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만해라는 존재는 평화 그 자체이다. 평화는 단지 전쟁(싸움)의 부재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부질 없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때 달성되는 것이다. 만해의 시는 이러한 해탈이 사랑의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속박으로 달성된다는 아이러니를 제시하고 있다. 평화는 문명의 궁극적 목표이며 자연의 원상(元相)이다. 평화라는 가치가 없으면 진과 선과 미가 모두 불인(不仁)해진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부재하면 모험조차 불인해진다. 인류의 역사는 과정이며 노경(老境)이 없다. 끊임없는 청춘의 노래이다. 청춘의 꿈은 항상 비극의 결실을 수확하게 마련이다. 이 우주의 모험은 꿈과 더불어 시작하지만 항상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수확한다. 이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만해는 자유라고 부른다. 이 민족에게 자유는 해방을 의미하며 일본이라는 사악한 권력의 패망을 사실로서 전제한다.


(40-41)

논개나 이순신, 김시민, 김성일, 김천일, 최경회 같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 항쟁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또다시 일본놈들이 이 조선삼천리금수강산을 짓밟는 강도질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제2차 진주성대첩 때 성내에 있었던 6만 명의 국민들이 모두 목숨을 던졌던 것이다. 열흘 동안에 25번의 전투가 있었는데 24번을 이겼고 마지막 한 번만 졌다. 그때는 성내에 사람이 없었다. 처절한 전투였는데 결코 일본이 승리한 전투가 아니었다. 조선땅에 있던 왜군 10만이 집결하여 4만 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만 생각하면 치를 떨었고 다시는 진주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3백여 년 후에 일본의 식민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집필하고 있는 이 시점의 정권은 일본의 한국상륙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후회스러운 현실인가! 지금와서 동아시아에 나토 비슷한 집단군사동맹체제를 만든다면 화약고를 자처하는 꼴이 아닌가?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아무리 보수라 할지라도 국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전쟁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닌가!


(44)

민중들의 생활이 다 무너져 젊은이들은 삶을 설계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자식 낳을 꿈도 꾸지 못한다. 물가는 치솟고 세계적으로 모범적으로 의료체졔를 망가뜨려 사기업화시키려 하고, 이상(異常)적인 금융체제 속에서 투자가들은 불건강한 투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동산, 토목공사, 건설업이 모두 건강한 싸이클을 벗어나고 있다. 이에 기후위기가 가중되고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사회통합이나 공통체모랄이 붕괴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독자적으로 해결해나갈 힘이 있다. 만해의 시대로부터 오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진보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은 자력갱생(自力更生)의 자결권을 확보하여 왔다. 이제 와서 반일 종족주의를 반성하고 친일로 나아가자니! 이게 도무지 국가비젼을 만드는 자들이 할 말인가?


(69-70)

나의 정과 한은 님의 이마보다 낮고 무릎보다 얕은 것이다. 나의 손은 낮고, 나의 다리는 짧다. 이것이 인간조건이다. 정하늘에 오르고 한바다를 건너려면, 즉 정과 한을 완성하려면 단 하나의 해결책 밖에는 없다. 님에게 안기는 것이다. 조국의 승리를 믿고 그 품에 안기는 것이다. 배반, 변절 없이 조국의 정과 한을 나의 삶 속에서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정과 한을 통해 정과 한을 극복하는 그 아이러니의 교차점에 님이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인간의 정())과 한()이라는 현실조건을 통해 인간의 이상(理想)을 창출할 수 있는 애국애민의 길을 노래하고 있는 위대한 운문이라 할 것이다.


(79)

만해문학에 쎅씨한 느낌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아름다운 여인 선호 성향운운하는 것은 만해문학의 오묘한 질감을 천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는 것만큼 본다 하는 것이 정론일 것이다. 여기 중요한 것은 젊은 여자가 아니라, 길에는 우주론적 법칙과 인간론적 행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론적 법칙은 객관적인 질서가 나에 선행하지만, 인생론적 법칙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발자취라는 질서에 선행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행동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사전>이 말하는 성지자성야(成之者性也)” 이루어지가는 것이 본성이다라는 인간의 능동성과 책임성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이라는 것이다. 도덕이란 자연의 법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내재하는 것이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 갑니다.”


