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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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독서 편지가 많이 밀려 있구나. 오늘도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아. 그런데다 윤석열 탄핵 선고도 아직이고, 그들은 여전히 거짓말만 일삼는구나. 그것이라도 빨리 해결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야. 오늘도 컨디션이 안 좋아서 최대한 요점만 간단히 쓰도록 해야겠다.

오늘 소개할 책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님의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라는 책이란다. 유홍준 님의 책들은 주제가 뚜렷하단다. 대부분 우리나라 문화 유산에 관한 책이지. 그렇다 보니 일상 생활을 하면서 쓴 에세이들은 책으로 낼 생각을 안 했대. 그러다가 이번에 출판사의 제의도 있고 해서 그런 글들을 모아서 낸 책이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란다. 책 제목을 참 지은 것 같구나. <나의 ~ 답사기>는 유홍준 님의 상징적인 제목이잖니. 지은이를 보지 않아도 누가 봐도 유홍준 님의 책이라는 것을 알 거야.

첫 번째 글은 마지막 담배를 피우면서 적은 글인데, 금연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이번에는 꼭 성공하시길 바란다. 새해 들어 많은 계획들을 세우는데 흡연가들이 꼭 하는 계획이 담배를 끊는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 같구나. 매년 년초마다 금연 계획을 하는 이들도 있으니... 그런데 역설적으로 마크 트웨인은 담배 끊는 일이 아주 쉽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소가 지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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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금연은 정말 힘들다. 마크 트웨인은 역설적으로 말했다. “담배를 끊는 일은 아주 쉬운 일이다. 나는 백 번도 넘게 끊었으니까.” 20년 전 경험에 의하건대 금연은 매정하게 결별하는 의지밖에 없다. 금연 뒤에 찾아올 기쁨을 기대하며 끊어야 한다. 이제는 아침마다 칵칵거리지 않게 되고 양치질할 때 나오는 조갯살만 한 가래도 없어질 것이다. 방에선 곰팡내가 사라질 것이고, 얼굴엔 살이 뽀송하게 오르며 피부도 맑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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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우측 통행이 상식이 되었지만, 아빠가 어렸을 때만 해도 걷는 것은 좌측 통행을 해야 한다고 했어. 자동차는 우측 통행, 사람은 좌측 통행... 그렇게 자동차와 사람의 통행 방향이 달랐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굴곡지고 아픈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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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8)

그래서 1905년에 발표한 대한제국 규정은 우측통행을 명시했다. 그런데 기찻길이 좌측통행으로 들어오면서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일제가 강점하면서 조선총독부는 아예 1921년 도로 규칙을 일본과 똑같이 좌측통행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철거된 서울 시내 전차들도 좌측으로 달렸다. 그때는 기차, 자동차, 사람 모두 영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좌측통행의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8.15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오면서 미국식 우측통행 자동차가 거리를 누비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찻길은 우측통행이 되었다. 미군정은 1946년 차량 우측통행을 규칙으로 명시하였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기존의 습관대로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1962년 제정된 도로교통법이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에서는 좌측보행이 원칙이라고 규정하면서 좌측보행이 굳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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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 그렇게 오랜 왕조의 전체를 기록으로 남긴 왕조는 전무후무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 원본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외세 침략이 많았던 나라에서 원본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다. 선조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긴 쉽지 않았을 거야.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를 보니, 국뽕이 절로 생기는 것 같구나. 이런 것은 정말 자랑스러워할 만하구나.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소프트파워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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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1. <조선왕조실록>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천재지변 등 다방면의 자료를 수록한 종합 사료로서 가치가 높다.

2.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실록이 있는 나라 중 편찬된 실록은 후손 왕이 보지 못한다는 원칙을 지킨 나라는 조선왕조뿐이다.

3. 위 원칙의 고수로 <조선왕조실록>은 기록에 대한 왜곡이나 고의적인 탈락이 없어 세계 어느 나라 실록보다 내용 면에서 충실하다. 책 권수로 치면 중국 명나라 실록이 2,900권으로 더 많으나 실제 지면 글자 수는 1,600만자 정도로, 4,965만자인 <조선왕조실록> 3분의 1에 불과하다.

