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24년 가을호 - 통권 187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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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녹색평론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든단다. 모르고 있는 것이 속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읽지 말까 생각을 하다가도, 한줄기 빛이 되고 있는 녹색평론을 외면할 수 없겠다 생각하여 매번 읽고 있단다. 이번 2024년 가을호에도 아빠를 불편하고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진실들을 많이 다루고 있단다. 이전 녹색평론에서도 자주 다루었던 내용들이라서 새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 문제점들이 바뀌지 않는 것은 심각성을 더하게 하는구나. 점점 심해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쇠퇴가 걱정되고, 점점 심해지는 친일정권의 행태가 걱정되고, 점점 심해지는 인구 소멸 시대에 피폐해지는 농촌이 걱정되고, 무엇보다 점점 심해지는 기후변화의 피해가 걱정되는구나.

민주주의 위기 탈출을 위해 시민 의회와 추첨제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시민 의회와 추첨제 민주주의는 녹색평론에서 10여 년 전부터 이야기를 하던 것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했던 것이란다. 문재인 정부 때 시민 의회의 맛보기와 같은 공론화위원회를 시행하기도 했지만 현 정부는 친일과 가족일에만 관심 있고 그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보니 민주주의는 다시 후퇴하고 있단다. 만약 오늘날 시민 회의나 추첨제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면 일본 핵오염수 유출이나 기후 위기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을까 싶구나. 그런 것을 보면 현재 문제가 많은 가짜 민주주의인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그것 또한 바꾸기 어려운 정치 시스템 속에서 바꿔야 하니 쉽지 않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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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를 갖고 있었다면, 즉 민중이 정치적 의제를 통제할 수 있었다면 기후변화 문제 같은 것은 이미 오래전에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화석에너지의 의존하는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재생될 수 있는 에너지에 기반한 미래를 선택할지 보통의 시민들이 결정할 수 있었다면 오늘 우리는 매우 다른 궤도 위에 있을 것이다. 금융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 선출된 정치가들을 위해서 미래세대의 삶, 3세계, 농촌을 사지에 몰아넣을 결정을 할 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를 갖고 있었다면, 우리는 지구의 안녕과 문명의 존속을 위해서 지금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있을 것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이 폴리스의 안명이 자신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근대국가의 민중들은 정치에서 완전히 배제, 소외된 채 깊은 좌절감과 무력감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뒤죽박죽이 된 현 상황에 대해서 자신에게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런 비정치적(무비판적) 태도가 현상 체제를 강화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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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써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가 시작된 지 1년이 되었구나. 얼마 전 뉴스에서는 해산물에서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하라면서 대서특필을 하더구나. 고작 1년이 지났는데, 자랑하듯이 이야기하더구나. 핵오염수가 해류를 통해 바다 생물들에게 영향을 받으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어, 그리고 1년만 버리고 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방류될 텐데, 진정 걱정이 안 된단 말인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고 우리나라 국민을 보호하자고 문제 제기를 하면 괴담이라고 큰소리치면서 공격하고. 아주 작은 확률의 위험성이 있다고 해서 귀담아 들어보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계속 연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이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늦었지만 정부의 진정한 태도가 아닐까 싶구나.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알 수가 없구나. 왜 그렇게 일본에 고개를 숙이는지 이해가 안 되더구나. 무슨 큰 약점이 잡혀 있는 것인지