(83)

만해는 어쩌다 술이 들어 거나하게 취하면 흥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한다.

만일 내가 단두대에 나감으로 해서 나라가 독립된다면 추호도 주저하지 않겠다.”


(90)

여기서 극히 조심해야 할 또하나의 의미의 뉴전(紐轉, 트위스트)이 있다. “인간(人間)사람이라는 만해의 표현이 말해주듯이, 만해의 용례에 있어서 인간사람은 전혀 다른 뜻이다. 같은 말의 반복이 아니다. 지금 우리 현대어에 있어서는 인간(人間)”은 사람을 의미하므로 인간사람이 되면 사람사람”, 즉 동어반복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일본식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한학의 세계에서는 인간(人間)”은 어디까지나 사람사이라는 의미로만 쓰였다. 인간은 사람사이, 혹은 사람사이의 세상, 그러니까 인간은 “man”이 아니라 잭이“society”를 의미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용례가 <장자> 내편의 인간세(人間世)”라는 표현이다. 인간은 곧 인간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논어><맹자>에도 인간보편을 말할 때는 그냥 인()”이라고만 한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은 타인을 말하며 자기를 말할 때는 ()”라고 표현한다.


(114)

만해의 시가 연작시라는 것은 주체의 흐름의 구성이 매우 명료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님의 친묵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별을 이야기한 님의 주제는 이제 마지막에 님의 오심으로 귀결되고 있다. 오서요라는 시는 85번째로 실려 있는데, “오심의 당위성에 관하여 읊고 있다. 님의 오심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고, 그 마땅함을 가능케 한 것은 님을 기다려온 민중의 주체적 역량이라는 것이다. 만해는 이미 25년 전에 광복을 예견하고 독립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133)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의 인권선언을 모태로 한 법질서,

세계사 민주주의의 모범을 달려온

조선민중의 피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이

고작 요 따위 양아치정권일까요?

대통령이 사법 입법 질서를

뭉개뜨리고

매일밤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연산군의 폭정은 개인적 슬픔의 사연이라도

있었습니다.

오서요. 어서 오서요.

이제 엎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끝판입니다.

오늘 우리 민중의 요구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닙니다.

폭정에 대한 해명도 아닙니다.

이 사회의 리더십이 저열해지고

퇴락하고 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현 정권은 역사의 근원적 퇴행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167)

만해, 금강산 표훈사에서 안중근의사의 기대를 읊은 한시를 짓다.

<해주에 사는 안중근> : “일만석의 뜨거운 피와 열말의 큰 담력, 담금질 끝낸 서릿발 칼날 칼집속에 넣어두고, 벽력치는 의용 홀연히 밤의 적막을 깨드리니, 육혈포 탄환은 꽃처럼 날고 가을빛은 드높더라.”


(169)

장남 벽초 홍명희에게 남긴 <유서> :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나 조선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187)

만해,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가출옥(만기 2달 남기고 가출옥시킴은 지속적으로 경찰의 엄격한 감시를 하겠다는 가혹한 행정). 출감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호기있는 답 : “내가 옥중에서 느낀 것은 고통적으로 쾌락을 얻고, 지옥 속에서 천당을 구하라는 말이올시다. 내가 경전으로는 여러 번 그러한 말을 보았으나 실상 몸으로 당하기는 처음인데 다른 사람은 어떻하였는지 모르나 나는 그속에서도 쾌락으로 지냈습니다. 세상사람은 고통을 무서워하야 구차로이 피하고자 하기 때문에 비루한데 떨어지고 불미한 일들을 듣게 되나니 한번 엄숙한 인생관 아래에 고통의 칼날을 밟는 곳에 쾌락이 거기 있고, 지옥을 향하야 들어간 후에는 그곳을 천당으로 알 수 있으니 우리의 생각은 더욱 위대하고 더욱 고상하게 가지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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