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고에너지,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산업 모델은 어떤 식으로든 폐기될 수밖에 없고, 자원을 덜 쓰면서 필요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의료공공성을 확보하는 일은 몹시 중요하다. 어디에서든 누구든 필수의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차원에서 실패하고 있는 상품들(의사, 약품, 기술)에 의존하는 시스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환원주의적, 기계적인 세계관과 문화를 그대로 둔 채 공적인 개입과 비용을 늘리는 방식은 명백히 한계가 있다. 우리는 왜 질병의 결과와 비용을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인을 제거하라고 정치에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더 많은 병원 병원과 의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런 것들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과 생활조건을 위해서는 왜 노력하지 않는가.

 

(11-12)

공공의료가 취약하다는 것은 전체 의료시스템의 취약성을 의미한다. 민간 의료기관은 공적 자원을 기대할 수 없어 생존을 위해서도 수익성에 기반한 경영전략을 펼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진료분야는 기피하거나 소극적이게 된다. 아무리 필수분야 진료기능이어도 기대수익이 약하면 투자하지 않는다. 중소 병원이나 사립대학 병원도 마찬가지이다.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서 가능한 많은 이익을 내고자 한다. 진료기능이 편중될 수밖에 없거니와 의료내용이 적정선을 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비보험 분야의 확대 그리고 피부, 미용 분야로의 의사 쏠림 등은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14)

기후위기는 건강위기이고 심각한 건강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다. 홍수, 가뭄, 이상기온 등 극심한 기후변화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환경재난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대응력이 부족한 취약 계층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기후위기의 심화로 코로나 같은 전염병 재난은 반드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복합적인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서 의료의 준비는 중요한 분야의 하나이다. 이는 수익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인류의 안전을 위해 아주 시급한 과제이다. 의료분야 탄소 발생 감소를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지금의 조건에서는 진척이 어렵다. 의료공공성의 토대가 미약하여 이를 추진할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31)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절반가량을 10%의 부유층이 배출하며, 특이 이들이 투자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어내는 거대 기업을 통해서 배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중과세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다. 이는 토마 피케티 등의 세계불평등연구소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의 제안이기도 하다. 여기서 탄소세와 비교하면서 토론해보자. 흔히 탄소세는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는 과제이며, 또한 탄소 배출(혹은 에너지 소비)을 감축하는 방안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이 보여준 것처럼, 탄소세는 부가가치게와 유사한 간접세로서 소득역진성으로 핵심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 오히려 조세불평등으로 사회적 저항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공공재생에너지의 조세 전략은 시민들의 필수적인 에너지 소비에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과 대기업들의 소득과 이익에 과세를 하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정조준한다. 이런 기후정의세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불필요한 소비를 낳는 핵심적 원인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제이슨 히켈과 같은 탈성장론자의 인식이기도 하다.

 

(40)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둘째 치고, 서울시의 장래 교통정책은 대중교통의 수요를 늘리는 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사실이다. 요금을 올려 놓고 이용자가 줄지 않았어!”라고 환호성을 올릴 때 득은 버스를 운영하는 민간사업자와 보조금을 지급하는 서울시로 흘러가는 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부담은 더 커지고 기후위기 대응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교통요금 인상이라는 것은 전형적으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현재의 부담을 차별적으로 분배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57)

굳이 의료제도가 상이한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한국 의사수가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점은 한국 보건의료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다. 한국의 의대 정원은 1990년대 중반 의대가 9개가 마지막으로 신설되며 3,300여 명으로 늘었다가 의약분업의 여파로 2006 3,058명까지 줄어든 뒤 2024년까지 18년째 동결돼 있다. 그사이 보건의료분야의 규모는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2000년 한국의 경상의료비(총 의료비) 25 1,230억 원이고 GDP 대비 3.9%를 차지했다. 2022년 기준 경상의료비는 209 460억 원(잠정치), GDP 대비 9.7%이다.

