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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0 - 제4부 동트는 광야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아리랑> 10권을 이야기해줄게. 이제 10, 11, 12권 세 권 남았구나. 이 세 권은 제4부로 ‘동트는
광야’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단다. 동튼다는 의미는 해방이
찾아온다는 뜻이겠구나. 길고 긴 일제암흑기의 끝이 보이는구나.
자, 그럼 바로 10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 윤철훈은 비밀 임무를 위해 국내 잠입하여 원산에서 다른 공산주의자 최현옥과 임무를
수행했단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위장 연인인 척 했단다. 그런데 윤철훈과 최현옥은 서로 호감을 가졌어. 하지만 그들은 공적인
만남이었고, 임무를 수행 중이라서 서로 속마음을 꺼내지 못했단다. 좋은
시절에 만났다면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을 텐데, 결국 그들은 임무 수행을 하고 서로 헤어지고 말았단다. 이 시기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와 농민들과 연계하면서 8시간 노동제
실현, 차별대우 철폐, 복지제도 개선, 소작료 인하 등을 실천하려고 했지만, 일본 경찰의 폭정과 밀정들
때문에 제대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조직이 많이 와해되었단다.
….
만주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조선혁명당
사령관 양세봉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더 잔인한 것은 일본군이 양세봉의 시신을 조선의 농민들에게
작두로 자르라는 잔인한 짓을 시켰다는 거야. 그리고 그 말을 거절한 농민들은 그 자리에서 죽이고 말이야. 뿐만 아니라 일제는 친일파로 하여금 민생단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만주
지역의 공산주의 운동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썼어. 그러면서 중국공산당에 일본의 스파이가 있다는 소문을
만들고, 그로 인해 중국공산당에서 일제 스파이로 의심되는 조선 사람들을 죽였는데, 죄가 없는 사람도 누명을 쓰고 많이 죽었다고 하는구나. 주위에 죄도
없이 누명을 쓰고 죽는 동료를 보니,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하던 일부 조선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을 탈출하여
일본군으로 넘어가버린 사람들도 있다. 일본이 파 놓은 함정에 중국공산당이 보기 좋게 빠져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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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
“도대체 민생단투쟁이란 게 뭔가?”
학습이
끝나고 노병갑은 홍완섭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래, 자네도 지휘간부로서
알아둬야 할 일이지. 그러니까 말야,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만주국이 세워지기 직전인 32년 2월에 조선에서 용정으로
건너온 친일파 김성화가 왜놈들의 사주를 받아 <경성매일신보>
부사장 박선윤, 광명회의 정사빈 등과 연합해서 민생단이란 것을 조직했네. 그 단체는 겉으로는 조선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주사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일치하는
거지. 그런데 속에 감춰진 목적은 북간도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교란시키고 파괴하자는 것이었지. 다시 말하면 민생단은 대규모 밀정 스파이단체였던 거네. 민생단원들은
백색구역(일제 통치지역)의 친공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적색구역(유격근거지)에까지 자원유격대원으로 가장해 잠입 침투해서 간도 자치며
생활 보장, 조선인 우대 등을 교사하며 내부분열 공작을 획책한 거네.
그러기를 5개월쯤 하다가 민생단은 해산됐지. 그런데
문제는 그놈들의 암약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유격근거지에서 조선사람이면 일단 민생단분자로 의심받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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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수익은 결국 일본군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15년형을 받았단다. 송수익이 감옥에 있다는
소식은 가족에게도 전해졌어. 송수익의 친구이자 사돈인 신세호는 서울에 가서, 송수익의 아들이자 자신의 사위인 송중원과 송수익의 차남 송가원을 만나 이 일을 의논했단다. 그들은 면회 준비를 하였고, 가원은 자신이 만주에 머무르면서 아버지의
옥바라지를 하겠다고 했어. 중원은 장남인 자신이 하겠다고 했지만, 중원은
아직 투옥의 후유증으로 아직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가원이 하는 것으로 했단다. 가원은 이 기회를 허영
덩어리 아내 미애와 헤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 가원은 자신이 만주에서 아버지 옥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아내 미애에게 통보를 했고, 미애는 큰소리로 화를 냈지만, 가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만주로 향했단다.
…
미애의 사기에 가까운 수법으로
가원이 미애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고 나서, 옥비는 소리에 전념하여 경성에서 유명한 소리꾼이 되었단다. 공허 스님으로부터 송수익 소식과 송가원이 만주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을 전달해달라고 공허 스님께 부탁을
했단다. 옥비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가원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봐. 자신도 가원을 따라 만주를 가고 싶지만, 내색은 못했어.
….
