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마지막 12권에 대해 이야기해줄게. 주말마다 한 권씩 읽었는데, 금방 12권이 끝나는구나. 그만큼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구나. 2024년이 시작한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6월이구나. 너희들에게 계속 천천히 자라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 주문이 잘 안 먹히는구나. 어찌들 그리 쑥쑥 자라는지….

, 그러면 <아리랑> 12권을 시작해 보자.

윤철훈의 동지였던 최현옥이 체포되어 온갖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고문을 다하지만 끝내 정보를 불지 않고 견뎠단다.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간수들이 방심한 틈을 타 벽에 머리를 박고 그만 자살하고 말았단다. 최현옥을 고문했던 인물은 <아리랑> 전체 중에 최고의 빌런 중에 한 명인 양치성이었어. 양치성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는 악랄한 친일경찰이 되었는데, 그를 보고 있으니 실체 인물 노덕술이 떠오르더구나. 일제 시대 악랄한 친일경찰로 그의 별명은 고문전문가였단다. 더 열 받는 것은 그런 악랄한 친일파가 해방 후에 다시 대한민국의 경찰과 헌병의 요직을 맡았다는 점이란다. 반일 행위로 체포되었지만, 이승만의 입김으로 무죄판결까지 받았다고 하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공허 스님의 아들인 전동걸은 동경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사랑에 있어서는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고 했었지. 공산주의 동료인 일본인 지요꼬와 같은 교포 유학생인 이미화 사이에서 말이야. 시간이 갈수록 전동걸은 이미화에게 더 마음을 두었단다. 하지만 일본의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면서 일본 내 공산주의 활동이 점점 어려워졌어. 그래서 중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독립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단다. 전동걸도 그렇게 중국으로 떠나야 했단다. 이 때 지요꼬와 위장 연인으로 해서 중국을 갔단다. 그 머나먼 길을 위장 연인으로 가다 보니, 그것도 둘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있던 사이였는데, 위장 연인에서 위장이 떨어지게 되었단다. 동경에 남아 있는 이미화만 불쌍하게 되었구나. 중국에 도착한 전동걸은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중국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단다.

 

1.

김제에서 대지주인 하시모토는 김제읍장까지 차지하게 되었어. 194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가 벌인 전쟁들 때문에 공출이 점점 심해지고, 징용도 점점 늘어나다 보니 하시모토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할 소작인들이 줄어들어 불만이 많았어. 그렇다고 겉으로 일본정부에 불만을 표출할 수 없으니 속으로만 삭혀야 했지. 나쁜 놈. 국내에서 젊은이들을 징용해가는 것은 노무보국회에서 주관했단다. 노무보국회 소속의 이시바시라는 악질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을 징용해가는 사냥한다고 하는 놈이었어. 아무나 잡아서 징용을 보냈는데, 차득보도 농사짓다가 붙들려 끌려가고 말았단다.

….

징용뿐만 아니라 군대에 끌고 가는 징병도 이어졌어. 징병도 부족하다 보니 학생들을 상대로 징병을 하는 학병제를 실시했단다. 친일파 최남선과 이광수는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했다는구나. 변절의 아이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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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11월에 들어서 총독부에서는 대학, 전문학교, 고등학교에까지 징집영장을 일제히 발급했다. 그리고 중추원에서는 <학병 불지원자는 휴학시켜 징용키로 결정>했다. 그러니까 학도지원병이란 <지원>은 허울좋은 장식일 뿐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이광수와 최남선은 학병지원 권유연설을 하기 위해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결국 제1차로 학병적격자 1천 명 중에 959명이 지원을 완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관부연락선 곤륜환이 미국잠수함에 격침되어 54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행했다. 그리고 12월로 접어들면서 징병 적령을 1년 낮추는 긴급사태가 야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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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규와 유승현은 학생들이 학병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학생들을 지리산으로 빼돌리려는 계획을 세웠단다. 지리산에는 이현상 중심으로 빨치산이 조직되어 있었거든.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도 학병 대상자였단다. 무작정 준혁을 지리산을 빼돌리게 되면, 남아 있는 식구들이 피해를 보게 되므로, 정도규와 유승현은 방법을 하나 찾았단다. 송준혁이 가짜 유서를 쓰고 지리산으로 도망가고, 송준혁의 엄마가 그 가짜 유서를 들고 경찰서에 가서 아들을 찾아달라고 울면서 연기를 하는 것이었지. 당시 학병을 가지 않고 자살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하니 참 가슴 아픈 일이구나.

