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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3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현기영 님의 <제주도우다> 마지막 3권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이미 2권에서 제주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지고,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느낌이 있었잖니. 남로당은
불법으로 규정되어, 남로당 수속의 사람들은 수배자로 지목 받아 도망을 가고, 학교들은 휴교를 했단다.
극우주의자 도지사인 유해진이
취임하면서 데리고 온 서북청년단은 그 이후로 수가 늘어났고, 그들은 제주도 경찰의 고위직을 차지하면서
더욱 영향력을 키워갔어. 서북청년단(서청)은 빨갱이들을 잡겠다면서 제주도민들을 탄압하고 약탈을 일삼았단다. 서청의
눈에는 제주도민들을 모두 빨갱이로 보았어. 남로당과 조금만 관련 있으면 구타를 하고 잡아서 고문을 해댔단다. 하지만 그런 서청의 만행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어.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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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
남로당이
불법화되자 그때부터 서청의 민중 탄압은 더욱 포악해졌다. 이 무렵에 많은 서청 단원들이 경찰로 특채되었고
제주경찰서 서장도 서청 출신이 되었다.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한라산에 백두산 호랑이가 왔노라! 공포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었다.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공포였다. 구타가
일상화되어 한번 걸려들면 언제 끝날지 모를 고문과 구타를 견뎌야 했다. 남로당의 민애청 소속 청년들은
지하로 더욱 깊이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민애청에 속하지 않은 청년들도 잡히면 민애청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무조건 도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상이 있든 없든, 뭔가 한 일이 있든 없든 간에 잡히기만 하면 무조건 개 패듯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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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리의 청년들도 대부분 산으로
도망을 갔단다. 밤에만 가끔씩 마을에 내려왔다가 가곤 했어. 이를
알게 된 서청은 남아 있는 조천리 마을 사람들을 더욱 괴롭혔단다.
…
1948년 1월 22일. 남로당 제주도당의 명단을 경찰에서 찾아냈고, 이로 인해 대거 검거되는 사건이 벌어졌단다. 그리고 2월 7일에는 전국적으로 남한 단독 선거에 대한 반대투쟁이 일어났는데, 제주도에서도 이 투쟁이 일어났단다. 제주도민과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어. 산 속에 숨어 있던 조천리 청년들도 우르르 몰려나와 이 시위에 참석을 했단다. 16살이 된 안창세도 그들을 도와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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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3)
그렇게
공포에 짓눌린 가운데서도 단독선거 반대를 내건 2.7사건이 터졌다. 설마설마하던
남조선만의 단독 선거 책동이 1월 중순이 되자 바로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는데, 5월 10일 이전에 남쪽만의 선거를 치른다고 했다. 지난 삼년 동안 온 나라 백성이 갈구해온 통일국가의 꿈에 대한 공식적인 전면 부정이었다. 온 천지가 분노와 탄식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남로당과 민전이 2월 7일을 기해 전국적 총파업을 일으키고 김구와 김규식 등 우익
세력이 이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단독선거 반대의 함성이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터져나왔다. 공장 노동자, 부두 노동자 들이 파업을 단행했고, 전기 노동자는 송전을 중단했고, 철도 노동자는 철도 운행을 중지했고, 통신 노동자는 통신을 두절시켰다. 수많은 학생, 농민, 노동자들이
가두시위에 나섰고 경찰지서들이 공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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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경찰에 잡혀 갔던
조천 중학원 학생 김용철이 모진 고문과 구타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조천리 사람들은 모두
분개하였고, 진상 규명을 위한 투쟁을 결의했어. 의병을 봉기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가지고 무기가 없어서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온건파들도 있었어. 그런데 서청과 경찰에 의해 죽는 제주도민들이 계속 늘어만 갔단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지.
1.
드디어 1948년 4월 3일 밤. 청년들은 행동을 하기로 했단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어 대부분 죽창을
들었단다. 그들은 경찰서를 습격하기로 했어. 무기도 없었지만
그들은 경험도 없어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단다. 그날의 시위는 실패도 끝났다고 볼 수 있어. 하지만, 경찰 당국은 약 한 달 간 시위대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어. 조천리에도 불안하지만 간만의 평화가 찾아왔단다. 당시
제주도 군대를 이끌던 9연대장 김익렬은 더 이상의 충돌은 막아야겠다고,
산 부대 사람들과 대화를 풀어보려고 했어. 하지만, 경무부장
조병옥은 그런 김익렬을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고 잘라버렸어. 그리고는 내륙에 있던 11연대(연대장 : 박진경)을 불러들여 치안을 맡겠어. 박진경은 강경파로 일본 관동군 출신으로
제주도민 30만명을 모두 죽여도 좋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어.