이경욱은 아버지 이동만이 죽고
나서도 고등고시를 계속 봤지만 계속해서 떨어지고 말았어. 이경욱은 옛스승 고서완을 찾아갔어. 고서완은 이경욱을 반기면서 함께 농사를 짓자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고서완은 그냥 농사가 아니고, 자신만의 사회주의 방식으로 농장을 만들어서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던 거야. 그로 인해 조선의 농부도 보호하고, 자신의 이상도 실천하고… 그걸 혼자 하기 어려우니 이경욱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이경욱은
고등고시 합격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동참하기로 했단다. 고서완이 꿈꾸는 사회주의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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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음, 들어보게. 자네도 알다시피 왜놈들은 만주사변 이후로 조선땅에 군대를
강화하고 경찰들을 증원했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처벌이네.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이 사회주의자들의 색출과 처벌이네. 그건
왜 그렇겠나? 두 가지 목적 때문이지. 첫째는 조선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새롭게 등장한 적을 완전히 말살시키고 하는 것이지. 그리고 둘째는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으로 농민층과 노동자층이 끝없이 쟁의를 일으키면서 조선땅이 동요하는 것은 제놈들의 만주 장악에 치명적이기 때문이야. 조선의 안정이 만주의 안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네. 그래서 왜놈들은 준전시체라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사회주의 세력의 말살에 총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일세. 그놈들의 총력전은 효과를 거두고 있고, 사회주의자들은 그동안 만 6천여 명이나 검거되면서 악화일로를 걸어왔네. 참 시인하고 싶지 않지만, 냉정하게 판단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머지않아 거의 검거되거나 운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네. 나는 감옥에서 나와 감금상태에 있으면서 이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지. 또 잡혀서 감옥에 갇히는 것을 각오하고 그전 식으로 운동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방법밖에 없느냐 하면, 감금상태는 바로 운동의 중지상태니까. 그런데 운동을 계속하다가 잡히게 되면 재범이고, 재범은 중형을 당하게
되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지 않은가. 그것 또한 운동의 중지상태야. 이
대목에서 내 고민은 심해졌지. 왜놈들은 절대로 사회주의 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왜놈들은 절대로 사회주의 운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왜놈들의 횡포는 계속되는데 과연 실현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주의 운동을 밀어붙이다가 부지하세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였지. 그 방법은 치열하긴 하지만 자폭적이고, 어느 면에서는 왜놈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네. 그런 측면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네. 왜놈들의 식민지 횡포가 계속되는 속에서 어떤 형태든 행동의 중지보다는 적극성이 떨어지더라도 행동의 지속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구상한 것이 개인적 사회주의화야. 다시
말해서 우리 집안의 농토를 바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집단농장의 경영이야. 단 사회주의라는 냄새는
일체 풍기지 않고 속으로 감추었으니까 경찰에서 볼 때는 평범한 지주에 불과하지. 허나 실제로는 소작제가
아니라 공동경영이고, 잉여재산으로는 딴 지주의, 특히 왜놈들
농장의 빚을 써서 논이 넘어가게 된 농부들의 빚을 갚아주고 흡수해 들이는 거네. 그럼 그 농부도 보호하고, 왜놈농장들이 토지를 장악해 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는 이중 효과를 발휘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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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서완 같은 사람에 의해 보호를
받는 농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본 지주와 친일파 지주의 악덕으로 등골이 휘었단다. <아리랑> 초반부에서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일제에 땅을 빼앗기고 소작을 하는 이들이 많았잖아. 그 중에 염서방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염서방의 아들이 일본인 지주
아들의 놀림에 분을 참지 못하고 때린 일이 있어. 그러자 그 일본인 지주는 염서방을 끌고 와서 모진
매를 때리고 소작까지 빼앗아 버렸단다. 매까지는 참아도 소작을 떼이면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간절히 부탁했지만, 결국은 소작까지 떼이고 말았단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염서방은
그 일본인 지주들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참 먹먹한 사건이로구나.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제 시대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많았을 거야.
…
2.
신세호, 송중원, 송가원이 송수익을 면회를 했어. 생각보다 송수익의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단다. 간수에게 뒷돈을
아무리 주어도 병보석은 해주지 않고, 치료도 안 된다고 했어. 면회도
짧은 시간 간신히 할 수 있었어. 전향서를 쓰면 치료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만, 송수익은 완강히 거절했단다. 신세호와 송중원은 다시 국내로 돌아오고, 송가원은 그곳에 남아 병원에 취직을 하고 아버지 옥바라지도 했단다. 송수익과
필녀도 송수익의 소식을 듣고 감옥이 있는 봉천으로 이사를 왔단다. 하지만 면회를 허락되지 않았어.
