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우다 2
현기영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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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현기영 님의 <제주도우다> 2권을 이야기해줄게. 1권에서는 길고 긴 일제 시대가 끝나 해방이 되고,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희망의 시대로 나아가면서 노력하는 제주도민들의 이야기하는 부분까지 했었지. 특히 청년들 중심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단다. 이 소설의 중심인 제주도 조천리도 마찬가지로 정비를 하고 있었어.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갔던 사람들도 올 사람들은 다 온 것 같았어. 안타깝게도 죽어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1권 마지막 부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미군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반씩 나누어서 통치를 한다고 했잖니. 그래서 제주도에도 미군정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그들에 의해 행정체계가 만들어지는데, 충격적인 것은 그들은 일제시대 일제의 앞잡이로 일했던 사람들을 재등용한 것이란다. 그들이 관리를 해봤다는 이유 하나였어. 나머지 제주도 사람들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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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미군정이 충격적인 명령을 내린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공식 출범한 미군정이 인민위원회 해체를 명령했던 것이다. 미군정이 삼팔선 이남 조선에서 유일한 정부라고 했다. 인민위원회 체제가 미군정의 행정체제에 반영되기를 원했던 도민들에게 그것은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해방의 기쁨과 열광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도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민위원회 간부들 중에서 미군정에 발탁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개는 친일파의 재등용이었다. 일제의 착취 기구에 종사했던 자들이 미군정의 부름을 받고 그 자리로 복귀하다니, 하급 관리들은 그만두더라도 친일파의 고위직 재등용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면서기를 하던 자들이 버젓이 면장으로 승진하여 복직하기도 하고, 순사 노릇 하던 자들이 경찰서장, 지서 주임이 되었다. 명칭이 순사에서 순경으로, 주재소에서 지서로 바뀌었을 뿐 복장도 검정색 일본 순사 제복 그대로였고, 무기도 일본군으로부터 압수한 99식 혹은 38식 장총과 일본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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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열 받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미군이 일반 시민들을 죽인 사건이 일어난 거야. 그러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어. 뿐만 아니라 미군들은 제주도민들을 무시하고, 희롱했으며 폭행까지 휘둘렀단다. 제주도민들은 미군정을 해방군이 아니라 침략군으로 보기 시작했단다.

 

1.

1946년이 되었어. 안창세는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였단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얼마 안되어 아직 중학교가 많지 않았어. 조천리 주민들은 합심해서 학교도 직접 짓고 교원들도 직접 뽑아서 조천중학원을 세웠단다. 창세는 그 조천중악원에 다니기 시작했어. 미군정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조천중학원도 미군정에 의한 교육검열을 받기도 했어.

청년들은 여전히 자주 모여서 공부를 했는데,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공부도 했어. 그런데 최근에는 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어. 특히 소련과 미군의 신탁통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 우리나라가 둘로 나뉘게 될까 봐 걱정을 하면서 말이야. 당시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전국적으로 일어났는데, 제주도에서도 자주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일어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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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9)

해가 바뀌어 1946년이 되자 제주도에서도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맹렬하게 벌어졌다. 미국과 소련이 삼팔선을 경계로 조선을 둘로 분할하여 오년간 통치하려는 음모에 대한 반대였다. 한시바삐 독립하기를 갈구하던 조선 백성들에게, 특히 지난 반년 동안 뜨거운 열정 속에 새 나라 건설의 꿈을 안고 달려온 청년들에게 그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해방자를 자처한 미국과 소련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경악 속에서, 조선 땅을 삼팔선으로 두동강 내어 이북은 소련, 이남은 미국이 차지하려는 음모를 분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천리에서도 오일장이 열릴 때마다 신탁통치 반대 집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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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여름은 긴 가뭄으로 모두들 고생했단다. 제주도에서는 66일간 비가 오지 않았대. 물이 부족해지면서 곡식들이 말라가고 그 해에 대흉년이 들었다고 하는구나. 식량 부족으로 고생을 했는데, 거기에 호열자라는 역병까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대. 해방으로 희망으로 부풀었던 제주도민에게 자연은 시기를 했던 것인가? 주인공 안창세의 누나 안만옥의 친구 따알리아 혹시 기억나니? 간호사가 되려고 일본의 간호학교에 갔었잖아. 해방이 되고 나서 따알리아도 돌아왔는데, 따알리아는 간호사가 되어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았단다. 따알리아가 얼굴이 예뻐서 조천리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어. 그 중에 정두길이라는 사람과 연애를 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에 알리기 부끄러워서 비밀 연애를 했더구나.

