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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214/pimg_7351811964603610.jpg)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었단다. 이번에는 신간으로 나온 그의 에세이 모음집이야.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야기를 해서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좋아하는 건 이제 다 알겠지? 신간 코너의
그의 책이 나와서 예전에 나온 책이 재출간된 것인가 봤더니 그의 미공개 에세이를 모아서 출간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제목은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이고, 부제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적혀 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유대인이었던
슈테판 츠바이크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을 갔고, 우울증에 걸려 그 곳에서 아내와 동반자살을 했다고 했잖아.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망명 간 브라질에서 쓴 글들이라고 하는구나. 암울한 시절, 모국을 떠나 먼 타국에서의 망명 생활. 나치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면서 모국으로 돌아갈 희망이 점점 꺾이는 어려운 시절에 쓴 글들이란다. 그의 글들을 모아 이 책을
출간한 이들이 제목을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로 뽑은 이유가 당시 그의 상황을 고려했던 것 같구나.
이 책에 실린 <이 어두운 시절에>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그 에세이의 내용에서 책 제목을 뽑은 것 같더구나.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잘 모르고 있던 것이 어두운 시절에 그것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취지로 글을 썼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어. 평상시 민주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줄 몰랐는데, 계엄 사태, 내란 사태를 겪고 보니 민주주의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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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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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많은 걱정을 하면 살곤 한단다. 걱정에 대한 격언들이 참 많은데 대부분이 걱정은
쓸데 없다는 내용으로 그 격언들을 공감하게 된단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살다 보면 또다시 걱정은 마음 한 켠에 쌓여 간단다. 이 책에서 안톤이라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을 이야기를 한단다. 핵심은 돈을 멀리하고 사람을 가까이하라는 것이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으면 걱정이 줄어들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욕심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커지게 되는 법이지.. 그래도 우리 사회 시스템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구나. 그 시절
브라질에서나 가능하겠지? 이런 핑계 같은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사랑을 위해 일한다는 점은 마음에 새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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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사람들이
얼마나 특별히 그를 존경하는지 알아보려면 거리에서 안톤을 잠시만 지켜보면 된다. 모두가 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모두가 그와 악수를 나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 그 위대한 삶의 비밀을 핏속에 가진 자의 힘을 나는 안톤에게서 명확히 보았다.
확실히 가장 가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하는, 낡은 코트 차림에 이 단순하고 걱정 없는 남자는 자기 땅을 순시하는 지주처럼 여유롭고 다정하게 동네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누구의 집에든 들어갈 수 있었고 어떤 자리에든 앉을 수 있었으며, 오직 최소한의 것만 원했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었다. 나는
안톤이 가진 힘의 비밀을 곧바로 이해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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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돈에 대한 이야기가
또 나오는데 슈테판 츠바이크 또한 돈을 멀리하지는 못한다면서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는 않는다고 했어. 그래, 바로 이 자세… 돈을
너무 멀리하지도 않고 돈에 너무 집착하지도 않는 중용의 자세를 취하고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집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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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그
후로 내가 돈을 무시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터다. 돈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자극을 나는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모든 방문객에게 하듯이, 나는 돈에도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둔다. 하지만 돈은 방문객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는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잊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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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서는 당대 유명한 미술가인
로댕과 만남을 적은 글도 실려 있단다. 지인을 통해 슈테판 츠바이크는 로댕을 만났단다. 로댕에게 집중력이란… 손님으로 온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는지는 모른
채 작업에 몰두하여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의 집중력.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겠지만, 로댕을 훌륭한 조각가로 만든 것은 이런 열정과 집중력이 아닐까 싶구나. 주의
산만한 아빠로서는 정말 불가능한 집중력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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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5)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30분, 한 시간, 한 시간 반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었고, 나는
그런 모습에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뒤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고, 낮인지 밤인지조차 몰랐으며, 시간도 장소도
잊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작품과 그 너머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그가 성취하고자 했던 더 높고 더 진실한 형태만 응시했다. 그의 육중한 몸이 가볍게 움직였고, 어떤 깨달음이 흡사 술에 취한 듯한 그의 존재를 감쌌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마치 천지창조 첫날의 신처럼 홀로 창조 작업에 전념했다. 시간과 공간과 세상을 그토록 완벽하게 잊을 수 있다니, 젊은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큰 충격이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을 확실히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집중이었다. 크든 작든 어떤 작업이든, 수행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너무 자주 수백 가지 사소한
일에 분산되고 쪼개지는 의지를 진정으로 원하는 한 한 가지에 집중하는 영혼의 결단이 있어야만, 오직
그런 결단력으로만 진정으로 일할 수 있다. 손님에 대한 무례일 수도 있지만, 그는 나를 완전히 잊었고, 그렇게 나는 없는 사람처럼 위대한 대가
뒤에 숨을 죽이고 주변의 대리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 한 시간에, 나는 지금까지 내게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완벽을 향한
의지로 모든 것을 잊는 열정! 크든 작든 자기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 다른 마법은 없다. 나는 그 한 시간에 이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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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테판 츠바이크를 망명하게 만들고, 우울증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 자살하게 만든 히틀러라는 작자. 그는
광기가 그 이전에 소설 속의 주인공과 아주 흡사하다고 하더구나.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로부터 20여 년 후 실제에 그런 일어 벌어졌을 때 더 놀랐을 것 같구나. 그
소설을 쓴 소설가 블라스코 이바녜스는 그 소설을 통해서 독일 국민 속 마음을 대변하려고 했던 것일까?