학병으로 끌려가는 많은 조선 학생들이 불쌍했지만, 학병으로 끌려가서 고소한 이도 있었으니 박용화였단다. 박용화 생각나지?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숭상하던 이로 초등학교 선생님 하다가 더 성공하고 싶어서 동경법대에 입학한 사람. 그냥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으면 학병에 끌려가지 않았을 텐데, 동경법대에 들어가는 바람에 학병에 끌려가고 말았단다. 본인 자신도 얼마나 억울해 하는지…. 일본의 재판관이 되려고 했던 일이니 자신이 감수해야겠지. 박용화는 결국 버마 전선에 배치되었단다. 훈련 받을 때는 일본이 계속 승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실전에 와보니 일본이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어. 그제서야 일본에 속은 걸 알았는데 방법이 있나. 뿐만 아니라 그 전쟁터에서 조선의 소녀들이 위안부로 있다는 것을 알고 또 한번 분개를 했단다.

이 시절 또 하나 아픈 역사인 위안부 이야기도 가슴 아프지만 해야겠구나. 일본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 벌 수 있다면서 조선의 젊은 여인들을 속여서 동남아 전선까지 끌고 가서 위안부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어. 그렇게 속여서 데리고 오기도 했지만 강제로 끌고 가기도 했단다. 친일파로 전향한 문인들은 위안부가 되라는 시들을 쓰고 연설을 하고 있으니, 화가 치솟는구나. 지난 총선에서 김활란을 욕했다고 비판 받은 후보자가 있었는데, 이화여대에 김활란 동상이 아직도 있다는 것을 더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이화여대 학생들을 김활란의 행적을 알고 있다면, 그 동상을 쓰러트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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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228)

시인 주요한은 1941 <국민문학> 11월호에 <댕기>라는 시를 썼다.

 

나라의 부름받고 가실 때에는

빨간 댕기를 드리겠어요

몸에 지니고 싸우시면

총알이 날아와도 맞지 않아요.

 

북쪽에서 돌아오는 기러기는

갈대 밑에 재우겠어요

꿈에 돌아오시는 당신은

원앙침에 주무시게 하겠어요.

 

아무르의 얼음도 여름에는 녹겠지요

녹았어도 소식이 없는 여름일랑

까만 댕기에 하이야 간호복 입고

저도 나라 위해 있는 힘 다 바치겠어요.

 

서강 저녁놀의 타는 듯한 붉은 핏빛은

장렬하게 싸우다 산화하신 당신의 피

무언의 개선, 마을 역 앞에서

하이얀 댕기 드리우고 만세를 외치겠어요.

 

그리고 시인 노천명은 1942 3 4일자 <매일신도> <부인근로대>라는 시를 썼다.

 

부인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려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아미 숙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을 맞던 광경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 이여

훌륭히 싸워 주 공을 세워주

 

나라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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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또한 시인 모윤숙은 친일의 시들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한 직후에 <조선임전보국단>이란 친일어용단체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우리들 여성의 머릿속에 대화혼(大和魂)이 없고 보면 이 위대한 승리의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나설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화여전 교장인 김활란은 1942 <신세대> 12월호의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라는 글에서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반도여성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여성들이 일제의 전시동원에 앞장서라고 충동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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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동남아 전선까지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단다. 위안부 생활 자체가 비참한 생활이었는데, 그 외에도 병에 걸려 죽고, 실성해서 버림 받고, 뱀에 물려 죽고, 군대와 함께 있다 보니 폭격에 의해 죽기도 했단다. 생존자가 거의 드물었단다. 이런 짓을 하고도 일본은 사과를 안 하려고 하니 기가 차는구나. 그런 일본에 과거를 잊자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다는 것은 더 기가 차는구나.

 

2.

배필룡은 비행장 활주로로 징용을 와서 생활했단다.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도 흘러 약속했던 2년이 거의 다 되었단다. 어느덧 한 달 반이면 2년이야. 일제는 지금 하고 있는 활주로 작업을 일찍 끝내면 일찍 집에 보내준다고 해서, 사람들은 더 열을 올려서 작업을 했단다. 그런데 그곳에 호열자라는 전염병이 돌았어.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는 것이 맞지만, 일제는 그들을 산채로 묻기로 했단다. 그리고 그 일을 다른 조선인 노무자에게 시켰어. , 잔인한 놈들

드디어 활주로 작업이 끝난 어느날. 미군의 공습 때문에 반공호에 피신해 있었는데, 일본 군인들이 그 반공호에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난사했단다. 그리고 입구를 시멘트로 막아버렸대. 그곳에서 죽은 사람이 4000여명이라고 하니 패망을 앞둔 일제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단다.

