으니까 솔직하게 하는 말인데
우리한테는 신동파나 박신자보다는 앙드레 김이 훨씬 더 중요하고 본받아야 될 인물이야. 너도 소문 들어서
좀 알고 있겠지만 앙드레 김은 벌써 15년 전에 순전히 독학으로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는데,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기본 스케치를 1천 번, 1만 번, 수백만 번을 해서 2년이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디자인 스케치를 해낼 수 있었다는 거야. 그 실력이 얼마나
짱짱하면 벌써 6~7년 전에 프랑스 정부에서 초청해 세계 디자인의 최고 도시인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게
했겠니. 너 국민학교 때 명필 한석봉 얘기 들었지? 등잔불
없는 밤중에 천자문을 획 하나 틀리지 않고 다 썼다는 거. 난 그게 지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앙드레 김이 살아 있는 한석봉이야. 난…… 그 사람처럼 되는
게 꿈이야.”
(302-303)
그 길을 따라 사나이의 젊은 꿈도 접고, 야속한
운명에 절망하며 절룩절룩 걸어가고 있는 한 남자의 외롭고 슬픈 모습이 영화의 라스트 씬처럼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지금의 영상이 아니라 그 시를 외웠던 중학생 때의 영상이었다. 그 영상은 변함이 없는데 왜 시는 떠오르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 간간하게 말하면 세월 따라 잊혀진 것이었다. 그런데 최주한은 야릇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마치 누구한테
빼앗겨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의 배면에는, 그럼
나는 서울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그것을 빼앗아간 것은 서울이었다. 중학생 시절에 비해 서울에서 보낸 세월은 긴 세월이었다. 그 세월은 중학생인 어린 시절 한때 외웠던 시를 잊혀지게 할만도 했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상실감이 드는 것은 자신이 처한 궁색한 처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