…
1948년 5월 16일은 남한 단독 선거일이었는데, 그 전까지 전국적으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단다. 미군정은 대대적인 제주도 토벌 작전을 결정했단다. 조천리
사람들을 비롯하여 제주도민들은 자신들의 반대 시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했어. 남한과 북한이 둘로 나뉘어진다는데
어떤 백성이 이를 좋아하겠니. 반대 운동은 상식적인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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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6)
조천리
사람들은 목장에 도착한 즉시 이슬 젖은 풀밭에 선 채로 얼마 동안 집회를 가졌다. 조천리와 와흘리 산부대
청년들 몇 명이 번갈아가며 연설을 했다. 저놈들은 우리를 반역자라고 하는데, 왜 우리가 반역자인가? 우리는 미군정에 반대하는 것이지 민족에 반역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통일 정부를 세우자는 주장이 애국이지 왜 반역인가?
오히려 단독정부를 지지하여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반역 행위다. 이 나라의 허리를 잘라서는
안 된다, 국방경비대는 우리 편이니 곧 해결이 날 것이다 하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하는 행동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큰
죄를 짓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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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토벌을 결정한 미군정은
로스웰 브라운 대령을 토벌대 대장으로 정했고, 박진경이 이끄는 11연대가
토벌 작전을 함께 했어. 그들의 토벌 작전은 제주도민 전체를 상대하는 듯했어. 민간인들 학살도 서슴지 않았고, 5월에만 3000 여명의 민간인들을 잡아들였어. 그들의 만행이 심해지자 이를
참지 못한 군인들도 있었단다. 1948년 6월 18일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만행을 일삼던 11연대장 박진경을
죽였단다.
박진경 후임으로 송요찬 중령이라는
사람이 11연대장을 맡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어. 민간들을
잡아 무차별 고문하고 총살시키는 것은 계속 이어졌어. 전국적인 남한단독정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1948년 8월 15일 결국
남한단독정부는 수립되었단다. 이후 산부대 사람들의 투쟁도 힘을 받지 못하면서 이탈자와 변절자들이 생겨났다고
하는구나. 누가 그들을 탓하겠니.
2.
안창세는 그 동안 산부대 사람들의
연락책을 했는데, 함께 연락책을 하던 동료가 잡혀가서, 외삼촌이
운용하는 말 목장으로 도망을 갔단다. 그곳에 누나 안만옥이 있었는데,
창세는 누나와 함께 말들을 보살피면서 지내고 있었어. 산부대 사람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밀항으로 제주도를 빠져나가기도 했어. 미군정의 토벌 작전은 멈추지 않았고, 남아 있는 산부대 사람들과 산발적인 전투가 이어졌다고 하는구나. 제주
토벌 작전이 길어지면서 여수 지역의 14연대를 제주도로 투입하려고 했는데, 이를 반대하면서 봉기가 일어났다는구나. 이것이 여순민중항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지. 미군정 토벌대는 방화작전까지 펼쳐 불을 질렀단다. 불을
피해 내려오는 이들에게는 무차별 사격을 했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죽이라고 하는 초토화 작전이었어. 불은 산뿐만 아니라 산부대 사람들이 마을에도 몰래 내려왔다 가니 마을도 불질러 버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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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90)
방화에
살인에 도취된 자들이 환각 속에서 계속 불을 지른다. 고함치고 총을 난사한다. 겨우 불을 피해 벗어난 사람들을 향해 총알이 사정없이 날아간다. 참새떼가
날고, 닭이 날고, 사람들과 개, 돼지, 소, 말 들이
달아난다. 총격에 쫓긴 사람들이 혼비백산 울담을 타고 넘어 산 쪽으로 도망친다. 근처의 대숲이나 덤불숲에 뛰어든다. 닭들도 덤불 아래로 오르르 숨어든다. 죽어가면서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내년 농사를 위해 보관 중이던
씨앗 망태가 타고, 이 집 저 집 곳간에서 쥐를 없애고 곳간을 지켜주던 업신 구렁배암들이 타 죽는다. 닭 한마리라도 구해보려고 옆구리에 끼고 달아나던 소년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울담을 넘어 도망치던 청년이 총에 맞아 돌덩이 하나 가슴에 안고 엎어지고, 아기 안은 아낙이
솜옷 입은 등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른 채 허둥지둥 달아나다가 쓰러진다. 쌀독은 물론 간장독, 된장독, 부엌의 물 항아리, 솥단지들이
개머리판에 맞아 와장창 깨진다. 죽음의 위협을 느낀 노파들이 궤 속에 보관 중이던 호상옷 보따리를 챙겨
허리춤에 매고 불 밖으로 나가려고 허둥대고, 매운 연기를 마시고 캑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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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렇게 점점 수위를 높이는
것은 빨리 토벌을 끝내라고 하는 이승만 정부의 명령도 있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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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00)
하늘이
무너져내린다. 어느 순간 검은 구름이 크게 찢기면서 그 틈새로 기울어진 저녁 햇빛이 폭포수처럼 눈부시게
쏟아진다. 그 사다리를 타고 주황빛 불의 날개를 펄떡거리면서, 불의
칼을 휘두르면서 수많은 천사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불의 칼,