한편, 옥비는 송가원이 아내와 헤어져 혼자 만주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만주로 향했단다. 송가원은 뜻밖에 찾아온 옥비를 보고 무척 반가워했고, 그들은 몇
년 동안 참았던 사랑을 드디어 하게 되었어. 송수익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어. 평생 송수익을 짝사랑했던 필녀의 간절함… 송수익이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 송가원은 간수에게 큰 돈을 주고 필녀는 송수익을 면회할 수 있었어. 하지만 송수익은 결국 감옥에서 죽고 말았단다.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신채호처럼 평생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을 만나지 못하고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신 분들이 어디 한둘이겠니. 정말 슬픈 역사로구나.
송수익이 죽고 나서 송가원은
그곳에 남아 독립군에 참가하겠다고 했어. 군의관이 되어 부상자를 돕는 일을 하겠다고 했단다. 옥비도 자신도 독립군이 되겠다고 했어. 송가원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자신은 노래라도 불러서 군 사기를 높이겠다고 했어. 그렇게
그들은 모두 독립군이 되었단다.
….
연해주의 소식을 좀 들려줄게. 윤선숙과 조강섭 부부는 이상한 소식을 들었어. 조선 사람들이 일본의
스파이가 되어 연해주 지역으로 들어온다는 소문이었어. 그렇게 되자, 소련은
조선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단다. 그리고 강제로 조선 독립군 해체를 지시했어. 학교에서는 조선어 교육을 금지시켰어. 소문은 소문으로 끝나지 않았단다. 주변 사람들이 억울하게 일본 스파이로 누명을 쓰고 체포되기도 했어. 윤선숙의
사촌 오빠인 윤철훈도 도착했지만, 그들은 이 사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어. 연해주에서도 점점 살아가기 쉽지 않았단다. 소련의 조선인 통제가
심해지던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어. 조선인 20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는 명령이 내려왔어.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2일 후 곧바로 떠나야 한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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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278)
20만 조선사람들의 강제이주는 1937년 8월 21일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강제이주 결정사항 제1428ㅎ-326cc호에 기록된 공식적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조선사람들의 첩자행위 방지, 둘째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농업인력 공급이었다.
그리고
강제이주를 직접 명령한 것은 스탈린이었다.
하바로프스크, 당지구위. 조선인들 이주 문제 –
– 시기적으로 성숙했음.
이주
시기에 조금도 차질이 없도록 철저한 조치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강구하기 바람.
당중앙위원회 서기 스탈린
1937년 9월 11일 17시 40분
이것은
스탈린이 보낸 암호전보였다.
그
명령에 따라 연해주 일대의 조선사람 20여만 명은 9월 중순에서부터 11월 말까지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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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대우를 해주면서 이주시키면
모를까. 화물 기차칸 하나에 40명씩 몰아넣었단다. 중앙아시아까지 가는 길이 먼데 화물 기차칸에 화장실도 없이 40명씩
넣다니… 거기에 그들은 배고픔과 추위와 싸워야 했어. 윤선숙의
식구들도 모두 끌려갔단다. 기차가 중간 역에 잠시 멈췄을 때 윤선숙의 남편 조강섭은 기차에 타고 있는
당원들과 함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문의하러 소련군을 찾아갔어. 그런데,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단다. 비밀 경찰이 그들을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만
하고 기차는 그냥 출발했어. 그렇게 윤선숙은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단다.
나중에 알게 된 소식이지만 비밀경찰에 끌려간 이들은 소련군에 의해 모두 죽고 말았단다. 윤선숙은
아이들과 시어머니 때문에 남편을 찾아 나설 수 없었어. 계속된 추위와 굶주림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갔단다. 윤선숙의 시어머니도 기차 안에서 돌아가셨어.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죽고 타슈켄트라는 낯선 곳에 도착했단다. 허허벌판이었어.
3.
다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해볼게. 일본 순사로 일하던 장칠문은 순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가게와 회사를 물려 받았단다. 이젠 사장으로 불렸어. 장칠문은 상공회의소 회원 가입도 했어. 아버지에 이어 대를 잇는 친일파가 되었구나. 그런데 최근 친일파들이
피습 당해 죽는 일들이 발생했대. 혈청단이라는 조직이 벌인 일이라고 했어. 그런데 그 혈청단의 단장이 다름 아닌 보름이의 장남인 오삼봉이었단다. 하지만
혈청단의 조직은 금방 들통이 났단다. 조직원이 잡히고 말았어. 삼봉이는
도망가야 했어. 엄마인 보름이와 동생 금예도 피해를 볼 것 같아 같이 도망을 갔단다. 공허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어.