….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로 인해 남한과 북한이 나뉘어져 가는 분위기 속에서 이승만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지지한다고 발표했어. 민심의 불만지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단다. 미군정은 그런 민심은 신경도 안 쓰고 강제 공출을 실시했단다. 가뭄으로 대흉년인데 공출까지 당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지. 전 인민위원회 청년 조직이 만든 민주청년동맹을 중심으로 강제 공출 반대 운동을 했단다.

 

2.

1947년이 되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어.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지자 제주도 곳곳에서 시위가 자주 열렸단다. 2 10일 최초로 미군정 반대 시위가 일어났어. 그러자 미군정은 병력을 증원했는데, 충청도에 있는 충남 경찰 부대 병력을 데리고 왔단다. 하지만 제주도민의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았어. 1947 3 1일 삼일절 기념행사 때 제주도 전역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단다. 미군정은 이 집회를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고 허가하지 않았어. 하지만 제주 곳곳에서 집회는 일어났단다. 조천리에서도 북소학교에서 3.1운동 기념행사를 했고, 집회 후에는 가두 시위를 했단다. 주요 내용은 미군정을 반대하고 남한단독정부를 반대하는 내용이었어. 다시 모인 주민들의 만세 소리를 듣고 다들 희망을 느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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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266)

극심한 불행과 좌절의 연속인 지난 일년이었다. 대흉년의 굶주림과 호열자에 짓눌린 죽음의 시간이었고, 강제공출, 복시환 사건, 친일파 재등용, 단독정부 추진 등등 미군정이 자행한 총체적 모순이 만들어낸 절망의 시간이었다. 해방의 감격과 미래에 대한 꿈이 참혹하게 짓밟힌 한해였다. 이제 사람들은 피폐했던 마음에 다시 활기가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사람마다 가슴속에 환한 빛이 가득해졌다. 정두길은 감격이 북받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미군정을 반대하는 거대한 실체가 거기에 있었다! 정두길에게 그것은 소름 끼치는 강렬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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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 시위를 하는 주민들에 대해 미군정과 경찰은 강압적으로 맞섰고 폭행에 발포까지 하면서 민간인 여섯 명이나 죽였단다. 이런 평화적 시위가 죽을 만큼 잘못한 것인가. 제주도민들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졌단다. 이 사건은 더 시위로 이어지고, 총파업으로 응수했단다. 이때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경무부장 조병옥이라는 사람이 제주도에 왔단다. 하지만 그의 적반하장 언행은 일을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더 키우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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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조병옥은 3.1절 발포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정당방위였다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심지어 사살은 내가 시킨 바다. 발포 명령자를 처벌하라고? 발포는 내가 명령했으니 처벌할 테면 나를 처벌하라라고 싸늘하게 비웃었다. 읍내 공무원들이 모인 시국 강연 사리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면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듯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방약무인이었다. 너무도 놀라운 발언이어서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 이 말이 도민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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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압 조치를 위해 조병옥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경찰을 지원받아 증원시켰어. 제주도 경찰들은 제주도민들을 온건하게 대한다고 다 쫓겨났어. 육지에서 들어온 경찰들은 마구잡이고 폭력을 휘두르고, 경찰서에 잡혀 들어오면 고문을 가했어. 이때 조천리에도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는데 주로 청년들과 학교 선생님들이었어.

당시 제주도지사였던 박경훈은 미군정의 이런 강압적인 조치에 실망을 하여 자진사퇴를 했는데, 후임으로 온 도지사가 완전 똘아이 같은 사람이었어. 극우주의자 유해진이라는 사람이 도지차로 취임했는데, 그는 서북청년단을 경호대로 데리고 제주도에 도착했단다. 그가 데리고 온 서북청년단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서북청년단은 서청이라고도 불렀는데, 북한에서 토지개혁 이후 땅을 빼앗기고 남한으로 이들로 공산당에 치를 떨던 이들이었는데, 완전 깡패나 다름없었어. 좌익에 조금이라도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어. 그들 뒤에는 정부가 있었지. 그런 서청을 경호대로 제주도로 데리고 들어온 거야. 서북청년단은 도지사의 빽을 믿고 제주도 곳곳에서 횡포를 부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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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무자비한 테러 행위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서북청년단의 존재가 제주 사회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그간 육지부의 각 도시, 각 읍면 지역에 조직을 만들어 대규모로 세력을 확장해온 서청은 좌파 인사와 집회에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백색테러의 대명서로 떠올랐다. 신임 도지사 유해진이 자신의 경호원으로 일곱명을 데리고 들어온 이래 서청 단원의 입도가 두어차례 이어져 지금은 그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 충남 부대의 탄압에 시달리던 도민은 이제 그보다 훨씬 사나운 세력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승냥이가 나가더니 범이 들어온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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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 5, 미군정은 미군정 반대와 단독정부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민주청년동맹을 불법으로 지정했고, 얼마 안가 남조선노동당(남로당)도 불법으로 지정되었어. 내륙에서는 좌우합작에 노력했던 여운형의 암살당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단다. 상황은 점점 안 좋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단다. 여기까지가 <제주도우다> 2권의 이야기란다.