불의 날개들이 이글거리면서 지상을 휩쓴다. 하느님이 명령한다. “그러니 너희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라!” 최고 사령관
로스웰 브라운이 단호하게 천명한다. “사태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이다!” 이승만이 명령한다. “공비 토벌을
빨리 끝내라. 시일을 끌면서 이렇다 저렇다 보고하지 말고, 공비가
없어졌다는 보고를 듣고 싶다.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불순분자를 제거하라! 지체 말고 단숨에 처리하라! 가혹하게 응징하라!” 조병옥이 맞장구친가. “온 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버려야 한다!” 월남민 교회의 목사가 설교한다. “한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서청
여러분을 위해 하느님께 축복을 청합니다. 여러분의 승리는 곧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어서 그 붉은 무리들을 소탕하고 오시오!” 연대장 송요찬이 외친다. “일본 군대는 이러지 않았어! 더 잔인하게! 더 잔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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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의 대토벌 작전으로 안창세의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말았는데, 이 일로 목장 일만 하시던 외삼촌도 산부대에 합류하셨는데, 창세도 외삼촌과 함께 다시 산부대로 갔어. 계속되는 토벌 속에 겨울이
다가왔단다. 산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또 하나의 고통이었어. 그들은
동굴을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지냈단다. 무기와 식량이 떨어지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단다. 이탈자도 늘어나고 체포되는 사람들도 늘어났어. 토벌대는 이들의 어려움을
봐주지 않고 더욱 악랄해졌단다. 산부대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는 동굴을 발견하게 되면 동굴 안에 수류탄을
던지고 동굴 입구에 매운 연기를 피워서 동굴 안으로 불어넣었단다. 토벌대와 경찰들은 모두 미쳐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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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직급의 경찰에게 즉결처분권이 주어져 있었다. 고문과
살인이 너무도 흔해졌고 그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 무서운 광증은 집단 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광기에 중독된 자들이 법을 가진 자, 법을 쥔
자가 되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죽이고, 시키지 않아도
내 마음대로 죽이고, 닥치는 대로 마구 죽였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인간에게 목숨을 준 신에게만 그것을 빼앗을 권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을 때 그들은 마치 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것 같은 황홀감을
느꼈을 것이다. 사람 죽이는 일은 죄인데 마음대로 죽여도 좋다니, 게다가
그것이 애국 행위라니, 참으로 기묘한 희열이고 최상의 쾌락이자 최고의 자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힘에 도취되었다. 희생자들은 그렇게 죽어 마땅한 존재처럼
보였다. 매일 한명이라도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고 떠벌리는 자들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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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세도 결국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귀순하기로 했단다. 귀순을 하더라도 총살당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창세는 다행히 매만 맞고 석방되었다고 하는구나. 도대체 제주도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들은 그저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것에 대해 걱정되어 평화시위를 했을 뿐인데
말이야. 이는 백퍼센트 국가가 잘못이란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수십 년간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숨죽여 지내야 했단다. 결국 수십 년이 지나서야 국가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국가추념일로 지정하여 매년 그들의 억울한 넋을 기리는 행사를 하고 있단다. 그런데 아직도
간혹 우익인사 중에는 4.3사건에 대해 거짓을 이야기하기도 해서 울분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단다.
현기영 님의 <제주도우다>를 읽으면서 예전에 읽은 김용옥 님의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라는 책이 생각났단다. 혹시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현기영 님의 <제주도우다>를 읽게 된다면 김용옥 님의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라는 책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구나.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3.1절 총격 사건 이후 반년 가까이 계속된 경찰의
가혹한 탄압은 도민의 가슴에 깊은 적개심을 심어주었다.
