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오지원 옮김 / 유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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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최근에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책 읽기의 슬럼프가 왔나 싶었는데, 지난주에 정신병자의 정신 나간 내란 시도 때문에 더욱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구나. 도대체 2024년에 쿠데타를 시도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쿠데타를 시도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느냐 말이야. 즉흥적인 비상계엄인줄 알았는데, 비상계엄 및 내란 실패 후 드러나는 것을 보니, 사전에 꽤 오랫동안 모의를 했던 것 같구나. 그럼에도 그의 생각에 공감을 하는 이가 소수이고, 상식적인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발 빠르게 대처하여 막아낼 수 있었던 것 같구나. 아직도 지난주의 그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아찔하구나. 그리고 그 정신병자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그것도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 중에 있다는 것이 분노게이지를 자꾸 높이는구나.

그런 정신병자와 그 정신병자들에 동조하는 놈들 때문에 뉴스와 관련 동영상을 계속 보다가 책 읽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구나. 그러다 보니 독서 편지를 쓰는 것도 자꾸 미뤄지게 되었어. 오늘은 유튜브를 참고 너희들에게 책 한 권을 이야기해야겠구나. 오늘 너희들에게 소개해줄 책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북리뷰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빠가 책 리뷰를 모은 책들을 여럿 읽어봤지만, 이번에 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가 최고인 듯싶었어. 해박한 지식에서 나오는 품격 있는 글들, 때론 비판적이고, 때론 격조 있는 칭찬으로 하여금 책을 찾아 읽고 싶게 만들었단다.

본격적인 책 리뷰를 하기 전에, 서문을 대신하여 적은 글은 그가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단다. 책에 대한 예찬이라 할 수 있는 그 글은 필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단다. 오늘날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로 인해 책의 위기가 왔다고 하는데, 100년 전에도 츠바이크는 기술 중심의 시대가 되면서 책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를 했더구나. 100년 전에도 굳건히 살아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처럼 책은 또 다른 형태로 사랑을 받으며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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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6)

사람들은 책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기술 중심의 시대가 되었다고 탄식한다. 축음기, 영사기, 라디오가 보다 세련되고 편리한 말과 생각의 전달 수단이 되어 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책의 문화사적 임무는 이제 곡 과거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단순하고 편협한 시각인지! 화학도 책만큼 확산성이 있으며 세계를 떨게 만드는 폭발물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인쇄된 작은 종이 묶음의 항구성을 이기는 그 어떤 강철판이나 철시멘트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전기로 켜지는 불빛이 아직 얇은 책 한 권으로부터 퍼져 나와 깨달음을 주는 빛만큼 우리를 비추어 주지는 못했고,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전류가 하는 어떠한 일도 인쇄된 언어가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 채우는 것에는 비할 것이 못 된다. 시대를 초월해 불멸하고 불변하는 것인 동시에 가장 보잘것없고 변하기 쉬운 틀에 담긴 고도로 압축된 힘인 책은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술 또한 책으로부터 배워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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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던 사람인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듯한 글도 있어 놀랍더구나. 학교가 동화를 망쳐 놓았다고 비판하는 글이 그랬어. 츠바이크는 어른이 되어 우연히 동화를 다시 읽고, 동화의 진정한 마법을 깨달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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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학교가 그렇게 망쳐 놓았다. 독서의 동기는 늘 자기 세계의 경계를 넘으려는, 낯선 것 안에서 길을 잃으려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책 속의 비유에서 자신을 되찾으려는 충동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낯설고 멀고 예외적인 동화 속에서 스스로를 꼬드겨 도망쳤으며, 어디에도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았다. 더 이상 동화가 삶을 상기시키지 않고, 오히려 삶이 동화를 우리에게 멀어지게 한다. 동화는 우리 감정을 진지하게 움켜쥐지 않고 그러 쓰다듬는다. 그것도 아주 가벼이. 내면의 시선에 집중하면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부담 지우지 않으면서 매혹하는 동화는 연기를 매지 않는 불꽃이다. 일상적이고 지극히 통상적인 삶의 놀라운 힘이 동화에는 들어 있다. 꽉 짜인 시간의 법칙은 동화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런 힘을 행사할 수 없고, 끝없는 우연 속에서 일반적인 규칙은 다 사라진다. 이 의미심장한 속의 무의미함이 바로 동화의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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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리뷰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다 보니 츠바이크가 살았던 한 세기 전에 발표한 책들에 대한 리뷰가 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읽는 고전들의 리뷰도 실려 있단다. 프로이트가 70세에 쓴 <문명 속의 불만>과 토마스 만의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라는 책은 당대에 출간된 책처럼 보였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본 제목이란다.