녹색평론에서 예전부터 이야기한 것처럼 방사능 수치에는 기준치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어. 사람마다 받는 영향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기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지. 어떤 나라가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오면 그 기준치를 올려버리면 되는 거야. 참 편한 방법이구나. 핵오염수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삼중수소도 마찬가지야. 나라마다 삼중수소 음용수 기준은 제각각이라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삼중수소 음용수 기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무척 낮다고 하는데, 아마 저 수치보다 높은 삼중수소가 발견되면 다른 나라의 기준을 따른다면서 기준을 올리지 않을까 싶구나. 아무런 의미 없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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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오염수 안전처리 기준치가 나라마다 다르고 일본의 삼중수소 배출 기준은 해양생태계에 안전한 기준치가 될 수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실제 삼중수소 농도는 74Bq/L인데 일본의 원전 기준 삼중수소 농도가 6Bq/L이기에 이를 희석해 1,500Bq/L로 줄여 음용수 기준에 맞게 방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음용수 기준은 미국이 740Bq/L, 유럽이 100Bq/L, 미 캘리포니아주는 15Bq/L이며 우리나라 환경부의 고시 기준은 놀랍게도 6Bq/L이다. 방사선 기준치는 행정 편의의 산물이다. 정상 운영 중인 원전인 월성원전의 실제 삼중수소 배출치가 13.2Bq/L라는데 그렇게 해도 핵종의 배출 총량은 변함없이 바다에 축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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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수소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 해볼게. 아빠도 이번 녹색평론을 통해서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자세히 알게 되었거든. 일반 수소는 수소원자가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삼중 수소는 수소원자가 3개로 이루어져 있는 물질로 방사성 물질로 분류되기 때문에 관리를 잘 해야 한단다. 아무데다 막 버려서는 안 되는 물질이야. 삼중수소는 생식세포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 핵오염수를 통해 삼중수소가 계속 바닷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바다 생물에 영향을 주고, 바다 생물에 누적된 삼중수소는 상위포식자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인간에게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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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미국의 핵융합 전문가인 아르준 마키자니 박사는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삼중수소는 높은 방사성물질이기에 인체와 다른 생명체에 위험을 끼친다. 자궁에 형성되는 시간과 성숙되는 시간 동안 난자에 영향을 줌으로써 삼중수소는 임신 중에 미래세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자와 정자세포에 포함해 있기 때문이다. 삼중수소는 임신 초기 유산이나 기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영향 중 일부는 저선량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특히 중추신경계 형성에 대한 일부 유형의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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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후 변화에 대처하지 않으면 일본 핵오염수가 인류에 영향을 받기 전에 먼저 인류가 멸종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최근 기후 변화에 따른 피해가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니 이 또한 걱정거리로구나.

 

2.

진작부터 탈성장을 했어야 했단다. 제한된 지구라는 공간에서 제한된 자원으로 언제까지 성장을 할 수 있겠니. 결국에는 기후변화의 위기에 봉착을 하게 되었구나.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아직도 성장을 꿈꾸고 있으니,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에 읽은 <찬란한 멸종>에서 이야기하듯이 이젠 멸종의 길을 손잡고 갈 수밖에 없는가. 탈성장의 대안으로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녹색평론에서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힘을 안 쓰고 있구나. 남일 보듯 하고 있어.

아빠가 생각하기에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오선적으로 농촌 기본소득을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 터를 잡게 하는 거지.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자체와 단체에서 농촌 기본소득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생색이나 낸다고 찔끔 주는 것이 아니고 좀더 큰 금액을 주어서 살림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그 예산을 어디서 가지고 오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농업예산이 전체 예산의 2.8%밖에 안 된다고 하는구나. 농촌과 농업을 살리려는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니? 농촌과 농업을 살리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 예산을 좀 늘려야 하지 않냐 말이야. EU의 농업예산은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하더구나이게 진정한 미래를 위한 예산 분배가 아닌가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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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유럽은 농부의 나라로 불린다. 농업의 경제적 가치와 상관없이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유럽연합(EU)에 속한 27개국은 공동농업정책(CAP)이라 불리는 농업정책을 공유하는데, 이 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다양한 규제와 농업정책을 공유하는데, 이 정책에 따라 농민들은 다양한 규제와 지원을 받는다. CAP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부터 시행됐다. 그래서 과거에는 식량자급률 제고를 위해 시장가격을 지지하고 농민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직불금 제도 등에 집중했다. 현재는 농촌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직불금 제도 등에 집중했다. 현재는 농촌의 환경적 기능과 기후위기 대응에서 농촌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이를 지원하는 예산을 늘리고 있다. 2022년 기준, EU 전체 GDP(국내총생산)에서 농업의 경제적 가치는 1.4%에 불과하지만 직불금 등 농업예산은 EU 전체 예산의 3분의 1에 달한다. 2024년 전체 예산 가운데 2.8%가 농업예산인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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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미래에는 다시 농업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하더구나. 그런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니? 기후 변화로 인해 올 여름 정말 더웠잖니. 그렇다 보니 농작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배추, 시금치 등 농작물의 가격이 엄청 올랐단다. 하지만 정부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구나. 뭐 하기야 현 정부에 무엇인가 기대를 하는 것이 잘못이지.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생각하니 북한의 오물 쓰레기가 생각나는구나. 마침 북한의 오물 쓰레기 관련된 내용도 이번 녹색평론에도 실려 있단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최근에 툭하면 문자로 북한에서 날라오는 오물 쓰레기를 조심하라는 안내를 받는단다. 그것도 정부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북한에서 오물 쓰레기를 보내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먼저 북한으로 엄청난 양의 대북전단 풍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로 인해 휴전선 인근의 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보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당국에서는 그들의 행위를 눈감고 있단다. 북한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보내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오물쓰레기를 보내지 않겠다고 했으니 속는 셈 치고 그들의 말을 믿어 보고, 먼저 우리나라에서 보내는 대북전단 풍선을 보내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봤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보내지 않는데도 북한에서 계속 오물 쓰레기를 보낸다면 그때 군사적 조치를 취하든 말든 생각해 보고 말이야. 이렇게 일차적으로 더 쉬운 방법이 있는데, 뭣 때문에 안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더 웃긴 것은 북으로 보내는 대북전단 풍선이 바람의 방향이 맞지 않아 북으로 가는 것은 10퍼센트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 우리나라 영토에 떨어져 쓰레기가 된다고 하는구나. 이런 짓을 왜 하고 있으며, 이런 것을 하는 돈은 어디서 났으며,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는 이런 짓을 왜 막지 못하는지 답답하구나. 총체적인 난국이구나.