4.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다른 나라 실록들은 대부분 원본이 소실되었고 근현대에 만들어진 사본들만 남아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왕조 시기의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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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원본과 번역본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하는구나. 해당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직역을 해 놓아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을 것 같구나. 재미있게 편집된 책이나 만화 등으로 한번 쭉 읽어보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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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유홍준 님의 지인에 관한 이야기들도 실려 있단다. 주로 돌아가신 다음 그들을 추모하면서 적은 글들이었어. 유홍준 님의 주례를 서 주신 리영희 선생님, 평생 민주화 운동을 하신 백기완 선생님,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도 삶을 사랑하신 신영복 선생님, 그 외에 백남준, 홍세화, 이애주, 김민기 등 여러 분들을 추모하는 글들을 실었단다. 그 사람을 보려면 그 사람의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는데, 유홍준 님과 어울리신 분들을 보니 유홍준 님은 참 성공하신 분인 것 같구나. 여러 분들의 이야기 중에, 신영복 님이 남기신 말이 좋아서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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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더불어 숲>은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에 쓴 작품이다. 이 마지막 작품은 대작인 데다 획에 흔들림이 없이 전혀 절필 같지 않고 오히려 이제까지 당신이 살아온 삶과 사상과 예술이 이 한 작품에 담긴 것 같은 웅혼함이 있다. 더불어 숲이라 쓴 네 글자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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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정도로 짧게 마친다. 유홍준 님은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문화유산에 대한 글을 쓰실 때 글이 살아있고 신명 나는 것 같더구나. 이 책보다는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기행문이라는 시의성을 띠기도 해서 초창기 책들은 너희들이 이해 안 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 문화 유산을 이해하는데는 이만한 책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유홍준 님은 앞으로 국토박물관 순례를 두세 권 더 쓰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를 마무리하신다고 하는구나. 일생의 큰 목표를 다 이루실 때까지 건강하실 바라고, 그 이후에는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셨으면 좋겠구나.

이상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새해로 들어서면서 나도 담배를 끊었다.

책의 끝 문장: 이제 <국토박물관 순례>를 두세 권 더 쓰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대장정을 마치려고 하니 이번에는 진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각 나라의 백자에는 자연스럽게 그 민족의 미적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일찍이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중일 동양 3국의 도자기를 조형의 3요소인 선, 색, 형태와 비교하면서 중국은 형태미가 강하고, 일본은 색채가 밝고, 한국은 선이 아름답다고 했다. 때문에 중국 도자기는 완벽한 형태미를 강조하고, 일본 도자기는 화려한 색채미를 보여주는 데 반하여 한국 도자기는 부드러운 선맛을 자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도자기 애호가들은 중국 도자기는 멀리 높은 선반에 올려놓고 보고 싶어하고, 일본 도자기는 옆에 가까이 놓고 사용하고 싶어지는데, 한국 도자기는 어루만지게 싶게 한다는 것이다. 그 따뜻한 친숙감과 사랑스러운 정겨움이 조선백자의 특질이다. - P82

미족미술협의회(민미협)는 이 그림을 1989년도 달력에 실었다. 그런데 이를 이용하여 부채를 만든 인천 지역의 한 재야청년단체를 수사하던 서울시경 대공과에서 느닷없이 신학철 화백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신 화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하였다. 경찰은 어이없게도 이 그림이 북한을 찬양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해석인즉, 그림 아래쪽에서는 남한 사람들이 힘겹게 노동을 하고 있고, 위쪽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푸짐한 밥그릇을 앞에 놓고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그림을 한반도 지형으로 보면 초가집은 평양의 생가를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그림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경찰의 대공적 상상력이 어처구니없음을 넘어 경이롭기만 했다. 미술비평엔 인상비평, 양식비평, 재단비평 등이 있는데 가히 ‘공안비평’이라 할 장르가 나타난 것이다.
- P176

그런데 <실천문학> 남도 답사에서 황석영 형은 3시간 만에 마이크를 내려놓고 내가 8시간 마이크를 잡으면서 나도 ‘구라’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아마도 윤재걸 시인이 한 말 같은데 백기완 선생이 라디오 시대 이야기꾼, 황석영이 흑백텔레비전 시대 이야기꾼으로 통했는데 유홍준이 컬러텔레비전 시대 이야기꾼으로 등장했다고 해서 모두 박수 치며 웃었다. 이후 방동규 선생은 끝까지 재야의 라디오로 남고 내가 백기와, 황석영과 함께 ‘조선의 3대 구라’로 꼽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도올 김용옥의 등장 이후 나는 이어령, 김용옥과 함께 세칭 ‘3대 교육 방송’으로 불리기도 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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