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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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년 전에 재미있게 읽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란 소설의 작가 앤드루 포터의 새로운 소설집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보았단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작년에 읽었나? 재작년에 읽었나?  헛갈려서 독서기록을 찾아보니, 이런... 2020년에 읽었네. 벌써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4년 전이라니... 요즘 가끔 이렇단다. 작년에 읽은 책 같은데 찾아보면 훨씬 오래 전에 읽은 것으로 판명되는.... 나이를 먹으면서 뇌 작동에 이상이 오는 건지... 이번에 읽은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 <사라진 것들>도 출간된 지는 꽤 되었는데, 알게 된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 읽게 된 것이란다. 아빠가 단편소설보다는 장편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앤드루 포터의 단편소설들은 전에 읽은 책이나 이번에 읽은 책 모두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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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에는 총 15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두어 페이지밖에 안 되는 엄청 짧은 소설부터 중편에 가깝게 긴 소설들도 있었단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십 대 중년의 유부남이 주인공이라는 거야.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 있고, 육아에 대한 힘듦이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몇 년 전 아빠의 모습이 생각나서 공감이 많이 갔단다.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육아는 없겠지만, 때론 자신의 즐거움이 육아로 사라진 것에 대한 솔직한 아쉬움도 소설 속에서 그려진단다. 그 중에 <담배>라는 아주 짧은 소설 속에서 담배를 피지 않는 아빠조차도 담배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히 느껴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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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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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그러면 이번 소설집에서 몇 편을 소개해 줄게. <오스틴> 어떤 파티에서 정말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났단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이는 주인공뿐이었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세월에 묻어나 많이들 변하고 생각하는 것들도 달라져서 한 십대 소년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서로 다름을 느끼게 되었단다. 젊은 시절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던 친구들은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을 거쳐오면서 생각들도 많이 달라진 것 같구나. 아빠가 최근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고 든 생각이었는데, 아빠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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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라는 소설은 데이비드와 내털리라는 부부의 이야기인데, 첼로 연주자였던 내털리에에 어느날 파키슨 병과 관련 있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단다. 소설에서는 파킨슨 병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중년의 나이에 몸에 나타나는 증상에 예민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 소설은 그려졌단다. 이것 또한 공감이 많이 가더구나. 아빠도 몇 달 전에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있어서 재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던 생각이 떠오르더구나. 사십 대가 되면 영양제를 더 찾고 그렇게 되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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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벡>. 리처드라는 주인공에게 20년지기 친구들인 데이비드와 리베카가 있단다. 그런데 데이비드와 리베카는 부부 사이야. 그리고 리처드는 독신이고... 그들은 무척 친해서 늘 이웃에 함께 생활을 해왔는데... .. 그림이 그려지니? 이런 관계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는 소재인데 말이야.. 이 소설은 어떻게 끝은 맺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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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쉬어>. 주인공의 어린 아들이 수영장에서 빠져 죽을뻔한 사고가 있었단다. 이 일로 주인공이 트라우마로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어. 아이가 가끔씩 큰 기침만 해도 그때마다 아버지는 공황장애에 빠지는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났지? 기억이 벌써 가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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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 스티브와 에이미는 부부 사이. 스티브와 폴은 친한 친구 사이. 폴과 일레인은 부부 사이. 그런데 스티브는 정년교수직 임용에 8:7로 떨어지고 말았어. 그런데 그 심사위원 중에 폴이 있었고, 폴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에 강한 의심이 있었고, 정황도 있었어. 폴과 스티브는 여전히 가까이 지내지만, 스티브의 마음 속에서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폴의 집에 방문했을 때, 폴의 집에서 기념품 등 소소한 물건들 이것저것을 슬쩍 집어왔단다. 어느날 그들의 친구 게릿의 부부까지 세 쌍이 함께 파티를 하게 되었는데, 게릿의 아내 린지가 임신을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아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일레인이 임신을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일행들.. 이런 것도 공감이 많이 갔어. 아빠도 아이가 없는 친구가 섞여 있는 무리에서 이야기를 할 때 조심을 하게 된단다. 스티브와 게릿과 단 둘이 있을 때 자신의 임용 결과에 폴이 반대를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자, 게릿은 폴이 스티브를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면서 스티브가 임용이 안 된 것은 폴 때문이 아니라 논문이 부족했기 때문일 거라고 이야기했단다. 그렇지.. 교수 임용이 안되었다고 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야지.. 남을 탓하고 있는 수준이니 교수 임용이 안 되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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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주인공과 별거 중인 아내 알렉시스의 이야기란다. 딸 리아는 주인공과 함께 지내는데, ‘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라 그런지 아내 알렉시스가 참 못 되게 나오는구나. 알렉시스가 우울증을 겪고 있긴 하지만, 딸의 행사에는 참석해 주었으면 했는데, 약속하고 오지도 않고, 여러 번 딸 리아에게 상처를 주더구나이 소설은 남편 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인데, 아내 알렉시스 관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쌍방의 문제, 특히 남녀의 문제는 둘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야.