아직 4.3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는데도 열 받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있었단다. 이런 일을 직접 겪은 이들이 어찌 참을 수 있었을까. 총칼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참을 수 있겠지만, 그 폭압의 강도가 점점 세어진다면 결국에는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 같구나. 해방된 지 불과 2년만에 이렇게 되다니…. 3권에서는 또 얼마나 억울하고 분한 일들이 일어날지… 3권도 조만간에 이야기해줄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조천소학교에서 해방을 기념해 운동회가 열렸다.

책의 끝 문장: “! 비밀 엄수, 하겠습니다!”


해방 후 맞는 첫 봄, 신생의 기운이 제주섬 도처에서 샘솟듯 기운차게 솟아나고 있었다. 새봄, 새 학교, 새 일꾼, 새 나라, 해 희망! 그 모든 것이 청년들, 소년들의 것처럼 생각되었다. 꽃들도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해방의 노래를 부르고, 침울했던 청년들의 가슴도 꽃망울 터지듯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렸다. 해방 직후 시작된 집단적 열광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전장과 탄광 등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살아 돌아온 귀환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겪은 지독한 절망감이 이제 급격하게 강력한 에너지로 바뀌어 그들을 추동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지금은 귀향민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상태라 취직난이 극심하지만 친일파들이 물러나면 자리가 생기리라고, 그러한 집단적 열광은 곳곳에 신설 중학원이 등장함으로써 더욱 증폭되었다. - P131

"일제의 노예 경험이 너의 마음에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 생각해보아라. 무엇을 가르쳐주었는가? 그렇다, 내 나라, 내 땅을 다시는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점거하여 신탁통치 운운하면서 남북분단을 획책하고 있지만, 그것은 열화 같이 일어난 거족적 반대 투쟁에 의해 반드시 분쇄될 것이다." - P133

정두길 : 순태 너는 박헌영파지만 난 여운형이 맘에 들어. 그가 말하는 좌우합작에 나는 찬성이여.
부대림 : 나도 여운형이 좋아. 한독당 김구 선생의 노선도 좋아 보이고.
박털보 : 미국이나 소련이나 우리에겐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이여, 독립의 훼방꾼!
양순태 : 하아, 해방과 훼방! 거참 딱 맞는 말이네예.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
정두길 : 그래서 온 나라 온 백성이 이렇게 외치는 거 아니우꽈? (구호를 외치듯이 큰 소리로)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조선 사람 조심하자!
- P162

조병옥은 3.1절 발포 사건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정당방위였다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심지어 "사살은 내가 시킨 바다. 발포 명령자를 처벌하라고? 발포는 내가 명령했으니 처벌할 테면 나를 처벌하라"라고 싸늘하게 비웃었다. 읍내 공무원들이 모인 시국 강연 사리에서는,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면서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듯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방약무인이었다. 너무도 놀라운 발언이어서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 이 말이 도민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 P296

무자비한 테러 행위로 전국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던 서북청년단의 존재가 제주 사회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그간 육지부의 각 도시, 각 읍면 지역에 조직을 만들어 대규모로 세력을 확장해온 서청은 좌파 인사와 집회에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백색테러의 대명서로 떠올랐다. 신임 도지사 유해진이 자신의 경호원으로 일곱명을 데리고 들어온 이래 서청 단원의 입도가 두어차례 이어져 지금은 그 수가 수백명에 이르렀다. 충남 부대의 탄압에 시달리던 도민은 이제 그보다 훨씬 사나운 세력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승냥이가 나가더니 범이 들어온 격이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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