 

(71)

미세먼지들이 자욱한 공기를 마시고, 미세플라스틱이 부유하는 물을 마시고, 항생제 투여된 고기를 먹고, 농약 묻은 야채를 먹고, 화약약품으로 숙성시킨 과일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내부로 집착된 시선을 지속한다. 살벌한 경쟁의 기업문화 속 스트레스가 만연한 직장을 다니고, 휴식하고 운동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365일 자영업장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가시화되는 상황에서도 몸 내부로 향하는 강력한 시선의 방향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다시 나누어진 부분의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의 관성을 멈추지 못한다. 발암물질, 미세플라스틱이 이미 하이브리드된 몸인데, 의료는 자꾸 이 몸의 순수성을 말한다. 지금의 의료에서 몸과 몸 밖의 관계성은 무시된다. ‘관계없는 의료가 지금의 의료를 특징짓는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간 병원에서 질책의 말을 듣는다.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하셨어요.”

 

(104)

자연환경이 훼손된 곳에는 독성을 가진 식물이 곧잘 번식해서 풀을 먹이로 하는 가축들에 해를 끼치기도 하고, 농업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에 위협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 이 식물들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근원을 제압해서 생태계가 스스로 재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이라는 개념은 생태적인 게 아닙니다. 문화적인 것이지요. 지구의 관점에서는 독()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126-127)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하루라는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돈은 다르다. 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부자에게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솜방망이 처벌이 되기도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도저히 마련할 길이 없어 꼼짝없이 감옥에 갇혀야 하는 무거운 형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은 한국 같은 총액 벌금제를 진작 넘어서, 소득, 재산 비례 벌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192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2024년의 한국이 1921년의 핀란드보다 못할 수는 없다. 그만큼도 따라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저 정부와 국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곤궁한 처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해 동안 5만 명이 감옥에 갇혀도, 세상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권 들어서는 부자감세로 부쩍 줄어든 세수를 벌금 등의 세외 수입으로 만회하려는 꼼수까지 작동하고 있다. 죄와 벌은 무엇보다 공평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부자에게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에겐 불리한 상황이다.

 

(143)

금년 봄, 사과값이 상승하면서 드디어 기후변화 문제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가 기후변화라기보다는 단순한 농산물 유통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사과 산지로 유명한 곳은 대구이다. 1897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대구 주변에 사과나무를 심고 주민들에게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배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 대구는 우리나라 사과 생산량의 80%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지후변화로 인해 대구지역 사과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사과 산지가 북상하여 충주나 포천 지역이 주요 사과 산지가 되었다.

 

(177)

그리고 현재는 있는 줄도 몰랐던 정치행태를 이런 종류의 독재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민주주의라는 현재 인류 최고의 시스템도 악착스런 인간의 탐욕에 대한 제대로의 제어장치는 제어장치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은 무척 변한 것 같아도 그 근본에서는 70년대와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209)

병에 이유가 없다는 건 아프고서야 겨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다. 병을 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나는 애써야 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담배를 자주 피워서, 고기를 많이 먹어서, 운동을 하지 않아서….. 탓하려는 모든 것을 탓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병균이나 독성물질에 의한 몇 가지 질환을 제외하면 아직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 있거나,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인과관계가 단순한 질환은 거의 없다.”(<죽음을 배우는 시간>, 창비, 2020). 전적으로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긴 했지만 나는 현대의학의 무능함에 정말 크게 놀랐다. 지난한 지료과정에서 내가 의학에 대해 단 한가지 제대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이 여타 다른 학문이 그러하듯, ‘모른다의 세계에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몸의 일은 기계와 달라서 정답의 세계에 있지 않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로봇과 AI를 위시한 의료산업이고, 의료진과 환자 모두 자본이 속삭이는 완치의 약속에 휩쓸린다.

 

(236)

국민 여러분께 더 가까이, 민생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국민의 삶을 더 적극적으로 챙기겠다.” 22대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 총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한 말이다. 여당의 총산 패배에 대해 사과하면서 민생을 강조하던 이날의 담화문에[서 윤석열 정부 지난 임기 동안 내내 붙어다니던 원전생태계 복원도 등장했다. 민생(民生). 단어 그대로 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 생명을 가진 백성을 의미한다. 민생을 위한다면 그것이 적어도 어떤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고 정치, 이념과 상관없이 일반 국민의 생활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원전이 민생이라는 이상한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이 나라의 대통령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한결없이 핵 진흥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 그에게서 핵 진흥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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