<히메나>. 이 소설은 주인공 와 아내 칼리의 이야기란다. ‘는 현재 무직이고 상속으로 받은, 많지는 않은 돈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준비하고 있고, 아내 칼리는 직장에 다니고 있단다. 그들이 살고 있는 건물에 히메나라는 예술을 전공하는 여대생이 살고 있었는데, ‘는 히메나와 안면을 튼 이후 많은 시간 히메나와 노가리나 풀고 있었어. 그런 시간들이 쌓여 둘 사이는 애매한 사이가 되었어. 히메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는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  ‘는 스스로 선을 넘지 않았다고 위안을 삼는 듯 했어. 그러면서도 찔렸는지 아내에게는 히메나의 일을 비밀로 했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내 칼리도 히메나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거야.. 이런 관계의 끝도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지만, 선을 넘지 않고 비밀을 지켰다는 이유로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이 소설집의 제목으로도 쓰인 <사라진 것들>이란다. 이 소설도 유부남으로 선을 넘을 듯 말 듯하다가 결국은 선을 넘지 않는 그런 소설이었어. 주인공 와 타냐는 부부 사이이고, 그들에게는 친구 대니얼이 있었어. 그런데 대니얼이 트레일 도중 실종되고 말았단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도 찾질 못해서 장례식도 했단다. ‘는 장례식을 마치고 집 정리를 도와주기 위해 대니얼이 살던 집에 갔어. 대니얼에게는 여친 앙투아네트가 있었는데, 앙투아네트가 홀로 집정리를 하고 있었어. ‘는 대니얼의 집에 이틀간 머물면서 앙투아네트와 집정리를 하면서 대니얼을 추모했는데, ‘와 앙투아네트는 서로 이상한 감정이 생겼어. 어쩌면 그들은 그 동안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가 뜻하지 않게 나타난 일탈인가 싶기도 하고하지만 앞서 이야기했지만 선은 넘지 않았단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40대 유부남인데 이삼십 대의 뜨거웠던 열정이 조금은 식은 시기불 같은 사랑보다는 안정적인 가정을 추구하라는 시기그래도 내적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주인공들을 느낄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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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꿈을 꾼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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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앤드루 포터는 사십 대 유부남의 심리를 잘 파악한 것 같았어. 앤드루 포터의 약력을 보니 1972년생으로 이제는 오십 대가 되었구나. 이젠 오십 대 남자의 심리를 파악하고 있으려나?^^ 다음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오십 대 남자들이 차지하려는지 지켜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며칠 전 밤에 오스틴 인근 웨스트레이크힐스에서 열린 파트에서 바람을 쐬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뒷마당 야외 화로 주위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는 옛친구들을 발견했다.

책의 끝 문장: 이 순간이 계속되는 척할 반시간, 어둠 속에서 고요히, 하지만 둘이서 함께 물에 뜬 채로 누워 있을 반시간, 해가 뜨고 어둠이 걷히면서 이젠 떠나야 한다는 것을,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무언가를 느끼며 깨닫기 전까지의 반시간.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젊은이들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는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된 것일까? 나는 늦은 밤이 의자에 앉아 나 자신에게 종종 그런 질문을 하고 술을 홀짝이며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하지만 어쩐지 더 큰 목적에 이탈해 표류하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벽 바로 뒤에서 그림자가 솟아오르고 더욱 거대한 부재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었다. 이런 기분을 아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쇼팽 음악에 집중했다. 이제는 다른 곡이었다. 녹턴, 섬세한, 서정적인, 부드러운. - P21

지금까지 여러 달을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기다려온 것만 같았다. 이 회색 지대를 부유하면서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는 채로 모든 결과를 조마조마 걱정하고, 혼자 있는 순간에는 요즘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을 견디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 P92

모두가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얼마나 추운지 보여주려고 입김을 불고 있고, 우리의 숨결은 안개처럼 공기 중에 서린 채 멈춰 있다. 그 사진의 재미있는 점은 맥두걸 스트리트의 그 오래된 아파트가 겨울에 얼마나 추웠는지는 기억이 나지만-난방장치가 늘 고장났다-그날이 언제였는지, 그 사진을 누가 찍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진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을지,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버렸을지. - P126

"아까 애들 얘기할 때 말이에요. 내가 하지 않은 말이 있는데, 아이들이 있으면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잡다한 데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개릿이 나를 보았다. "애들이 생기기 전에 나는 경력에 온 신경을 쏟았는데-정말로 그 생각밖에 안 했는데-그러면 너무 비참해졌죠. 그런데 지금은 전혀 신경 안 써요. 그 사소한 문제들, 알잖아요, 그 자잘한 문제들-학과 내 정치라든가 그런 것-그건 그냥 잊게 돼요." - P187

이 식당 밖의 세상에서 내 인생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 어린아이가 둘 있어서 아내와 나는 잠을 거의 못 자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 이 식당에 있으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사십오 분 동안 수프를 먹고 신문을 읽고 가끔은 와인을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식당은 어둡지만 편안했고, 배경음악은 주로 경쾌한 어쿠스틱 멕시코 음악으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나온 오래된 곡들이었다. 손님들도 대체로 나이가 많거나 그렇게 보이는 이들, 모르긴 해도 이십 년, 삼십 년 동안 이곳에 드나들었을 사람들이었다. - P232

그해 봄에는 나이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은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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