그리고 <천일야화>에 대한 이야기도 실렸어. 당시 동양의 문학 특히 고전이 유럽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기에 <천일야화>를 읽은 츠바이크가 많이 놀랬던 것 같더구나. <천일야화>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 소개하고 해당 내용도 극찬을 했단다. 그가 이렇게 극찬을 하는 것을 보니, 아빠도 <천일야화>를 완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천일야화>가 여러 권으로 분권되어 출간되는데

아빠는 1권만 읽었었거든.. 그 이후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6권짜리 전집을 사긴 했는데, 언젠가 읽겠지 하고 뒤로 미루고 있었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구나. 츠바이크가 <천일야화>에 대해서 극찬한 일부를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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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5)

동방의 이름 없는 이가 쓴 이 비극 안에 펼쳐지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엄청나게 넓다. <천일야화>에 숨겨진 드라마와 비슷한 수준의 훌륭함은 역시 아돌프 겔버가 대담하게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거의 음악적으로 가장 깊은 절망으로부터 그 어떤 구속도 없는 완전함 유쾌함으로 옮겨 간다. <템페스트>에서와 같이 사람 마음속의 모든 요소의 영혼의 파도가 그 안에서 샅샅이 파헤쳐지고, 헤집어졌던 것은 귀향길의 은빛 수면처럼 다시 잔잔히 잦아든다. 동화의 모든 가벼움과 전설의 다채로움이 그 안에서 반짝이고, 이 요동치는 극 안으로 피의 드라마가 단단히 엮여 든다. 권력을 다투는 성별 간의 극심한 전쟁, 정절을 맹세케하려는 남자의 투쟁과 사랑을 향한 여자의 투쟁.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가, 우리를 익명의 위대함에 눈뜨게 한 이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작품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빚은 잊을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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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하여 오늘날도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책 중에 장 자크 루소의 <에밀>과 조이스의 <율리시스>도 소개해 주었어. <에밀>은 교육에 관한 책이고, 예전에 아빠가 어디선가 추천을 받아서 사 두긴 했는데, 엄청난 두께에 읽을 엄두가 나질 않는구나. 루소라고 하면 철학자이기 때문에 <에밀>도 사상서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이라고 하더구나. 츠바이크가 이야기하길 루소의 사상서, 그러니까 <사회계약론>이나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등은 시대가 지나면서 생명력이 사라졌지만, 그가 쓴 예술서 <고백론>, <에밀>, <신 엘로이즈>는 계속 생명력을 유지한다고 했어. 문득 소설이라고 하여 <에밀>을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아직 좀더 생각 좀 해봐야겠구나. 그런데 츠바이크도 <에밀>이 너무 길다면서, 요약본만 읽어도 충분하다면서 위안을 주는구나.^^ 이 책에서는 <에밀>에 대한 평도 있었지만, 장 자크 루소의 이야기한 부분을 너희들에게 발췌해 주고 싶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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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04)

장 자크 루소에게 세계의 변혁은 언제나 옳다. 사회질서가 뒤죽박죽이 될 때마다 그 사회와 관련하여 깊이 묻혀 있던 문제들이 표면으로 올라온다. 한 시대가 국가와 인간의 가장 기저에 있는 토대를 건드리고, 전통을 무너뜨리고 규칙을 흔들 때마다 나는 전령이 되고 충고자가 된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항상 시간의 흐름이 무관한 곳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영원한 변호인으로, 어떤 사회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고 완전히 부인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의 증인으로 그는 서 있다. 루소는 항상 맨 처음부터, 그리고 외부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힘은 마치 지렛대처럼 대상에 바깥쪽에서 작용하며, 어느 한 시기에 갇혀 있지 않고 영속하는 인류 안에 있다. 그는 자기 세대와 그 자신이 속한 국가질서에만 다양한 혁명가가 아니며, 그보다는 공동체에 맞서는 개인 인격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자유를 쟁취하려 투쟁하는 인류를 영원히 수호하는 수호자 같은 인물이었다. 혁명은 그를 인권의 아버지로 내세웠고, 국민의회에서의 연설은 그의 이름을 불멸하는 것으로 새겼다. 그러나 반대 세력은 무정부주의를 탄생시킨 사상가인 그의 시신을 판테온에서 끄집어내 갈기갈기 찢어 남은 것조차 바람에 흩어버렸다. 하지만 세계의 변혁의 바람이 불 때마다 그의 말과 정신은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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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가 평전도 많이 썼는데, 그 중에 발자크에 대한 평전도 꽤 유명하단다. 아빠도 읽어보려고 사 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단다. 오늘은 우연히 사 두고 읽지 않은 책들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구나. 아빠의 게으름을 탓해야지. 오늘 읽은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에서도 발자크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단다. 당시에 10권 짜리 시리즈가 출간했었나 봐. 그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발자크의 작품은 한두 권으로 출간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전집으로 엮어서 출간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야 그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알 수 있다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발자크에 대해 상당히 좋게 이야기를 했단다.

그 밖에 스탕탈의 문학, 릴케의 시, 타고르의 시, 괴테의 시 등에 이야기하고 어느 소녀의 평범한 일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단다.

책이 얇지만, 이 책에 실린 내용은 꽉 찬 내용이었어. 책 리뷰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라고 하는 듯한 글들. 츠바이크의 책은 계속 찾아봐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얼른 정신병자를 자리에서 끌어내야 책읽기 슬럼프에서 벗어날 텐데

 

PS,

책의 첫 문장: 지상의 모든 운동은 근본적으로 인간 정신의 두 가지 발명에 그 근거를 둔다.