광기의 소설은 광기의 현실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지옥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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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31)
오늘날
히틀러가 전 세계에 강요하려는 이 모든 계획은, 너무나 진짜 같은 허구의 인물, 하르트로트에 의해 고안되었다. 우리는 세계 지배의 꿈이 독일 국민의
무의식 속에 이미 늘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히틀러는 그것을 발명하지 않았다. 블라스코 이바녜스가 25년 전에 하르트로트의 입을 빌려 예언했던
것이 그의 광기를 통해 실현되었을 뿐이다. 고립된 몇몇의 개인이 사악한 꿈에 불가했던 것이 이제는 수백만의
소망이 되었고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요소가 되었다. 플라스코 이바녜스의 소설은, 작가가 정치학 교수보다 당대와 미래를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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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5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으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담겨 있는
글들은 커다란 메시지를 남겨 묵직함마저 들었단다. 책을 덮으면서 역시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생각이 들었어. 바쁘지만 않다면 책을 필사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단다. 하지만
읽어야 할 책들, 독서 편지로 써야 할 책들이 밀려 있어 필사할 시간은 없을 것 같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커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인 돈을 주체적으로 피하는
기술, 그리고 단 한 명의 적도 만들고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기술, 매우 어려운 이 두 가지 기술을 내게 보여준 사람이 있다.
책의 끝 문장: 오로지 폭력만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자유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종종 완톤을 생각한다. 그토록 큰 도움을 내게 준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든다. 때때로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이 들 때면 나는 당장 단 하루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아 늘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이 남자를 떠올린다. 허름한 옷차람의 그를 여러 차례 보았다. 그는 늘 한결같이 쾌활하고 태평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상호 신뢰의 비결를 배운다면 경찰도 법원도 교도소도 돈도 필요 없을 거라고. 필요한 만큼만 대가를 받고 능력이 닿는 한 힘껏 돕는 이 청년처럼 들어가 산다면, 부조리가 반복되어 ‘사회 문제’가 되는 우리의 복잡한 경제 시스템도 어쩌면 해결될지 모른다. - P22
그 중요한 순간에 그를 저버리고 만 것은 공감 부족이나 무관심, 못된 의도가 아니었다. 가장 필요할 때 올바른 말을 못하게 막는 것은 많은 경우 용기 부족인 것 같다. 패배나 굴욕의 수치심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 절대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이때의 경험을 통해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작품 첫 번째 충동의 주저 없이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P32
자연의 의지는 연속성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어떤 중단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연은 사람들 일부가 무참히 파괴되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끈기 있게 인내하며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길 요구한다. 우리가 때때로 시대에 무관심해 보인다면, 그것은 자기 피조물의 고통에 무관심한 자연의 잘못이다. 그리고 무너져가는 세계의 폐허를 재생 계속 노려보는 대신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할 때 뒤로서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게 된다 - P60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 P61
그는 자살하기 직전이 1942년 초 브라질 페트로폴리스에서 자신을 방문한 동료 이민자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무의미한 파괴가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숨을 쉬고 자고 먹을 수 있겠습니까? 창작은 뭔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장 악의적인 파괴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어떻게 뭔가를 만들 수 있겠어요!"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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