공허 스님은 보름과 금예를 홍씨에게
맡기고, 삼봉이와 함께 만주로 향했단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고 나서 그만 일본 경찰에게 정체가 드러났고, 공허 스님은 일본 경찰에 총탄에 맞아 죽고 말았고, 삼봉이만 간신히 도망을 갔단다. 그렇게 공허 스님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단다.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공허 스님의
죽음 또한 안타깝구나. 오삼봉은 만주에 도착해서 외삼촌인 방대근과 이모 수국을 만나게 되었어. 한 핏줄이지만 그들은 첫 만남이었단다. 오삼봉은 외삼촌 방대근이
있는 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하기로 했단다.
…
박건식의 장남 동화는 감옥에
다녀온 이후 공산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친일로 변절했단다. 그의
머릿속에는 잘 살겠다는 것만 생각했어. 감옥에 다녀온 이후 학교 퇴학 조치로 인해 취직하는데 제한이
생겨 공산주의를 더 경멸하게 되었단다. 친일로 변절하는 것은 박동화뿐만 아니었어. 이 즈음 많은 사람들이 친일로 변절했단다. 이광수, 최남선을 비롯하면 많은 문인들이 친일로 변절했어. 잡지사에서 일하던
송중원도 그런 친일파들을 보며 씁쓸해했어. 송중원이 일하는 잡지사도 사회 이슈보다 연애 소설의 비중을
점점 늘려가는 것을 보고 송중원은 곧 잡지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
만주의 조선혁명당을 이끌던 양세봉이
죽고, 조선혁명당은 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하기로 했단다. 동북항일연군은
한국과 중국 연합 군대였어. 방대근도 동북항일연군 사령부에 소속되어 있었고, 밀정을 찾아내는 별동대를 지휘하고 있었어.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김일성은
국경 넘어 함경남도 보천보를 기습하여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했단다. 이 소식은 국내에 전해지면서 기쁨을
주었어. 이런 김일성이 나중에 북한에서 그런 악랄한 독재자가 될지 누가 알았겠니.
…
마지막으로 하와이에 있는 조선인
이야기를 짧게 하고 마칠게. 방영근이 하와이에 온지 어느덧 33년이
되었단다. 그렇게 오래 있다 보니, 조국을 보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삶을 마감하는 이들이 생겨났어. 방영근이 형님으로 모시는 구상배라는 사람도 폐암에 걸려 그만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하와이에서 삶을 마감했단다. 죽어서 끝이 아니라 영혼이 있다면 좋겠구나. 영혼이라도 조국땅에 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끝내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
여기까지가 <아리랑> 10권의 이야기란다. 여전히 한반도는 암흑시대로구나. 해방이 될 때까지 일제의 탄압은
더욱 악랄해진단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친일을 부르짖는 이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구나.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과연 그런 발언들을 할 수 있을지..그래서
역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란다. 우리 함께 역사를 읽고 공부해 보자꾸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모래밭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연모하는 사람을 찾아 만주까지 와서 뜻을 이룬 것도
그렇고, 목숨 내걸고 싸움터로 뛰어든 것도 그랬다.
일본스파이 문제가 연해주의 조선사람들 사회에서 떠돌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다음부터였다. 조선사람들이 일본스파이가 되어 소련국경을 넘나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해주의 조선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나보나 하며 별 관심 없이 들어넘겼다. 스파이라는 특이함도 특이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보다도 더 관심 써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혁명사회 건설이라고 하여 사회 전반의 제도와 바뀌고 있었고, 특히 농촌에서는 지주라는 것이 전부 없어지고 집단농장이 조직되고 있었던 것이다. 연해주의 조선사람들도 만주의 조선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다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해주에서도 어김없이 논을 일구었지만 그 땅이 러시아지주들의 것인 점도 만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동안 소작인 생활을 겪어온 그들에게 지주 없는 집단농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경이었고, 새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조선사람들은 그런 사회 건설을 그야말로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 P126
그러나 양세봉 장군을 잃어버린 조선혁명당군들의 사기는 전만 같지 못했다. 그런데다 이탈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저하되어 갔다. 반면에 일본군과 만주군들의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승리하는 전투가 없어지면서 자꾸 궁지로 몰리게 되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총사령 김호석이 만주꾼에 체포되고 말았다. 조선혁명단군이 분산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그 위기 앞에서 손을 뻗친 것이 동북항일연군이었다. 조선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의 연합군대인 동북항일연군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자는 것이었다. 조선혁명당군들은 만주에 새롭게 등장한 항일세력인 동북항일연군에 편입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혁명당군들은 동북항일연군 대원들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힘이 약한 군대가 힘이 강한 군대에 흡수된 것이 아니었다. 조선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그건 조국해방을 위해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서로 연합하고 협동한 것이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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