책의 끝 문장: 괴테의 시는 그런 운명의 형태를 그저 자기 인생 뒤로 흐르는 배경음악 정도로 여긴 것이 아니라 교향곡처럼 웅장하게 그의 온 존재를 감싸 안는 것으로 여겼으며, 그것은 이 지상에서 다시는 없을 인간의 가슴속에 인간 음악이 되어 흐르고, 불멸하는 예술이 부리는 마법이 되어 우리에게 언제까지나 현재적인 것으로 남았다.


오늘날 우리 정신세계의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지성적 활동은 책에 기초하고 있으며, 물질의 상부에 있는 문화라고 불리는 그 무엇은 책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삶에서 영혼을 확장하고 세계를 건설하는 이러한 책의 힘에 대해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매우 드문 순간에만 자각할 뿐이다. 새롭고 놀라운 것의 존재에 매번 감사함을 느끼는 것과 다르게 책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 당연한 것이 된 까닭이다. 마치 우리가 호흡할 때마다 산소를 들이마시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공급으로 혈액이 비밀스러운 화학작용을 해서 원기를 회복한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책을 읽는 눈으로 끊임없이 영적 재료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으로 우리 정신이 새 힘을 얻거나 혹은 지치거나 한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못한다. - P12

우리가 문학작품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하면 동화는 끝도 없이 쉬워 보이지만 실은 비밀로 가득하고, 무질서한 것 같지만 실은 무의식중에 거대한 법칙을 따른다. 연구자나 학계는 동화의 비밀을 푸는 데, 동화와 민속학과의 관계 혹은 사라진 종교나 신화적이고 에로틱한 상징과의 관련성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서 있다.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지만, 동화는 우리의 시간에서 아주 멀리로부터, 모든 것이 은밀하고 신앙적 놀라움 정도가 사람이 느끼는 가장 활기찬 감정이었던 아득한 옛날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것같이 보이는 이 소소한 이야기들은 수 세기 전부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시간 속을 거닐어 왔고, 그 하나하나가 가장 오래된 숲의 가장 오래된 나무보다도 나이가 많다. - P35

우리와 옛 동화 사이에 시끄러운 도시가 끼어들고, 오래된 숲을 소란스레 관통하는 철도가 요정과 동물의 목소리를, 그들의 다정한 대화를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연 그 자체와 마찬가지인 동화가 때때로 약간은 꾸며 낸 이야기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대도시 한가운데 문을 굳게 닫아건 방 안에서 읽을 때, 동화는 아주 단순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낯설고 특이하게 느껴진다. 숲속으로, 산 위로 던지는 시선이 먼저 자연을, 그리고 동화를 다시 완전히 순수하고 진실한 것으로 돌려놓는다. 자연이 있는 곳에서는 늘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동화 자체의 신비로움이 무모한 공상도 무용한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 주는 까닭이다. - P43

그러나 이 책은 사실 교육학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이 책은 어린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인간을 다룬다. 인간의 시작 단계만 이야기하지 않고, 모든 문제의 시작(그러니깐 그 뿌리)을 이야기한다. 이는 곧 각 개인이 세계와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아이가 부모 혹은 교육자와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한 국가에서 성장한 시민이 국가와 관계를 맺는 것, 그 국가의 제정법이나 관습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의 비유다 이 작품의 정수인 <사부아 사제>에서는 그것이 인간과 그가 믿는 신 사이의 관계로 나타난다. 그의 신과의 관계로 말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은 루소가 최초로 부여한 자유로울 권리를 갖는다. 자신의 신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권리를. - P110

그럼 혹시 선생님은 - 아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 쿠르츠 말러나 헤르더 주더만, 오토 에른스트의 경우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경우도 어느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그 작가들도 대중을 위해 쓰는 건 마찬가지니까. 단지 대중에게 정신적 차원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고상한 목표에서 쓰기보다, 소통을 목적으로 삶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대중이 보기 원하는 대로만 표현하는 면이 있지. 이 작가들도 - 물론 그것도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실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지만 - 자신의 낙관주의에 기반해 쓴다기보다는 군중의 것에 기반해 쓰는 것일 거야. 그들은 대중과 함께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그리고 이런 공통점이 그들을 부정해봐야 소용없도록 만들어 있지.
- P129

여덟 살 아이의 서툰 손으로 조부모의 생일카드에 그리듯 써넣은 글이 괴테 인생의 첫 시였다. 마지막 시는 여든두 살의 노쇠한 손으로 죽기 겨우 몇 백 시간 전쯤에 써 내려간 것이었다. 그렇게 길고 긴 인생 동안 시작의 변치 않은 후광은 이 지칠 줄 모르는 인물을 늘 비추었다. 이 유일무이한 시인이 언어로 기적 같은 자기 재능을 조명하고 뒷받침하지 않은 해가 없었을 것이고 어느 해에는 그러지 않은 날이 어느 달에는 그러지 않은 날이 없었을 때.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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