책의 끝 문장: 사나 사나 사니나 사나
미군정은 서청에 이어 도내 우익 청년 단체도 경찰 보조 인력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10월 말경에 미군방첩대의 지휘 아래 몇 개의 군소 우익단체를 합친 단일조직체 대동청년단(대청)이 결성되었다. 그동안 여론에 밀려 좌익이 붙인 삐라를 떼고 그 위에 자기네 삐라를 덧붙이는 따위의 소극적인 활동밖에 할 수 없었던 그들이 아연 활기를 띠며 수배당한 청년들이 지하로 잠적하여 생긴 빈 공간을 차지하려 달려들었다. 서청과 마찬가지로 경찰을 도와 피의자 검거에 나서는 무서운 존대로 변신한 것이었다. 우익 학생 조직인 학생연명(학련)의 활동도 활발해졌다. 그들은 세를 불리려고 시국 강연회, 삐라와 포스터 살포 활동을 맹렬히 벌여나갔다. 이제 법을 쥔 자는 우리다! 우리가 법이다! 우리 말이 법이다! 우리가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다! - P41
"자, 여러분, 이제 울음을 멈춥시다! 언제까지 우리가 울기만 할 겁니까? 언제까지 우리가 매 맞기만 할 겁니까? 저놈들은 용철이처럼 우리도 매를 때려 죽일 거우다. 저놈들한테 매 맞아 죽을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앉은 채 매 맞아 죽을 순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일어납시다. 일어나서 싸웁시다. 싸웁시다! 복수합시다! 여러분, 저 악독한 서청 강도들을 이 땅에서 몰아냅시다! 여기는 우리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땅을 저 침략자들이 짓밟고 있습니다. 저 육지 놈들이, 저 육지 경찰 놈들이, 저 서청 놈들이 이 땅을 짓밟고 있습니다. 침략자들을 물리칩시다!" - P68
미군정이 딘 소장을 둘러싼 최고 수뇌부가 항공편으로 날아들어 비밀회의를 열었는데, 딘 소장을 대변한 경무부장 조병옥이 화평 정책을 내세운 김익렬 연대장을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면서 무섭게 몰아붙였다. 김익렬이 모처럼 얻어낸 산부대와의 약속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미군정 당국에 의해 파기되었다. 정책은 화평이 아닌 강경 무력 진압으로 급선회했다. 남쪽만의 단독선거인 5.10선거가 코앞으로 닥쳐왔으므로 그전에 군대를 투입해 저항 세력을 속전속결로 진압해버리자는 것이 미군정의 의도였다. 순식간에 경비대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다. 온건파 김익렬이 해임되었고, 9연대도 일부만 남기고 육지부로 전출시키고 수원에 있던 11연대를 불러들였다. - P86
갑자기 교체된 11연대는 9연대와 달리 일본군이 쓰던 99식 장총 대신에 미제 카빈총으로 무장하고 군비 일체를 미제로 일신했다. 박격포, 로켓포 등 중화기도 들어왔다. 일본군 출신 중령 박진경이 연대장이었다. 그 무렵 경비대에서는 그때까지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민족주의 세력이 제거되고 그 자리를 일본군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박진경은 북소학교 운동장에 박격포와 로켓포를 진열하고 사살한 시체들을 관덕정 마당에 늘어놓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수많은 사람들을 연행해 포로수용소에 수감했다. - P87
외세에 대한 싸움이 이제는 동족 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져갔다. 산과 해변의 대립은 살벌했다. 좌우 양쪽이 번갈아 서로를 죽이고, 그 가족을 죽이고, 그 집에 불을 질렀다. 복수심에 눈멀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친구가 친구를 잡아먹고, 친척이 친척을 잡아먹었다. 천년의 공동체, 무엇으로도 끊어낼 수 없을 것 같던 끈끈한 우애와 혈연의 공동체, 씨줄 날줄로 정교하게 엮인 그 돈독한 공동체가 무참히 찢겨나가고 있었다. 일찌감치 군경에 장악당한 읍내의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위에 붙어라, 아래 붙어라 산에 붙어라, 해변에 붙어라." - P128
사람은 누구나 미워하는 마음 없이는, 증오 없이는 싸우지 못하는 법, 지휘관은 신병의 마음속에서 증오의 불씨를 지피려고, 인간 정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 밑바닥 깊이 숨어 있는 야만성을 일깨우려고 악을 써댔다. 그러나 빨갱이에 대한 증오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니, 증오조차 없이 죽여야 했다. 아무리 하느님은 뜻, 하느님의 명령이라지만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고 있다는 생각이 신병을 괴롭혔다. 그러나 우물쭈물할 수가 없었다. 상관이 무서웠다. 한라산의 산군보다 더 무서웠다. 우물쭈물했다간 무지하게 얻어맞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여전히 두려웠다. - P245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 아아, 우리의 죽음이 아무 보람도, 아무 가치고 없는 죽음이 되어버렸어. 그게 원통해! 도대체 이건 인간의 죽음이 아니여. 짐승이라도 이런 떼죽음은 없어. 너무 억울해, 원통하고 절통해! 우린 결코, 우린 결코 죽어도 죽지 않을 거여! 너무도 원통해 죽어도 죽을 수 없어!"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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