녹색평론은 이번 호에도 서평을 통해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해 주었단다. 너희들을 교육 경쟁에서 풀어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는 아빠에게 눈에 띄는 서평이 하나 있었단다.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라는 책의 서평인데, 이 책은 기회되면 한번 읽어보고 싶더구나.

..

오늘 독서편지를 쓰면서 아빠의 분노게이지가 좀 올라간 것 같구나.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평온을 되찾아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지금 우리가 비교적 평온한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의 인지적 한계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이 래디컬한 민주주의자의 숙명 아닌가?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불신, 기성체제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이 극단적 구호를 외치는 선동가 정치인들을 키우고 있다. 올여름 유럽에서 치러진 선거들에서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이지만, 극우 정치세력들이 전 세계에서 확실하게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이 현상은 더 이상 특성 지역에서 일어나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신흥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대체로 과거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면서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세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인 경제적 사회적 곤경을 엉뚱하게도 이민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킨다. 이들은 정치적 자원을 독식하면서 민심을 잃은 엘리트 지배층과 거리를 두는 척하면서 개혁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기자신들과 과두 금권정치의 배후세력 ‘1%’의 권력을 키우고 호주머니를 부풀리는 데 몰두하여 전쟁까지도 불사한다. - P3

카터(미국 전 대통령)는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의 무서운 성장은 현명한 투자에 의해 촉진되고 평화에 의해 활성화했다. 1979년 이후 중국은 단 한 번도 전쟁하지 않았다. 미국은 계속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242년 역사에서 오직 16년 동안만 평화를 즐기며 ‘세계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가 되었다. 다른 나라들에 미국의 원칙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경향 때문이다." - P43

하비는 폴라니를 인용하여 이렇게 썼다. "자유라는 아이디어가 ‘고작 자유기업을 옹호하는 것으로 타락’하게 된다. 그것은 ‘소득, 여가, 사회보장이 개선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완전한 자유를’ 가져다주지만, ‘자신들이 가진 민주적 권리들을 활용해서 자산가들의 권력으로부터 대피할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서 헛된 노력을 되풀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 되지도 않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권력과 강요가 없는 사회가 없고, 권력이 아무 기능을 하지 않는 세상도 있을 수 없다’면, 자유주의 유토피아라는 비전도 물리력, 폭력, 권위주의에 기대지 않고서는 지탱될 수 없다. ㅍ폴라니는 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유토피아주의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고, 필연적으로 권위주의나 혹은 아예 노골적인 파시즘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좋은 자유들은 실종되고 나쁜 자유들이 군림하게 된다." - P63

늙어감은 두려운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늙어가는 신체를 통제하는 데서 시작한다. 주름을 줄이고, 체취와 하얗게 세는 머리는 가능한 한 감춰야 한다. 늙어감을 역행하며 시간을 멈추는 억지 행위를 자기권리, 자기계발이라고 믿는다. 시간의 흐름이 잠시나마 멈춰 선 외모를 만드는 건 지극히 사회적인 행위다. 반면에 사회적인 삶이 정리된 때쯤 외모 관리를 멈춘다. 이렇게 외모의 관리란 사회적인 활동을 지속하는지 알리는 신호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상성에 갇힌 노인세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경제성정을 이루고 경제위기를 극복했던 노인들의 삶의 태도지만, 동시에 늙어감을 경계하는 처지가 묻어난다. 노인들의 엄격한 이분법은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일을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기보단 자기자신을 스스로 사회의 잉여 처지에 놓았다. - P153

사람들은 입만 열면 배고파 죽겠다, 돈 없어 죽겠다, 그리워 죽겠다 하고 아우성이지만 과연 죽을 만큼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돈이나 밥, 사랑 등은 없으면 괴롭기야 하지만 그로 인해 바로 죽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소중한 이유는 내게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에게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있는가? 아니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 그런데 생명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괴롭고 비참한 상태에 있다면 오히려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의 심정이 아마 그러할 것이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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