사할린으로 징용 갔던 노무자들도 2년이 지났지만 배가 없다는 핑계로 집에 보내주지 않았고, 그곳에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으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다. 징용으로 끌려온 차득보는 북해도에서 도로 작업에 투입되었단다. 차득보 또한 계약 기간이 끝나도 집에 오지 못했어. 일본이 보내주지 않았거든. 간혹 도망가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잡혀와 공개처형을 당했단다. 그런데도 도망가려는 이들이 계속 생기는 이유는 이곳 생활이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고통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야. 차득보도 억수로 비가 오는 날, 도망을 갔단다. 북해도에 살고 있는 아이누 족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을 했단다. 차득보는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어.

….

일제의 패망이 가까워오고 있었단다. 총독부는 마지막 발악을 했어.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에 있는 조선인들도 징병해갔어. 만주의 지삼출의 마을에도 징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단다. 그러던 어느날 만주 정착지에 일본군이 싹 사라져 버렸단다. 일본이 드디어 패망한 거야. 그곳에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내로 돌아가기로 했단다. 하지만 귀향길도 쉽지 않았어. 중국 사람들의 공격으로 패싸움이 일어났어.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공격한 것은 그들도 일본인과 한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결국은 국내로 돌아오던 발길을 다시 만주로 돌린 이들이 있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까지 비극적으로 끝이 났단다. 우리나라도 비록 해방이 되었지만, 이내 둘로 나뉘면서 해방 아닌 해방을 맞이했어. 그리고 둘로 나뉜 나라는 또 전쟁으로 이어지고,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지. 그 비극 이야기는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에서 이어진단다.

….

이렇게 조정래 님의 <아리랑> 두 번째 읽기가 끝이 났구나.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3차 읽기도 해보고 싶구나. 그 정도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아빠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싶구나. 너희들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학교 공부에 정신이 없으니 읽기 어려울 테고나중에 성인이 되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아리랑>뿐만 아니라 <태백산맥>, <한강>도 모두 추천한다. 시대 순으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이런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 같구나. 그 때는 함께 책 이야기도 하면 좋을 것 같구나. <아리랑>은 두 번 읽었고, <태백산맥은>은 세 번 읽었으니, 다음에는 <한강> 2차 읽기를 해야겠구나. 아빠 생각에 내년쯤 <한강> 2차 읽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럼, 이제 <아리랑> 12권 끝.

 

PS,

책의 첫 문장: 지하최조실은 어둠침침했다.

책의 끝 문장: 남자들이 거의 다 쓰러져 갈 즈음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끝없는 광야 저쪽에 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전동걸은 3개월 동안의 군사훈련을 마쳤다. 조선의용군의 기본 군사훈련은 혹독하리만큼 강도가 높고 맹렬했다. 사격이며 분대전투 같은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격전 훈련은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만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지니지 않고 완전무장을 한 채 태항산록 그 끝없는 골짜기와 봉우리를 열흘 이상씩 타넘는 것이었다. 먹을 것은 어떻게 해서든 산중에서 구해야 했다. 뱀이고 개구리고 승냥이고 까마귀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야 했다. 산열매도 따먹었지만 절대로 따먹으면 안되는 것이 있었다. 감, 호두, 대추가 그것이었다. 그것들은 태항산록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꾸고 있는 과실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생업으로 삼아오는데다 수확량도 엄청나 그 세 가지는 태항산 명물로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그 열매들을 단 하나도 손댈 수 없는 것은 <인민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 P198

그들이 지리산 속에 있으면서도 나라 밖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것은 <미국의 소리> 단파방송을 청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은 이렇게 선요원들을 통해서 각 조직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점령당한 위기 속에서 일제가 일억총옥쇄(一億總玉碎)라는 새로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일억총옥쇄의 일억이란 일본사람들 7천만, 조선사람들 3천만을 합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일억총옥쇄란 일본과 천황에게 충성을 다바쳐 일본사람 7천만과 조선사람 3천만은 다같이 깨끗하게 죽자! 하는 뜻이었다. 그건 패전의 위기에 직면한 일제가 발악적으로 내세운 집단자살의 구호였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총독부가 조작하고 있는 승전의 보도에 취해 일본이 조선을 2백 년 동안 지배할 거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일억총옥쇄를 여기저기서 열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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